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혼돈, 파괴, 망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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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위지혜가 자신의 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소환되자마자 내게 달려든 세실리아가 위지혜를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도 아주 냉혹한 목소리로 말이다.
“가, 가슴만 큰 아줌마?!”
그 탓에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위지혜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아 처녀는 아니구나. 아무튼 아직도 파릇파릇한 위지혜에게 모욕감을 주다니, 시작부터 세실리아의 공격이 매서웠다.
“크흠, 그쪽이 백랑의 딸이에요? 이름이… 세실리아라고 했었나?”
“네에, 그런데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죠?”
“잘 됐네요. 인사하세요. 당신의 새엄마가 될 위지혜라고 해요.”
“……새엄마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지혜가 가만히 맞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당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린 위지혜가 세실리아에게 반격을 가했다. 마치 이미 승부가 난 것처럼 말이다.
보아하니 상대적으로 빈약한 세실리아를 보고 자신감을 얻은 거 같은데, 그 덕에 세실리아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웃기네요. 당신이 제 새엄마라고요? 후훗, 어디서 그런 농담을 배우셨나요? 아버지와 첫 번째로 결혼할 사람은 바로 저인데… 혹시 머리가 망가지신 거 아니에요? 당신이야말로 저를 새언니라고 부르세요.”
“저런… 현실 도피를 하시는 건가요? 하긴, 그럴 수도 있죠. 사랑하는 아버지 옆에 자신보다 멋진 여자가 붙어 있으니, 충분히 당황할 만도 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백랑과 저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랍니다. 그러니 당신은 ‘이상한 생각’ 그만 두고 얌전히 저를 새엄마라고 부르세요.”
“어머, 그거 다 소꿉놀이 아닌가요? ‘진짜’ 아버지와 약속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만 현실을 깨달으세요. 당신은 아버지의 정실이 아니에요.”
“으음?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진짜’ 백랑의 딸이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 어리광 좀 그만 부리세요. 백랑은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에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내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위지혜의 오해를 풀기 위해 세실리아를 소환했던 건데, 오히려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말았다. 웬만하면 두 사람 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걸 바라는 건 내 욕심인 걸까? 목소리를 높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으음… 뭐, 맞는 말이긴 해요. 이쪽 세상에서 아버지와 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요? 아버지와 저와의 사랑을 ‘이상한 생각’이라고 비하하지 마세요. 아줌마.”
“아, 아줌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후훗,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 왜 말을 더듬으세요. 아줌마.”
“좋아, 그래… 나보다 어리다고 신난 모양인데… 언니가 이해해 줄게.”
“어머, 갑자기 말을 놓으시네요?”
“응. 굳이 존대해 줄 이유가 있니? 몸도 마음도 어린 아이한테 말야.”
“……뭐라고요?”
“아직 성장기도 안 온 아이 같은데, 언니가 너무 심했던 거 같아. 미안해. 그러니까… 아, 맞아. 세실리아라고 했지? 정말 신기한 이름이네. 아무튼 세실리아야, 열 살은 넘었니? 후후후… 나도 네 나이 땐 아버지랑 결혼할 거라고 말했었단다.”
“하… 지금 애 취급 하시는 거예요?”
“응? 애 아니었어? 몸만 보면… 누가 봐도 아이인데?”
위, 위지마망? 위지마망이 흑화했어?! 처음 보는 그녀의 차가운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웃으면서 사람을 비꼬다니, 위지마망도 화를 낼 줄 아는구나!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두려움에 고개를 숙였다.
“후훗… 아이라기에는 이미 할 걸 다 해 봤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실리아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그, 그래? 그 몸으로?”
“……무슨 뜻이죠?”
“아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백랑의 물건이 들어가기는 해? 들어간다 해도 서로 아프기만 할 거 같은데… 게다가 가슴도 작잖아. 네가 억지로 하자고 한 거 아냐? 백랑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을 거 같은데… 안 그래요, 백랑?”
“그렇지 않아요. 뭘 모르시나 본데, 아버지는 제 가슴을 사랑하시거든요?”
“그치만, 내 가슴을 더 사랑할걸? 너야말로 뭘 모르나 본데. 원래 남자는 본능적으로 가슴 큰 여자를 더 사랑하는 법이란다.”
“그렇군요. 조언 감사해요. 하지만 운 좋게도 제가 아직 성장기가 끝난 게 아니라서요… 후훗, 여기서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답니다.”
피가 말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숨도 쉬지않고 공세를 주고받는 두 사람 덕분에 심장이 쪼그라들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도무지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어쩌면 좋지?
그렇게 내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위지혜가 KO 펀치를 크게 날렸다.
