Chapter 322 - 시우; 연애조작단(7)
새로운 목표 덕에 의욕이 샘솟기는 했지만… 시우의 여자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시우에게는 이미 좋아하는 여자가 있잖아.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새로운 여자를 소개시켜 주는 건 우리의 개복치를 자극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여태까지 쭉 지켜 보니깐 시우가 생각 이상으로 연애에 관심이 많더라고. 그러니 혈기왕성한 시우 주변에 매력적인 여자를 놔둔다면, 시우의 눈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흐응, 그러니깐 오빠 말은… 새로운 파티원을 모집하자는 거지?”
“응. 작전명,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야.”
그래서 내가 구상한 아이디어는 시우와 함께할 여자 동료를 구하는 것. 나는 시우의 마음을 뒤흔들 여자 파티원을 찾아, 우리의 주인공과 이어 줄 생각이었다.
***
“으음, 새 파티원이라… 글쎄요, 저희 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응, 충분하지 않아. 파티의 기본 조건이 딜탱힐인 거 몰라? 지금이야 큰 사고 없이 굴러가고는 있지만, 만티코어를 상대할 거면 좀 더 안정성을 높여야 해.”
“흐음… 그 말도 맞기는 하네요.”
“그러면 더크 씨는 어떤 파티원을 원하시는 거예요? 로그? 아니면 궁수?”
“궁수도 좋지만 이왕이면 마법사가 더 좋지. 우리 파티는 지금 원거리에서 한 방 세게 먹여 줄 사람이 필요해.”
“마법사라… 물론 있으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마법사가 우리 파티에 들어오려고 할까요? 듣기로는 다들 굉장히 오만하다고 하던데… 저희는 일개 소수정예 파티잖아요.”
“그거야 모으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지. 우선 모집 공고부터 내 보자고.”
사실 시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보통 마법사들은 마탑에 들어가거나 길드에 가입하는 게 일반적이니, 파티에서 마법사를 동료로 맞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인공인 ‘용사’가 있잖아. 원래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나는 시우라는 존재의 개연성을 믿었고, 그 결과 우리는 열 명이 넘는 마법사 지원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반갑다. 조세… 흠흠, 조셉이라고 한다. 연약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 참고해 줬으면 좋겠다.”
“푸하하하! 어이, 조셉! 가서 어미 젖이나 더 빨고 오라고! 어딜 애송이 주제에 더크네 파티에 합류하려는 거야! 애송이면 애송이 답게 눈치 챙겨!”
“이… 이이익! 나는 애송이가 아니다!”
“클클클, 너처럼 쉽게 발끈하는 놈을 보고 애송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멍청아!”
“어이, 외부인은 좀 닥치시지? 아직 면접 중인 거 안 보여? 조셉이 애송이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테니깐… 외부인은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크흠…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나는 열 명이 넘는 지원자 안에서 내가 생각했던 조건에 부합하는, 아주 적절하고 그럴듯한 ‘히로인’을 찾을 수 있었다.
적당히 아름다우면서도, 적당히 귀여운 구색이 있고, 한 번 동료를 만들면 끝까지 그 동료를 믿고 의지할 것만 같은 순수한 존재. 쉽게 밝힐 수 없는 혼자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 조금은 외로워 보이고 조금은 신비로워 보이는 존재.
남장 여자, 마법사 조셉.
관측 스킬로 그녀의 진짜 정체를 파악한 나는 조셉을 우리의 동료로 받아들였다.
“저, 정말인가! 정말로 내가 합격했다는 소리인가!”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기뻐서…”
“하하. 기뻐하니 다행이네. 반가워, 조셉. 나는 앞으로 너와 함께 손발을 맞출 검사, 시우라고 해. 잘 부탁할게.”
“으응! 나도 잘 부탁하겠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함께하게 된 것도 기념인데… 우리 다같이 회식이나 할까?”
뭐야 뭐야. 둘이 벌써 친해진 거야? 면접을 마친 후 사이 좋게 대화를 나누는 시우와 조셉을 바라본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조셉이 여자라고? 그게 정말이야?”
“응. 아티팩트나 마법을 이용해서 남자로 변장한 거 같은데, 나는 알 수 있어. 조셉은 남장 여자야.”
“그렇구나… 나는 또 오빠가 시우를 게이로 만들려는 줄 알았어.”
“소피…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여?”
왜 굳이 남장 여자를 동료로 맞이했냐고 물어 볼 수도 있겠지만, 시우의 사정을 고려하면 사실 여자보다는 남장 여자 쪽이 더 장점이 많았다. 우선 상대가 남자라면 시우가 덜 부담스러워할 거 아냐. 개복치이면서 동시에 숙맥인 시우였기에, 차라리 상대가 남자인 줄 아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이어 주려면, 결국 조셉이 시우를 의식하도록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이때 남장을 활용하면 꽤나 재미있는 이벤트들을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우와 같은 침대를 쓰게 한다든가, 시우와 같이 욕탕에 들어가게 만든다든가 말이다. 이럴 경우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여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들 수 있었다.
