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태극음양지체(30)
* * *
“네에? 그놈이랑 비무를 하기로 했다고요? 진짜로요?”
“백랑… 괜찮겠어요?”
두 자매에게 내일의 비무 소식을 들려주자, 혜매와 은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아니, 왜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 못 믿어? 나 천무지체라고. 내가 자신만만하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해주자, 은아가 내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남궁진, 그놈도 천무지체예요. 오라버니.”
“저, 정말입니까?”
“거기다 그놈 남궁세가 사람이잖아요. 영약이라는 영약은 다 챙겨 먹었을걸요? 내공도 장난 아니게 많을 거예요.”
하긴 뭐 걔도 주인공이니까, 그 정도 오버스펙은 가지고 있겠지. 은아의 걱정이 이해가 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여전히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일대일이면 진짜 할 만하다고.
“백랑, 그리고 그 남궁세가잖아요. 검으로는 최고의 무림세가인데,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검법의 수준이 다르다고 들었거든요.”
“맞아맞아. 가주가 그 유명한 검왕(?王)이니 말 다했지.”
“그래서 말인데… 그냥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요? 비무야 당연히 백랑의 승리겠지만,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아…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괜히 비무했다가 다치면 어떡해… 히잉.”
그런데 두 자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뭐야, 걱정한 이유가 그거였어? 다칠까 봐? 이런 사랑스러운 자매들 같으니. 나는 최대한 조심하겠다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을 안아 주었다. 그러자 그녀들이 내 품에 안기며 조심스럽게 내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쁜 몸인데… 검상이라도 생기면 나 눈물나요, 오라버니.”
“맞아요. 백랑의 몸은 백랑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얼굴도 마찬가지예요. 아니지, 얼굴은 특히 더 조심하셔야 해요!”
“그리고 여기도… 남자의 약점이니까, 정말로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알죠? 하아, 자지가 큰 것도 문제네요. 후후.”
“앗, 치사해! 또 언니가 먼저 하는 거야?”
이거 내일이 비무인데… 오늘 밤도 잠 못 자게 생겼다.
***
“그런데 그 소저들은 왜 따라온 걸까요? 그렇게 강해보이진 않던데 말입니다.”
3차 내공 증진을 끝내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던 나는, 두 사람을 쓰다듬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딱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였다.
“츄읏, 하아… 꿀꺽. 후우… 제갈가의 아가씨는 머리가 굉장히 비상하다고 들었어요. 제갈세가답게 진법에도 능하고, 전략전술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거예요.”
흐음, 역시 제갈세가는 제갈세가인 건가.
확실히 삼국지 게임에서도 제갈량 한 명만 있으면 1만 대군도 막을 수 있었지. 학우선을 든 채 우아한 목소리로 진법을 펼치는 제갈연화를 상상하자,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따라와도 인정이지. 어중간한 일류무사들을 무더기로 데려오는 것보단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다.
“하암, 츕… 쮸웁, 하아… 그리고 소연이는 제 친구인데, 키는 작아도 실력은 최고예요. 당가 안에서도 독을 잘 다루기로 유명하거든요. 거기다 기척을 숨기는 것도 잘 해서, 암살을 시도하거나 방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호오, 얼굴만 믿고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었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소연 역시 천재 소리를 듣던 신동 같은데, 그녀에게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사파 놈들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르는 거잖아. 이럴 때 독과 암살에 특화된 당소연이 있다면 굉장히 든든할 거다.
“그러면 남궁 소저는 어떻습니까?”
“으음, 남궁빈은… 남궁진이라는 해에게 가려진 달이랄까요? 헤헤, 대외적으로는 남궁진이 유명하지만, 아는 사람 사이에선 남궁빈도 유명해요. 소검귀(小??)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고요.”
“얘는! 여자 아이한테 검귀가 뭐니.”
“에에… 그치만, 언니도 알잖아. 걔가 검에 미친 거.”
허어, 별호가 소검귀라고? 역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되게 연약해 보였는데, 실상은 검에 미친 여자였다는 거잖아. 이거, 비무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네토리를 할 게 아니었다면 그냥 사기 스킬들을 난사해서 이기는 게 맞았지만, 네토리를 위해서라면 이길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해도 극성으로 익힌 월하검법을 보여 주는 게 옳았다.
그래야지 진 히로인의 관심을 얻을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 햐으읏?!”
"하앙, 오라버니… 헤헤, 내일 비무인데 괜찮겠어요?”
“정말이지… 절륜하시다니까, 후후.”
나는 그렇게 계획을 수정하면서 두 자매의 엉덩이를 주물러 주었다. 내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 조금이라도 비무에서 이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하다못해 10차 내공 증진까지는 가 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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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오로지 남궁진만을 위해 돌아간다.
…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 정도로, 그는 축복받은 사내였다.
남궁진은 천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천무지체로 태어나, 검의 화신이라는 검왕의 가르침을 받았고, 천하제일가인 남궁세가의 지원을 받아, 약관도 채 되기 전에 절정의 벽을 깨부수었다.
모두가 그를 부러워 했다.
허나, 정작 남궁진은 스스로의 삶을 비관했다.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 이상 무엇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문득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남궁진은, 모든 의욕을 잃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오라버니, 저랑 칼싸움 해요.”
하지만 그런 남궁진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의 동생인 남궁빈의 각성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랑 놀기 싫대요.”
칼싸움을 하자며 진검을 손에 쥔 남궁빈은 검에 검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절정의 경지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기교였다. 절대 9살 짜리 꼬맹이가 보여줄 게 아니었다.
“비, 빈아… 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네? 그냥… 오라버니 따라했는데요?”
“…뭐라고?!”
놀랍게도 남궁빈은, 남궁진보다 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남궁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천하제일인은 내정된 자리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으로 그에게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동생이라고 자신과 다를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남궁진은 자신처럼 우울해질 동생을 염려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오라버니도 저랑 놀기 싫은 거예요?”
“아, 아니… 그래! 놀아줄게!”
“와아! 역시 오라버니가 최고야!”
언제 어디서나 동생 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자.
“으아아아앙! 오라버니 싫어! 무서워!’
그것이 한낱 칼싸움에도 남궁진이 진지하게 임한 이유였다. 바로 옆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면, 남궁빈이 의욕을 잃을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나밖에 없지?”
“훌쩍… 히히, 그건 맞아요. 그래도 저랑 놀아준 건 오라버니 뿐이에요!”
그러나 거기서 남궁진은… 한 발자국 어긋나 버렸다.
‘빈이에겐 내가 필요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려면 내가 도와줘야 해.’
‘빈이가 힘들어하지 않게, 항상 옆에 붙어 있어야 해. 빈이가 어긋나지 않도록, 내가 항상 지켜 줘야 해. 나는 빈이의 오라버니잖아.’
‘그 어떤 사람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어.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빈이를 이해해 줄 수 있어. 빈이는 나만을 필요로 해.’
처음엔 단순히 가족으로서 그녀를 보살펴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궁빈이 커 가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변하였다. 귀엽기만 한 동생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가족 이상으로 남궁빈이 소중해졌다. 그녀를 만난 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빈이의 옆에 있을 수 없어.’
‘나는 빈이 거고, 빈이는 내 거야.’
결국 어느덧 남궁빈이 자라 미소녀가 되었을 때, 남궁진은 자신의 동생을 한 명의 여자로서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듣고 있어요?”
“…어? 으응. 미안. 잠깐 집중 좀 한다고.”
“기대하고 있을게요.”
“하하하! 그러렴. 그럼 갔다 올게.”
지난 과거를 짧게 회상한 남궁진은 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연무장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남궁빈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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