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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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태가 아니다. 성좌의 자지를 빠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변태가 아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름 없는 복수자’를 만족시켜서 그의 정액을 맛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아니,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결심을 한 적은 없었다. 그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변태나 할 생각이잖아.
하지만 끝까지 사정을 참는 ‘이름 없는 복수자’ 때문에 내심 서운해한 적은 많았다. 아니, 맨날 싸기 직전에 이런 저런 핑계로 도망치는데, 내가 진짜 자존심 상해가지고…
“저기… 놀랬어? 진정해… 으음, 그으… 일단 청소펠라부터 해줄게.”
그래도… 한 번도 사정해 본 적 없는 순수 동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핥아 줄 때마다 자지를 움찔거리던 것도, 빨아 줄때마다 야한 소리를 내뱉던 것도, 그러다 사정하기 직전에 황급히 모습을 숨기던 것도, 순수 동정이라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을 텐데 얼마나 곤란했겠어.
“남자들도 사정하고 나면 민감해진다든데, 츄릅, 츄웃… 진짜야? 후훗, 뭐야 진짜. 자지로 대답하지 말라니깐? 츕, 츄르읍… 쮸웁, 푸흐…”
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절정을 회상하면서 정성스레 ‘이름 없는 복수자’의 자지를 빨아 주었다. 나도 그때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칠 거 같았었는데… ‘이름 없는 복수자’도 그러고 있겠지? 후후,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귀엽네.
“요도에 남은 거까지 다 빨아 줘야 하니깐… 쯉, 쮸우읍, 푸하… 도망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런데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보이질 않으니깐 감이 안 오네.”
[이제 그만해도 좋다…]
“응? 다 된 거야? 흐흥, 알겠어.”
그만해 달라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말을 끝으로 나는 청소 펠라를 멈추었다. 실제로 한 건 처음인데… 제대로 한 게 맞겠지? 입 안에 남은 그의 정액을 음미하면서 나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
“그런데 신기하다. 정액이 어떻게 이렇게 달콤하지? 으음, 쩌업… 우음… 하아, 맛있어. 성좌 정액이라서 그런가? 듣던 거랑 너무 다른데?”
[…나도 모른다.]
“하긴. 너도 사정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 아음, 중독될 거 같아… 우물우물, 우음…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사정시킬 걸 그랬어.”
[후우… 그대여, 사정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가?]
“에이, 뭘 그걸 가지고 그래. 기분 좋았으면서. 후훗, 내 입보지 맛있었지?”
[하아, 제발 부탁이다. 우리의 목적은 다음달에 있을 공개 대련이지 않은가. 그런 해괴망측한 단어는 그만 쓰고 이제 대련을 복기…]
“아, 됐고! 방금 있었던 이라마치오나 복기하자! 너 생각보다 되게 적극적이더라?”
[……방금은 내가 살짝 정신이…]
“푸흐흐,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단 거지?”
[……그래.]
민망했는지 목소리를 낮춰 대답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 소심한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귀엽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좋았다고 대답을 하는 걸 보니 진짜로 만족했나 본데, 처음 보는 그의 긍정적인 태도에 아랫배가 두근거렸다.
“정확히 어떤 점이 좋았던 거야? 솔직하게 말해 줘.”
[…꼭 말해야 하는가?]
“응. 꼭 말해야 해.”
[후우… 그으… 그대를 성욕 해소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흥분되더군.]
“와아… 완전 변태잖아.”
[그래서 엄청 자괴감을 느끼는 중이다. …미안하다.]
“아니, 아니야. 계속해 줘.”
[음… 성기를 감싸는 입 안 점막의 감촉도 좋았다. 평소의 펠라치오와는 색다른 기분이 들었거든. 거기다 그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이해는 안 가지만 그대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심장이 두근거려서… 아니, 그만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쓰레기다. 정말 몹쓸 짓을 해 버렸군.]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진짜 극혐이야. 내가 고통받는 걸 보는 게 좋았다고?
태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7대 성좌조차 우습게 볼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성좌가… 나한테 배덕감을 느꼈다는 거잖아! 꼭 내가 ‘이름 없는 복수자’의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가슴이 떨려왔다.
“하아… 아니야, 멈추지 마. 계속 말해 줘. 흐응… 내가 우는 게 꼴렸던 거야?”
[내 성기를 물고 괴로워하고 있는 그대를 보자,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났다. 멈추고 싶었는데… 그 감정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군. 이윽고 그 감정에 지배당한 나는 사고를 멈추고 허리를 흔드는 데 집중했다.]
