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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네토리-253화 (252/428)

〈 253화 〉 이세계 특전: 섹스할수록 강해지는 능력(5)

* * *

히든 보스라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관측으로 확인해보니 그냥 적당히 까다로운 정도더라고. 당황만 하지 않으면 지금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다. 그래, 당황만 하지 않으면 말이다.

“시, 싫어어어!”

“히나?! 침착해! 그,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으으으, 요스케! 어떻게 좀 해 봐!”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커다란 거미의 몸통에 인간의 상체가 달린 몬스터, 아라크네를 목격한 파티원들이 하나같이 다 패닉에 빠졌다.

“거미는 싫어어어어!”

“히, 히나?! 제발 정신 차려! 아아, 제발 부탁이야!”

“요스케, 이 바보! 빠, 빨리 앞에서 막으란 말야!”

불쾌한 골짜기 그 자체인 몬스터가 저렇게 끔찍한 몰골로 달려오는데, 패닉에 안 빠지는 게 이상한 거지. 이런 쪽으로는 내성이 있는 내가 봐도, 저 다리의 움직임은 기이하고 괴상했다.

이거, 라노벨 맞아? 너무 그로테스크하잖아. 적어도 모에화는 해 줘야지!

덕분에 전투에 돌입하기도 전에, 전멸 위기에 빠져 버렸다.

“린! 일단 히나 데리고 뒤로 물러나 있어! 그리고, 형! 형은 괜찮은 거지?”

“으, 으응!”

“형은 아까처럼 탱킹 좀 해 줘! 부탁할게!”

하지만 명색이 용사 파티인데, 진짜 이대로 전멸하겠어?

정신을 차린 시우스케가 나름 오더를 내리며 파티를 진정시켰다. 역시나 주인공은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법이다. 아라크네의 공격을 물 흐르듯 회피하면서 딜각을 보는 시우스케.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우스케는 이미 가스라이팅을 당한 후였다.

“꺄아아아아!”

­푸슉!

“끄으윽… 허억, 허어…”

“요, 요스케에! 괜찮아?!”

“버틸만 해… 허억…”

뒤에 히로인들이 있는데 그걸 피하면 어떡하냐.

지금은 피하지 말고 방어했어야지.

지난 일주일처럼 내가 완벽하게 막아줄 거라고 착각했나 본데, 그건 다 지금 순간을 위한 페이크였다고. 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몸을 던져 린쨩을 지켜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라크네의 공격을 허락했다.

“히나! 힐, 힐!”

“아! 네에! 아, 알겠어요!”

“야, 그걸 피하면… 허억, 적어도 말을 하고… 크윽…”

“요스케! 피, 피가…! 히나! 빨리!”

“하, 하고 있어요!”

거기다 자연스럽게 시우스케의 잘못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이 정도 했으면 주인공의 호감도가 떨어졌겠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이보다 나을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작전이었다.

­서걱

­끼에에에…

­……

­투욱

“괜찮아, 형? 미안! 하지만 형 말대로 딜 찬스를 놓칠 순 없었어.”

“대박! 지금 한 방에 죽인 거야?!”

“역시 쇼스케 군이네요. 하아, 덕분에 살았어요.”

그래, 완벽한 작전이었는데… 역시나 주인공은 주인공이었다.

***

솔직히 이건 좀 억울하다.

구해준 건 난데, 왜 칭찬받는 건 시우스케냐. 오랜만에 느끼는 외모지상주의에 속에서 부아가 끓어올랐다. 얘들아, 너네 쟤 때문에 죽을 뻔했어. 나 아니었으면 너네 다 죽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말해 줘도 쟤들은 못 알아먹겠지.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 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오타쿠 안여돼의 페널티가 강해도 너무 강하잖아. 설마 이것도 통하지 않을 줄이야…

억울해서 그런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러다가 스트레스로 내가 먼저 쓰러지는 거 아냐? 안그래도 고체중 고혈압이라 위험한 상태라고. 역시나 특별 과제, 여러모로 쉽지가 않았다.

