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02화 (301/428)

〈 302화 〉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1)

* * *

정말로 오랜만에 소피아를 만나러 떠날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무리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소피아가 속한 세계관에 들어가지지 않았다. 마치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충격을 받은 내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자, 눈앞에서 반투명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시스템 오류※]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세계관 입장이 거부되었습니다.]

[강제로 뚫고 들어가기 위해선 ‘강제 복귀권’이 필요합니다.]

아니, 이런 경우도 다 있어? 이건 좀 아니잖아!

오래 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일시 정지권을 사용한 세계관인데, 입장이 거부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알 수 없는 존재’라니, 도대체 뭐냐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설마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시스템 자체에 간섭을 한 거야?

소피아를 만날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단번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강제 복귀권을 사용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그거… 50만 포인트짜리잖아! 세실리아와 위지혜를 소환하는 바람에 있던 포인트도 다 써 버린 상황이라, 강제 복귀권을 구매하기 위해선 포인트 노가다를 해야만 했다.

지금 당장 소피아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말이다.

젠장…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강제 복귀권이 필요하다는 말로,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하는 ‘히로인 네토리’가 어이없었다. 아니, 하다못해 보상은 해 줘야 할 거……

­띠링

[예기치 못한 상황을 보상하기 위해 ‘긴급 미션’을 부여합니다.]

[‘긴급 미션’을 클리어할 경우 강제 복귀권 1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긴급 미션’을 클리어할 경우 랜덤한 스킬을 1개 얻을 수 있습니다.]

[‘긴급 미션’을 클리어할 경우 50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 이러면 인정이지.

발빠른 대처에 감동한 나는 이번 한 번만 ‘히로인 네토리’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자기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하잖아. 그러면 어쩔 수 없었을 거 아냐. 상남자답게 생각을 고친 나는 호방하게 ‘긴급 미션’을 시작했다.

***

[‘히로인 네토리’ 능력을 사용합니다.]

[긴급 미션이므로 네토리하기 최적화된 장르 중 하나가 선택됩니다.]

[장르는 ‘좀비 아포칼립스’입니다.]

[긴급 미션이므로 당신이 직접 전이합니다.]

[당신은 ‘감덕배’입니다.]

[…]

[…]

[…긴급 미션이므로 메인 히로인 근처에서 시작합니다…]

[…]

[…]

[미션: 히로인을 네토리하세요.]

[팁: 눈앞의 커플들을 구조하세요.]

좀비 아포칼립스가 네토리하기 최적화된 장르 중 하나였어? 이쪽 장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터라 크게 공감이 가질 않았다. 좀비물이면 살아남는 것도 벅찬 거 아니야? 처음에는 ‘히로인 네토리’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쌔앰! 민아 쌤! 아, 안 돼애애애! 오빠, 민아 쌤이!”

“하나야, 하린아, 정신 차려어!”

“꺄아악!”

하지만 거듭 생각해 보니 좀비 아포칼립스야말로 네토리하기 최적화된 장르였다. 평범한 일반인이면 몰라도 나는 B등급 헌터잖아. 거기다가 ‘히로인 네토리’ 덕분에 여러 능력을 얻은 상황이니, 현대 판타지 장르에 불과한 좀비 아포칼립스에선 내가 곧 법이 될 수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투욱, 뚝…

“…어라? 살았어?!”

“아아… 조, 좀비들이!”

이것 봐. 좀비라 해 봤자 고블린보다 약한 놈들이잖아.

아무래도 긴급 미션이라 난이도가 상당히 쉬운 거 같은데, 이번에도 보너스 찬스처럼 여유롭게 네토리를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

‘히로인 네토리’가 조언하는 대로 눈앞의 좀비들을 처리하고 나자, 당황했는지 몸을 움츠린 채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메인 히로인이 눈에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잔뜩 구겨진 옷을 보니 꽤나 고생을 한 모양인데,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저 여자를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건가?

메인 히로인 답게 우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녀 덕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거기다 저 가슴… 저 봉긋한 가슴이, 그녀의 숨소리에 맞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서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직 아무도 만져 본 적 없는 순결한 가슴이겠지? 깨끗한 그녀를 내 색깔로 더럽힐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됐다.

“하아, 하아아…”

“하린아… 민아 쌤이, 민아 쌤이… 으아아아앙!”

