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 이세계 특전: 섹스할수록 강해지는 능력(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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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쇼스케는 린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바보도 아니고 설마 그녀의 감정을 몰랐겠는가. 모리시타 린은 그 둔한 요스케도 알아차릴 정도로 쇼스케를 좋아하는 티를 내고 다녔다. 그러니 쇼스케가 린의 마음을 모르는 건 말이 안됐다.
하지만… 쇼스케는 애써 그 진실을 모른 척했다.
아사노 히나 역시 쇼스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졸업할 때까지는 셋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쇼스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둘의 마음을 무시했다. 그 역시 두 사람을 좋아했기에, 누구 하나 고를 수 없었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허나 안타깝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자신의 오만 때문에, 자신의 실수 때문에… 요스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형을 살리려면 둘 중 한 명의 처음을 형에게 바쳐야 하는 상황. 터무니없었지만 앞으로의 던전 공략을 위해서라도 판타지에 능숙한 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둘 중 한명이 희생해야 하는 처지. 쇼스케는 무의식적으로 린을 쳐다보았다.
린이라면… 도와줄 거야.
린이라면… 이해해 줄 거야.
린이라면… 형을 못본 척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때 쇼스케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하세가와 쇼스케는 아사노 히나에게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린을 바라보았던 것.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린이라면…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쇼스케는 자신의 행동에 역겨움을 느꼈다.
‘설마 나… 히나를 위해서 린에게 부탁하려고 한 거야?’
누가봐도 최악의 행동 아닌가. 셋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려던 자신이, 가장 먼저 그 사이를 깨트리려고 하다니… 린의 마음을 알면서도 린에게 끔찍한 경험을 떠넘기려고 하다니… 자괴감을 느낀 쇼스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책임질게. 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
그런데 놀랍게도 린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쇼스케의 시선을 느낀 건지 그녀가 스스로 희생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그 용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쇼스케. 그는 다시 한 번 역겨움을 느꼈다.
하지만 끝까지… 린을 말리지는 못했다. 린이 아니라면 히나를 잃어야 했기에, 쇼스케는 린을 멈추게 하는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린…”
분명 최악의 경험이 되겠지.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될 거야. 형이랑도 사이가 멀어질 거고. 나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오늘의 일을 잊지 못할 거야… 죄책감을 느낀 쇼스케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을 위한 사과였다. 지금 와서 미안하다고 말해 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형에게 처음을 줘야 하는 건 변함이 없는데.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이기적인 사과. 고개를 숙인 쇼스케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는 진짜 쓰레기야. 린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걸 강요하다니… 완전 최악이잖아. 린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아아…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미안해, 미안해 린…’
방심하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 자신의 실수를 통감한 쇼스케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더는 딜링에 욕심부리지 않으리라. 더는 동료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으리라. 그렇게 쇼스케가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이거, 놔! 부끄럽단 말야!”
“하, 하지만… 부축을 해 줘야…”
저 멀리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
“바보, 요스케! 부축한다는 핑계로 이상한 곳 좀 만지지 마!”
“아, 아니야! 그럴 의도는 없었어!”
“흥! 누가 모를 줄 알아?”
형이 멀쩡한 걸 보고 안심한 쇼스케는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린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그렇게 끔찍한 기억을 안겨 줬는데 어떻게 태연할 수 있겠는가. 괴로움을 느낀 쇼스케가 눈을 감았다.
‘엄청 슬펐을 거야… 소꿉친구 사이긴 하지만, 린은 형을 싫어하잖아. 펑펑 울지 않았을까? 어쩌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 나라도 옆에서 힘을 줘야 해…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린에겐 나밖에 없잖아.’
히나에게 마음이 기울었다고 해서 린에 대한 쇼스케의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떻게 좋아한다는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겠는가. 새하얀 피부, 매끈한 다리, 달콤한 향기… 모리시타 린은 매력적인 여자였고, 쇼스케는 여전히 린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쇼스케는 용기를 내어 린을 위로했다.
“……뭐야. 다 잘 풀렸으니까 다들 표정 좀 풀어. 누가 보면 내가 죽은 줄 알겠어.”
아니, 위로하려고 했다.
