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19화 (319/428)

Chapter 319 - 시우; 연애조작단(4)

“여어, 더크! 왔냐!”

“뭐 해! 와서 얼른 한 잔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게 술잔을 건네며 나를 반겨 주는 모험가들. 으음, 그래. 나 정말 돌아온 거 맞구나. 이런 식으로 일이 해결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히로인 네토리’가 내게 도움을 준 거 같다.

“뭘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어. 들어 오래도?”

“크하하, 오늘도 취해 보자고!”

분명 세계관의 멸망을 막기 위해 시공간을 리셋시킨 거라고 했었지? 그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도 실패할 때마다 시공간이 리셋된다는 건데, 으음…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방금 같은 일이 일어나도 계속 원 코인 씩 더 준다는 거잖아. 역시 ‘히로인 네토리’, 최고의 능력이었다.

“그쪽이 그 유명한 더크인가요?”

그렇게 안심한 내가 건네 받은 술을 들이키고 있는데, 저 멀리서 기분 나쁘게 생긴 놈이 내게 다가왔다.

“흥, 그렇게 말하는 그쪽은 누구지?”

“아, 죄,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시우, 검사입니다!”

호오, 대사가 완전히 똑같잖아. 반응을 보니 시우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나 혼자 회귀한 건가? 하긴 멸망을 막기 위해 시공간을 리셋시킨 건데, 시우가 그 일을 기억하는 것도 웃겼다.

“좋아. 젊은 놈이 패기가 있군. 나쁘지 않아. 어디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그러면, 뭐…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나는 지난 번과 같은 대사를 날리며 시우와 함께 소피아를 만나러 자리를 옮겼다.

“어머, 더크 씨네요?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시죠? 어렸을 때 소피아라고 불렸던 레이첼이에요! 와아,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요!”

“레, 레이첼?! 더크 씨랑 아는 사이였어?”

“네! 엄청, 엄청, 친했던 분이에요!”

그런데 소피아는 또 경우가 다른 건지 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영혼만 넘어와서 그런 걸까? 대사와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 걸 보면, 소피아 역시 회귀를 한 게 맞았다.

“…오랜만이야, 소피. 아니 이제 레이첼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뇨, 계속 소피라고 불러 주세요! 흐흥.”

그렇다면… 결국 루프물이 됐다는 건데… 이야, 이건 좀 흥미로운걸? 회귀를 경험한 적은 있었지만 루프에 빠진 건 처음이라 흥분이 되었다. 이거 이러면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기쁜 얼굴로 용사네 파티에 합류했다.

***

“으음, 딸꾹… 하아,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딸꾹…”

“그래, 알겠으니깐 어서 들어가서 자.”

“그러면 먼저, 우욱… 실례하겠습니다.”

-끼이익

-덜컥

이번에도 파티 결성 기념으로 회식 자리를 가진 우리는 시우를 꽐라로 만들었고, 지난 번과 다르게 시우를 확실하게 재운 다음, 문을 잠가 예기치 못한 난입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 정도면 시우도 우리를 방해하진 않겠지?

안심한 우리는 소피아가 묵고 있는 방에 모여 앞으로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했으니 열정적인 섹스를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워낙 당황스러운 일들이 반복되었기에 오늘만큼은 조금 자제를 하기로 했다.

“…응, 맞아. 여신님한테 들었어.”

“정확히 어떤 걸 들은 거야?”

“으응… 오빠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거랑, 오빠가 나를 오빠네 세계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거랑… 그러기 위해선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것 정도? 아,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해 주셨었어.”

뭐야, 어쩐지 조금 이상하더라. 소피아답지 않게 너무 과격하게 행동한다 싶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렇구나… 그으,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응? 뭐가?”

“내가 너를 계속 속였던 거 말야…”

“흐응… 솔직히 별 생각 없는데? 헤헤, 다른 세계 사람이면 뭐 어때.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오빠도 나를 사랑하니깐 오빠네 세계로 데려가려는 거잖아. 그러니깐… 헤헹, 나를 속였다고 죄책감 같은 거 안 느껴도 돼.”

“소피…”

베시시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 주는 소피아. 역시 성녀, 아니 여신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뭐, 종교를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야? 조금은 화를 낼 만도 한데 소피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진짜… 너무 사랑스럽잖아! 이렇게 착하고 예쁜 여자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다니, 정말이지 나는 행운아였다.

“흐흥, 그 표정은 뭐야. 감동한 거야?”

이렇게 되면 호감도 300은 당연히 돌파했을 거니, 이제 남은 건 여신이 준 미션을 통과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코인이 무한하니 사실상 깬 거나 다름 없었다. 으음, 역시 왕도 용사물 세계관. 여기선 좋은 일만 일어난다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소피아가 그런 나를 뻔히 쳐다보니 약간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있지… 오빠, 나 같은 여자가 한둘이 아니지?”

“…응?”

“오빠, 차원의 유랑자라며. 그러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을 계속 만났을 거 아냐. 내 말이 틀렸어? 말해 봐. 대체 몇 명이나 만났어?”

“그게…”

“흐으응… 세 명? 다섯 명? 그것도 아니면 설마 두 자리 수야?”

