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0 - 시우; 연애조작단(5)
아니 이 새끼 이거, 현생의 시우보다 더한 거 같은데?
조금만 건드려도 폭주해 버리는 시우 탓에 도무지 클리어 각이 보이질 않았다. 이거 미션을 깨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던 여신의 의뢰인데… 지금 보니 역대급 난이도였다.
시우의 멘탈을 유지시키면서 소피아를 네토리하라고?
젠장. 전생의 두 사람이 영혼의 계약을 맺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허구한 날 터져버리는 시우의 멘탈을 위해서 전생의 소피아가 보험을 들어 준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클리어를 위해서라면 그런 보험이 필요할 거 같은데…
아, 몰라. 그래도 계속 반복하다 보면 한 번은 통하지 않을까? 시우를 위해서 뭔가를 해 줘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났던 나는, 반포기 상태로 소피아를 끌어안았다.
“우으… 진짜 짜증나! 저딴 게 용사야? 정말 최악이잖아!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자꾸 배신당한 척 울먹이는 거 진짜 극혐이야!”
“소피…”
“왜!”
“아니, 화내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서…”
“……흐흥, 그래? 오빠는 내가 그렇게 좋아?”
“응. 단발이 내 취향인 줄 알았는데, 그냥 소피가 내 취향이었나 봐.”
“바보… 그렇게 말하면 또 흥분되잖아… 아잉, 문은 잠가 놨지?”
열 번 넘게 회귀를 반복하면서 시우가 잠에 드는 패턴을 익힌 우리는 간만에 몸을 겹쳤다. 시우 탓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다. 아니, 사실 그건 핑계였고 그냥 서로가 좋아서였지만… 뭐,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오늘도, 으응… 오빠가 내 처녀를 가져갔네? 헤헤…”
미래가 보이질 않는 루프물에서 함께할 수 있는 소피아가 옆에 있다는 건 정말로 크나큰 행운이었다.
***
“오빠, 우리 작전을 조금 바꿔볼까?”
“어떤 식으로?”
“시우가 나를 싫어하게 만드는 거야! 이른바 ‘고백할 생각도 없는데 차이기’ 작전! 어때? 그러면 시우가 폭주할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게 바로 현자타임의 힘? 밤새도록 섹스를 한 보람이 있었다. 노린 건 아니었지만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그러니깐… 시우 쪽에서 먼저 나가떨어지게 만들자, 이거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굴려 보니, 이거 꽤나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리 시우가 개복치라 해도, 본인이 소피아한테 실망했다고 자기 멘탈이 터지지는 않을 거 아니야. 칭찬의 의미로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나는, 그녀와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어… 레이첼? 크흠, 그으… 의상이 바뀌었네?”
“네. 시우 씨도 아시다시피 수녀복이 조금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거동이 편한 의상으로 갈아 입었어요. 어때요? 어울리나요?”
“엄청 어울리긴 한데… 그으, 노, 노출이 조금…”
“아, 다리요?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다른 모험가 분들도 이 정도 노출은 하잖아요. 보여 주려고 입는 것도 아닌데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요?”
“그… 그렇긴 한데, 크흠흠… 근데 왜 상의도…”
“아, 이거요? 제가 가슴이 크다 보니 자꾸 땀이 차서요… 바람이 잘 통하는 의상으로 갈아 입었어요. 이런 걸 언더붑이라고 하던데, 괜찮지 않나요?”
그렇게 해서 세운 첫 번째 계획이 소피아가 문란한 여자인 척 연기를 하는 건데…
이거는 시우보다 나한테 더 큰 타격이 왔다. 자기만 믿으라길래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 노출의 수위가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피아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남들에게, 특히 시우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 당장 이리 와.”
“꺄앗, 더, 더크 씨?!”
그래서 나는 작전도 잊은 채 소피아를 데리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흐흥, 오빠 질투하는 거야?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헤헤, 귀여워.”
“너… 당장 갈아 입어.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헤헤… 오빠 보여 줄려고 몰래 구했지. 사실 오빠 반응이 궁금해서 입었던 건데… 작전 성공이야! 이런 게 구속당하는 기분인가? 흐흥, 나쁘지 않네.”
“소피…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이야기를 꺼냈던 거야?”
“그건 아니고… 겸사겸사? 헤헤, 이야기는 이제 됐으니깐, 오빠가 직접 벗겨 줄래? 실은 오빠한테 벗겨지는 것까지가 계획이었…”
-덜커덩
“레이첼?! 더크 씨?! 갑자기 무슨… 어, 어라? 왜 둘이서 끌어안고…”
“앗, 오빠도 참! 문을 잠갔어야지!”
“오… 오빠라고? 도대체가… 끄으윽, 끄아아아아악!”