한편 매력적인 여자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는데, 메인 히로인 옆에서 울음을 터뜨린 조연 캐릭터도 정말 맛있어 보였다. 가벼워 보이는 외모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저 가슴 좀 봐, 진짜 장난 아니잖아.

일부러 단추를 풀어놓은 건지, 깊고 긴 그녀의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저 정도 크기면 싸 보여도 인정이지. 자꾸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제법 살집도 있어 떡감도 좋아 보였는데,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메인 히로인과 비교가 됐다. 저 둘을 번갈아 따먹으면 질릴 틈도 없겠는걸?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었다.

“저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형님이라도 불러도 되죠?! 캬아, 진짜 대박이었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겁니까?! 좀비들이 공중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제가 소름이 돋아서, 크으… 아, 시우야! 너도 인사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반면 주인공과 조연 남캐는 상당히 별로였다. 은근슬쩍 나타나 내 시선을 가로막는 게 짜증났다. 그래, 니들 여자라 이거지? 본능적으로 나를 경계하는 건지, 내게서 자기 여자들을 보호하려는 모습 때문에 네토리가 마려웠다.

“스톱스톱. 딱히 호의로 구해준 거 아니니깐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마.”

“어… 혀, 형님?”

“됐고, 질문 하나만 하자. 너네 일행은 여기 넷이 전부야?”

그렇다면 바로 네토리를 해야지. 나는 자상하게 미소 지으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네 사람을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

노벨 학원 305호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며 녀석들의 아지트로 찾아간 나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조연 남캐로부터 주인공네 사정을 전해 들었다.

“그러면 여기서 3일동안 계속 숨어 지냈던 거야?”

“네, 형님.”

“밥은 어떻게 하고.”

“학원 냉장고 안에 먹을 게 남아 있어서, 그걸로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먹을 게 다 떨어져서 편의점으로 내려갔던 거고?”

“네. 아무래도 같은 건물이니깐… 안전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뭐, 아시다시피 완전 망했죠. 좀비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과연, 그렇게 된 거였나. 듣고 보니 상황이 참 안타까웠다. 대학교 합격 축하 파티를 하다가 학원 안에 갇히게 됐다니… 솔직히 많이 불쌍했다.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민아라는 선생님이 말이다. 하여튼 인싸 놈들은 항상 남한테 피해를 준다니깐? 졸업반 세 명이랑 알바 때문에 이게 뭐냐. 잠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으…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 저희 좀 도와 주시면 안됩니까? 아까 보니 장난 아니시던데, 형님한테 좀비들은 그냥 껌이잖아요. 저희 좀 챙겨 주시면, 진짜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웃기네, 이 녀석. 모시긴 뭘 모셔. 네가 뭐 깡패냐? 어이가 없어서 내가 헛웃음을 짓자 녀석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곧이어 허리까지 숙이더니, 결국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합니다, 형님!”

지독한 녀석… 가진 능력이 없으니 나한테 빌붙으려는 거 같은데, 그 모습이 심히 괘씸했다. 누구를 호구로 알아? 내가 역으로 강하게 나가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이해 안 갔...

…아니지, 오히려 그래서 더 저러는 거 아냐?

자기가 뭘 하든, 나한테 반항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미리 엎드린 걸지도 몰랐다. 자칫해서 밉보이는 것보단 알아서 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면, 녀석의 행동에도 일리가 있었다.

“후우… 좋아, 이럴 때일수록 돕고 살아야지.”

“형님! 정말입니까?!”

“그래, 저기 두 사람은 내가 책임지고 도와 줄게.”

“네? ……혀, 형님? 두 사람만요?”

하지만 뭐, 녀석이 뭐라하든 간에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사정이 궁금해서 물었던 거지, 그걸 참고할 생각은 없었다. 저런 여자가 둘이나 있는데 가만히 놔두면 그게 시우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 목적은 처음부터 네토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 으읍?!”

“자, 잠깐! 오지마세요! 하린아! 도망… 으아악?!”

나는 염력을 사용해 놈의 입을 막은 다음 메인 히로인과 조연 여캐에게 다가갔다. 중간에 주인공이 나를 방해했지만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자, 이걸 어떻게 네토리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떨고 있는 두 여자를 보자 아랫도리에 피가 쏠렸다.

지금 바로 강간해도 긴급 미션을 통과할 순 있겠지만… 이렇게 재미난 상황인데 빨리 끝내기는 너무 아쉽잖아. 잠시 머리를 굴린 나는 이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짝!

“거기 둘, 나랑 거래하지 않을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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