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96화 (295/428)

〈 296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27)

* * *

­삐이이익

[지금부터 2박 3일간의 중간고사를 시작합니다.]

[학생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후우… 드디어, 시작이네.

호각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짐을 챙겨 섬 안쪽으로 달려 나갔다. 재빨리 베이스캠프를 꾸린 다음에 그레이스를 찾아다닐 생각이었다. 나대는 걸 좋아하는 년이니 금방 만날 수 있겠지? 참교육을 해 줄 생각에 벌써부터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후후후,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너어… 딱 걸렸어!”

“대련입니다! 아니, 실전입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적당한 자리를 찾아 짐을 풀고 있는데, 맨날 시우 옆에 달라붙어서 꽁냥거리던 년들이 내게 다가왔다. 세 명 다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말이다.

“……나랑 한판 붙자 이거야?”

“맞아. 그 이유는 너도 알고 있겠지?”

“흥, 비겁하다고 하지는 마. 치사한 건 오히려 네 쪽이거든?”

“실전입니다, 실전!”

“아니, 모르겠는데? 내가 치사하다고?”

“하, 어이없어… 모르는 척하는 것 좀 봐.”

“네가 박시우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복수의 시간입니다!”

“미치겠네… 내가 걔 마음을 왜 가지고 놀아!”

“지난 열흘간 매일같이 시우 옆에 붙어 있었잖아!”

“그 전에는 별 관심도 없는 척했으면 말야!”

“그걸 보고 가지고 논다고 하는 겁니다!”

씨발… 보아하니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인데 대화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완전 흥분해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잖아. 결국 삼 대 일로 싸워야 할 거 같은데… 후우, 시작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이러다가 그레이스까지 합류하는 거 아냐?

끔찍한 상상을 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았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정답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란 말이지. 나는 삼 대 일로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

……자신은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구나.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바닥을 구르며 엿 같은 년들의 공격을 피했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야!”

“흥, 차기 서열 1위가 고작 이 정도야?!”

“실망입니다!”

망할 년들… 합이 너무 잘 맞잖아. 한두 번 같이 싸운 게 아닌지 물 흐르듯 공격을 이어가는데, 조금만 방심해도 허점을 찔러 들어와 상당히 위험했다. 이래서야 숨을 고를 여유도 없잖아. 졸업하고 영웅이 될 거라는 년들이 다대일로 싸우는 데 너무 익숙했다.

­카앙!

­카가가강!

“칫, 너무 비겁한 거 아니야?!”

“하나도 안 비겁해!”

“치사한 건 오히려 네 쪽이라니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상처가 조금 생기겠지만 억지를 부린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위기였다. 생각보다 강하긴 하다만, 그래봤자 아카데미 학생들이잖아. 겪어 온 경험이 달랐다.

왼팔 하나만 내주면 되겠지?

뻔한 듯 뻔하지 않은 함정을 만든 나는 반격을 가하기 위해 숨을 멈추었다.

“익스플로전!”

­콰과아아앙!

그런데 정작 반격을 가한 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

***

“흐흥… 정말 꼴사납네요. 7대 성좌의 계약자들도 아닌데 이렇게 애를 먹으시다니. 실망이 커요. 그러고도 ‘이름 없는 복수자’님의 계약자인가요?”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역겨운 목소리.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엿 같은 목소리.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레이스, 저 망할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몸에 상처 하나 없는데, 이게 애를 먹고 있는 걸로 보여? 눈까리가 아주 삐었나 봐?”

“어머, 거지처럼 나뒹굴던 분이 할 소리인가요? 푸흐흡… 식은땀 좀 보세요. 벌써 여름이 왔나요? 정말 천박하네요.”

씨발,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오고 말았다. 이제 여기서 사 대 일로 싸워야 하는 건가?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하나 더 추가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진이 다 빠졌다.

“으으으… 너는 그레이스?”

“쿨럭쿨럭, 흐윽… 왜 우리를 공격한 거야!”

“기습이라니, 비겁합니다!”

“그러게 누가 남의 경쟁 상대를 공격하래요? 엄살 피우지 말고 어서 일어나세요. 확실하게 리타이어를 시켜 드릴게요.”

그런데… 뭐야, 이 분위기는. 마치 나를 도와줄 것만 같은… 아, 그러고보니 아까도 나를 도왔었지. 그러면 설마 내 편이 되어 주려는 거야? 내 성좌를 뺏어간 네가?

