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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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성격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그걸 무시할 만큼 아름다웠고, 가슴도 커서 만지는 맛이 있었다. 거기다 메인 히로인답게 처녀여서 그녀를 조교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런 주제에 본성이 음란해서 그녀에게 조교당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보너스 찬스인데 시아 한 명으로 끝내기는 조금 아깝잖아. 그녀에겐 미안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언제 또 1억 포인트짜리 ‘상급 성좌’가 되어 보겠어.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즐기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아, 물론 그렇다고 시아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복수라는 그녀의 발작버튼을 누른 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게…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그레이스 델 라피가가 죽어 버리거든.
그러니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
그레이스 델 라피가, 라피가 가문의 공주. ‘연화’에서는 골칫거리로 불리는 무계약자지만, 사실 그녀는 7대 성좌가 구애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아무 성좌와도 계약하지 못한 건,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차고 다녔던 목걸이, ‘별의 눈물’ 때문이었다. 어째서냐고? 그 목걸이에는 성좌와 같은 신적인 존재와의 연락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능력이 있어서였다.
그것도 모르고 매일같이 ‘별의 눈물’로 자신을 치장하는 그레이스 델 라피가. 하지만 그 목걸이의 능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별의 눈물’에는 소유자의 영혼을 타락시켜 소유자를 마신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끔찍한 능력도 있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소유자가 삶의 의지를 포기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하하하하하. 이제 그만 항복하세요, 아가씨. 도대체 어디까지 추해질 생각이신가요? 이쯤 됐으면 그만할 때가 됐잖아요.”
“샤론, 너어… 어째서어… 어째서, 네가!”
“후후후… 아하하하하! 샤론이라뇨! 제 이름은, 아니, 내 이름은 샤론이 아니라 헤라란다. 아직도 모르겠어? 너 말야… 처음부터 나한테 속았던 거야. 이 멍청아!”
자신에게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던 친구가 빌런 조직 ‘흑야’의 스파이였고, 그녀가 자신에게 접근했던 것은 바로 자신을 마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차렸을 때 만큼의 커다란 충격을 말이다.
“네가 감히이! 빌런 주제에에… 감히 빌런 주제에에에에!”
“아하하하하! 불쌍한 우리 아가씨, 어서 마신님의 것이 되렴!”
그래도…. 아직 늦은 건 아니네.
마지막으로 ‘히로인 사용 설명서’를 완독한 나는, 스무 명이 넘는 빌런들에게 둘러싸여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레이스 델 라피가에게 계약용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
원래라면 주인공인 시우가 그녀를 구원해 주면서 그레이스를 서브 히로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지금은 한광 그룹의 일로 시우가 바쁜 상황. 그러니 여기서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레이스는 마신의 노예가 되어 더는 그레이스 델 라피가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무계약자, ‘그레이스 델 라피가’에게 계약 의사를 묻습니다.]
따라서…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서브 히로인을 되도 않는 빌런들에게 빼앗긴다고? 미친. 절대 안 되지. 나는 그레이스 델 라피가도 내 계약자로 만들 생각이다. 그런데 ‘별의 눈물’ 때문에 연락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거야 ‘홍염의 마녀’처럼 평범한 7대 성좌한테나 그런 거고, 나 같은 재벌 성좌에겐 통하는 않는 능력이었다.
[알 수 없는 능력으로 인해 메시지가 차단당했습니다.]
띠링
[‘슈퍼 성좌’ 아이템이 사용되었습니다. 성좌의 메시지를 차단하는 모든 능력을 무시합니다. 차단당했던 메시지가 정상적으로 무계약자, ‘그레이스 델 라피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뭐, 뭐야 갑자기… 계약 의사?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라고?”
띠링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성좌? 지금 성좌라고 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너 따위가 발악한다고 성좌랑 계약할 수 있을 거 같아? 수작부리지 말고… 꺄아악! 이, 이건 뭐야! 빛? 저, 정말 성좌한테서 연락이 온 거야?!”
