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74화 (273/428)

〈 274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5)

* * *

“음… 이렇게인가? 아니야, 이런 느낌으로… 그래, 이렇게 맞지?”

[틀렸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는 게 먼저다. 아직도 보법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건가? 검사라 해서 발놀림을 가볍게 보는 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아아, 자세가 바뀌면 앞을 보는 면적이 달라지는구나. 그러면… 이런 식으로 오른발을 내딛으면서 몸을 비틀라는 소리지?”

[정답이다.]

“햐읏?! 뭐, 뭔데! 맞췄잖아!”

[너라면 이 간단한 걸 분명 시작부터 알았을 거다. 하지만 너는 그걸 알고도 모르는 척 시간을 끌었지. 그건 이 이후에 있을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이 싫어서겠지? 그러니 이건 그에 대한 체벌이다.]

“씨발… 흣, 사, 살살 만져, 변태 성좌 새끼야… 흐읏…”

‘이름 없는 복수자’와 계약을 맺은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첫날에 있었던 수련을 반복해 왔다.

검에 대한 간단한 가르침을 받은 후, 기분 나쁜 ‘여성 호르몬 자극’이라는 최악의 시간을 가졌고, 소환단을 삼킨 다음 달라진 몸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수련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체벌은 여기까지다. 잠시 쉬고 5분 후 호르몬 자극 시간을 시작하겠다.]

“알겠으니까, 꺼져…”

그 결과 나는 웬만한 상급생 정도는 쉽게 이겨낼 정도로 급격히 강해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내 복수를 돕겠다던 ‘이름 없는 복수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우한테 듣기로 그 ‘소환단’이라는 영약은 굉장히 비싼 거라고 하던데, 그걸 벌써 7개나 선물해 줬단 말이지. 그 정도면 7대 성좌에게도 굉장한 지출일 거라고 하니, ‘이름 없는 복수자’가 내 복수에 진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따라서 양심이 있다면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고마워하는 게 맞았다.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만 아니면 말이다.

정말로 규칙 위반이 아닌 건지, 그 후로도 매일 저녁 내 몸을 끈적하게 만져 대는데, 정말이지 수치스러워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 아니, 계약자한테 그래도 되는 거냐고. 이제까지는 타이밍을 놓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못 나눠 봤지만, 오늘은 반드시 이걸 짚고 넘어갈 생각이다.

***

[5분이 지났다. 그럼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을 시작하겠다.]

“잠깐만!”

[또 뭐지?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로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을 방해할 생각이지?]

“그게 아니라… 오늘이야말로 똑바로 말해 주면 좋겠어. 어떻게 성좌가 계약자를 만질 수 있는 거야? 원래라면 그건 규칙 위반이잖아.”

[확실히,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군. 하지만 간단한 질문이다. 네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동의한 기억이 없는데? 내가 무슨 변태도 아니고 그런 걸 동의할 리가 없잖아! 역시 너, 사기꾼이었어?!”

[서로 간에 무언가 착각이 있는 거 같군. 혹시 내가 음흉한 변태라서 그대의 신체를 만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었어?!”

무슨 개소리야. 변태가 아니라고? 어이가 없네. 매일같이 남의 젖꼭지를 희롱하는 쓰레기 성좌 주제에, 뭐? 무언가 착각이 있다고?

동의하지도 않을 걸 동의했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변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고… 이거, 알고 보면 ‘이름 없는 복수자’가 벌금까지 내면서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그대의 몸은 훌륭하다. 심미적으로도 완벽하고 단점을 찾기가 어렵지. 거기다 얼굴까지 아름다우니, 그대가 아카데미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뭐, 뭔데.”

[그리고 감촉 또한 훌륭하지.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인 젖가슴과 엉덩이, 매끄럽고 탐스러운 허리와 허벅지. 가끔가다 나도 모르게 감탄할 정도이니 그대가 그런 착각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벼, 변태 맞잖아!”

