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화 〉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3)
* * *
민망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 하고 도망친 시우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저는 제 남자 친구를 이해해 주기로 했어요. 시우가 보기보다 숙맥이거든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부끄러워서 저러는 걸 테니, 여자 친구로서 이해해 주는 게 맞았어요.
그리고… 남들 앞에서 키스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단 둘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
드르르륵
“얘기는 좀 나눠 봤어?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인데… 어떻게 할래? 거래할 거야?”
…할 줄 알았는데, 남자가 제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어요.
“거래 해야죠, 형님. 하나도 하린이도 다 하기로 했습니다. 저기, 근데… 형님, 혹시 한 번에 도시락 두 개도 가능합니까? 아니, 글쎄 제 여자 친구가 저를 위해서 키스를 두 번이나 하겠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그으…”
“괜찮아. 가능해.”
“역시, 형님! 믿고 있었습니다!”
어, 어떡하죠? 이러다가 제 첫 키스를 저 남자한테 빼앗겨 버리게 생겼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더 끌고 싶은데… 싫어, 지금 당장 하려는 분위기예요.
아아,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초조해진 저는 쪼르르 달려가 시우의 손을 잡았어요. 그러고는 팔을 잡아 당기며 신호를 보냈어요. 지금이라도 좋으니… 저랑 키스해 달라고 말이에요. 상황은 아까보다 나빠졌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어요.
이 순간을 놓칠 순 없었어요.
“너희들도 오케이지?“
“그… 그게…”
“응? 왜 그래. 설마 이제 와서 생각이 바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러면 시간 끌지 말고 후딱후딱 끝내자. 형님 기다리고 계시잖아.”
그러나, 이번에도… 진호 오빠가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바보 같은 시우. 그러게 왜 쓸데없이 허세를 부린 거야. 저희가 키스한 걸로 알고 있는 진호 오빠가 저희를 재촉했어요. 하지만 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이대로… 저 남자랑 키스를 해야 한다고요? 싫어… 평생 동안 기억할 제 첫 키스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절대 싫어, 싫…… 어라?
“시, 시우야…?”
“……부탁할게, 하린아.”
“진심이야?”
그런데… 제 남자 친구는 제게 별 관심이 없나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남들 눈치를 본 시우가 뒤로 한 발 물러나며 제게 고개를 숙였어요. 이제 그만 다른 남자와 키스해 달라는 어이없는 부탁과 함께요.
저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시우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그게 아니면… 자기 체면이 저보다 중요한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모르겠어, 아아, 모르겠어요. 머리가 아파 왔어요. 눈앞이 흐려졌어요. 충격을 받은 저는 그만 시우의 손을 놓았어요.
“하린아,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러자 시우가 울먹이면서 힘없이 추락하는 제 손을 붙잡았어요.
어쩔 수 없다니,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또 어디 있나요. 여자 친구라면… 이런 것도 이해해 줘야 하나요? 고민 끝에 눈물을 글썽인 전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
“좋아, 넷 다 잘 생각했어.”
“자, 잠시만요… 설마 여기서 할 생각이세요?”
“응? 뭐 문제라도 있어?”
시우에게 크게 실망한 저였지만… 지금은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당장 저 남자랑 키스를 해야 하잖아요.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 때문에 눈물이 쏙하고 들어갔어요.
거기다, 뭐라고요? 여기서 키스를 할 거라고요? 절대 안 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너무나도 끔찍한 남자의 말에 저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여기서 키스를 하면… 시우가 볼 거 아니에요!
이러니저러니해도 제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인데… 시우가 아닌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어요.
“당연히 있죠! 그것도 많이요!”
“그래?”
“이런 거 때문에… 오빠랑 어색해지기 싫단 말이에요! 여기서 그런 걸 하면… 서로서로 불편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차라리 안 보여 주는 게 맞… 앗… 제, 제가 너무 건방졌나요?!”
“괜찮아. 자기 의견 정돈 낼 수 있지. 너는 어때? 너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저는 하나의 의견에 열심히 동의했어요. 다행히 남자는 장소에는 별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어요. 그러니 이대로 자리를 옮기면 좋을 텐데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남자가 나머지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너희도 괜찮겠어?”
“저는 형님 의견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아, 이 녀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뭐… 그래, 갔다 올게.”
됐어, 이걸로 최악은 피했어요! 두 사람에게 허락을 받은 남자가 저희를 데리고 301호실로 향했어요. 이제 여기서 키스를… 으응? 잠깐만, 하나야…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301호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하나가 남자에게 달려들었어요.
***
“아저씨이… 헤헤, 아까 뭐든지 구해줄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불이랑 베개도 가능해요?”
“가능은 하지. 근데 도시락보단 비쌀 텐데?”
“으응, 비싸도 상관 없어요. 아저씨가 상대라면… 전재산도 바칠 수 있어요. 후후… 어때요, 아저씨? 이불이랑 베개 하나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 아이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요.”
