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6)
* * *
아침이 되자마자 눈을 뜬 저는 그 즉시 하나를 데리고 남자를 찾아갔어요. 아직 잠에서 덜 깬 하나가 제게 불평불만을 터뜨려지만 저는 한시라도 빨리 남자를 만나야만 했어요.
5점 만점에 5점짜리 달콤함이 저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기대가 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잔 제게, 잠시라도 머뭇거릴 여유 따윈 없었어요.
쪼옥
“잘 잤어?”
하지만 정작 저를 맞이해 준 건… 정말 가볍고도 산뜻한, 뜻밖의 모닝 키스였어요.
“……어?”
“일찍 일어났네? 피곤해 보이는데 세수라도 하고 와.”
너무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배신감에 손발이 덜덜 떨렸어요. 노려보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서 일부러 눈도 꾸욱 감았고요, 혀가 들어오기 쉽게 일부러 입도 슬쩍 벌렸어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끝낸다고요? 싫어요, 이러면 침을 마실 수 없잖아요!
충격을 받은 저는 멍한 얼굴로 세수를 하고 돌아왔어요.
“하아, 츄읍, 흐응… 하아, 아저씨이… 으응, 츄릅, 츕…”
그리고… 그런 저를 맞이해 준 건, 딥 키스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어요.
“으응, 츄읍… 꿀꺽, 푸흐… 하아아아… 키스, 너무 좋아아…”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입술을 맞대고 혀와 혀를 섞는 하나와 남자. 어제처럼 가슴을 만지는 음란한 애무는 없었지만 훨씬 더 끈적해 보이는 두 남녀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너, 너무 야하잖아요! 아니, 그 이전에! 너무 치사하잖아요!
“츄릅, 츄읍, 츕… 으응, 하아… 츄릇, 츕… 하아, 더어, 좀 더어어…”
아아, 부러워. 어째서 하나한테만 침을 주는 거죠? 추잡한 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매달리는 하나를 보자 질투가 났어요. 하나는 미식에 별 관심도 없는데… 맛있는 걸 먹어도 그냥 맛있다, 하고 넘기는 앤데… 그런 애한테 5점짜리 침을 저렇게 잔뜩 주다니… 너무 안타까워요!
저였다면 훨씬 더 진지하게 음미했을 텐데… 저렇게 꿀꺽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맛을 온전히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혀를 굴려 대며 남자의 침을 맛보고 느꼈을 텐데… 이 상황이 너무 너무 억울했어요. 부러움에 화가 난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어요.
“하아아, 아저씨이… 근데 있잖아요… 저희 커피도 사려고 하는데요, 으으응… 혹시 가능할까요?”
“커피?”
“네에… 헤헤, 후식으로 먹고 싶어서요.”
“가능은 한데… 알지? 공짜 아니다?”
“그야 당연하죠! 얼마면 될까요?”
“으응, 글쎄 딱히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아, 그래. 너희 둘이 키스하는 걸로 할까? 하하. 농담이야. 커피는 그냥 서비스… 엥?”
“으읍?!”
“하아… 이렇게, 하아, 츄릅… 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기회가 왔을 때, 곧바로 하나에게 달려들었어요. 친구랑 하는 키스가 조금 부답스럽긴 했지만, 하나 입술에 묻은… 남자의 침을… 핥을 수 있는 기회를 이대로 날릴 순 없었어요. 어제부터 기다려온 5점 만점짜리 침이란 말이에요!
“하, 하린아?! 으읏, 자, 잠시… 흐응, 츄읍, 하아… 야아아!”
“하나야, 츄릅, 츕, 츄르으읍… 하아, 츄릅, 츄읍, 꿀꺽… 하아, 츄읍…”
“아저씨가, 하앙, 농담이라고 했는데에… 츄읍, 으응…”
작고 귀여운 하나의 입술을 깨문 저는 혀를 낼름거리며 친구의 입술을 핥아 댔어요. 그리고 참다못해 하나의 입술을 빨아들인 저는 친구의 어깨를 붙잡고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하아앙, 이거야. 바로 이거예요! 제가 어제부터 계속 기다려 왔던, 이 달콤하고 황홀한… 찬란한 맛! 이게 바로 남자의 침!
“하린아, 너어어! 하아… 하아… 그만 하래도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그의 침은 얼마 안 가 사라졌고, 그에 기운이 빠진 저는 하나에게 밀려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어요. 하아… 좀 더 맛보고 싶었는데… 역시 이렇게 억지를 부릴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남자랑 직접 …
“야아! 너 진짜 갑자기 뭐야아! 엄청 무서웠단 말야!”
“으응?”
“뭐가 으응이야! 너 설마 레즈였어?! 방금 그건 대체 뭐냐구우!”
“어… 어어어?!”
아니, 미쳤나 봐, 진짜. 또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아무리 5점짜리 디저트라 해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하나랑 키스를 하고 난 후였어요. 시우랑도 하지 않은 키스를 말이에요. 하아, 이래서 맛있는 음식은 위험하다니까요?
