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7 - 시우; 연애조작단(2)
[나의 가호를 받은 용사와 성녀가 만나, 함께 모험을 하며 힘을 기르던 시기로 너를 보내 주겠다. 그때라면 아직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이니, 둘의 사이를 방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오… 감사합니다, 여신님!”
[허나 너무 방심하지는 말거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이니, 너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 적당히 감사합니다, 여신님…”
[그러나 너무 낙담하지도 마라. 신력(神力)을 사용해 네가 원하는 신분의 인물로 네 존재를 꾸며 주겠다. 성주? 기사? 모험가? 무엇이든 가능하다. 너는 내게 부탁만 하면 된다.]
“오… 나의 여신님!”
[……너의 여신이 아니라 모두의 여신이다.]
사실 네토리를 하라는 말에 생각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그러고 나서 막막함을 느꼈었다. 여신의 대행자가 되어 마왕을 무찌르려는 용사가 뭣도 아닌 놈의 접근을 쉽게 허락할 리 없잖아. 전생에서 성녀를 네토리하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신분을 얻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지. 여신의 지원에 탄성을 지른 나는, 그 즉시 나를 ‘짐꾼’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리쳤다.
[짐꾼…? 설마 모험가들의 시중을 드는 그 짐꾼을 말하는 건가?]
“네. 여신님이 생각하시는 그 짐꾼 맞습니다.”
[허나 그 신분으로는 두 사람의 연애를 방해하기가 쉽지 않을 터.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아니요. 여신님은 잘 모르시나 본데, 원래 용사의 카운터가 짐꾼이에요.”
[으음? 그, 그게 정말인가?]
“여신님. 생각해 보세요. 일단 짐꾼이 되면 용사 파티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지잖아요? 그것만으로 합격점인데, 짐꾼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파티원들과 단 둘이 있는 시간도 만들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건 그대가 용사의 동료가 되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에이, 동료가 되면 괜히 쓸데없는 의심을 살 수도 있잖아요. 반면에 짐꾼이 되면 그런 오해를 사는 대신, 저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용사가 방심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 짐꾼 쪽이 무조건 더 좋아요, 여신님.”
[호오… 과연, 일리가 있군.]
이쪽 세계의 여신이라서 그런가? 이런 당연한 이야기에 감탄을 하다니,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짐꾼이 용사의 파티원들을 네토리하는 건 ‘상식’이잖아. 그런데 아직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리아 여신은 상대적으로 상식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생의 소피아를 네토리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렇다면 그대를 전생의 유명한 짐꾼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눈을 뜨면 모험가 길드가 앞에 보일 것이다. 거기서 용사와 성녀를 만나 둘의 계약을 저지하거라.]
“네. 맡겨만 주세요, 여신님!”
***
-덜커덩
-띠링- 띠링-!
“여어, 더크! 왔냐!”
“뭐 해! 와서 얼른 한 잔 받아!”
눈을 뜨자 여신의 말대로 커다란 건물 하나가 보였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딱 봐도 노련해 보이는 모험가들이 내게 술을 건네며 나를 반겨 주었다.
“뭘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어. 들어 오래도?”
“크하하, 오늘도 취해 보자고!”
이게 바로 여신의 힘? 나를 유명한 짐꾼으로 만들어 주겠다더니, 과연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나를 환대하는 모두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인기인이라면 용사네 파티에 합류하기도 쉽겠지. 사람들의 반응에 만족한 나는 자연스레 무리 안으로 들어갔다.
“건배-!”
-짠!
“와하하하하!”
그 후 호방하게 맥주를 들이킨 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 보았다. 길드 안에는 수십 명의 모험가들이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으, 이게 바로 RPG지. 그 광경에 흥분한 내가 연이어 술을 마셔 대자, 모험가들이 박수를 치며 내게 추파를 던져 댔다.
“더크, 이번에 말야. 글쎄 우리가 B급 던전을 하나 공략하려고 하는데… 어때, 오랜만에 한번 뭉치지 않겠어? 우리 그때 좋았잖아. 이번에도 같이 한번 해 보자고!”
“이 새끼가 어디서 새치기야! 더크, 그러지 말고 우리 파티로 와. 남자가 B급 가지고 성이 차겠어? 적어도 A급은 노려 봐야지. 그게 남자잖아!”
“남자는 개뿔. 네가 말하는 A급은 던전이 아니라 몬스터잖아. 이 구라쟁이야!”
“어허, 누가 아니래? 나는 사실만 말했어, 사실만! 괜히 사람 구라쟁이로 몰지 마!”
거 참 시끄럽네. 너무 인싸인 것도 별로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저 멀리서 기분 나쁘게 생긴 놈이 내게 다가왔다.
“그쪽이 그 유명한 더크인가요?”
“흥, 그렇게 말하는 그쪽은 누구지?”
“아, 죄,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시우, 검사입니다!”