하나야?! 지, 지금 뭐하는 거야! 남자에게 달라붙은 하나가 조금 더 몸을 밀착시키더니 남자를 유혹했어요. 그것도 엄청 야한 목소리로요! 처음 보는 하나의 모습에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설마 하나가 이럴 줄이야!
당황한 제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자 남자가 냉정한 얼굴로 하나를 밀어 냈어요.
“뭐야, 너 남자 친구 있는 거 아니었어?”
“진호 오빠요? 흥, 그 새끼랑은 헤어질려고요. 맨날 허세만 부리고, 실속은 없고, 어른이면서 전혀 어른답지 못 하고, 거기다가 맨날 음흉하게 저를 만지려고 한단 말이에요! 진짜 최악이에요.”
“그래서, 갈아 타려고?”
“아저씨는… 능력도 있고, 얼굴도 잘생겼고, 적어도 이중적이진 않잖아요! 저희를 가만히 놔두는 것만 봐도 그 새끼보다 몇십 배는 더 나아요. 그 새끼한테 아저씨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바로 저희를 강간했을 걸요?”
“나라고 딱히 신사적이진 않았는데?”
“아무튼 건드리진 않았잖아요! 그러니… 아저씨 정도면 완전 믿을 수 있어요.”
“그래? 근데 미안. 난 일 없어. 지금처럼 거래하는 사이가 딱 좋아.”
“네에? 어째서요!”
“내가 귀찮은 걸 정말 싫어하거든. 그런데 넌… 사귀기 시작하면 꽤나 귀찮아질 거 같거든. 그래서 안 돼.”
너무나도 단호한 남자의 거절에 하나가 고개를 숙였어요. 설마 거절을 당할 거라곤 미처 생각을 못 했었나 봐요.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힌 하나가 잠시 부들거리더니, 재차 남자에게 달려들었어요.
“아저씨 저 정도면 진짜 괜찮은 여자란 말이에요. 네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봐요. 제가 옆에서 재밌게 해 드릴게요오!”
“이것 봐. 벌써부터 귀찮게 굴잖아.”
하지만 남자는 이번에도 하나를 거절했어요. 의외로 여자 보는 눈이 높은 걸까요? 하나 정도면 상대가 누구라도 쉽게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에엣?! 뭐, 뭔가요! 이렇게 갑자기 시작해도 되는 건가요?! 남자가 하나를 끌어안더니, 말도 없이 키스를 하기 시작했어요!
“히이잉… 아저씨, 으읍?! 하아… 으응… 츄릅, 츄으읍… 하아… 으으응.”
“이불이랑 베개값은 이걸로 칠게. 괜찮지?”
“흐읏, 항… 가슴, 으응… 하아, 츄릅, 츕… 괘, 괜찮아요…”
아, 아아… 아아아! 눈앞의 광경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키스가 아니잖아요! 저는 당연히 가볍게 입술만 마주치는 키스를 생각했었는데… 이건 야, 야한 장면에서나 나오는 딥키스잖아요! 거기다가 가, 가슴을 만진다고요?!
맙소사… 깜짝 놀란 저는 그 즉시 고개를 돌렸어요. 제가 다 민망해서 도저히 지켜 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러자, 너무나도 야한 키스 소리가… 제 귓가에 들려 오기 시작했어요. 츄릅츄릅 거리는… 듣기만 해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그런 야한 소리가요!
저는 결국 고개를 숙인 채 귀까지 막아야 했어요.
“하앗, 으응, 츄릅… 만지는 거 너무, 하아… 으으응! 하아… 츄릅… 잘하는 거 아니에요? 하아… 으읏, 응… 츄읍… 중독될 거 같아요… 하아, 츄읍…”
“그렇게 유혹해도 안 넘어 가.”
“진짠데에… 하아, 츄읍, 으응… 츄르읍… 하아… 그 새끼가 만질 땐 징그럽기만 했는데… 하아, 아저씨는 달라요… 츄웃, 츕… 어때요? 아저씨라면 옷 안으로, 하아… 만져도 괜찮은데에… 하아앙.”
“단추 풀지 말고 키스에나 집중 해.”
“하아, 갑자기 그렇게 격렬하게, 으응! 하아… 그렇게 하시면… 하아아아앙!”
하지만 얇디 얇은 제 손은 하나가 헐떡이는 소리를 막을 순 없었어요.
하나야, 서, 설마 느낀 거야? 그렇게 야한 신음 소리를 내다니… 남자랑 하는 키스가 그렇게 좋았던 거야? 충격을 받은 제가 다시 뒤를 돌아 보자…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고 있는 하나와 천천히 제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가 보였어요.
“하린이라고 했지? 자, 이제 네 차례야.”
“아, 하하…”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시우와는 다르게 저와 키스하고 싶어 하는 남자 앞에서…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눈을 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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