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77화 (276/428)

〈 277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8)

* * *

……그냥 자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지난 주부터 쓸데없는 것만 가르치고 있는 교사 덕분에 학습 의욕이 상실 되었다. 마나를 순환시키는 거? 그 정도는 기본이잖아. 현상금 사냥꾼 시절에도 할 줄 알았던 걸 기초부터 배우고 있으니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보이시나요? 마나의 흐름이? 제 손 안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이 흐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이 회전을 체내에서 재현하는 거거든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 ‘연화’의 학생이잖아요. 그러니, 거기! 한숨 쉬지 마세요. 제 수업만 잘 따라온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랍니다.”

거기다 저 흐름, ‘이름 없는 복수자’가 가르쳐 준 흐름보다 몇 배는 더 저급하잖아. 그런데도 저 교사는 마치 자랑하듯이 우리들한테 선보이고 있다. 저딴 게… ‘연화’의 강사진? 세계 3대 아카데미라는 ‘연화’의 위상이 의심스러웠다.

“어이없어. 이걸 누가 못해. 야, 박시우. 너도 그렇지? 이 정돈 껌이잖아.”

“그렇긴 한데… 저 흐름을 봐. 엄청 깨끗하잖아. 우리의 난잡한 마나 흐름을 정순하게 만드는 게 이 수업의 진짜 목적일 거야.”

“…그,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거든? 네가 모를까봐 알려 주려고 말을 꺼낸 거야.”

“하하. 고마워 예린아. 넌 정말 착한 애구나.”

그런데… 저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교사를 칭찬하는 시우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 정도면 너도 가볍게 따라할 수 있잖아. 아무래도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거 같은데, 그것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저 멍청한 년이 웃겼다.

시우 옆에서 잘난 척이라는 잘난 척은 다 하더니, 너도 별 거 없었구나?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대단해요, 라희 양! 이렇게 완벽하게 따라하시다니! 훌륭해요!”

“아하하… 운이 좋았어요.”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요! 이제 이걸 체내에서 구현하시면 만점이랍니다!”

“선생님! 저도 칭찬해 주세요! 반장만 편애하시는 건 불공평합니다!”

“……저기, 레이나 양? 엄청 깨끗한 회전이긴 한데…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 제가 보여준 건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하하하하

­웅성웅성

저것들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저급한 흐름을 따라하고 기뻐하는 반장과 그걸 보고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또 다른 멍청한 년이라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시우는 뭐가 좋다고 저런 애들이랑 붙어 다니는 걸까?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부터 수련을 게을리하는 거 같던데, 스승님한테 알려 줘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시아야,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으응? 그냥… 스승님 생각이 나서.”

“아버지? 아, 그러고 보니 너 마나를 지저분하게 쓴다고 아버지한테 맨날 혼났었지? 잘됐다! 저걸 배울 수 있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뭐라고?”

“아… 주제넘었다면 미안.”

아니, 설마 진심이었어? 진짜로 저걸 정순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너무나도 뜻밖의 반응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연히 빈말일 줄 알았는데… 하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시우가 나와 동문이라는 게 부끄러웠…

아니지. 동문은 아니잖아.

스승님한테 배웠던 건 오직 검을 휘두르는 것뿐. 마나를 회전시키는 건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배운 거다. 그러니 마나의 흐름을 보는 눈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경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이름 없는 복수자’가 가르쳐 주는 게 ‘연화’에서 배우는 것보다 낫다는 거야?

당장에라도 따라할 수 있는 저 저급한 흐름, 그리고 그걸 보고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학생들. 그 사이에서 위화감을 나는 ‘이름 없는 복수자’와 계약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오늘의 수업 덕분에 ‘이름 없는 복수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진짜 장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에 대해서 무지한 것, 이게 의외로 되게 좋더라고. 더 이상 ‘이름 없는 복수자’ 앞에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한층 더 대담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걸로 해 줘.”

[알겠다. 제목이 ‘순애 커플의 24시간 연속 섹스’군. 참고하도록 하지.]

“부탁할게 그럼.”

이렇게 야동을 틀어 줘도 머릿속이 복수로 가득찬 ‘이름 없는 복수자’는 그저 교보재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 그의 앞에서 알몸이 되어도, 온몸을 애무당해도, 신음 소리를 내뱉어도, 문제될 게 전혀 없었다.

분명 내가 자지를 빨아 줘도 그걸 수련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일걸?

그러니 이 순간만큼은 생각을 멈추고 현실을 즐기는 게 옳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챙겨 보던 야동, 여기서 따라해 보고 싶었던 게 많았단 말이지. 그런데 마침 아주 적절한 ‘도우미’가 생겼으니 시도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지.]

“준비 됐으니 언제든… 우읍, 츕, 츄릅… 하아, 너무 갑자기잖아… 츄릅…”

[싫어?]

