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70화 (269/428)

〈 270화 〉 성좌 계약은 신중히(1)

* * *

오타쿠 안여돼가 되었을 때는 진짜 욕이 절로 나왔었는데, 뜻밖의 ‘반박귀진’ 스킬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섹스할수록 강해지는 ‘난봉꾼’ 능력이라니, 완전 사기 아니냐고. 그 덕에 린쨩도 따먹을 수 있었고 히나쨩도, 성녀도, 여신도 따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사기급 스킬을 얻은 건가? 확인해 보니 액티브 스킬이면서 동시에 위기 상황 때마다 자동으로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이던데,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 같다.

뭐, 막말로 ‘섹스를 안 하면 죽는 병’에 걸린 연기를 할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정말로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진짜 꼴리던데, 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이번처럼 히로인이 먼저 대주는 경우를 자주 만들어 봐야겠다.

[(특별 과제이므로 업적 달성이나 포인트 획득이 불가합니다.)]

그런데… 이건 좀 아쉽네.

획득 포인트도 0이고 달성 업적도, 클리어 특전도 없다. 아무리 특별 과제라 해도 스킬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만큼 3차 한돌 조건이 까다롭다는 건가?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쉰 다음 천천히 내뱉으면서 ‘히로인 네토리’의 알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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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호감도 한계 돌파 조건의 힌트가 공개됩니다.]

[힌트: 두 번째 한계 돌파 조건 달성 후, 히로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들으세요.]

……이게 무슨 소리야.

두 번째 한계 돌파 조건은 히로인에게 내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걸 고백하는 거잖아. 그런데 거기서 긍정적인 대답을 들으라고? 그러니까 즉… 내 진짜 정체가 무엇이든 히로인이 나를 끝까지 사랑해 준다면 세 번쩨 한계 돌파 조건이 충족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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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1 늘었습니다.]

***

솔직히 어이가 없다.

이걸 가지고 두 단계로 나눈다고? ‘히로인 네토리’에게 완전히 속은 기분이다.

내가 내 비밀을 들을 준비도 안 된 히로인에게 내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걸 고백하겠어?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어 줄 거라고 확신이 드는 히로인에게만 고백했을 거다. 세실리아처럼 말이다.

그런데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걸로 단계를 나누다니, 실망이 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특별 과제를 거부했지.

“하아…”

물론 특별 과제를 안 즐겼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완전히 어려운 조건일 줄 알았단 말야. 그런데 금방 알 수 있는 조건 가지고 특별 과제라고 생색을 냈던 거야?

‘히로인 네토리’, 이 녀석… 보기보다 좀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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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너스 찬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

[보너스 찬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실 경우 히로인 ‘위지혜’가 속한 세계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강제 복귀권’ 한 장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병 주고 약 주고냐?

좀생이라고 해서 발끈한 건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한 거 같아서 내게 미안해하는 건지, ‘히로인 네토리’가 난데없이 ‘보너스 찬스’라는 걸 꺼냈다.

[보너스 찬스: 이번 경우에 한해 ‘히로인 네토리’의 비용이 0이 됩니다.]

비용이 0이 된다고? 그렇다는 건… 0티어 캐릭터들이나 아이템들을 고를 수 있다는 거잖아. 거기다가 보상으로 50만 포인트 짜리 ‘강제 복귀권’을 준다고? 이 녀석… 좀생이가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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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시겠습니까? 단, 실패할 경우 1억 포인트의 빚이 생깁니다. (Y/N)]

포인트를 무한으로 쓸 수 있는데 실패할 리가 없지.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히로인 네토리’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

[‘히로인 네토리’ 능력을 사용합니다.]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세요.]

장르라… 무슨 장르를 고르지?

무협 세계관에서 천마가 되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왕이 되는 것도 재밌어 보인다. 하지만… 현대 판타지 세계관도 꽤나 끌린단 말이지. 나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현대 판타지’ 장르를 선택한 다음 세부 항목을 살펴 보았다.

[연예계물, 전문가물, 아포칼립스물, 재벌물…]

오, 아카데미물? 이거 재밌어 보이는데?

현실에서는 이름으로만 듣던 아카데미인데, ‘히로인 네토리’를 통해서 다녀보는 것도 신선할 거 같다. 물론 현실에 있는 아카데미랑은 느낌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하기는 할 거 아냐.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하세요.]

자, 이제 캐릭터인데… 당연히 0티어를 골라야지. 나는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맨 위에 있는 0티어 항목을 선택했다.

[창조 신: 3억 포인트 (할인가: 0포인트)]

[마신: 3억 포인트 (할인가: 0포인트)]

[SSS급 영웅: 5000만 포인트 (할인가: 0포인트)]

[……]

으음, 하지만 막상 목록을 살펴 보자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창조 신이 될 수 있다고? 그러면 전지전능할 거 아냐. 시작하자마자 히로인을 납치한 다음 네토리를 끝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잠깐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크게 재밌을 거 같지는 않았다. 너무 싱겁잖아.

그리고 마신이라고? 이것도 마찬가지지. SSS급 영웅도 그렇고, 오버 밸런스 캐릭터를 고를 경우 네토리가 너무 쉬워지니까 재미가 없을 거 같다. 왜 치트키를 사용하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말도 있잖아.

지금의 경우가 딱 그렇다.

차라리 아카데미 속 엑스트라가 되어서 주인공 몰래 히로인을 조교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원래 뭐든지 적당한 난이도가 있어야 재미가 생기는 법…

[……]

[상급 성좌: 1억 포인트 (할인가: 0포인트)]

오, 뭐야 성좌도 있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존재지만 늘 주인공과 히로인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거나 방해를 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히로인을 타락시킬 수 있는 존재.