“어… 어어어?! 잠깐만 요스케! 피! 아직도 흐르고 있잖아!”

“으응? 어, 어라?”

아니 근데 이건 또 뭐야, 억울해서 어지러운 게 아니었잖아.

아프지도 않은 상처라 까먹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힐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궁금해서 관측을 사용해 보니, 놀랍게도 아라크네의 저주에 걸린 상태였다.

[아라크네의 저주: 치유 효과를 부정한다.]

이건… 완전 대박인데? 이거 하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잖아. 저주의 효과를 보는 순간, 한 가지 아주 그럴듯한 계획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이상해요! 분명 힐은 썼는데…”

“그건 우리도 알아. 하지만 이상하잖아! 호, 혹시… 중독된 거 아냐?”

“하지만 제 힐엔 상태 이상 치료 효과도 있단 말이예요.”

“쿨럭쿨럭… 크윽, 아… 제, 젠장.”

“형?! 잠깐만, 지금 설마 심각한 거야?”

“으응…”

그래, 동생아. 완전 심각하게 좋은 상황이란다.

우리 파티, 아직 저주 대비는 제대로 안되어 있잖아. 이거 잘만 활용하면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다. 아무리 오타쿠 안여돼래도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 아냐.

나는 억지로 기를 역류시켜 피를 토한 다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힘없이 비틀거린 후 마치 죽어 가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히나 양. 혹시 해, 해주 스킬도 가지고 있어?”

“아니요, 해주 스킬은 아직… 서, 설마! 저주에 걸린 거예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이거 좀, 쿨럭… 아프네. 치유를 막고 상처를 악화시키는 저주 같아. 처음엔 참을 만했는데, 아윽… 그래서 방심해 버렸어.”

“형… 거짓말이지?”

“싫어… 요스케, 장… 장난치지마!”

그래, 이거지. 바로 이거라고.

기세를 탄 나는 다시 한 번 피를 토한 다음 지혈하는 척 상처를 헤집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모두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돌아갈 때까지 못 버틸 거 같아… 미안.”

“아, 아니야! 버틸 수 있어! 아직 포션도 많잖아. 성녀님이 올 때까지만 참아! 이렇게 죽을 순 없잖아!”

“히, 힐을 계속 써드릴게요! 아, 아아… 안 돼. 포기하지 마세요!”

“싫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요스케… 진짜로 죽는 거야? 아, 아니야. 요스케가 죽을 리 없잖아!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줘!”

“미안… 괜히 나 때문에 안 좋은 기억만 가지겠네. 쿨럭, 하아… 미안해.”

“요스케! 그런 말 하지 마!”

캬, 이거 반응 좋은데?

후회, 피폐, 집착 장르가 왜 그렇게 유행하는 지, 이제야 알 거 같다. 그렇게 츤츤거리던 린쨩이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이거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죽는 모습까지 보여 주고 싶은걸?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기분이다.

“형! 진짜 이대로 끝이야…? 아, 아니잖아!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 아냐!”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네토리. 힘들어 보였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 걸음인가?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피를 삼킨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아, 하나 있기는 해.”

“그래! 역시 있잖아! 괜히 사람 걱정시키고 있어. 뭔데! 빨리 방법을 말해 줘!”

“있기는 한데… 크윽, 하아… 이건 말 못해.”

“요스케, 이 멍청아! 지금 말 안하면 언제 말하게! 빨리 말하란 말야!”

“맞아요, 요스케 님! 빨리 말씀해 주세요!”

“하아… 그건…”

타이밍이 온 것을 느낀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이게…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하거든.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내쉰 다음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건, 바로…”

그리고 체념한 듯이, 정말 내 의지가 아니란 듯이, 진짜로 이것만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듯이…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듯한 목소리로, 자그맣게 말을 내뱉었다.

“처녀랑 섹스를 하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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