“아니, 좋아… 츄릅, 흣… 하앙, 아아앙!”

난데없이 내 몸에 올라타더니 나와 키스를 하기 시작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 그가 두 손을 뻗어 옷 안으로 내 가슴을 주물렀다. 듬직하고 커다란 그의 손에 애무당하자 내 입에서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읏, 또 젖꼭지만… 으응!”

[젖꼭지만 만져달라고? 이렇게?]

“바보, 하아… 너무 잘 알잖아… 하앙!”

익숙한 손놀림으로 브라의 후크를 푼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유두를 괴롭혔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상냥한 애무였는데, 그 덕분에 벌써부터 허리가 무너질 뻔했다.

“하아… 내 가슴이, 으응, 그렇게 좋아?”

[좋기는 한데, 여기가 더 좋아.]

“하아앙! 나도, 하아… 보지가 만져지는 게 더 좋아… 으응!”

어제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내 보지 안을 애무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 정말로 애정을 담아 만지는 건지,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두터운 그의 손가락이 질내를 어루만질 때마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하앗, 아앙! 이거, 좋아… 하아, 으응… 아아앙!”

[시아야, 나 못 참겠어.]

“으응! 하아… 나도 그래, 하앙… 어서 넣어 줘… 으으응! 빨리이!”

교성을 터뜨린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보지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이름 없는 복수자’의 자지였다.

“하아앗, 으응! 하아… 치사해, 하아… 으으응! 장난치지 마아!”

하지만 그는 내 보지 안을 탐하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그는 한결 같았다. 삽입 대신 스마타를 하기 시작한 그는 계속해서 내 클리토리스를 괴롭혔다. 안타까움을 느낀 나는 그를 껴안은 후 입을 맞추었다. 타액을 섞으며 나는 그에게 매달려 섹스를 졸라 댔다.

“우읏… 츄릅, 츕, 푸흐… 하아, 으응! 그러지 말고, 어서… 하아앙! 츄릅…”

[사랑해, 시아야.]

“하아… 츄르읍… 하아, 나도, 사랑해애… 으응! 사랑해애애!”

[사랑하니까 부탁할게. 최대한 음탕하게 말해 봐.]

“으응! 하아앙! 네 전용 오나홀 보지에 마킹해 줘어! 하아, 으응! 평생 네 자지밖에 맛보지 못한 내 보지가, 하아… 다른 자지에는 눈길도 안 줄만큼 나를 만족시켜 줘어! 하앙, 으읏! 네 자지 전용 보지라고 마킹해 줘어어어!”

이 정도면… ‘이름 없는 복수자’도 박아 주겠지?

[후우, 반응을 보니 오늘의 여성 호르몬 자극도 성공이군.]

아, 맞다 이거 연기였지.

***

순애물 장르는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이게 메소드 연기를 하다 보니까 실수를 하게 되더라고. ‘이름 없는 복수자’는 사람도 아니고 성좌인데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되고… 섹스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스스로 보지를 벌리게 되고… 물론 영상을 따라한 거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 진심이었단 게 문제다.

이래서 메소드 연기가 위험하다고 하는 거구나.

그래서 생각을 바꾼 나는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장르를 골랐다.

[‘SM 여왕님의 따끔한 은총’? 정말로 이런 게 도움이 되는 건가?]

“되니까 준비나 해. 밧줄이랑 채찍이랑 안대랑… 또 뭐 있지? 아무튼 영상 보고 필요한 소품들을 보내 줘.”

[으음, 하지만 이 영상엔 문제가 있군. 나는 그대를 건드릴 수 있지만, 그대는 나를 건드릴 수 없다. 내가 먼저 그대와 접촉하지 않는 한 그대는 나를 때리고 싶어도 때릴 수 없다는 소리지. 그러니 이 영상을 재현하는 건 무리다.]

“…뭐어?! 치사해!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장르를 다시 한 번 바꿔야할 거 같다. 채찍질을 하면서 젖꼭지 체벌의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지? ‘이름 없는 복수자’의 일방적인 터치만 허락된다는 게 서글펐다.

아니, 잠깐. 그런데 쟤가 먼저 만지면 나도 만질 수 있단 거잖아.

“방법이 있어! 꼭 채찍질만 SM인 건 아니거든! 네가 자지로 내 발을 건드린 다음에, 그 상태 그대로 무릎을 꿇는 거야. 그러면 이 영상처럼 풋잡을 할 수 있어!”

기가 막힌 생각을 떠올린 나는 활짝 웃으며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얘기했다.

[그대의 발로 내 자지를 애무할 생각인 건가?]

“그래! 그걸 풋잡이라고 하는데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게 그대의 여성 호르몬 자극과 무슨 상관이 있지? 내 자지를 애무한다고 그대의 몸이 흥분할 리는 없지 않은가.]

“………어라?”

역시 변태도 아니고 SM 장르는 좀 아닌 거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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