“그, 그건 아닌데…”

“그럼 있기는 있다는 거네? 흥! 역시 나 한 명으로는 만족 못 하는 구나? 루이즈, 그 여자한테 넘어갈 때부터 알아 봤어… 하여튼 오빠는 유혹에 너무 약해!”

그으… 사실 유혹을 하는 쪽은 내 쪽이지만, 그걸 굳이 내가 밝힐 필요는 없겠지. 예상치 못했던 소피아의 지적에 당황한 내가 식은땀을 흘렸다. 안 그래도 현실로 돌아가면 세실리아와 위지혜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이거 괜찮은 걸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자 속이 불편해 졌다.

아, 아니야. 지금은 우선 지금 상황에 집중하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거잖아.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백지로 만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소피아를 안아 주었다.

“그래도 알지? 내 첫 번째는 항상 너야, 소피.”

“흐으응… 하여튼 나도 오빠한테 너무 약하다니깐.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되는데… 으휴, 믿어 줄게. 믿어 줄 테니깐 조금 더 꽉 안아 줘어… 헤헤.”

그래도 다른 히로인들에 비해 소피아가 순진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

아무튼 그렇게 잠깐의 위기를 극복한 나는, 본격적으로 소피아와 함께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표는 시우를 소피아에게서 독립시키는 것.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우리 둘은 자신이 있었다.

“그냥 헤어지면 되는 거 아니야? 아, 아니지.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구나. 그러면 더 잘 됐네. 그냥 내가 찾아가서 정 떨어졌다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걔 좀 별로라서 정색할 자신 있거든.”

“그랬어? 그래도 소꿉친구잖아.”

“그러면 뭐 해. 창관 죽돌이잖아. 돈 벌 때마다 창관에 가는 애를 어떻게 좋게 봐. 전생의 시우도 똑같을 걸? 으으…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최악이야.”

“크흠흠… 근데 또 너무 세게 말했다가 혼자 폭주하면 어떡해.”

“글쎄? 에이, 고민할 게 어딨어. 폭주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지! 우리 고민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자.”

확실히,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하나만 걸려도 클리어 되는 거잖아. 의욕적으로 의견을 내는 소피아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던 나는, 그녀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수련장으로 향하는 시우를 찾아 갔는데…

“축하해 줄래요, 시우 씨? 우리 둘이 사귀기로 했어요. 어제 시우 씨 들어가고 나서 우리끼리 한 잔 더 했는데, 그러다가 선을 넘어 버렸거든요… 헤헤,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우리 제법 잘 어울리죠?”

“레, 레, 레이첼?”

“그래도 파티를 탈퇴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깐 안심하세요. 우리 앞으로도 같이 잘해 봐요! 아, 맞아. 중간중간에 자리를 비울 수도 있는데… 그때는 모른 척 넘어가 주세요. 흐흥.”

“거, 거짓말이지? 어떻게 하루만에… 우, 우리 서로 사랑하던 거 아니었어?”

“미친. 무슨 소리세요 그게… 미안한데 제 몸도, 마음도, 이미 다 더크 씨 거니깐… 시우 씨는 정신 차리시고 그냥 창관이나 가세요.”

“끄아아아아악!”

얼마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시우가 폭주하고 말았다.

-띠링

[세계관이 멸망할 가능성이 발생하여 시공간이 리셋됩니다.]

그래도 뭐, 소피아 말대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처음으로 돌아간 나는 다시 시우네 파티에 합류한 다음, 술을 마셨다가 작전을 수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소피아와 함께 시우를 찾아 갔다.

“저기 시우 씨… 미안한데 저는 시우 씨가 남자로 안 보여요. 그러니깐 자꾸 저한테 눈치 주는 거 좀 그만 두면 안 돼요? 저 그거 엄청 신경 쓰여서 불쾌해요.”

“레, 레이첼?”

“그리고 더크 씨 같이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때마다, 은근슬쩍 저랑 가깝다고 어필하는 것도 그만 둬 주세요.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자꾸 그렇게 견제하는 거 솔직히 좀 역겹거든요. 알겠죠? 그러니 앞으로는 우리 서로 조심해요. 네?”

“끄,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다시, 시우가 폭주하는 것을 목격한 다음 원점으로 돌아갔다.

-띠링

[세계관이 멸망할 가능성이 발생하여 시공간이 리셋됩니다.]

으음, 뭐, 한두 번 가지고 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어. 방법을 바꿔가면서 조금씩 수정하다 보면 결국은 통하지 않겠어? 크게 개의치 않은 나는 다시 시우네 파티에 합류한 다음, 술을 마셨다가 작전을 수정했고…

“시우 씨… 우리 조금만 거리를 두면 안 될까요? 저희에겐 사명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러다가, 저희의 사명을 잊은 채 그만 길을 잃을까 봐, 그게 걱정이 되어요…

“레이첼…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아, 더크 오빠! 헤헤, 잘 잤어? 아이, 참! 아침부터 머리 쓰다듬지 마! 다 헝클어진단 말야. 이런 건 나중에 우리 둘이 있을 때만… 아, 시우 씨. 뭐라고 하셨나요?”

“끄, 끄윽… 끄아아아아악!”

그렇게 한 열 번쯤 반복하다가, 시우 이 새끼가 진짜 개복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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