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태극음양지체(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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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모습으로 근친충을 제압한다.
> 검에 미친 소검귀가 나에게 흥미를 가진다.
> 그녀와의 비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검에 미친 소검귀가 나에게 더 많은 흥미를 가진다.
> 가르침을 주겠다며 작업을 건다.
…라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첫 번째 비무부터 모든 게 망가졌다. 아니 진짜 뭐냐고. 진 히로인 아니라 진 주인공이었어? 분명 장인어른과 비무를 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강하진 않았었는데, 며칠만에 사람이 달라졌다. 덕분에 사흘 내내 얻어 터졌고 말이다.
“잠깐잠깐, 휴식! 우리 조금만 쉬고 합시다.”
이대로라면 공략도 실패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작전을 바꾸는 게 좋아 보였다. 이렇게 계속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줄 순 없잖아. 이러다간 있던 호감도도 다 깎아먹게 생겼다.
“제발 조금만 쉬자고요, 네?”
그러니 지금처럼 비무만 하기보단, 다른 방법으로 내 장점을 어필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보여주지?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부 다 섹스랑 관련된 장점들이라 어필하기가 힘들었다. 다짜고짜 바지를 벗어서 자지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차라리 노릴 거면 남궁빈의 약점을 공략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주인공 못지 않게 완벽해 보이는 진 히로인이지만, 사람인 이상 약점이 없지는 않을 거 아냐.
잘 찾아보면 어떻게든 파고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제갈연화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남궁빈이 외롭다라며 잠꼬대를 했었다고. 그때는 그냥 귀여운 면도 있네 하고 웃어 넘겼었는데, 이거 의외로 공략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제넘은 참견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인지 남궁 소저의 검에서 외로움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겁니까?”
저렇게 검밖에 모르는 여자가 외로움을 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 무슨 짓을 하든 계속 얻어 맞는 것보단 나을 거다.
“제가 또 외로움을 모르는 남자라, 남궁 소저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꺼내본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슬그머니 진 히로인에게 미끼를 던졌다.
***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백 대협,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나요?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가 되는 게 두렵지 않나요? 당신 역시 저와 동류잖아요.”
…그런가? 우리가 동류였어?
진 히로인이 미끼를 물기는 했는데, 뭔가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외로움, 그런 주제가 나올 줄 알았다고. 그런데 정작 남궁빈이 꺼낸 건, 완전 예상밖의 이야기였다.
이게 그러니까… 절대자의 고독, 뭐 이런 거잖아. 초고교급 천재라서 느끼는 외로움이라니, 범재조차 되지 못하는 나로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군요. 확실히 남궁 소저와 저는 동류지요.”
뭐? 절대자라서 외롭다고? 개소리지.
네 뇌는 검으로 되어 있냐? 당대 천하제일인인 검왕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생각하는 게 너무 일차원적이었다. 세상에는 검 쓰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기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략 난이도가 쉬워 보였다. 이 정도면 일주일 안에 가능하겠는데? 조금 고생은 하겠지만 위지 자매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남궁빈은 머지 않아서 나의 첩을 자처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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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저 역시 같은 고민을 했었기에, 남궁 소저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지요.”
“맞아요… 무척 아프고 슬픈 일이에요.”
“허나 굳이 이해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네?”
“이해받지 못했다고 아파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남자의 말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 고통을 그냥 무시하라는 거야? 상담을 해 준다고 했으면서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내뱉다니…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에, 꼭 이해가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사랑… 이요?”
그런데… 역시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남자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닌 듯 했다. 다만 사랑이라니, 예상밖의 이야기에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그렇습니다. 사랑. 저는 혜매를 만나 그 외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혜매는 저라는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해 주었거든요.”
“그 자체를…”
“그래서 저는 그녀 덕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 있어 검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남궁 대협이나 남궁 소저처럼 강한 상대와 맞붙는 건 즐거운 일이지요. 하지만 세상엔 그보다 즐거운 일도 많습니다. 그러니 굳이 내게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으려고 아파하지 마세요.”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검술에 너무 심취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재능이 하늘을 찌른다 해서, 그것이 평생동안 혼자 외로워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천하제일인이 된 당신의 곁을 지켜줄 거 아닙니까.”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은 남자에게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평생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저주가 사라진 기분이다. 나…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허나,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대적자와 이해자가 없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정말로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까? 의미만 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감정이라… 도무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한 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네?”
“사흘 후에 함께 데이, 가 아니라 나들이라도 가시지요. 짧게나마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연인이란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나들이요?”
그런데 남자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나를 위해 조금은 곤혹스러운… 그리고 그러면서도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제안을 해 주었다.
나들이라… 연인들이 하는 나들이를 말하는 거겠지? 확실히, 한 번이라도 경험만 해 본다면,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해결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비무 중에 느낀 그 감정이 걸렸다. 이 남자… 분명 나를 원하고 있었단 말야.
“대신에 혹시 모르니까 미리 혜매랑 은아 아가씨에게 허락을 받아 주세요. 제가 말했다간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렇네요. 네, 알겠어요.”
“하하. 그럼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사흘 후에 봅시다.”
“네? 나들이는 나들이고 비무는 계속 해야죠. 저 같이 강한 상대랑 맞붙는 게 즐겁다면서요.”
“그, 그건 그렇지만… 나들이를 위한 준비를, 그… 해야 해서 말입니다.”
“아… 그렇구나. 네, 그러면 사흘 후에 뵐게요.”
아니, 그래도 억측하지는 말자. 좋아하는 비무를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주려고 하고 있잖아. 나를 원하는 건 대련 상대로서 원하는 거겠지. 지친 몸으로 상담까지 해 준 사람에게 못난 의심을 하고 말았다.
바보 같으니…
자신을 혼낸 나는 방으로 돌아가면서 사흘 후에 있을 나들이를 상상했다. 과연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사랑이란 게 뭐지.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어.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도 모르는 내가 이번 나들이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아, 두 자매에게 도움을 청해야 겠구나…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이 나를 감싸 주었다. 그래,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그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부끄러움 쯤은 이겨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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