“뭐야, 이 애새끼는… 야, 너는 저리 꺼져. 형님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저 새끼 저거, 최근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 새끼잖아. 어이 애송이! 너도 더크를 노리는 거냐? 정말이지… 요즘은 개나 소나 설친다니깐.”
“크흠… 그렇습니다! 더크 씨, 당신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건 또 뭐야. 이러면 너무 쉽잖아.
안그래도 용사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자기가 먼저 다가와 주면 땡큐지. 원했던 대로 시우를 만난 나는… 아니, 잠깐! 전생에서도 이름이 시우네? 이것도 운명인 건가? 아무튼 잠시 동안 연기를 한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우에게 대답했다.
“좋아. 젊은 놈이 패기가 있군. 나쁘지 않아. 어디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더크! 너 설마 우리를 버리려는 거냐!”
“흥, 함께하기로 한 적도 없잖아.”
“가, 감사합니다, 더크 씨! 그러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와 주세요!”
***
생긴 것만 보면 현생의 시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긴 얼굴과 다부진 체격, 그리고 군데군데 보이는 잔근육들. 전형적인 판타지 세상의 주인공, 그대로였다.
짜식, 오랜만에 보니깐 반갑네.
전생의 시우였지만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나도 정이 많다니깐. 나름 즐거웠던 시우와의 추억을 내가 떠올리고 있자, 옆에서 작고 귀여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 씨… 저 사람은 누구세요?”
“아, 레이첼! 인사해. 이쪽은 더크 씨라고 유능한 걸로 유명한 짐꾼이셔. 그리고 더크 씨! 인사해 주세요. 이쪽은 레이첼, 제 동료이자 뛰어난 성직자예요!”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이쪽이 전생의 소피아겠지? 맑고 커다란 두 눈과 봉긋하게 솟은 두 젖가슴. 아쉽게도 이름은 달랐지만 생긴 것은 현생의 소피아와 똑같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런데 긴 생머리의 소피아도 정말 매력적이구나… 약간은 긴장한 듯한 얼굴로 나를 경계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을 뻔했다.
후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참아야겠지. 필사적으로 욕망을 억누른 나는 최대한 무심한 척 전생의 소피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자, 그러면 인사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좋아. 네가 바라는 게 뭔지 한 번 읊어 봐.”
“크흠… 그러면 더크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지금… 만티코어를 노리고 있습니다. S급 몬스터인 그 만티코어 말입니다.”
“…놀랍군. 고작 둘이서 만티코어를 노리고 있다고?”
“물론 더크 씨 눈에는 저희가 못 미더워 보이겠죠. 하지만… 저희에게는 충분한 실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에게 증명하기 위해, 레이첼과 저는 만티코어를 사냥할 겁니다!”
“흐음… 그렇군. 그건 알겠어. 그런데… 고작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전투에 별 도움이 안 돼.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찾은 거 같은데?”
“저희가 더크 씨한테 바라는 건 경험과 연륜입니다. 저희 두 사람은 분에 넘치는 능력을 손에 넣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싸우는 방법 말고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더크 씨에게서 파티를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마침 목표가 만티코어 사냥이니 준비 과정부터 처리까지 확실하게 배울 수 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응, 아니야. 신분만 꾸며낸 건데 내가 뭘 알겠니.
하지만 못 한다고 대답을 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대충 무게를 잡은 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솔직하게 내 실력을 밝히는 대신 두 사람을 속일 생각이었다. 들어 보니 얘네들도 초짜 같은데, 어설프게 가르쳐 줘도 별 문제는 없지 않겠어? 결국 들키기 전에 네토리만 성공하면 되는 일이었다.
-스으윽…
-스윽…
그렇게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부드럽고 말랑한 무언가가 내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시우에겐 들키지 않게 테이블 아래에서 말이다. 그에 깜작 놀란 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요염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전생의 소피아가 내 눈에 들어왔다.
-스윽…
-스으윽…
으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스킨십에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소피아의, 아니 레이첼의 발끝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더니… 닿아서는 안 되는 내 그곳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시우가 앉아 있는데도 말이다.
-스으윽…
-스윽…
아니, 이거… 좋기는 한데… 전생의 소피아랑 전생의 시우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 아니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한테 끌렸다며. 그래서 영혼의 계약까지 맺었다며. 그런데 이게 뭐야. 시작도 하기 전에 오히려 나를 공략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다.
무엇보다 처녀일 그녀가 이런 발 컨트롤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건 뭐 가지고 노는 수준을 넘었잖아. 순진한 얼굴로 내 자지를 발기시킨 그녀가 마치 발가락으로 글자를 쓰듯이 내 자지 위를……
아니, 잠깐만.
진짜로 쓰고 있잖아?!
ㅅ… ㅗ… ㅍ… ㅣ… ㅇ… ㅏ…
소… 피… 아…
소피아?!
뭐, 뭐라고? 소피아라고?!
깜짝 놀란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배시시 미소 지은 그녀가 장난치듯이 혀를 빼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