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4)
* * *
무서워요. 너무나도 생생한 키스를 눈앞에서 목격한 저는 벌벌 떨고 말았어요. 키스라는 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음란하고 적나라한 행동이었어요. 키스에는, 입술을 맞대고 혀를 섞는다, 이런 문장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무언가가 존재했어요.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키스라는 행위에 열광하고 열중했던 것이었어요.
“잘 부탁할게.”
그리고 그걸… 이제 저는 직접 체험하게 되겠죠.
“하앗…”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게… 남자가 저를 끌어안았어요. 미약하게 저항해 봤지만 당연히 남자에겐 통하지 않았어요. 시작부터 저를 품에 안은 그가 부드럽게 제 얼굴을 어루만졌어요. 불쾌하고 따스한 감각에 머릿속이 혼미해졌어요.
혹시 저를 배려해 주는 걸까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스킨십에 제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자, 남자가 싱긋 미소 짓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마치 자기가 제 남자 친구라도 된 것처럼 말이에요. 단번에 기분이 상한 저는 불만의 뜻으로 입술을 내밀었어요.
“뭐, 뭐하시는… 으읍?! 하아, 으음… 하음…”
그런데… 그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그 즉시 남자가 제 입술을 덮쳤어요.
“으읏… 음, 으음… 하아, 으음!”
“설마 먼저 해 달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으으음! 하앗, 으응… 으으읍!”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이상하고 어색한 감촉. 제 입술을 씹어 대는 남자 앞에서 저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어요. 순식간에 남자의 장난감이 된 저는 그저 바보같이 눈물을 글썽였어요. 이딴 게 제 첫 키스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버틸 수 없었어요. 애정도 뭣도 없는 지금의 키스는… 그저 역겹고 기분 나쁠 뿐이었어요.
“응? 그 뜻이 아니었어?”
“하아… 으흑, 윽… 그럴 리가, 흐윽… 없잖아요.”
“으음, 미안. 내가 착각했나 보네.”
“흐윽… 흐으윽…”
“하린아, 울지 마. 장난은 그만 칠게.”
“으음? 하아… 으응, 응… 하아, 으음… 흐으음…”
그러나… 이어지는 키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하으음… 쪼옥, 쪽… 흐읏, 쪼옥… 으음…”
부드럽게 저와 입을 맞춘 남자가 처음에는 윗입술을 다음에는 아랫입술을 쪽쪽거리며 빨아 주기 시작했어요. 상냥하게 저를 맛보는 남자의 모습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어요. 조금 전의 키스와는 느낌부터가 달랐어요.
“하앗, 으응… 쪼옥, 쪽… 하아, 쪼오옥…”
물론 불쾌한 건 여전했지만… 알게 모르게 남자의 상냥함이 느껴져서 더는 불안하지 않았어요. 남자가 저를 장난감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봐 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었어요.
“으으응… 쪼옥, 쪼옥… 흐응…”
분명 시우랑 하는 키스도 이런 느낌이겠죠... 한 번 안심하고 나자 그 후로는 마음이 편했어요. 조금은 여유가 생겨 저와 입술을 맞대고 있는 남자를 쳐다볼 수 있었어요. 그는 애정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
앗, 눈이 마주쳤어요.
“하하. 알겠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네에? 하아… 갑자기요?”
“그렇게 노려 보는데 어떻게 계속 해.”
아, 아닌데… 노려 본 거 아닌데… 하지만 굳이 정정할 이유는 없겠죠. 이 이상 음란해지기 전에 키스를 멈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저는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어요. 그런데 그때 입술 사이로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이건 설마, 남자의 침일까요?
깜짝 놀란 저는 저도 모르게 그걸 삼키고 말았어요.
“하아… 하아아…”
그리고 감탄했어요.
남자의 침은… 생각 이상으로 감미로웠어요. 목을 타고 넘어가는 황홀한 맛에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쉬지 않고 계속 맛보고 싶을 정도로 중독성 강한 맛이었어요. 벌써 사라졌다는 아쉬움에 저는 입술을 핥았어요.
딥키스를 하면… 이 침을…
…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흔들렸던 정신을 되찾은 저는 힘차게 고개를 저었어요. 배가 고파서 그런지 잠깐 정신 나간 생각을 했었어요. 도시락을 먹고 나면 괜찮아지겠죠.
그렇게 생각하며 저는 제 인생에 있어 한 번뿐인 첫키스를 끝냈어요.
***
“우리 왔어… 아, 뭐야! 설마 그거 다 먹은 거야?!”
“먹어야 힘을 내지. 끄윽… 내일부터 움직여야하는데 도시락 하나가지고 되겠어?”
“어휴…”
“잔소리하지 말고 그것도 빨리 넘겨.”
“오빠는… 여친이 다른 남자랑 키스하고 왔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나보다 도시락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뭐어? 도시락이나 빨리 넘겨라고? 씨발, 그게 남친이 할 소리야?!”
“아니이… 멀쩡해 보이길래, 괜찮은 줄 알았지…”
“하… 내가 지금 괜찮아 보인다고?”
