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87화 (286/428)

〈 287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8)

* * *

코를 찌르는 포션 냄새와 침대를 둘러싼 새하얀 커튼… 맞아, 그러고 보니 양호실로 실려 왔었지. 정신을 차린 내가 주변을 살펴 보는데, 팔다리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뒤늦게 한태훈, 그 쓰레기 새끼한테 상처를 입은 게 떠올랐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조금 심했던 걸까? 결국 내 손으로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조금 후회가 되었다. 이렇게 아파하면 ‘이름 없는 복수자’가 슬퍼할 거 아냐.

[시아! 정신이 좀 드는가!]

이것 봐. 이런다니깐?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한 ‘이름 없는 복수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 걱정을 해 주었다.

“으응… 근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만 하거든?”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으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에이, 현상금 사냥꾼 시절 땐 이것보다 더한 적도 많았어. 내가 얘기 안 해 줬던가? 세 달 동안 깁스를 하고 다닌 적도… 으읏! …야! 그렇게 세게 안으면 아파, 이 바보야!”

[바보는 너다, 시아. 내가 정말 걱정이 되어서… 흐윽…]

“에휴… 그냥 우리 둘 다 바보인 걸로 치자.”

[시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지금 키스해도 될까?]

“……으응.”

평소처럼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대신 부드럽게 입술을 맞대는 ‘이름 없는 복수자’. 불안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다니깐. 살포시 그의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 넣은 내가, 그의 등을 토닥여 주며 그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으음, 하아… 내가 미안해, 으응…“

[아니… 미안한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으응? 츄릅… 하아, 그게 무슨 소리야아… 츄웃, 하아…”

[내가 더 많이 도와 줬어야 했다…]

“아니야… 흐읏, 그렇지 않아… 내가 억지를 부린 거잖아… 츄릅, 츗…”

[네가 억지를 부릴 것까지 고려해서 수련을 도왔어야 했다. 그러니 내 책임이다.]

“바보… 뭐라는 거야… 맨날 섹스하자고 조른 건 나잖아… 츄으읍, 하아…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이야… 흐읏, 하아… 사과할게. 너랑 하는 섹스가 너무 기분 좋아서… 흐읏, 으응… 내가 수련을 게을리 했어. 됐지? 그러니깐… 하아, 츄릅… 이제 키스에나 집중해 줘어… 꿀꺽, 푸흐으…”

[시아…]

“너어… 계속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결과가 좋으면 된 거잖아. 으응? 그러니깐 자아… 첫 번째 복수를 해낸 기념으로 나를 사랑해 줘어…”

결국 마지못해 혀를 움직여 주는 ‘이름 없는 복수자’. 부드럽게 내 입 안을 핥아 주는 그의 혀놀림에서 그의 따스한 애정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나를 사랑해도 너무 사랑한다니깐. 아무래도 나한테 조교의 재능이 있었던 거 같다. 성좌 하나를 완벽하게 내 걸로 만들어 버렸잖아.

문제는 나 역시 ‘이름 없는 복수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데…

“바보… 그렇다고 계속 키스만 할 거야? 흣, 으응… 그래, 거기도 만져달란 말야.”

뭐, 어때. 그렇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 내가 SSS급 영웅이 될 정도로 강해진다면, 임신도 가능해진다고 했으니… 이대로 ‘이름 없는 복수자’와 연인이 되는 것도 좋아 보였다. 성좌와 계약자 사이라 해도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결심한 내가 스스로 다리를 벌리려고 하는데…

“시아야!”

저 멀리서 나를 찾는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한광 그룹이, 흐응… 원흉이었다는 거야?”

“응. 안그래도 아버지가 한광 그룹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네 덕분에 결정적인 증거를 얻었대. 그래서 지금 완전 날뛰고 계셔.”

“후후… 이런 걸 인과응보라고 하나? 하앗, 잘 됐네…”

계획대로 스승님께서 한광 그룹으로 쳐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난, 기쁜 마음에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스승님께서 한 번 문 사냥감을 놓칠 리 없잖아. 나 역시 한 번 문 자지를 놓치지 않으며, 한광 그룹의 멸망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이사장님께서 시아 너한테 상장을 주실 거래. 아카데미 학생들한테 모범이 되었다나? 아무튼 시아 너를 좋게 보셨나 봐.”

“흐응… 그래? 그것도 잘 됐네.”

“엄청 잘 된 거지! 그리고 한태훈을 죽인 것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어서 아무 문제 없을 거래. 그러니 넌 안심하고 이대로 회복만 하면 돼. 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응. 괜찮아. 하아… 조금 불편하긴 한데… 읏, 으응… 그래도 버틸만 해.”

거기다 한태훈 문제도 해결되었다고? 그래, 그게 당연한 거지. 혹시 몰라서 무리를 했던 보람이 있었다. 상장까지 받을 줄은 몰랐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연달아 반가운 소식을 들은 나는 보지를 조여 ‘이름 없는 복수자’의 발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 괜찮은 거 맞아? 아침보다 상태가 나빠 보이는데…”

“하앗… 후우, 괜찮다니깐? 아랫배에서 뭔가 쑤시는 느낌이 나서 좋기는 한데… 가 아니라, 아프긴 한데… 견딜만 해. 하앙…”

“그, 그래? 정말 견딜만 한 거 맞아?”