태연한 목소리로 내게 성칭찬을 하는 ‘이름 없는 복수자’… 정말이지 낯부끄러운 그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뭐가 심미적으로 완벽하다는 건데… 완전 사기꾼이나 할 말이잖아. 거기다 감촉 얘기는 또 뭘 그렇게 자세하게 하는 거냐고.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시우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노골적인 그의 칭찬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대의 신체를 즐기기 위해 그대를 희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설마 내가 그렇게 저열하고 비열한 성좌로 보이나? 그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빼어난 미인이지만, 그렇다고 그대에게 흑심을 품은 적은 결단코 없다.]

“뭐래…… 즈, 증거 있어? 그리고 내가 동의했다는 건 뭔데? 역시 사기 맞잖아!”

[그대는 나와의 계약에 동의를 했다. 그리고 그 계약 내용은 내가 모든 것을 동원 해서 그대의 복수를 돕는 거지. 이제 이해가 되나?]

“……뭐?!”

[거듭 말하지만 내가 그대를 만진 것은 그대의 복수를 돕기 위해서였다. 내 사리사욕을 위한 행동이었다면 벌써 제재를 받았겠지. 하지만 오로지 그대만을 위한 행동이었기에, 아직도 우리의 계약이 파기되지 않은 거다. 그러니 이 의미없는 분쟁은 이제 그만 뒀으면 좋겠군. 지금도 수련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계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고? 그야말로 변태나 가질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성추행을 수련에 집어 넣겠어?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거든. 첫날과 비교하면 눈에 띌 정도로 유연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후우, 알겠어. 믿을게, 이 쓰레기야…”

그러니… 이제는 그만 받아들여야겠지.

‘이름 없는 복수자’는 내 조력자가 맞구나.

몇 번이나 믿었다가 실망했다가 또 믿는 것을 반복해 왔지만, 드디어 결론이 났다. 언행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이름 없는 복수자’는 신뢰할 수 있는 성좌였다.

“그럼 슬슬 시작하든가…”

‘여성 호르몬 자극’ 시간 같은 또 이해하기 어려운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턴 최대한 그를 믿어 줄 생각이다. ‘이름 없는 복수자’는 내 동료잖아. 앞으로는 욕도 자제하고 그와 친분을…

“하아앗?! 씨, 씨발 새끼야! 강간하라는 말은 안 했잖아아아아!”

***

“으읏, 흑, 흐아아아앙! 싫어, 흑… 으응, 으아아앙!”

끔찍하다. 믿어 줄 생각이었는데, 이건 진짜 선을 넘었잖아. 보지 안에서… 윽, 그러니까 질내에서 느껴지는 두꺼운 남자의 감촉에 허리가 무너졌다. 이렇게 역겨운데 어째서 기분이 좋은 거야…

최소한의 양심인지, 처녀막은 건드리지 않고 삽입한 모양인데… 그래도 말도 없이 내 처음을 가져간 놈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것도 날 위한 거라고? 쓰레기 새끼… 처음은, 흑…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었던 말야.

“흑, 으읏, 하앙… 씨바알… 아아앙!”

어쩌면 시우와, 하게 될지도 몰랐던 첫경험을 한순간에 빼앗겨 버린 난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고 말았다. 하지만 그 탓에 놈의 그것이 한층 더 깊에 들어와 버렸다.

“아앗! 하아… 으으응! 시, 시러어… 아아앙!”

진짜 진짜 진짜 최악이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아니 사람도 아니잖아. 관음충 강간마한테 범해지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하앗, 몸이 기뻐하는 거야. 육체와 정신 간의 괴리감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군.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지?]

“씨발, 씹… 흣, 아아… 씨발 새끼야! 약속했잖아! 섹스까진 안 할 거라며!”

[하아… 이렇게 굴욕적인 오해라니, 기가 차는 군. 설마 지금 내 손가락을 성기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대와의 약속을 어길 리가 없지 않은가.]

“……엣?”

[이건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 가볍게 넘어가질 못하겠군. 손 좀 빌리지.]

“에엣… 에에에엣?!”