하지만 위로를 받기에 린은 너무나 멀쩡해 보였고, 그녀의 얼굴엔 절망 대신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은 여자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애써 연기하는 걸까?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쇼스케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미, 미안해… 다음부턴 더 조심할게. 오늘은 민폐끼쳐서 정말 미안해…”
“멍청아! 네가 나랑 히나를 살린 거야! 미안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거든?”
“아, 그, 그렇네요… 죄송해요, 제가 해주 스킬만 미리 익혔어도… 다시는 레벨업을 게을리하지 않을게요. 정말 죄송해요, 린 양.”
“응? 아니 너한테 한 소린 아닌데… 그리고 너는 사과 대신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요스케한테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이나 하기는 했어?”
“네에?! 아, 그러고 보니… 죄송해요! 경황이 없어서…”
“아, 아니야. 동료잖아. 동료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우엑, 너 지금 히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꿈 깨, 완전 재수 없거든?”
“에엣, 서, 선동이야 그거!”
“푸흡,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까 흥분하지 마. 뱃살 흔들려.”
짜악!
“끼에에엑! 아프잖아, 린쨩!”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 입을 닫은 쇼스케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궁금증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짓이었다. 린이 침묵하고 있는데, 자기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미안해, 형… 다시는 바보 같은 짓 안 할게.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으응… 그러면 되, 된 거지 뭐…”
“그리고 린… 형을 살려줘서 고마워…”
“됐어. 다 끝난 일이야…”
결국 마음 속의 의문을 남긴 채 돌아서는 쇼스케. 그는 린을 위해서라도 오늘 일을 잊기로 결심했다. 그게 쇼스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니,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뒷모습을 린이 노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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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잘 풀린다고? 솔직히 도박수였는데, 운이 좋았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나도 미처 몰랐었거든. 보아하니 시우스케가 무슨 짓을 한 거 같은데, 역시 시우는 시우였다. 쇼스케가 본명이긴 하지만… 아무튼 시우는 시우였다.
뭐, 린쨩한테 눈치라도 줬나 보지?
며칠 전에 내가 슬쩍 물어 봤을 때는, 두 사람 다 너무 좋아서 한 명을 고를 수 없다고 개소리하더니… 결국은 히나쨩을 고른 모양이다. 쓰레기 자식. 그럴 거면 여지나 주지 말지. 하여튼 어장 관리를 하는 놈들은 모두 다 네토리를 당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 차릴 거 아냐. 가만 보면 차라리 하렘을 차리는 주인공들이 더 호감이다. 뭐 그래도 네토리는 할 거지만 말이다.
아, 그런데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시스템 제약, 이거 심해도 너무 심하더라고.
아니, 말을 더듬는 것까진 알겠는데… 왜 자꾸 결정적일 때 지랄을 하는 지. 가슴 애무 좀 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빈유는 스테이터스!’ 라며 급발진 하는 거 보고 식겁할 뻔했다. 이게 바로 오타쿠 안여돼인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지금까진 어떻게든 좋게 넘어간 거 같지만…
변수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시스템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일단 안여돼의 안경, 여드름, 돼지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시력이야 레벨을 올리면 해결되는 거고, 여드름이랑 살이 문제인데… 으음, 이거 앞으로는 섹스 다이어트를 조금 더 빡세게 해야 할 거 같다.
메인 히로인을 공략하려면 오늘과 같은 모습은 최대한 안 보여 줘야 하거든.
짜악!
“끼에에엑! 아프잖아, 린쨩!”
린쨩이야 워낙 성격이 좋아서 웃고 넘긴 거겠지만 히나쨩은 안 그럴 거란 말이지. 그러니 당분간은 서브 히로인 공략을 마무리하면서, 시스템 제약을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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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토벌하셨군요!”
“그럼 잠깐의 휴식 후에 바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요스케 님은 회의가 끝나면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미리 언질을 드리자면, 오늘부터는 귀족 영애들이 요스케 님께 안길 겁니다.”
“요스케 님은 평소처럼 성교로 레벨을 올리시면 됩니다.”
“하하하, 부럽군요. 피곤하시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에… 좋겠네, 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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