“에휴, 그래. 알겠어, 알겠어. 이리 와. 내가 덧칠해 줄게. 그러면 되는 거지? 우리 하나, 변태 새끼랑 키스한다고 고생했어. 자, 오빠한테 와. 내가 잊게 해 줄게.”
“야… 야 이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하, 하나야? 아니이… 나는 너를 위해서라도 유쾌하게 넘길려고…”
“씨발 닥쳐! 나, 갈 거야! 따라오지 마! 이딴 도시락 너나 쳐 먹어!”
진호 오빠는… 가만 보면 정말 눈치가 없다니깐요. 하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헤어질 생각이라곤 했지만 그래도 애정이 없지는 않을 텐데, 저런 말을 들으면 있던 정이 다 식겠죠. 지금은 진호 오빠가 잘못한 게 맞았어요.
“형…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아오, 나 딴엔 좋게 풀려다가… 에라이, 씨… 근데 하린아, 무슨 일 있었어? 하나가 그래도 저렇게 쌍욕 뱉을 애는 아닌데…”
“아니, 형! 당연히 무슨 일 있었죠! 지금 농담하세요?”
“어어? 야 인마, 너까지 그러기냐!”
그리고… 시우 역시 잘못한 게 맞았어요. 왜 아직도 제 눈치를 보나요. 지금이라도 달려 와서 저를 안아 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원하지도 않는 남자랑 키스를 했는데…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나요.
저를 힐끔힐끔 쳐다 보면서 진호 오빠에게 다가가는 시우가 원망스러웠어요.
잠깐이나마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답답한 시우를 보자 그런 생각도 다 사라졌어요. 그 남자와 키스를 했다고 시우한테 미안해야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으, 하린아. 너라도 하나를 챙겨야 할 거 같은데…”
“아… 으응. 알았어. 그러면 이건 하나 몫으로 가져갈게.”
“고마워. 부탁할게.”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시우의 시선이 제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본인은 애써 모른척 하고 있지만, 행동에서 티가 났어요. 제 첫 키스가 신경 쓰이는 거겠죠.
그렇지만… 신경 쓰이면 뭐 하나요.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갑갑함을 느낀 저는 도시락을 챙겨 305호실을 빠져 나왔어요. 그러자 시우가 뒤늦게 따라 나와 제게 고개를 숙였어요.
“미안해, 하린아… 많이 괴로웠지? 하아… 나 때문에…”
“괜찮아… 그래도 버틸만 했어.”
“내가… 내가 머뭇거리다가…”
“괜찮대도… 응, 나는 이제 그만 올라갈게. 하나가 걱정 돼.”
“후우… 미안해. 그리고 잘 자… 내일 봐.”
“으응. 내일 봐, 시우야.”
바보 시우. 이 기회를 또 놓치나요? 하나는 4층에 올라가 있고 진호 오빠는 교실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상황. 정말로 오랜만에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었는데… 시우는 딱히 별 생각이 안 드나 봐요.
혹시 그 사이에 저에 대한 마음이 식은 걸까요?
자기가 아닌 다른 남자랑 키스를 했다고 혼자 실망해서 저러는…
에이, 그건 아니겠죠. 그냥 숙맥이니깐, 저를 생각해서 혼자 내버려 두려는 거겠죠. 그것 역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게 시우니깐… 이번에도 저는 제 남자 친구 이해해 주기로 했어요.
하지만 그 남자라면… 저를 가만 놔두지 않았겠죠? 그 사람이 제 남자 친구라면 타이밍을 놓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 누가 있든…
드르르륵
후우,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아직도 배가 고파서 이상한 생각을 하나 봐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저는 4층으로 올라갔어요. 밥을 먹고 나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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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냐? 안 먹을 거면 나 주고.”
“아… 먹을 거예요. 먹어야죠. 먹어야 힘을 내죠…”
“새끼, 표정 좀 풀어.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
“그러면 형은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요?”
“씨발 당연히 좆같지.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이럴 때는 그냥 자연재해다, 하고 넘어 가는 게 맞아. 신경 쓰면 쓸수록 손해라니깐? 그러니 적당히 하고 넘어 가.”
“후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근데 형, 괜찮아요?”
“응? 아, 하나? 괜찮아, 괜찮아. 저렇게 보여도 내일되면 멀쩡해질 거야. 지금이야 뭐, 억울해서 저럴 순 있는데 이럴 땐 시간이 약이거든. 그러니깐 너도 인마, 괜히 계집처럼 걱정해 주지 마. 그럴수록 약해 보여서 정만 떨어져.”
“그럴까요?”
“그래. 남자들은 좀 세게 나가도 돼. 그래야 의지가 되거든.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남자들한테 끌리게 되어 있단 말야. 무리수 같아도 강하게 나가는 게 맞아.”
“음, 그렇구나... 역시 형이에요! 형만 믿을게요.”
“새끼… 아부는 됐고 밥이나 먹자.”
오늘도 최진호에게 연애 상담을 받은 한시우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자 친구와 조금 어색해지기는 했지만 내일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그렇게 착각한 한시우는 기분 좋게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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