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태극음양지체(44)
* * *
처음으로 검을 손에 쥐었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평생 혼자서 외로워할 운명이라고. 아직 외롭다는 게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 앞에서, 아버지께선 그렇게 한탄하셨다.
‘지, 지금, 대체 무엇을!’
‘하하하… 더 가르쳐 드릴 게 없군요.’
‘싫어어어! 너랑 안 놀 거야!’
그리고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경악, 분노, 시기, 질투… 친절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꺼져! 어차피 속으로 날 비웃고 있을 거 아냐!’
그렇지 않아. 비웃지 않았어.
‘죄송하지만 다른 곳에 가 주시겠습니까? 다들 불편해해서 말입니다.’
불편하게 만들 생각도 없었어.
‘…벌써부터 검기를 만드는 너와 어떻게 비무를 하냐. 기만하는 거야?’
기만이라니, 나는 그런 적 없어.
하지만…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줄 생각도 안 했지. 처음 느낀 외로움이란 감정은, 지독하게 괴로웠고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이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거야?
‘하하, 빈이구나. 아버지께선 잘 지내시니?’
그게 두려웠던 나는 처음 만난 희망에 매달렸다.
***
폐관수련을 끝낸 오라버니는 여전히 나태해 보였지만, 흔쾌히 어린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내게 벽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면서 나의 이상향이 되어 주었다.
온 힘을 다해도 이길 수 없고, 안간힘을 써도 뚫을 수 없다. 그야말로 완벽.
오라버니 덕분에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난 나는 진심으로 검을 즐길 수 있었다. 뭐야 아버지의 말씀이 틀렸잖아, 라며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이다.
‘하아… 제법인데? 오늘은 꽤 훌륭했어. 이 정도면 금방 나를 따라잡겠는걸?’
어째서 벌써 그만두려는 거야?
‘으음, 여기까지. 이 이상하면 우리 둘 다 위험하겠어.’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좋은 승부였어. 이제 방심하면 내가 질 수도 있겠는데? 역시 내 동생이라니깐.’
거짓말. 방심 따윈 안 했잖아.
하지만 고작 3년이 흐르기도 전에, 나는 오라버니 역시 남들과 다를 것 없는 범인(凡人)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내 눈치를 보고, 이런저런 말로 승부를 피하는 오라버니.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다시 외로워질 거라는 사실 역시 알아차렸다.
‘좋은 승부였어요. 저는 아직 많이 멀었네요.’
그래서 나는 내 재능을, 실력을, 기량을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하하하. 그래도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많이 늘었어.’
‘눈앞에 좋은 목표가 있으니까 그렇죠.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오라버니.’
오라버니마저 나를 떠나가 버리면 나는 평생 혼자가 되는 거잖아. 그건 싫어. 아버지의 웃기지도 않은 예언처럼 살고 싶진 않아. 검이 좋고 비무가 즐겁지만, 그렇다고 외로워지고 싶은 건 아니야.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단 말야.
그러자 웃기게도 내 주변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뭐야, 그냥 평범한 후기지수 중 하나였잖아.’
‘평범이라기엔 너무 강하지 않아? 우리 또래 중에 쟤를 이길 수 있는 애는 남궁진뿐이잖아.’
‘그래도 어른들을 이기진 못 하잖아. 괜히 쫄았었네. 그냥 성장이 빨랐던 건가 봐.’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재능, 부러워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 가까이하고 싶을 만큼의 기량,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여전히 시기와 질투를 받았지만 그 정도는 미미했고,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핏줄을 찬양했다.
‘빈아, 저치들이 말하는 건 그냥 무시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야.’
‘아하하… 그럴게요.’
허나 그 덕분에 내 마음이 공허해졌다.
계속 이렇게 나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외롭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게 옳은 걸까?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나는 갈피를 잃고 방황했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검을 쥐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비무를 신청했고, 오만하게도 그들을 시험했다. 소검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까지, 나는 새 이상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발버둥쳐 봤자 네 운명을 벗어나진 못 해. 그게 천하제일인의 숙명이다.’
결국 아버지의 말처럼 혼자서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오라버니 밑에 숨어야 하는 걸까? 미숙하고 미련한 나는 정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오라버니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때로, 목표가 있고 비무고 즐겁고 사는 게 행복했던 그때로, 나는 자신을 지운 채 과거로 도망쳤다.
‘왜 뒤로 물러난 겁니까.’
‘남궁 소저,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지려고 했던 겁니까.’
허나 그 남자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을 되찾고 말았다.
***
차라리 계속 잊고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백이라는 사내가 아주 몹쓸 짓을 했다. 오라버니조차 이기지 못했던 주제에 말이다.
그의 말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면, 그래서 월야검 어르신을 베었다면… 아니, 생각하지 않을래.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복수는 해 줘야겠지.
이번 비무가 끝나자마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앞에서 읊어 줄 거다. …라니,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야. 유치해. 정신을 차린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머릿속이 어지럽다.
이래서야 비무를 제대로 볼 수 있겠…
콰가가가강
콰아앙!
