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5)
* * *
해맑은 얼굴로 내게 인사하는 시우. 웃기게도 그런 시우를 보자 이때까지의 고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시우를… 딱히 사랑하고 있지 않더라고. 시우를 봐도 두근거리지 않는 내 가슴 덕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우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지만… 이런 걸 사랑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이 상태로는 그 이상의 단계들… 그러니까 키스나 섹스는 죽어도 못 할 거 같았다. ‘친구’ 사이에 그걸 어떻게 하냐고.
가족을 잃은 내게 살아갈 힘을 준 시우를 동경했고, 그랬기에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경, 사랑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직도 ‘친구’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안녕, 오늘도 표정이 밝네.”
뒤늦게나마 내 진심을 알게 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시우를 반겨 주었다. ‘이름 없는 복수자’ 때문에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잖아. 다시금 우리가 ‘친구’ 사이라는 걸 되뇌이면서 나는 활짝 미소 지었다.
“흥, 좋다고 실실 쪼개는 것 좀 봐.”
“시우 군…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대련입니다! 지금 당장 저 여자랑 대련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쟤들은 왜 자꾸 칭얼대는 거래? 설마 나를 경계하는 거야? 아무래도 벌써부터 시우한테 푹 빠진 모양인데, 그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한 모양이다. 시우가 나한테 친절하게 구는 건 그냥 나를 동정해서 그러는 걸 텐데 말야.
“응? 하하. 나야 늘 그렇지. 너도 표정이 밝아 보여서 다행이야.”
“그래? 그런 줄은 몰랐네.”
“역시 시아 너는 웃는 게 훨씬 더 예뻐.”
“우엑, 뭐래.”
아니면 시우의 저 말투 때문에 그러는 건가? 맨날 태연한 얼굴로 지껄이는 저 낯부끄러운 말 때문에 착각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옛날에 많이 당해 봐서 잘 알거든. 처음에는 좋아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다 저러더라고.
그래도 뭐, 아직 시우를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깐 내가 이해해 줘야겠지.
“나는 이만 가 볼게. 슬슬 수련할 시간이거든.”
“아… 으응. 열심히 해!”
“고마워. 그럼 다음에 또 봐.”
눈치 있는 나는 세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언젠가 저 중에서 시우의 여자 친구가 나오겠지? 그때가 되면 진심으로 축하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
고민이 전부 다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아직 ‘이름 없는 복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론을 못 내렸거든. 시우와 달리 ‘이름 없는 복수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하는데… 역시 좀 그렇단 말이지.
나 때문에 흥분해서 발기한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나한테 사정한 후에 청소펠라를 받으면서 움찔거리는 걸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거듭 말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성좌잖아.
물론 껴안았을 때의 감촉이나 키스할 때의 촉감을 생각해 보면 건장한 신체에 근육도 많은 훈남일 거 같지만… 역시 그것만 믿고 ‘이름 없는 복수자’와 섹스를 할 수는 없단 말이지.
따라서… 유사 섹스로 만족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왜 ‘이름 없는 복수자’가 만지고 싶은 곳만 만질 수 있다고 말했었잖아. 그러니 잘만 한다면 처녀막은 그대로 둔 채…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내 질내에 자지를 쑤셔박는 식으로 유사 섹스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대, 진심인가?]
……라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는데, ‘이름 없는 복수자’가 정색을 하며 화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지, 진심인데?”
[……섹스는 계약 위반 아닌가. 내가 그대에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가? 계약을 해지하자는 말을 이런 식으로 돌려서 하다니…]
“으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말해 다오. 빠른 시일 내에 고치겠다. 그러니 계약 해지는 다시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대와 같은 계약자를… 잃고 싶지는 않다.]
“……”
[…그대여?]
“야이, 바보야!”
놀랐잖아! 나는 또 네가 나한테 실망한 줄 알았단 말야! 처음 보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차가운 모습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오해한 것이었다.
[으응?]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계약 해지라니, 내가 그딴 걸 할 리가 없잖아!”
[저, 정말인가?]
“당연하지! 내가 너를 어떻게 버려!”
[하지만 섹스는…]
“잊었어? 그건 그냥 우리끼리의 약속이었잖아. 내가 허락하면 그만이야. 그리고 섹스가 아니라 유사 섹스라니깐? 삽입은 할 건데 섹스는 안 할 거야. 그러니깐 걱정하지 마.”
[하아… 나는 또, 그대가 나를 버리려는 줄 알고…]
“겁먹었던 거야? 으휴… 됐으니까 빨리 와서 안아 줘.”
[그, 그대여?]