“그런데, 그거 알아? 백랑이 진짜로 좋아하는 건 따로 있어. 후후후, 태극음양지체라고 들어봤어? 간단히 말하자면, 성교에 최적화된 몸인데… 후후후,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아 듣겠지?”
“……네에?”
“하아아… 넌 모르겠지만, 성교를 할 때마다 소녀처럼 귀여운 신음 소리를 내뱉는 백랑을 바라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란다.”
“으읏…”
위지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실리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저게 사실이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궁금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해 줄 수 없었다.
그게… 나도 몰랐단 말야!
섹스를 할 때마다 그런 소리를 냈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흥! 정말 상스럽네요!”
“…뭐, 뭐라고?!”
“벌써 귀가 먹으셨나요? 상스럽다고 말했어요! 내세울 게 젖소처럼 커다란 가슴과 입 밖으로 내기도 민망한 섹스 스킬뿐인가요? 정말 더러워… 머릿속에 든 게 성욕밖에 없어요? 아줌마는 아버지를 잠자리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저는 달라요. 저는 아버지 그 자체를 동경해요, 존경해요, 좋아해요, 사랑해요! 아버지의 행복이 곧 저의 행복이라고요! 성욕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당신의 사랑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요!”
“나, 나도 마찬가지야! 성교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거고, 내 삶이 곧 백랑의 삶이고, 백랑의 삶이 곧 나의 삶이야. 나라고 다를 거 같아? 나 역시 백랑 그 자체를 사랑해!”
“후훗, 그래요? 그런데 그런 아줌마가 아버진한테 뭘 해 줄 수 있죠? 그래봤자 그 육덕진 몸을 대주는 것밖에 못 하잖아요. 하지만 전 달라요. 전 아버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요! 제 모든 것을 바쳐서요!”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울먹이며 소리를 지른 세실리아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자신이 평범한 여자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저러는 건지, 그 상태 그대로 주변 물건들을 휘두르며 위지혜를 압박했다.
“허, 허공답보(????)?! 거기다 이기어검(????)까지?!”
그래, 저 모습만 보면 무림 고수로 착각할 만도 하구나. 그만큼 세실리아가 보여 주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보는 내가 다 두려워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저, 저도 가능하다고요! 태극음양지체? 흥! 그에 못지 않은 마법을 개발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저도 아버지의 귀여운 신음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다고요! 제가 못할 거 같아요?! 저는 아버지가 인정한 마법의 천재라고요!”
하지만 이어지는 세실리아의 깜찍한 투정에 분위기가 단번에 반전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스럽다고 모욕하더니, 사실은 질투를 했던 모양이다. 뭐냐고 진짜. 너무 귀엽잖아. 역시 세실리아는 착하고 예쁜 내 딸이다.
“크흠… 리아야, 알겠으니깐 그만 진정하고 내려와 줄래? 자, 이리 오렴.”
“아버지이… 죄, 죄송해요오…”
“그리고 혜매도 그만 진정해 주세요. 혜매답지 않게 너무 흥분한 거 같습니다. 물론 흥분한 혜매도 정말 사랑스럽지만, 그래도 혜매는 침착할 때가 더 예쁘잖아요.”
“후후… 죄송해요. 어른답지 못했네요, 제가.”
좋아, 이걸로 해결이 됐나? 세실리아가 폭주한 덕분에 오히려 상황이 좋게 굴러 갔다. 덕분에 내가 개입할 타이밍이 나왔거든. 우여곡절 끝에 나는 두 사람의 캣파이트를 수습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치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항상 제가 첫 번째라고 말씀하셨었잖아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전부 다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맞아요, 백랑. 제가 정실 중의 정실이라면서요! 그 말을 믿었었는데… 백랑이 저를 속인 건가요?!”
어라? 수습하는 데 성공한 거 아니었어? 진정한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나를 대상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명하고 싶었지만 모두 다 맞는 말이라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이거… 이러다가 큰일나는 거 아니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말을 돌리기 위해 두 사람에게 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밝혔다.
“그으… 리아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않을래? 혜매, 죄송하지만 소개시켜 줄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혹시, 현아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옆방에서 자고 있는 분이요?”
“그게… 리아야, 현아도 현아인데 소피아라고 내가 처음 만난 정실이 있어. 그런데 아직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거든? 그러니 혜매, 빨리 가서 해결하고 올게요.”
“처음만난…”
“…정실이라고요?”
응? 괜히 말했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격언을 이번에도 실천한 건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역시 이럴 때는 도망치는 게 답이겠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
두 사람이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정말 오랜만에 소피아를 만나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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