안 되겠어요. 최대한 빨리 남자랑 키스해서 여유를 되찾아야겠어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이상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다짐을 한 저는 남자의 입술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어요.
***
“와아, 도시락! 기다리고 있었어!”
“그게 끝이야? 하아, 어이 없네 진짜. 우리 다시 간다?”
“에이, 하나야. 농담이지. 흐흐흐, 고마워. 어제는 내가 좀 심했지? 미안해. 너 가고 나서 반성 많이 했어.”
“흥, 알면 됐어.”
하나에게 용서를 구한 저는 도시락을 들고 305호실로 향했어요. 시우의 얼굴을 보는 게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굶길 수는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화해 아닌 화해를 하는 것도 좋아 보였어요.
“……고마워, 하린아.”
“으응…”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어제 그렇게 심각하게 싸워 댔던 저기 저 두 사람도 화해를 했는데… 저희 커플은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있단 말이에요. 이거,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후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치 처음 만난 사이처럼 서로가 불편해진 저희는 아무 말 없이 벽에 기대 도시락을 꺼내 먹었어요.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화해를 하는 게 맞겠지만, 시우는 오늘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으음,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할까요?
다른 남자랑 키스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그 키스는 그냥 무효로 하고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우리 둘만의 첫 키스는 아직이잖아. 그러니 지금이라도……
…으휴, 머릿속으로 시우에게 할 말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어요. 무엇이 됐든 방금 전까지 다른 남자랑 딥 키스를 하려고 발악했던 제가 할 소리는 아니었어요. 아무리 남자의 침이 맛있다고 해도… 그와 혀를 섞는 건 시우를 배신하는 행동이잖아요.
“잠은 잘 잤어? 피곤해 보이는데.”
“얼마 못 자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멀쩡해.”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으응…”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배신은 시우가 먼저 한 거 아닌가요?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는데도 저를 외면한 건 시우였잖아요. 그러니 이제 와서 저를 탓한다 해도 저는 당당할 수 있었어요.
어차피 해야 하는 키스, 그리고 언젠가 하게 될 딥 키스인데… 그러면서 조금 즐기는 것 정도는 해도 괜찮잖아요. 그렇게 맛있는 침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걸 억지로 외면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남자 친구라면 여자 친구가 원하는 걸 이해해 줘야죠. 그게 애인이잖아요.
“후우, 잘 먹었습니다.”
“으응?! 아, 응…”
“그럼 하린아. 갔다 올게.”
“알겠어...”
하아, 모르겠어요. 미안했다가, 화가 났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시우만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 왔어요. 예전에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우였는데… 이제는 콩깍지가 벗겨졌는지 더는 그렇지 않았어요.
“다치지 말고… 조심해.”
그래도… 저를 구원해 준 시우니깐, 너무 화만 내서는 안 되겠죠.
저보다 숙맥인 시우를 오늘도 이해해 주기로 결심한 저는, 떠나가는 시우의 손을 붙잡았어요. 언제나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시우의 손. 그래, 이 손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잖아.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주자. 저는 시우의 손을 꼬옥 잡은 다음 조심하라며 배웅해 주었어요.
“응! 믿어 줘! 너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서 돌아올게!”
“야, 인마! 재수없는 소리하지 말고 골프채나 챙겨. 그리고 하린아, 걱정할 거 없어. 오빠가 존나 그럴싸한 계획을 짜 놨거든? 그러니깐 너랑 하나는 안심하고 기다리기만 해. 우리가 다 해줄 테니깐.”
“아하하… 그래도 조심해요, 오빠.”
“오냐. 그럼 하나야, 하린아, 갔다올게!”
후우우, 믿어도 되는 거겠죠? 애써 걱정을 떨쳐 낸 저는 하나와 함께 원장실로 걸어갔어요. 그곳에선 남자가 커피를 든 채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으으음, 거의 일주일만에 맡아 보는 커피 향기, 이것도 고급 커피인가요?! 약간은 우울했던 기분이 날아갔어요.
“왔어? 여기 아까 부탁했던 커피. 아침부터 좋은 장면을 보여 줘서 특별히 비싼 걸로 준비했어.”
“으읏…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 남자 좋아해요.”
“하, 하나야. 실수였다니깐?!”
“야아! 너는 실수로 그렇게 친구 입술을 빨아 대?”
“아니 그게에…”
“얘들아, 말싸움은 그만하고 우리 심심한데 같이 드라마나 볼래?”
“네? 드라마요?”
“응, 재벌집 막내딸이라고, 여기 셋톱박스에 재밌는 게 있더라고. 어차피 너네 할 것도 없는데, 이거나 같이 안 볼래?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것보단 즐기면서 기다리는 게 더 낫잖아.“
후우, 그래요. 지금 당장 고민한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걱정을 멈춘 저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앞으로의 일을 기다리기로 했어요. 지난 일주일간 정말 고생만 했으니… 조금은 편하게 지내도 괜찮은 거잖아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한 저는 푹신푹신한 쇼파에 누워 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였어요. 하아, 맛있어. 남자의 침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