“그렇대도? 흐읏, 으응… 상처가 너무 커서어… 하앙, 안쪽이 가득 차 버려서어… 하앗, 자꾸 신음 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 고통쯤은 이미 익숙해. 나한테 딱 맞는 크기거드은… 하아…”

“그으… 아, 알겠어… 아무튼 좋다는 거지?”

“응… 엄청 좋아… 아니, 사랑해… 일년 365일 내내 이랬으면 좋겠어.”

“……시아야?”

“푸흡, 왜 그래. 농담하는 거잖아. 으읏, 하아… 안 웃겼어?”

“아아… 난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했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걸까? 끝까지 순수한 모습만 보여 준 시우를 돌려보낸 나는, 본격적으로 ‘이름 없는 복수자’와 몸을 섞기 시작했다. 상처가 많아 조금만 움직여도 아팠지만, 섹스가 주는 쾌락을 포기할 순 없었다.

“으읏, 하아… 너어 진짜… 누가 멋대로 삽입하래! 깜짝 놀랐었잖아!”

[네가 박아달라고 직접 보지를 벌렸던 거 다 안다.]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말은 하고, 으응… 박아야할 거 아냐! 하마터면 시우한테, 아앙… 들킬뻔 했잖아!”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계속 티를 내던데? 들키고 싶었던 거 아닌가?]

“그으… 그건, 흐읏… 사실 시우한텐 밝혀도 좋을 거 같아서 말야… 헤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 근데 너어… 혹시 화났어? 하앗, 아까까진 엄청 다정했었는데… 앗, 설마 질투한 거야?”

[질투라… 그래, 질투를 했던 거 같다. 네가 그 남자 앞에서 웃는 걸 보니 기분이 나쁘더군.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행동했던 거 같다.]

“흐응… 질투했었구나? 헤헤… 질투한 거였어… 어쩐지…”

아니 진짜, 너무 귀엽잖아. 시우랑 나는 그냥 ‘친구’ 사이인데, 그걸 보고 질투하기 있는 거야? 이러다가 나중에 의처증에라도 걸리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뭐 그렇다 해도 ‘이름 없는 복수자’니깐 사랑스러운 수준에 그칠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시아. 이번 복수 말이다… 제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으음… 뭐, 그렇지. 한광 그룹이 무너지면, 어쨌거나 지호의 복수는 한 셈이니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

[그러면… 이제 그만 여기서 복수를 끝내는 건 어떤가?]

“………뭐라고?”

아니, 근데 얘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말에, 달아 올랐던 분위기가 차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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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빼. 빼고 다시 말해 봐. 뭐? 나보고 지금… 복수를 포기하라고?”

[……시아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나를 위해서라고? 지랄. 어떻게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 나한텐 복수가 전부인 거 너도 잘 알잖아!”

[첫 번째 복수를 해냈다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이 다쳤다. 다른 복수에 비해 난이도도 훨씬 낮은 복수인데 말이다.]

“……그건.”

[그 흉악한 조직 ‘흑야’를 전멸시키겠다고? 한광 그룹의 막내 아들 하나 잡는데도 이렇게 다치고 만 너다. 그런 네가 상처 없이 흑야를 전멸시킬 수 있을 거 같나? 분명 부서지고, 으깨지고, 망가질 거다.]

“……”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네 재능이라면 복수를 해낼 수는 있을 거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생명까지 저버린다면 ‘흑야’ 정도는 전멸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네게 대체 무엇이 남지? 모든 것을 잃은 넌 허무함 속에 생을 마감할 거다.”

“그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야. 애초에 쉬울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그 각오… 아직도 그대로인가?]

“그래. 가족과 친구들의 원수란 말야… 한순간에 고향이 무너졌고, 눈앞에서 모두가 죽어갔어!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 싫어! 절대 그럴 수 없어! 네 말대로 나한테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더욱 포기할 리 없잖아. 내가 아니면 누가 복수를 해 줄 건데! 나밖에 없다고!”

[복수라는 게… 방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앗아가려는 놈들에겐, 웃음을 잃지 않는 게 오히려 최고의 복수가 될 수도 있다.]

“개소리하지 마! 그게 어떻게 복수인데! 설령 모든 걸 잃는 다 하더라도, 똑같은 고통을 안겨 주는 게 복수인 거잖아!”

[시아…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봐라.]

“진정할 수 있을 거 같아?! 복수를 포기하라는데, 내가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어! 네가 모든 걸 빼앗긴 고통을 알기나 해?”

[시아…]

“그리고 내 복수야. 내 복수라고!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그리고 애초에 내 복수를 돕기 위해 계약한 거잖아. 근데 복수를 포기하라고? 하, 계약을 해지하자는 말이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오!”

[그럼 네가 모든 걸 잃는 걸 지켜만 보라고?]

“이미 한 번 당했던 일이야! 여기서 한 번 더 당한다고 뭐가 달라져?! 아니잖아! 그럼 그냥 지금처럼 나를 돕기나 하란 말야아!”

[그럴 순 없어…]

“그럼 씨발 꺼져… 꺼지라고! 안 도와줄 거면 내 옆에 있지 마! 네가 뭔데 나한테 복수를 포기하라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성좌 주제에… 계속 개소리할 거면 저리 꺼져어!”

[……]

“꺼지라고오오오!”

좋아, 계획대로 발작버튼을 눌러 시아에게 꺼지라는 말을 들은 나는, 그 즉시 그레이스 델 라피가에게 달려갔다. 아직 안 늦었겠지? 즐기기 위해 시작한 보너스 찬스인데, 이대로 서브 히로인을 포기할 순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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