에휴, 결국 이렇게 되나. 이번에도 작전에 실패한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첫 번째 계획 대신, 두 번째 계획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
“으음, 그으… 레이첼?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너 조금 달라지지 않았어? 그으… 지금의 넌 옛날의 네가 아닌 거 같아.”
“제가요?”
“옛날의 너는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었고, 매일매일 수련도 잊지 않았었는데… 그, 최근의 너는 뭐랄까… 조금 방황하고 있달까? 여신님의 사명을 잊은 것처럼 보여…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말야. 하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사명 따위 알 게 뭐야. 저는 그냥 대충 살 거예요.”
두 번째 계획, 그것은 소피아가 태업을 하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미 소피아한테 반해 버린 시우지만… 그녀의 게으른 모습을 자꾸 보여 주면, 시우도 마음을 접지 않겠어? 시우의 수련충 마인드를 자극하는 상당히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성과가 있어서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대로라면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과연 어떨까? 나는 숨을 죽인 채,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훔쳐보았다.
“레이첼, 너어… 이 세계가 멸망해도 좋다는 거야?”
“멸망하면 어때요. 어차피 저 혼자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여기서 더 수련한다고, 마왕을 토벌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는데… 우리 그냥 다 같이 죽을래요? 응, 그게 좋겠어. 사명 따윈 잊고 그냥 지금을 즐겨요.”
“너어… 끄윽, 이런 애가 아니었잖아…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약해서… 네 의지가 무너진 거야? 끄으윽… 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이걸 혼자 자폭한다고? 계획대로라면 소피아에게 실망한 시우가 혼자서라도 마왕을 잡겠다고 결심하는 거였는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시우가 너무 심약했다. 지금 보면 전생에 마왕을 토벌한 것부터가 기적이었다.
전생의 소피아는 대체 얼마나 성녀였던 거지?
그녀의 노력에 잠깐 경애를 표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시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작전이었다. 용사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야. 마왕 안 잡을 거야? 짐꾼한테 대련에서 진다면 수련에만 몰입할 거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으아아아아악! 다시, 다시 붙어요!”
-콰가강, 쾅
“질 수 없어요! 다시! 한 번 더 붙어요!”
-퍼억, 퍽
“끄아아악, 다시이! 아직 안 졌다고요!”
-퍼퍼퍽, 퍼억
“끄엑… 끄아아아아악!”
그러나 어이없게도 시우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씨발… 이딴 게 용사? 졌으면 반성하고 수련이나 할 것이지, 왜 혼자 폭주하고 지랄이야.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잖아! 시우를 너무 얕봤던 우리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고 말았다.
***
“오빠… 우리 이제 어쩌지? 이러다가 여기서 영원히 못 빠져나가는 거 아니야?”
“하아, 그러게…”
“우으, 열 받아! 짜증나는데 우리 그냥 즐기면 안 돼?”
“응? 즐기자고?”
“응응! 어차피 답도 안 보이는데… 우리 그냥 시우나 약올리면서 즐기자!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해결책도 생각나지 않겠어? 이러다가는 우리까지 폭발할 거 같단 말야!”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반복되는 실패에 지쳤던 나는 소피아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면 잠시 쉬어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한 보 전진을 위한 두 보 후퇴라는 격언을 실천할 때였다. 응? 뭔가 잘못 됐다고? 아아, 몰라. 중요한 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어?
진지하게 시우에게 싫증 난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어 가면서 이전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응? 레이첼, 어디 아파?”
“으응, 잠깐… 현기증이 나서요.”
“그렇구나,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쉴까?”
“음, 그게 좋아 보여. 날도 어두워 졌으니깐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 가자.”
“네, 더크 씨. 저는 정찰하고 올 테니깐 그 동안 레이첼을 부탁할게요.”
“그래, 나만 믿으라고.”
-터벅터벅
“흐응… 갔어?”
“응, 어디 보자… C포인트에서 정찰 갔으니깐, 앞으로 28분 동안은 안 돌아올 거야.”
“28분은 너무 짧은데… 에이, 몰라. 들키면 들키는 거지. 자, 오빠. 기록은 그만하고 얼른 와서 박아 줘.”
“뭐야, 벌써 축축한데?”
“이게 다 오빠 때문이잖아! 찌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나 엄청 쫄았던 거 알아? 이번에도 들키는 줄 알고 식겁했단 말야!”
“에이, 그래도 내가 너처럼 열 번 연속으로 들키지는 않지. 이제는 감이 왔어. 웬만하면 뒤에서 만져 대도 안 들킬 거야.”
“흐응… 그래? 푸흡, 근데 우리 진짜 웃기다. 예전보다 더 열심이잖아. 이러다가 안 들키고 마왕 토벌전까지 가는 거 아니야?”
“호오, 그러게… 토벌전 직전에 시우 앞에서 섹스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겠는데?”
“아하하하하! 그거 좋은 생각인걸?”
이른바 작전명 ‘용사 파티의 짐꾼이 되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