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 태극음양지체(45)
* * *
화살비처럼 쏟아지는 놈의 검기를 맞아주는 대신, 앞으로 한 발 내딛으며 우직하게 검을 휘두른다. 이게 바로 제왕검형의 본질.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
“끄아아아악!”
그 결과, 눈부시게 빛나는 검강(??)이 공기를 가르며 놈에게 날아갔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두 번째 시도만에 말이다.
진짜 ‘세이브&로드’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100만 포인트가 아깝지 않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템빨이 최고라니깐. 남궁진도 충분히 강한 상대였지만, 시간을 돌린 나를 이길 순 없었다.
“크으윽, 제길…”
털썩
이걸로 3전 1승 1무 1패. 그야말로 자강두천(?二?)이다.
하지만 원래 단소승자(???者)라고,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 그러니 공식 룰에 의거해서, 놈과의 비무는 나의 승리라고 보는 게 맞았다.
***
그런데… 이게 진짜 맞는 건가?
“정말 안타깝군. 자네와 몇 번 더 겨뤄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쉽게 되었어.”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것도 지금 바로?”
“어쩔 수 없다네. 맹주님의 부름일세. 아무래도 마교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야.”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네.”
“복수전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그럼 이만.”
야, 네가 도망치면 어떡해.
이러면 네토리 등급을 못 올리잖아.
비무에서도 이겼겠다, 이제 진 히로인만 공략하면 되는데, 그걸 보고 고통받아야 할 시우검이 떠나가야 한단다. 이건 진짜 너무 하잖아. 남궁빈이 함락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이거 시작도 하기 전에 계획이 꼬여 버렸다.
“오라버니, 어머니께 안부 전해 주세요.”
그나마 남궁빈은 위지세가에 남아서 다행이지, 자칫했으면 공략 자체도 시도하지 못할 뻔했다.
“그래, 빈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즐길만큼 즐긴 다음에 연락하렴.”
근데 좀 웃기긴 하네. 근친충, 너 괜찮은 거야?
나는 당연히 억지를 부려서라도 여동생을 데리고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고. 그만큼 여동생을 신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장담하건데 네가 다시 여동생을 만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후일 거다.
“저기… 백 대협, 잠시 저기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도요. 저도 할 말이 있는데…”
문제는 이 두 명의 서브 히로인들인데… 곁에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따라가야 할 이유 역시 마찬가지고 말야.
“…그러니 두 분은 그 녀석과 함께 돌아가서 무림맹의 상황을 파악해 놓으세요.”
“주인님, 주인님도 함께 가시면 안 되나요? 제가 제 친구들도 소개시켜 드릴게요. 다들 기쁜 마음으로 주인님의 노예가 되어줄 거예요!”
“제갈세가에도 먹고 버릴 수 있는 친척들이 많답니다. 어떠신가요, 주인님. 머리만 좋은 처녀들을 얼마든지 따먹을 수 있어요. 아무 책임도 없이요.”
유혹하는 내용들이 제법 끌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소탐대실(小?大?)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어차피 제 실력이 드러난 이상, 저 역시 무림맹에 합류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 두 분은 제가 가기 전에 미리 무림맹의 정보를 모아 두세요. 물론 그 녀석의 정보도 함께요. 이번에는 더 도움이 되는 쪽에게 질내사정 열 번을 약속하겠습니다.”
“질내사정…”
“…열 번.”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그리고 어차피 너희들이 원하는 건 내 자지잖아. 그러니 괜히 경쟁자 늘리지 말고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그렇게 설득을 마친 나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을 무림맹으로 돌려 보냈다.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진 히로인 공략을 시작해 볼까?
이제부터 재미난 시간이 펼쳐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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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진짜 아니지.
“어서 일어나세요. 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하루는 열 두 시진밖에 안 되잖아요.”
어떻게 사흘 내내 비무만 할 수 있어. 그리고 어떻게 된 게 근친충보다 강한 거냐고. 이거 이러다가 공략도 하기 전에 골병나서 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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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든가, 상대방이 숨기고 있는 실력이라든가, 상대방이 감추고 있는 본성이라든가 말이다.
“잠깐잠깐, 휴식! 우리 조금만 쉬고 합시다.”
그런데… 이런 걸 알게 될 거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이 남자
나를 원하고 있잖아.
속임수 하나 없이 올곧은 검로로, 허세조차 없는 솔직한 검술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나라는 존재를 갈구하고 있다. 소름돋을 정도로 말이다. 이 남자… 이미 혼약을 약속한 연인이 두 명이나 있지 않아?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 하고 나를 탐하는 거야?
채애앵
채앵!
“제발 조금만 쉬자고요, 네?”
아니, 미묘하긴 한데…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건 연정이 아니야. 그렇다기보단 집착? 나를 필요로 하고 있어. 사랑을 주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를 갈망하고 있어. 마치 내가 오라버니에게 그랬듯이…
그래, 그때의 나처럼 말야.
그렇다면 지금 당신… 외로워하고 있는 거야? 진심으로 검을 맞댈 사람이 없어서?
채앵, 채챙!
“으읏, 쉽지가 않네 정말.”
좋아, 그러면 어울려 줄게. 대신 멈추지 말고 성장해 줘. 이 행복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길게 즐기고 싶단 말야. 당신이 지금 그러하듯, 나 역시 지금의 비무를 애정하고 있단 말야. 짧게 끝내고 싶지는 않아.
더 더 많이
더 더 뜨겁게
더 더 열정적으로
온 몸에 힘이 다할 때까지 나와 같은 마음으로 검을 섞어 줘. 그렇다면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나를 줄게. 당신에게 요구받는 거, 그렇게 싫진 않거든.
“몸은 다 푼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할게요.”
“네에? 아니 잠깐, 악, 아악!”
채채챙, 채앵!
그러니 있는 힘껏 내게 찔러 줘. 당신의 모든 것을 내게 보여 줘. 끝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아버지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야?
“진짜, 그만! 타임!”
“응? 타인(?人) 말씀이신가요?”
“어… 그게… 그렇습니다, 타인! 타인을 죽일 생각이십니까? 무리하는 바람에 혈도의 내공이 꼬였단 말입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제 좀 제대로 즐기려고 했는데, 아쉬움이 크네요. 제자리 걸음은 아니지만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려요.”
“하하, 그래도 남자가 너무 빠른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확실히 너무 빠를 경우 기초가 부실할 수도 있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막간의 농이었는데… 크흠, 그건 됐고. 그…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 말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괜찮을까요?”
“네, 얼마든지요.”
“주제넘은 참견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인지 남궁 소저의 검에서 외로움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겁니까?”
“…네?”
“제가 또 외로움을 모르는 남자라, 남궁 소저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꺼내본 말입니다. 하하하.”
“……뭐라고요?”
외롭지 않다고 웃으며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선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모르겠어. 이 남자의 진심은 뭐지?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분명 이 남자가 나와의 비무를 즐긴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나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 역시 실례였군요.”
“아니요. 정확해요. 고민 상담이라니… 제게 필요하던 거였어요.”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의 저의가 뭐냐고.
이 남자는 오라버니와 다르게 속내를 숨길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줄 거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를 따라 그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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