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3)
* * *
그레이스 델 라피가… 그 싸가지 없는 년 덕분에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에야 오직 나만이 ‘이름 없는 복수자’의 여자 계약자지만… 이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
당장 오늘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새로운 여자 계약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년도 여성 호르몬이 부족한 상태라면…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나 대신 그년의 몸을 만져야할 수도 있었다.
“젠장!”
뭐가 나만의 장난감이야. 족쇄를 채운 것도 아닌데 나만 바라볼 거라고 착각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난 그저 한 명의 계약자일 뿐이잖아. 이대로는 언제 ‘이름 없는 복수자’를 빼앗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미안하군. 개인적으로 그대보단 그레이스 양이 내 취향이라서 말이지.’
‘호호호, 서민은 패배 자위나 하고 계세요! 저는 ‘이름 없는 복수자’님과 애틋한 시간을 보낼 테니깐요! 오호호홋!’
아, 씨발… 상상만 해도 좆같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계획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
조교 ○일차.
[으음… 그대여, 이건 또 무슨 짓인가.]
“다가올 공개 대련을 위한 특별 수련이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깐, 확실하게 준비해 놔야 할 거 아냐.”
[그건 알겠는데… 굳이 그대가 알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응. 있어. 그러니깐 잔말 말고 내 가슴을 만져 줘.”
[그, 그대의 가슴을?]
“아, 왜 이렇게 말이 길어. 오늘부터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을 나한테 일임하기로 약속했었잖아. 잊었어?”
[…아, 알겠다. 그럼 실례하지.]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있어 ‘신시아’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부터 있을 성좌 조교의 목표다. 그래야 그에게 다른 여자 계약자가 생겨도 내가 안심할 수 있을 거 아냐.
나는 그러기 위한 일환으로 그가 내 가슴을 만지도록 만들었다.
“하읏… 어때, 내 가슴?”
[…부, 부드럽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줘. ‘신시아’의 가슴이 어떻게 생겼는 지, 촉감이 어떤 지, 만지고 있다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는 지, 전부 다 숨기지 말고 말해 줘.”
[그게… 일단 형태가 예술적이다. 마치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는 거 같군. 비율도 그렇고 균형도 그렇고, 그야말로 가슴의 정석이다.]
“……그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게 아니었는데.”
[으음… 그리고 촉감 또한 훌륭하다. 적당히 탄력적이면서 적당히 부드럽군. 하루 종일 만지고 싶을 정도다. 내 손에 딱 알맞은 크기라 더 마음에 드는 군. 이 정도면 원하는 대답이 되었는가?]
“전혀! 그렇게 가식적인 말 말고 좀 더 네 속내를 드러내라고!”
[그렇게 말해도 이게 내 속내다.]
“만지기도 전에 젖꼭지가 딱딱해져 있는 걸 보니 무척 음란해 보인다. 설마 나한테 만져지는 걸 기대한 걸까? 숨소리도 거칠어진 게 벌써부터 흥분한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말 하라고, 이 바보야!”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만…]
“야이, 씨발아! 이제부터라도 하라고! 알겠어? 그래야 내가 흥분할 거 아냐!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해서 나를 흥분시켜! 그러기 위한 수련 시간이잖아!”
[아… 알겠다. 그대 말을 따르겠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에 버럭 화를 낸 다음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주자, ‘이름 없는 복수자’가 머뭇거리면서 내 명령을 따랐다.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 쉽지 않은 조교라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순수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본성은 음탕한 건지, 내가 가슴을 움켜잡자마자 야릇한 신음 소리를 터뜨린다.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몸이 민감한 걸까? 궁금했던 내가 젖꼭지를 꼬집어 주자…]
“하아앙… 계, 계속 해… 으읏, 응…”
[허리를 비틀거리면서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대충 이런 식이면 되나?]
“으음… 아직 부족해. 내 반응은 이제 됐으니까, 흐읏… 네 반응을 이야기해 봐. 지어내서 하는 말이라도 괜찮으니까, 어서어어!”
[야릇한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나 역시 흥분되기 시작했다. 내 손에 자세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자 희열이 느껴졌다. 이렇게 짜릿할 수가 있다니, 덕분에 내 성기가… 아니, 여기까지만 하지.]
“…설마 발기한 거야?”
[아니, 그게…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입 밖으로 말을 내뱉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심이 되어서… 읏, 자, 잠깐! 무슨 짓인가!]
“진짜 발기했구나! 기뻐!”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이구나! ‘이름 없는 복수자’를 흥분시키는데 성공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안아 주었다. 아랫배에서 그의 자지가 느껴졌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에게 내 아랫배를 밀어붙이며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앞으로 내 가슴을 만질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해. 알겠어? 너 때문에 야한 소리를 내뱉는 나를 보고 발기해야 한다고.”
[…그건 좀.]
“아, 글쎄 발기해야 한다니깐! 따라해 봐. 신시아의 가슴은 존나 꼴린다!”
[……]
“복창 안 해? 신시아의 가슴은 존나 꼴린다!”
[신시아의 가슴은 존나 꼴린다…]
“신시아의 가슴을 만지고 싶다!”
[신시아의 가슴을 만지고 싶다…]
“신시아의 가슴을 만지면 발기해 버린다!”