“으읏, 하아… 그리고?”
[그게 끝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정을 한 후더군. 흥분했던 내 자신이 어이없을 정도로 강한 허무함이 느껴져 죽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으음? 자, 잠깐. 설마 그대 지금 자위 중인 건가?!]
“그치마안… 네 얘기가 존나 꼴린단 말야! 하아앙!”
여자에 대해, 성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나로 인해 타락하다니, 이렇게 흥분되는 일이 또 있을까. 마치 ‘이름 없는 복수자’라는 새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색깔로 낙서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네가… 흣, 으응, 하아… 나한테 발정했었단 거잖아앗!”
그런데 있잖아…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내면… 보통 그걸 그림명으로 부르지 않아?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도화지라고 부르진 않잖아.
“그래도, 하아… 나한텐 발정해도 괜찮으니까아… 읏, 흐응… 용서해 줄게…”
그러니 이대로… 낙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 낸다면… ‘이름 없는 복수자’라는 도화지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신시아’가 그려낸 그림이라고 불리게 되지 않을까?
감히 성좌라는 존재를 나만의 장난감으로 만들겠다는 발칙한 생각, 하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상상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지금처럼 ‘이름 없는 복수자’를 조교할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내 이야기가 꼴렸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그 대신 하앗, 으응… 내 입에 자지를 넣어 줘. 보답으로 자위하면서 펠라해 줄게.”
[…아니, 사양하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거 같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하앗, 으응… 빨리 자지 줘어. 너도 원하잖아. 흥분해서 다시 발기한 거, 안 봐도 뻔하거든? 자, 빨리… 아아암. 어서 내 입에 넣어줘어.”
[……젠장.]
후후훗, 이것 봐. 가능하잖아. 의심 한 번 못해 보고 내게 조교당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의 순진한 모습을 보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라마치오부터 시작해서 이대로 조금씩 수위를 높여 간다면… 그 끝은 분명… 아아!
“하아아아앙!”
언젠가 다가올 확정된 미래를 상상한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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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가문 사람들에게 인정받겠다는 생각 하나로 한국에 있는 ‘연화’에 입학한 그레이스 델 라피가.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절망의 시간들이었다.
“말도 안 돼! 다시 붙어! 갑자기 아티팩트가 고장났단 말야!”
“뭐래. 아티팩트 관리도 실력이거든? 졌으면 쫑알거리지 말고 저리 꺼져. 라피가 가문의 공주라길래 기대했었는데 역시 무계약자는 무계약자네.”
“이, 이게 감히이이이!”
오늘도 불운한 이유로 대련에서 패배하고 만 그레이스. 이걸로 두 자리수 패배를 기록한 그녀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무계약자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들에게 무참히 져 버렸던 것이다.
“그 비웃음… 반드시 환호성으로 바꿔 줄 거니까, 발 닦고 기다리고 있어어!”
“목 씻고 기다려,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아가씨.”
“그 비웃음… 반드시 환호성으로 바꿔 줄 거니까, 목 씻고 기다리고 있어어!”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레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10연패이긴 하지만 자신의 실력과는 무관한 패배. 좌절감을 이겨낸 그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떠오르는 샛별로 유명한 신시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신시아에게서 성좌를 주선 받아 불운조차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생각이었다.
“신시아가 아가씨를 도와줄까요? 성좌 이야기만 나오면 정색을 한다고 하던데요.”
“신시아 걔 고아라며, 거절할 수 없는 돈을 주면 생각이 바뀔 거야.”
“자본주의적 사고군요. 합리적입니다.”
“굳이 성좌의 정체를 숨긴다는 건 비밀 조항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 하지만 그런 건 다 파훼법이 있는 법이잖아. 신시아만 설득할 수 있으면 돼.”
“하지만 신시아가 알려 준다고 해서 아가씨가 그 성좌와 계약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가씨는 그 어떤 성좌에게도 연락받지 못한 무계약자인걸요.”
“너어어어! 그때는 컨디션이 나빠서 그랬던 거고! 나 정도의 재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아, 저기 있다!”
마침 저 멀리서 걸어오는 신시아를 발견한 두 사람. 그레이스와 샤론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최대한 좋은 인상으로 차분히 그녀를 설득할 계획이었다.
“닥쳐, 씨발년아. 처뒤지고 싶냐? 좆 같은 소리하지 말고 저리 꺼져.”
하지만 그레이스의 바람과 달리 신시아의 대답은 냉혹한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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