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태극음양지체(31)
* * *
“이건… 놀랍네요. 제 예상이 빗나가다니.”
“흥, 세상이 다 네 생각대로 돌아가는 줄 알아?”
채앵!
챙!
“확실히… 세상은 넓고, 배울 것도 많군요. 지식이 늘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곧바로 수긍해 버리면 내가 뭐가 되냐…”
타다다닥
챙!
채앵, 챙!
“그만. 집중하시지요. 무인으로서 배울 게 많은 비무입니다.”
“그, 그래…”
제갈연화와 당소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한 비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당연히 남궁진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며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허나, 실상은 그와 달랐고, 백이라는 사내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허무하게 밀리나 싶었지만 이내 곧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약하게나마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전히 남궁진이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무가 그리 빨리 끝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백이라는 자의 저력이 상당했다.
“강하네요. 저분.”
“그러게… 가, 아니라. 야. 검에서 손 떼. 뭐하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래서일까? 무표정하게 비무를 바라보던 남궁빈의 표정이 바뀌었다. 처음 비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생기가 없어 보였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마치 새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후후, 걱정 마세요. 상대가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이가 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이 표정을 보세요. 웃고 있잖아요.”
“…걱정? 제가요?”
“야. 내가 그이라는 말, 쓰지 말라고 했지? 독살당하고 싶냐? 그리고 너, 진짜 얘에 대해서 아는 게 없구나? 걱정이라니, 참 나. 이게 걱정하는 얼굴로 보여?”
“아, 아닌가요? 실례했어요. 흐흠…”
당소연의 말대로였다. 걱정이라니, 남궁빈은 태어나서 한 번도 남궁진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곳에서 완벽한 그의 오라비를, 대체 무슨 이유로 걱정하란 말인가. 걱정이란 것은 남궁진에게 향할 수 없는 단어였다.
남궁빈은 그 대신 기대를 하고 있었다. 비무 중에 성장하는 무인이라니, 과연 자신을 상대할 때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 당장 저 사내와 칼을 맞대고 싶었다.
카가가각
채앵!
‘이 놈… 입만 산 놈이 아니었군. 점점 내 검에 익숙해지고 있어. 하, 이제는 반격까지 하는 거냐? 과연, 월야검이 인정한 사내다워.”
같은 이유로 남궁진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처리를 하고 비무를 끝내려고 했건만, 놈의 반항이 예상외로 끈질겼다. 백이라는 놈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남궁진은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적수를 만난 느낌이었다.
결국, 남궁진은 인정해야만 했다.
여전히 자신보다 약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놈이다. 그렇게 판단한 남궁진은 검을 강하게 내려친 다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 비무에서 처음으로 제왕검형의 초식을 펼쳤다.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비무에선 이겨야 할 거 아닌가.
동생도 보고 있는데.
솨아아아악!
남궁진의 검에서 금빛의 화려한 검기가 백에게 쏟아졌다.
촤아아아악!
허나, 그 검기가 백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놈은 제왕검형에 맞서 처음 보는 푸른 검기를 쏘아 냈고, 두 검기는 서로 부딪혀 쾅 하는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마치 벽력탄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연무장을 부서뜨렸다.
고작 두 사람이서 만들어 낸 전투의 흔적이었다.
***
“허어… 두 사람 다 괜찮은가?”
“멀쩡… 허억, 합니다, 장인어른… 허억.”
“하하하. 괜찮습니다, 어르신.”
남궁진은 태연을 가장했지만, 남궁빈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백을 쳐다보았다. 푸른 빛의 검기라니, 설마 저 남자가 제왕검형에 맞먹는 검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남궁빈은 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나도 저 남자랑 하고 싶어!’
단순히 한 번 붙는 걸로는 부족했다. 남자는 푸른 검기 말고도 숨기고 있는 게 많아 보였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미였다. 남궁빈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자신의 검을 쥔 손을 달싹였다.
“그 말은 둘 다 여기서 더 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물론이지요, 후우… 아직 쌩쌩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제갈연화와 당소연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소근거리면서 남궁진을 바라봤다가 백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다시 중얼거리더니 이번에는 활짝 웃고 있는 위지 자매를 흘겨보았다.
“흐음, 둘의 생각은 알겠다만… 여기 꼴을 보게. 여기서 더 싸우겠다고? 혹시 위지세가를 무너뜨릴 생각인 겐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씀은?”
“오늘은 그만 무승부로 하고, 다음에 날을 잡는 게 어떻겠는가. 자네들이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곳을 내가 마련해 놓겠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따르겠습니다, 장인어른.”
“하하하.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백과 남궁진의 비무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하지만 위지 세가의 사람들은 백이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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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꽤나 고전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세이브를 해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관측이랑 천무지체 시너지가 미쳤더라고. 나는 칼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검술을 익힐 수 있었다. 마치 무협지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 덕에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나중에 가선 놈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결국 다른 스킬을 사용해 버렸다는 거다. 마지막의 그거는 도저히 못 막을 거 같더라고. 그래서 그만 나도 모르게 ‘푸른 섬광’을 사용하고 말았다.
그래도 뭐… 어쨌거나 검술이니까, 진 히로인도 나쁘게 보진 않았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내가 두 자매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서브 히로인들이 나타나더니, 나보다 먼저 내 여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은아야, 오랜만! 내 얼굴 잊지 않았지?”
“소연아! 보고 싶었어!”
“근데 얘, 너 왜 이렇게 예뻐졌어! 비법이 뭐야!”
그러고 보니 둘이 친구라고 했었지? 반가워하는 은아의 표정을 보자,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친구 앞에서는 저런 얼굴을 하는 구나. 처음 보는 은아의 모습이 되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안녕하신지요. 제갈세가의 연화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위지 소저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어머, 그래요?”
“잠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저 둘은 친구가 아닐 텐데? 혜매가 굉장히 어색해하며 제갈연화를 상대했다. 할 말이라, 대체 뭘까? 그게 궁금해서 내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자, 제갈연화가 나를 의식하더니 혜매를 데리고 저 멀리 가버렸다.
“……”
아니… 칭찬받을 생각에 설렜었는데, 이게 뭐람. 정신을 차려보니 나 혼자였다.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근친충이 자기 동생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하하하. 우리도 얘기 좀 하지.”
이 새끼가… 이제 와서 친한 척이네? 나는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뻔뻔하게 웃고 있는 근친충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얼굴을 진 히로인이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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