나쁘지 않잖아?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수련을 한 거야? 여전히 허점투성이지만 검로가 날카로운 게 상당히 흥미롭다. 거기다 오라버니를 읽고 있다는 듯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지난 비무에서 숨기고 있던 걸 지금 보여주는 걸까? 수비 후 역습을 가하던 지난 번과는 달리 시작부터 공세를 취하는 게 어째서인지 낯이 익다. 저 모습은 마치 오라버니… 오라버니? 그러고 보니까 오라버니의 검로와 닮았잖아.
채애애앵!
채앵, 챙, 챙, 챙, 채채채채챙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흘러 내리는 검기에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몰아치며 반격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붙여진 별호, 시우검(?雨?). 허나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오라버니가 아니라 백이라는 사내다.
과연, 그래서 수비 위주로 운영을 했던 건가? 남의 검술을 빼앗다니, 악취미다.
허나 저 정도에 당할 오라버니가 아니다. 자신의 검술이기에 더욱 더 잘 알고 있는 약점. 그것을 파고든다면 단숨에 기세를 가져올 거다. 이거, 실망인데? 흉내쟁이였다니. 기대하지 말 걸 그랬다.
물론 이렇게 얕볼 재능은 아니지만 남을 흉내내는 정도로는 오라버니를 이길 수 없……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지.
콰아아아앙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긴, 비무 짓이다.”
“어째서 자네가 남궁세가의 검법을 쓰는 거지?”
“아까 그거? 미안한데 너네 검법 아니거든? 내가 새로 만든 검법이야. 황제검형(????)이라고. 어때, 제법 쓸만하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검법이라는 걸 알려줘야 겠군.”
오라버니가 제왕검형을 보여준 건 오직 단 한 수, 그걸 보고 그때의 일격을 재현했다고? 어이가 없는 재능이다. 이건 나라고 해도 쉽지가 않을…
콰아앙
쾅, 콰아앙!
“따라하는 게 아니래도 그러네. 내가 만든 검법이라니깐?”
아니, 2식과 3식까지? 이건 오라버니가 보여준 적도 없는… 설마 내 비무를 보고 따라한 거야? 직접 검을 맞댄 것도 아니잖아. 눈으로 구경한 게 전부면서,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을 따라했다고?
물론 심법을 알지는 못 할 테니 겉모습만 흉내내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제왕검형 못지 않은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훈수를 할 정도의 재능은 된다는 건가. 저 정도면 거의 오라버니와 대등한 수준이다.
“이거 방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 버렸군.”
“그래, 그게 네 약점 중 하나더라고.”
“…무슨 의미지?”
“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됐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붙어 보자고.”
“좋아, 이제부턴 조심해야 할 걸세.”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아니, 대등하거나 그 이상
아니, 애초에 재능이 달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검을 맞대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비무 중에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야? 진심으로 제왕검형을 펼치는 오라버니를 한 치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은 채 압도하고 있다.
저걸 보니… 오라버니와의 비무가 생각나잖아.
제왕검형이면서 지나치게 상냥하고 그렇기에 유약한, 스스로 검을 내리는 비겁자.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공격을 멈추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항복하는 멍청이. 허나 지금은 그때처럼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니다. 서로를 위한 배려 따윈 없고 자신을 숨기려는 바보도 없다. 이기기 위해 발버둥치는 두 명의 무인만이 있을 뿐이다.
아아, 부러워. 나도… 이런 비무를 하고 싶었어.
나도… 진심을 다해서 오라버니와 겨뤄보고 싶었어.
언젠가부터 달라진 오라버니의 시선, 언젠가부터 시작된 오라버니의 간섭, 언젠가부터 느끼게 된 오라버니의 감정,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도, 진심으로 오라버니를 상대하고 싶었어.
그리고… 지금은 그 이상으로 저 사내와 검을 맞대고 싶어.
저 사내가 과연 내 모든 것을 따라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내 경지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과 달리 내 곁에서 나의 적수가 되어 줄까? 궁금해. 알고 싶어. 그렇기에 붙어보고 싶어.
그러니 빨리 오라버니 정도는 이겨줬으면 좋겠어. 어서 지금보다 더 강해져. 내가 진심을 낼 수 있게 강해지라고.
뭐하는 거야. 저 정도 공격 정도는 맞아줘. 제왕검형이잖아. 물러나지 마. 그래, 당당하고도 패기로운 모습으로, 오만하고도 교만하게 공세를 취하란 말야. 멈추지 마. 쉬지 마. 제왕의 품격을 보여 줘.
그것 가지곤 안 돼. 아직도 많이 부족해. 하지만 충분히 할 수 있어. 더, 더 많이 강해질 수 있어. 그러니 거기서 한 발 더 내딛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지만, 그래봤자 쥐잖아. 위기에 몰린 상대가 역공을 펼친다 해도 겁먹지 마. 당연하다는 듯이 오히려 한 발 내딛어.
그러면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끄아아아악!”
검강(??)이 길을 열어줄 테니까.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아아, 지금 당장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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