성좌라면 오버 밸런스 캐릭터로도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이번 회차에 사용할 아이템을 선택하세요.]

이제 남은 건 아이템인데… 인벤토리 처럼 영구히 쓸 수 있는 걸 사 봤자, ‘보너스 찬스’가 끝나고 나면 전부 다 사라지겠지? 그러니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말고, 당장에 재밌어 보이는 아이템들이나 왕창 구매해 보자.

죽을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사망회귀’도 구매하고,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시간정지 기계장치’도 구매하고, 또 뭐 있지? 아, 손 쉬운 공략을 위한 ‘히로인 사용 설명서’, 이런 것도 있네. 이것도 구매하자.

치트키를 사용하면 재미가 없어지지만… 사용하는 경우가 더 재밌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선택지’ 정도는 만들어 놓는 게 좋을 거다. 갑자기 불합리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거 아냐.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한 나는 성좌들이 사용하는 화폐를 풀매수했고, 또 성좌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문 아이템 들을 구매한 다음, 모든 선택을 마쳤다.

‘보너스 찬스’라… 자기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마음 편하게 한 번 즐기고 와라, 이거지? 그러면 또 말을 들어 줘야지. 나는 앞으로의 성좌 라이프를 기대하며 ‘히로인 네토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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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조용조용! 정숙하세요. 곧 있으면 성좌님들께서 나타나실 거니 다들 조용히 해 주세요! 여러분… 제 말 듣고 있나요? 다들 진정하시고 정숙하세요!”

­웅성웅성

목소리를 높인 지도 교사가 신입생들에게 소리쳤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 한 신입생들은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 왔던 성좌와의 교류 시간이었기에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꼭 7대 성좌와 계약할 거라고 소리치는 남학생, 유명한 성좌와 계약하기를 기도하는 여학생, 신입생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로 강당 안이 가득찼다.

“수, 수진아, 나 어떡해… 너무 떨려. 7대 성좌와 계약할 수 있을까? 으으으…”

“할 수 있을 거야. 여기는 세계 3대 아카데미인 ‘연화’잖아. 많은 성좌님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계실 거야!”

“야, 박진우. 넌 긴장되지도 않냐? 우리 인생이 걸린 순간이잖아!”

“성좌는 거들 뿐이야. 결국 필요한 건 본인의 재능과 노력. 호들갑 떨 시간에 자세나 고쳐. 그렇게 떨고 있으면 올 성좌도 안 오겠다.”

“그렇게 말하는 네 목소리가 떨고 있거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독 침착한 신입생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유명 가문의 자제들, 상위 길드의 내정자들, 그리고 세계 영웅 랭킹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화’의 이사장이 직접 지명한 두 명의 특별 입학자들이었다.

“쟤가 걔야? 하, 어이가 없네. 나랑 같은 신입생 맞아?”

“그 늙은이가 지명할 정도니 말 다 했지, 뭐.”

“흥! 서민 주제에 당당한 척 하는 것 좀 보세요! 어쩜 저렇게 싸가지가 없죠?!”

“아가씨. 당당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당당한 겁니다. 저 정도면 영국의 ‘귀공자’님과 대등한 수준입니다.”

“쟤 말고! 그 옆에 있는 서민은 별 볼 일 없잖아!”

“아니요, 분명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겁니다.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흥! 서민 주제에!”

그리고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신입생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흑발의 미소녀, 신시아였다.

‘시끄러워… 정숙해 달라는 교사의 말이 안 들리나?’

창백해 보이는 새하얀 피부, 그 위를 덮은 검은색 단발머리, 차가워 보이는 시크한 눈동자와 웃음기라고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연분홍빛 입매. 외모만으로도 이미 모두의 시선을 끄는 훌륭한 인재였지만, 그녀는 그 이상으로 빛나는 재능을 가진 뛰어난 검사였다.

그렇기에 초면부터 그녀를 경계하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 그들의 시선을 느낀 남학생, 박시우가 걱정이 된다는 듯이 신시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기, 시아야… 검은 집어 넣는 게 좋지 않을까? 성좌들이랑 싸울 것도 아니잖아. 딱히 뭘 보여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검은 집어 넣는 게 좋아 보여.”

“…알았어.”

­스릉

­탁

의외로 순순히 박시우의 말을 따르는 신시아. 그녀가 검을 집어 넣음과 동시에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왔고, 갑작스레 혼자만의 공간으로 끌려 간 그녀 앞으로… 익히 들어 왔던 성좌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 서린 무명검]

[그대의 검이 굶주렸다면 나를 선택하라.]

[패도의 군주]

[나와 계약한다면 검 하나로 모두의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현월의 수호자]

[검과 하나가 되길 원하는가?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

[…]

한두 개가 아닌 수 십개의 메시지가 말이다.

7대 성좌로 유명한 ‘패도의 군주’나 검객으로 유명한 ‘현월의 수호자’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성좌라면 하나같이 그녀의 앞으로 계약의 메시지를 보낸 상황. 하지만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처음 들어 보는 성좌가 보낸 메시지였다.

[이름없는 복수자]

[그대와 헤어진 동생을 납치한 후 실험 끝에 폐기 처리한 조직을 알고 싶은가? 한광 그룹의 막내 아들을 조사해 봐라. 이 이상 알려 주고 싶지만 제약에 걸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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