“야, 저리 꺼져. 누가 도와달래? 얘네 정도는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레이스의 호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레이스는 끝까지 옆에 남아 나를 도와주겠다고 떼를 썼다.

마치 꼭 나를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그 녀석이 부탁한 거야?”

“흥! 몰라요! 됐으니깐 어서 검이나 드세요. 일단 이 귀찮은 일부터 끝내죠.”

후후후, 그러면 그렇지. 역시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니깐. 내가 위기에 처하자마자 나를 구해달라고 ‘이름 없는 복수자’가 부탁을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저 도움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기분이 좋아진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켠 후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예, 예린아 어떡해.”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끔찍한 뭔가가…”

“망했습니다!”

***

“흐으응… 보기보다 성가셨네요. 그런데 이 사람들과는 왜 싸운 건가요?”

“그게… 아마 시우 때문일걸. 나보고 시우한테 꼬리치지 말라고 지랄하더라고.”

“어머, 다른 남자가 있으셨어요?”

“뭐래. 그냥 친구야, 친구.”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요! 생각 이상으로 문란한 분이셨군요!”

“하… 그럼 절교할게. 됐지? 그 새끼랑은 이제 친구도 아니야.”

“그러면 뭐… 인정해 드릴게요.”

그레이스의 도움으로 세 명의 미친년들을 처리한 나는 기절한 그녀들을 담당 교직원에게 떠넘겼다. 그러고 나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어색한 말투로 서로의 용건을 주고받았다.

“아, 됐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설명이나 해 줘. 역시 ‘이름 없는 복수자’가 부탁한 거지?”

[그건 내가 설명하지.]

“너, 너어! 계속 옆에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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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도, 그레이스도, 정말 마음에 드는데 셋이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그 해결책을 찾은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결심했다. 양심이 없는 해결책이었지만 뭐, 한 명을 버리는 것보단 낫잖아. 이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기에 나는 당당히 시아에게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러니깐… 그레이스를 동료로 삼으라고?”

[그래. 너희 둘은 포지션도 겹치지 않고 시너지도 상당히 좋지. 그야말로 최고의 동료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쟤를 내 동료로 만들려고 쟤랑 계약했다는 거야?”

[그래. 네가 다친 걸 보고 너와 함께할 동료를 수색하다가 그레이스를 만났었다.]

“그게 무슨… 아니, 그걸 나 보고 믿으라고?! 아니, 또 못 믿을 건 아닌데… 아아아, 머리가 터질 거 같아! 야, 너는 알고 있었어?”

“저도 최근에 알았어요.”

[그레이스의 복수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 네 동료가 되어 네 복수를 도울 수 있다면 분명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겠지. 그러니 너희 둘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천상의 동료지.]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건 그렇다고 쳐! 근데 왜 섹스를 하고 지랄인 건데! 너는 내꺼잖아!”

[그건… 꼭 한 명과 사귀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뭐라고?”

나도 내가 미친놈인 거 안다. 하지만 현실도 아니고 보너스 찬스인데, 하렘 선언 정도는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얼굴에 철판을 한 겹 더 깐 나는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폭탄 발언을 뱉어냈다.

[시아, 너를 사랑하는 만큼 그레이스도 사랑한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렇게 되어 있더군. 하지만 오히려 좋은 상황이다. 너와 그레이스, 둘 다 내 연인이 된다면 우리 셋은 정말로 끈끈한 동료가 될 거다.]

“미친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아니, 도대체가…”

“하아… 저도 이해해요. 며칠 전에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잠도 못잤었다고요! 어쩌다가 이런 바람둥이 성좌를 사랑하게 되어서 이 고생을 하는 건지… 에휴.”

“조교를 너무 서둘러서 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온 건가? 아아… 이게 아닌데…”

그런데 이대로 가만히 놔뒀다간 모든 게 개판이 될 수도 있잖아. 나는 두 사람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또 하나의 폭탄 발언을 뱉어냈다. 원래 이럴 땐 화풀이 대상을 만들어 줘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너희 둘과 사귀게 된다면 커다란 문제점이 생긴다. 자지는 한 개인데 보지는 두 개라는 크나큰 문제점 말이다. 그러니… 자, 정실 싸움이다!]

“……뭐어?”

“에휴…”

[여기서 이기는 사람에게 자지 우선권을 주겠다. 지금부터 서로 싸워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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