“근데, 오빠. 시우는 조셉을 남자로 알고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을 엮는 게 가능해? 시우가 게이가 아니고서야 남장한 조셉한테 두근거리지는 않을 거 아냐.”
“아니, 시우라면 충분히 가능해. 조셉이 남장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 모습도 예쁘장한 편이고, 성격이나 하는 행동도 되게 귀엽잖아? 그러니 둘이서 부대끼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조셉한테 두근거리게 될 거야.”
“………얘기만 들으면 오빠가 지금 조셉한테 두근거리고 있는 거 같은데?”
“에이. 소피, 네가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남장 여자한테 그러겠어?”
“푸흡… 그것도 그렇네. 헤헤, 미안해.”
그리고 무엇보다 시우는 주인공이잖아. 모든 개연성이 시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조셉이 남장 여자여도 시우의 호감을 살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주인공은 히로인을 알아 보는 법이거든. 그러니 사소한 건 신경쓰는 쪽이 손해였다.
“자, 그러면 설명도 끝났으니깐 이제 슬슬 돌아가자.”
“으응, 벌써? 좀 더 둘만 있게 놔두는 게 좋지 않아?”
“에이, 그래도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시우가 의심할 거 아냐. 타이밍 상 지금 돌아가는 게 맞아. 그리고 너무 둘만 놔둬도 어색해할 수 있잖아.”
“흐흥… 알겠어,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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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조셉, 아니 조세핀 델사하트.
델사하트 가문의 유일한 낙제아.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소가주 자리에 오른 나는, 지위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었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고… 가문을 벗어난 나는, 내가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원 불명, 왜소한 체격, 하자있는 마법 실력.
결국 어느 길드에도, 어느 파티에도, 가입하지 못한 나는 지난 겨울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드디어 빛이 왔으니…
‘화력 조절을 못 한다고? 뭐, 어때. 쏠 수는 있다는 거잖아. 그거면 충분해.’
가출한 지 4개월하고도 17일만에 나는 동료를 얻었다.
-짜안
“더 말해다오! 그래서 그자가 또 무슨 말을 했지?”
“으음, 노련한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대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어. 너라면 웬만한 몬스터들 앞에서도 겁먹지 않을 거래.”
“후후후, 그랬단 말이지…”
“아, 맞아… 그리고 또, 큰 마법을 사용하고 나서도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신기하다고 말했었어. 마나가 남아 도는 거 같다고 하던데, 그거 정말이야?”
“호오, 과연… 유명한 짐꾼이라더니 보는 눈이 있구나!”
모두가 나를 민폐 덩어리라고 욕했지만… 세상에는 내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더크. 귀족 같은 외모로 투박한 말을 내뱉는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그는 서민이었고 또 짐꾼이었지만, 그 모습과 행동만 보면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방랑 기사였다.
‘어이, 외부인은 좀 닥치시지? 아직 면접 중인 거 안 보여? 조셉이 애송이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테니깐… 외부인은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아아, 더크… 그때 분명 나 대신 화를 내 줬었지? 우리는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게다가 나는 아티팩트로 남체화까지 한 상황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남을 위해서 화를 내 주다니… 어쩜 그렇게 상냥할까? 자상한 표정으로 나를 아껴 준 그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여자 친구는 있을까?
“여어, 밖에서 씹을 거리를 좀 사왔어. 여기 안주는 다 말랑한 거뿐이라서 말야.”
이크, 벌써 돌아왔잖아! 동료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하던 나는 술에 취한 척 헤롱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애인이 되어 손을 잡는 상상을 하다니, 발랑 까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 더크 씨. 오셨어요. 근데 이거… 마담한테 들키면…”
“후훗, 당연히 허락을 받았답니다.”
“하하, 그래? 역시 레이첼이야. 꼼꼼하구나?”
그에 비해 레이첼은 수녀답게 굉장히 순수하구나. 그래도 동료인데, 시우랑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것 좀 봐. 저렇게 깨끗한 레이첼이라면 분명 뽀뽀를 하는 것만으로도 민망해서 기절하겠지?
흐응, 흥… 근데 뽀뽀라니… 술을 마셔서 그런가?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문란한 생각이 들었다. 더크랑 손을 잡고, 더크랑 뽀뽀를 하고… 아아, 안 돼! 뽀뽀를 하면 아기가 생긴단 말야!
“응? 조셉 씨? 저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수녀님! 아리아 여신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더 이상 음란해지는 게 두려웠던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