“복수… 내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발악하는 건 너네겠지. ‘슈퍼 방장’, 아, 아니… ‘슈퍼 성좌’의 효과로 내가 그레이스 델 라피가를 보호하자, 헤라와 부하들이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데 다가갈 수조차 없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거지. 나랑 계약할 여자인데, 너희들 따위가 건드릴 수 있을 거 같아? 귀족답게 조금 싸가지가 없긴 하지만 시아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히로인이라고. 귀여운 얼굴과 아담한 가슴, 그러나 충분히 잘록한 허리와 나올 건 나온 엉덩이.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그녀는 마땅히 보호해 주어야 했다.
“으읍! 읍! 읍읍읍!”
후우, 좋아. 그럼 이제 방해받을 일은 없으니 본격적으로 계약을 진행해 볼까? 또 다른 아이템을 사용해 빌런 놈들을 음소거시킨 나는 원활한 계약을 위해 그레이스 델 라피가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주었다.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인정받고 싶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인정…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의 가치를 존중해 줍니다.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의 삶을 응원해 줍니다.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의 편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거, 거짓말… 너도 나를 속이려는 거지?”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자신은 진심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난 무계약자라고… 모두에게 버림받았었단 말야… 그런데 이제 와서 나와 계약하겠다고? 거짓말… 역시 거짓말이지?!”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 복수심을 이야기합니다.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이제서야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복수심? 이제서야… 가능해 졌다고?”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지지직…
지직
[답답해서 안 되겠네. 내가 지금 비싼 돈 들여서까지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거 보면 모르겠어? 이렇게 벌금 먹는 거까지 각오하고 일대일 대화를 신청하는 거 보면 모르겠냐고. 그레이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여자야.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끝낼 여자가 아니라고. 알겠어? 아, 젠장, 벌써 막혔…]
지직…
“아…”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당신이 복수를 도와, 당신을 모두에게 인정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인정…”
“아가씨 조심하세요! 지금 속고 있는 거예요! 성좌 따위가 아가씨랑 계약할 리 없잖아요! 분명 빌런이 지금 아가씨를 속이고 있는 걸 거예요!”
“계약하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야?”
“야, 이 씹년아! 속고 있는 거라고오! 그만 둬! 아아아악! 내가 이번 작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 했는데에에에! 씨발 당장 그만 두라고오오오!”
이런, 음소거 효과가 벌써 끝났나? 현실 개입 아이템이라 그런지 비싼 포인트 치고는 지속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이 정도면 나와 계약해 주겠지? 만족한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성좌, ‘이름 없는 복수자’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하겠어… 어차피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계약을 할 수밖에 없잖아! 여전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믿을게! 너와 계약하면 네가 내 복수를 도와준다는 거지?!”
지지직…
지직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너의 모든 것. 네 모든 것을 내게 바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
“내 모든 것… 알겠어. 나를 무시하던 모두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아버지와 오빠들… 그리고 가문 사람들, 그리고 또 아카데미 사람들! 그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더는 ‘델 라피가’가 아니게 되어도 좋아. 그러니 계약할게, ‘이름 없는 복수자’! 나와 계약해 줘!”
[좋다, 계약 성립이다.]
지직…
[무계약자, ‘그레이스 델 라피가’와의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그레이스 델 라피가’는 당신의 계약자입니다.]
“후우… 먼저 이 더러운 벌레들부터 처리해 주지.”
‘으응? 핫! 뭐, 뭐야! 내 몸이 멋대로!’
“상처하나 없이 쓸 테니깐, 안심하고 지켜보고 있어.”
마침내 서브 히로인과 계약하는 데 성공한 나는 곧바로 그녀의 몸에 강신했다. 앞으로 함께할 그녀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뭐, 모든 걸 바친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허용 범위잖아. 양해를 구하는 것보단 빌런 놈들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잠깐만!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면… 어라, 이 마나의 흐름은?!’
그럼 간만에 몸 좀 움직여 볼까? 인벤토리에서 갖가지 1회용 아이템을 꺼낸 나는 말 그대로 빌런 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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