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태극음양지체(48)
* * *
“좋은 아침이에요, 백 대협.”
“……좋은 아침입니다, 남궁 소저.”
“잘 부탁드릴게요, 오늘.”
“……”
“백 대협?”
“아,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걸 대비효과라고 하나? 맨날 수수한 옷차림으로 땀 흘리는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화사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아니, 거기서 더 예뻐질 수 있는 거였어?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지만, 이건 좀 죄질이 무거웠다. 그 얼굴로 반머리는 반칙이잖아. 거기다 어떤 수작을 부린 건지 머리에 웨이브까지 넣었는데, 그 덕분에 보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거, 이러다가 내가 공략당하게 생겼는데?
나는 최대한 침착을 가장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를 안내했다.
“그러면, 가 보실까요?”
“잠깐만요. 가기 전에 물어 볼 게 있는데, 오늘 저 어때요?”
그런데 남궁빈은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지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했다. 얼굴만 보면 전혀 긴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거…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도움을 받아 조금 꾸며봤는데, 괜찮을까요?”
“어… 네에. 그… 굉장히 어울립니다.”
“그게 끝?”
“그러니까…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마치 구천현녀를 보는 것 같군요.”
“……비유를 들어도 구천현녀로 드시다니, 역시 은아 소저의 말씀대로네요.”
“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보다 우리 출발 안 해요?”
이것 봐. 왜 이렇게 여유로운 거야. 칭찬을 해 줘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는다. 무림인한테 구천현녀면 좋은 말 아닌가? 그렇게 극찬을 해줬음에도 포커 페이스다.
아니 얘 분명 자기 인생 첫 번째 데이트일 텐데, 떨리지도 않나?
너무나도 익숙해 보이는 남궁빈을 보자 오히려 내가 불안해졌다. 이러다가 진짜 공략에 실패하는 거 아냐? 당황한 나는 조급한 마음을 숨기고자 말도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어머, 백 대협?”
“하하. 오늘 하루, 연인처럼 보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후후, 그랬죠.”
“자, 더 늦기 전에 출발하시지요.”
그러자… 남궁빈이 손깍지를 끼며 내게 호응했다.
***
뭐지 이건…
“와아… 하북성에 이런 호수가 있었군요. 이런 절경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어머, 어깨를… 고마워요, 저를 감싸주셨군요.”
“그래요? 어, 어울린다고요? 그렇구나… 이런 옷은 처음 입어봐요.”
“맛있어… 고급 객잔에선 이런 음식을 파는 군요. 몰랐어요.”
이 묘한 기분은 뭐지?
“술은… 딸꾹, 헤헤… 처음 마셔 봐요.”
걱정과 달리 데이트는 순조로웠다. 하루만에 호감도도 많이 올렸고 이렇게 어깨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신뢰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모든 게 계획대로였고 공략도 목표만큼…
“백 대협, 아니… 백 가가라고 불러도 될까요? 가가 덕분에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딸꾹, 죽을 때까지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잠깐, 공략? 내가 오늘 공략이라고 부를만 한 것을 하기는 했나?
데이트를 시작할 때 손을 잡기는 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뭐라도 있었나?
호수에서 스스로 내 품에 안긴 것은 남궁빈이다. 사람이 많다며 내 안으로 파고든 것도 남궁빈이다. 옷을 갈아입고 내게 애교를 부린 것도 남궁빈이다. 젓가락으로 내게 요리를 먹인 것도 남궁빈이다.
뭐야… 공략을 하기는 개뿔, 오히려 내가 당했었잖아.
그녀의 얼굴에 빠져, 냄새에 취해, 목소리에 갇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녀와의 데이트를 즐겼었다.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거 완전 홀린 거잖아.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소름이 돋았다.
“가가, 저거 봐요… 호수에, 달이 떴어요. 헤헤, 달이 참 아름답네요…”
그러고 보면 호수가 보이는 객잔, 그것도 5층에 앉아,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 술을 마시게 된 것도 모두 다 남궁빈이 졸라서였다. 경치 좋은 곳이 있으니 제발 함께 가 달라는, 그녀의 귀여운 앙탈 때문에 말이다.
돌겠네…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자, 허벅지에서 작고 말랑한 다섯 개의 감촉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꼼짝도 못하고 있자, 그 부드러운 것들이 요망한 움직임으로 내 허벅지를 희롱하더니 점점 안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가… 응? 참 예쁘지 않아요?”
“남궁 소저…?”
“빈이라고, 불러 주세요… 안 그러면… 에잇.”
“잠깐…”
“후후, 늦었어요. 그러니 여기는 이제… 어… 어라?”
그리고 마침내 목표했던 곳에 도착해 자신의 다섯 막대로 내 무언가를 어루만졌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 존재를 느꼈고, 다음에는 힘을 주어 그 물건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자세를 바꾸어, 요염한 손놀림으로 내 자지를 쓰다듬었다. 덕분에 가랑이가 부풀어 오르자, 그녀의 입에서 귀여운 탄성이 나왔다.
“어머..! 가가!”
아니 진짜 미쳤네.
얘가 왜 이러는 거야?
“하아… 가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몸이 뜨거워요.”
싫지는 않았지만, 아니 솔직히 좋았지만, 꼴렸지만, 당하고만 있으니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그녀에게 함락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미 함락당한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바지 안을 파고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장난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짜증나게도 그게 싫지 않았다.
자지를 애무당하는,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했다.
“남궁 소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허나 자존심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집중해 그녀에게 소리쳤다. 농락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나는 만지는 쪽이지 만져지는 쪽은 아니라고.
“어, 어라… 이게 아닌가? 맞는데… 딸꾹, 후으… 아, 순서가 틀렸나?”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완전 음탕한 암컷이더니, 지금은 내가 알던 남궁빈… 이었다가, 다시 또 바뀌었네?
“몸이 뜨거워요, 가가… 하아, 이것 보세요… 온몸에 땀이… 하앙…”
슬쩍 옷을 풀어헤치더니 어깨를 드러내놓고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살며시 가슴을 내밀어 자신의 가슴골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몸을 비틀어 노출의 수위를 높인다. 순식간의 반라의 암컷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에 아랫도리가 빳빳해졌다.
“이대로는 집에 못 돌아갈 거 같은데… 우리 자고 갈래요?”
“…소저.”
“그리고 이거 비밀인데, 저 오늘 안전한 날이에요…”
그 암컷이 내게 기대 속삭였다. 끈적이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녀의 손이 다시 내 자지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드디어 알게 되었다.
“혜매랑 은아 아가씨가 시켰죠?”
“딸꾹…”
“사실대로 딱 말하세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남궁빈이 지금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