[분명 첫날에 느끼게 해 준 적이 있을 텐데? 너무 자극적이라 기억에서 지운 건가? 뭐, 됐으니 이번에는 까먹지 말도록. 내 성기는 이런 감촉이다. 내 손가락이 굵고 두껍기는 하지만 그걸 성기와 비교하다니, 이거야 원...]

“에에… 에……”

손 안에서 뜨겁게 맥박치는 거대한 괴물, 아니, ‘이름 없는 복수자’의 자지… 그 흉측한 감촉에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가, 강간이 아니었구나. 이런 게 내 안에 들어왔다면 분명… 기, 기절했을 거야.

처음으로 흥분한 ‘이름 없는 복수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손가락 ‘따위’를 이런 괴물로 착각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

“에에에에에에?!?!”

커, 커커, 커졌어?! 어쩐지 뭔가 부드럽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발기 전의 자지였다. 반대로 발기한 자지는 검보다 단단해 져서는 쥐고 있는 내 손이 다 아플 정도였다. 이런 게 내 안에 들어왔다면 분명… 죽, 죽었을 거야.

그것도 모르고 손가락을 집어 넣은 거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니…

“죄, 죄송해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름 없는 복수자’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믿어 주기로 했으면서 5초도 안 돼서 믿음을 저버리다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쓸데없이 흥분해 버렸군. 아직 성적 내성이 약한 네게 내 성기를 만지게 해 줄 필요는 없었는데, 하아… 나 답지 않은 실수였다.]

“아…”

그렇게 말하면서 자지를 거두는 ‘이름 없는 복수자’. 매번 느끼는 건데 어떻게 저 멀리서 나를 만질 수 건지, 거기다 어떻게 만지고 싶은 곳만 만질 수 있는 건지가 신기했다. 성좌의 권능 같은 걸까? 아직도 손 안에서 자지의 맥박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의 수련은 여기까지 하지. 처녀라 해도 질내를 만져 주는게 효과적일 거라던 계약자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그 녀석은 영 도움이 안 되는 군. 다른 계약자를 만나 조언을 받고 오겠다.]

“저… 어떤 조언을 받으려는 건가요?”

[여자가 흥분할수록 여성 호르몬이 자극된다. 그러니 어떻게 애무를 해야 여자가 흥분하는 지에 대한 조언을 받을 생각이다. 부끄럽게도 그에 대한 지식이 없거든.]

“……그래요?”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이만 물러 가겠네.]

“자, 잠시만요! 다른 계약자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

[스스로 연애의 고수를 자처하더군. 미연시만 100개 이상 클리어 했다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도 100이라는 숫자가 넘었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

“안돼요! 절대로 그 사람한텐 가지 마세요!”

[어째서지? 네개도 도움이 되는 일일 텐데?]

“도움이 안 되니까 그러죠! 대신에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그 사람한텐 가지 마세요. 분명 이상한 걸 가르쳐 줄 거예요.”

[그대가? 하지만 그대는 처녀 아닌가. 그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지는 못할 텐데.]

“아뇨, 그… 가르쳐 주는 건 제가 아니라 이게 대신할 거거든요.”

[스마트PC? 여기에 그런 기능이 있었나?]

“그… 여기서, 여길 들어가서 이걸 틀면… 그, 이, 이런 식으로…”

이걸 ‘이름 없는 복수자’에게 보여 줄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오타쿠한테 가르침을 받는 것 보단 ‘전문가’들한테 가르침을 받는 게 더 좋겠지? 아무리 내 복수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오타쿠스러운 걸 당하고 싶진 않단 말야…

­아아앙, 기모찌이이, 하앙!

­이쿠이쿠이쿠, 이쿠우우웃!

[호오, 말로 듣는 것보다 훨씬 좋은 교보재들이군. 확실히 도움이 되겠어.]

현상금 사냥꾼 생활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으기 시작했던 컬렉션을 보여 준 나는 조심스럽게 ‘이름 없는 복수자’의 눈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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