“귀여워서 지금 당장 안아 주고 싶으니까 빨리 오라고. 네가 만지기 전까진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준단 말야. …그리고 키스도 해 주고 싶으니까 알아서 입 맞춰. 알겠지? 아, 발기한 상태로 안아 주면 내가 서비스로 대딸도 해 줄… 우읍?! 하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끌어안는 ‘이름 없는 복수자’. 평소보다 힘을 주어 나를 안아 주는 ‘이름 없는 복수자’ 덕분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게 조교의 힘일까? 그러고는 내 머리를 붙잡고 열정적으로 키스까지 해 주는데… 좋아서 미칠 거 같았다. 완전 애정 듬뿍이잖아. 내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매달리자, 그가 내 허리를 끌어 당기며 내게 호응해 주었다.
“무서웠어? 하아… 츄릅, 츄웁… 하아, 으응… 걱정 마아… 쪼옥, 쪽… 하응… 평생 너랑 함께할 거니깐… 츄웁, 푸흐… 이, 바보야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성좌를 두고 그저 ‘친구’일 뿐인 시우를 떠올렸었다니… 스스로의 한심함에 실망한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반성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이름 없는 복수자’와의 키스를 이어갔다.
***
[그러니까… 처녀막은 그대로 둔 채 성기를 박아달라는 소리인가?]
“응응, 할 수 있지?”
[할 수는 있다만… 조금 의아하군. 그게 어떻게 해서 유사 섹스인가. 섹스와 다를 게 없지 않는가.]
솔직히 나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잖아. 어쨌거나 처녀막은 그대로니 섹스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변명한 나는 침대에 누워 스스로 보지를 벌렸다.
“내가 유사 섹스라면 유사 섹스인 거야. 불만 있어? 아니면… 나랑 하기 싫어?”
[그, 그건 아니다만.]
“보여? 축축한 거? 지금 너랑 유사 섹스할 생각에 보지가 발정해 버렸어… 그러니깐, 으응… 분위기 깨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와서 박아 줘어… 하아, 여성 호르몬… 분비해야 할 거 아냐…”
[…정말 해도 괜찮은 건가?]
“괜찮아, 괜찮으니깐… 하아, 어서 내게 와 줘.”
[알겠다…]
좋으면서 내숭 떨기는...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던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내게 올라타더니, 자신의 자지를 내 보지에 갖다 댔다. 그러자 입구에서 음란하고도 뜨거운 감촉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벌써 몇 번이나 맛보았던 ‘이름 없는 복수자’의 자지… 이제는 이 자지가 내 보지를 맛볼 차례구나. 그런데… 이대로 따먹힐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었는데… 문뜩 불안감이 몰려와 긴장이 되었다. 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알지도 못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얼굴이 떠오르더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상성이 안 맞으면 어쩌지?
속궁합이 별로면 어쩌지?
이번에야말로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나는……
나는…
“우음? 하아… 읏, 하아… 뭐 하는…”
[잊었는가? 그대가 보여준 그 어떤 영상에서도 곧바로 섹스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필요 이상의 애무가 전제되더군.]
“으읏… 으응, 그랬지… 하아, 츄릅…”
[그건 필시 올바른 섹스를 위해 서로를 흥분시킴과 동시에 각자의 긴장을 풀게 만드는 행위일 거다. 그러니 우리 역시 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갑자기 하라는 섹스는 안 하고 나와 키스를 하기 시작한 ‘이름 없는 복수자’. 그에게 깔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이름 없는 복수자’를 끌어 안으며 그에게 내 몸을 맡겼다.
혹시 티가 났던 걸까? 그 상태 그대로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이번에는 내 가슴을 빨아 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긴장한 걸 눈치채고는 나를 달래 주는 모양이었다. 정말 사랑스럽다니깐… 그러고는 그대로 아래까지 내려가 내 보지를 핥아 주는데, 시작도 전에 그만 가 버릴 뻔했다.
“하앙… 이제, 하아… 됐어. 덕분에 안심이 되었어… 하아, 으응… 나와의 섹스가 어떻든... 흣, 하아… 계속 나를 사랑해 줄 거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게 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사랑이라면…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거다.]
“바보… 진짜 말을 어렵게 한다니깐… 핫, 으응… 그냥 눈치껏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거잖아… 흣, 하아아…”
[……사랑한다.]
“너어어… 하읏, 하아아아아아앙!”
야 이씨, 박으면서 고백하는 건 반칙이잖아! 이 감정을… 가슴 떨리는 이 애틋한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은데… 보지 안을 파고드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자지 때문에 가 버리면서, 나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