[신시아의 가슴을 만지면 바, 발기해… 버린다.]
“명심해. 내 가슴이라 꼴리는 거고 발기하는 거야. 다른 여자의 가슴으로 발기하면 안 돼. 알겠어? 그레이스 같은 씨발년 젖탱이를 보고 발기하면 안 된다는 거야. 알겠지? 알겠으면 머릿속에 집어 넣어.”
[지, 집어 넣었다…]
“내 가슴은 뭐라고?”
[조, 존나 꼴린다…]
“존나 꼴려서 만지면 어떻게 된다고?”
[발기해 버린다…]
“잘했어! 상으로 내가 파이즈리 해 줄게. 존나 꼴리는 ‘신시아’의 가슴으로 말야. 후후후후… 아, 근데 파이즈리도 이번이 처음이지?”
[아니, 처음이 아니다.]
“뭐어어?! 어떤 씨발년한테 받은 건데?!”
[지, 지난 번에 그대에게 받았었다… 벌써 까먹었는가?]
“아, 맞다… 헤헤, 그랬었지.”
머쓱했던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파이즈리를 해 주었다. 흐흥, 언제 빨아도 맛있는 자지. 이걸 다른 여자한테 뺏길 순 없지. 성공적인 첫 번째 조교였다.
***
조교 ○일차.
“신시아의 가슴은 어떻다고?”
[…존나 꼴린다.]
“그래서 만지면 어떻게 된다고?”
[발기해 버린다. 으윽…]
오늘도 알몸으로 조교를 시작한 나는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내 몸을 끌어안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정말로 가스라이팅이 된 건지 그의 자지가 조금씩 발기하는 게 느껴졌다. 내 가슴과 맞닿아서 흥분한 걸까? 슬쩍 가슴을 비벼 주자 그의 입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좋아, 복습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오늘치 진도를 나가 볼까?”
[오늘은 또 무슨 일을 시킬 생각인가.]
“흐흥… 바로 키스야.”
[……키스?]
“그래, 키스. 이대로 서로 끌어안은 상태로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키스할 거야. 간단하지?”
[그렇군. 간단하다.]
“대신 나는 가만히 있을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너 혼자 혀를 움직여야 한다고! 나는 입만 벌린 채 가만히 있을 거야.”
[그… 그렇군. 알겠다.]
“대신! 네가 나를 기분 좋게 해 주면 나도 혀를 움직여 줄 거야.”
[애무라도 하라는 소리인가?]
“응응. 바로 그거야. 껴안고 있다고 애무를 못 하는 건 아니잖아. 이제 너는 내 성감대를 찾아서 내가 만족하도록 나를 만져 줘야 해.”
[그렇다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키스만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굳이 귀찮게 그대의 성감대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어라, 그렇네?”
[하지만 그래서는 그대의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 억지로라도 그대의 성감대를 찾아 보도록 하겠다.]
“……흐흥, 그게 아니라 네가 만지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그대의 수련을 위해서…]
“네가 만지고 싶어서 그런 거지? 너는 맞다고 해야 할 거야. 그렇지?!”
[그, 그렇다… 내가 그대의 몸을 만지고 싶어서 한 말이다.]
“좋아, 그러면 바로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입을 맞추는 ‘이름 없는 복수자’. 부드럽게 내 입 안을 휘젓기 시작한 그의 혀가, 자신의 타액으로 내 입 안을 도배했다. 잇몸부터 해서 혓바닥까지 온통 그의 타액으로 범벅이 되었다.
“제법… 하아, 흣, 잘 하네… 흐응…”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강압적인 ‘이름 없는 복수자’의 키스. 마치 그에게 강간을 당하는 거 같아서 보지 안이 축축해졌다.
아아… 황홀해. 이렇게 일방적인 키스라니… 심장이 떨려서 미칠 거 같잖아. 하지만 여기서 혀를 섞으면 훨씬 더 짜릿해지겠지? 맞아, 이대로 서로의 타액을 주고 받아 하나가 되면, 분명 천국을 걷는 듯한…
[그, 그대여? 아직 아무 곳도 안 만졌다만.]
…어라? 이런, 나도 모르게 움직였구나. 어쩐지 갑자기 가버릴 거 같더라. 그에게 달라 붙어 허리를 흔들고 있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키스를 이어 가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 미리 보여 주는 거야. 하아, 츄릅… 후읏, 하앙… 어때? 나랑 하는 키스… 기분 좋지? 알몸의 나를 껴안으면서 침을 교환하는 거… 츄릅, 환상적이지?”
[크흠, 그것이…]
“흥, 어차피 네가 할 말은 정해져 있어. 알지? 네가 날 흥분시켜야 한다는 거.”
[흠흠…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애정을 갈구하듯 내 품에 안기면서, 열정적으로 내 혀를 빨아 대는 그대를 보면…]
“응! 응! 나를 보면 어떻게 되는데?!”
[…꼴리는 그대의 가슴을 만져 발기하고 싶어진다.]
“야이, 병신아! 복습을 이상하게 했잖아!”
로맨틱한 말을 기대했는데 저게 뭐람… 전혀 진심이 아닌 것 같은 ‘이름 없는 복수자’의 말에 화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아랫배에 쿠퍼액이 묻어 나오는 걸 보면 거짓말은 또 아닌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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