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26화 (225/428)

〈 226화 〉 태극음양지체(29)

* * *

“어서 오게. 다들 오랜만일세.”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왔다. 주인공. 놀랍게도 이름이 시우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별호가 시우검인 주인공 놈이 위지세가로 찾아왔다. 여자를 셋이나 데리고 말이다. 나는 시우검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으면서 그녀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아저씨, 오랜만! 은아는 잘 지내죠?”

먼저, 당소연. 행동거지를 보면 꽤나 싸가지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그런 모습도 귀엽게 느껴진다. 역시 외모가 진리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오는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다만 몸매는 조금 빈약했는데, 자라다 만 것처럼 보이는 저 안쓰러운 가슴은 지금의 은아랑 비등비등해 보였다. 그래도, 뭐. 저 키에 가슴이 큰 것도 이상하잖아. 어떻게 보면 가장 적절한 가슴 크기라고 볼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주님. 제갈연화입니다.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가주님의 얼굴이 평온해 보여 안심이 됩니다.”

다음은, 제갈연화. 당소연이랑은 다르게 상당히 예의바른 모습이었는데, 약간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게, 본심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갈씨에 대한 선입견인가? 어쩌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선녀 같은 외모는 내 착각이 아니었는데, 아름다우면서도 기품 있어 보이는 얼굴 탓에 주변 하인들이 감탄을 할 정도였다. 괜히 서브 히로인이 아니구나. 그러면서도 나올 건 나온 몸매라 더 감탄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이에요. 월야검 어르신. 그때하신 약속은 잊지 않으셨겠죠?”

마지막으로 이제 남궁빈인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 위에는 ‘서브 히로인’이란 글자대신 다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르게 말이다.

진 히로인이라… 나는 남궁빈을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진짜’ 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허허, 빈이는 어째 변한 게 없구나. 그래, 잊지 않았다. 빈이 네 도전이라면 언제든지 받아주마.”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지금 당장…”

“빈아, 지금은 때가 아니잖니.”

“아, 그렇네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그리고 죄송해요, 어르신.”

“허허허, 그 모습도 그대로구나.”

진 히로인, 나는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폭력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한 히로인 앞에 ‘진짜’라는 말이 붙는 순간, 다른 히로인들은 ‘가짜’가 되어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주인공의 연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응, 넷째가 우승이죠? 나머지는 다 페이크죠? 수고연.’

‘작가 새끼…작품을 이렇게 망치네.’

그런데 그 단어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나는 이제서야 아직도 네토리 등급이 제자리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애초에 위지혜가, 히로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진실을 깨달은 나는 진정한 공략 대상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았다.

“……”

예쁘다. 그 이상의 말이 필요할까? 두 서브 히로인들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남궁빈은 급이 달랐다. 아이돌 옆에 선 여배우 느낌이랄까? 남궁빈은 남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다. 마치, 위지혜처럼 말이다.

저 정도면 진 히로인도 인정이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든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근데 쟤… 시우검 여동생이잖아. 아니, 이 새끼… 근친충이었어?’

***

“…그리하여 비연대를 잃은 위지세가를 돕기 위해, 그리고 태극음양지체인 위지 소저를 지키기 위해, 무림맹에서 저와 함께 이들을 보낸 것입니다.”

“흐음, 과연. 그래서였군.”

음흉한 놈. 나는 본격적으로 안건을 꺼낸 시우검 남궁진을 마음 속으로 비난했다.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예요! 근친충이면서 혜매와 약혼했었다는 거잖아. 정말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혜매가 큰일을 겪을 뻔했다.

나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시우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저희의 파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

“태극음양지체의 소문이 퍼져 나간 것, 그리고 위지 소저를 지켜내지 못한 것, 그것에 대한 잘못은 확실히 저희 쪽에 있습니다. 세가 사람들이 위지 소저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지요.”

“으음…”

“하지만 저희 남궁세가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입을 놀린 삼촌을 옥에 가두었고, 호위를 위한 특별 무력대를 마련했습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위지 소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저희의 혼약을 다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어…”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냐.

그래도 일단 끝까지 들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더는 못 참겠다. 이 썩을 근친충이 혜매를 노리는 이유가 뭐겠어. 내공 셔틀로 쓰려고 이러는 거잖아. 생각만 해도 화딱지가 나는 시우검의 속내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야, 근데 꼭 혼약을 해야 하는 거냐? 그냥 지키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한마디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정작 소리를 낸 건 당소연이었다.

“그리고 무림맹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건데, 굳이 네가 혜아 언니랑 혼약할 이유는 없는 거 아냐?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 말야.”

“맞아요, 굳이 당신이 혼약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무림맹에서도 혼약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알아요. 혹시 남궁세가만의 독단적인 의견인 건가요?”

그리고 그녀의 의견을 지지한 건, 다름 아닌 제갈연화였다.

보아하니 서브 히로인 답게 두 사람 다 벌써 주인공에게 넘어간 상태인 것 같은데, 덕분에 의도치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이제 어떡할 거냐, 근친충. 생각지도 않았던 원군을 얻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시우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시우검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두 사람의 물음에 대답했다.

“독단적인 의견은 아니고, 무림맹 총관님께서 조언해 주신 거야. 그리고 굳이 혼약을 하려는 이유는, 위지 소저의 평판을 위해서야. 제대로 된 호위를 하려면 열두 시진 내내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간 좋지 않은 소문이 날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런 말 나오지 않게 혼약 이야기가 나온 거야.”

“그… 그런 거냐, 흠…”

“과연… 역시 당신은 계획이 다 있었군요.”

아니, 이것 보소. 저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에 넘어간다고?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이게 바로 주인공 버프? 세상의 불합리함에 화가 난 나는, 언짢음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근친충에게 소리쳤다.

“그쯤 하시지요! 혜매를 지켜줄 사람은 여기에 있는데, 왜 그쪽이 나서려는 겁니까! 제가 혜매의 새 약혼자라는 이야기를 벌써 까먹으신 겁니까?”

“하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그 약혼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지 소저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보다 강한 사람이 위지 소저를 지켜야한다는 겁니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어?”

“저 남궁진, 책임지지 못 하는 말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습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이거지?”

“원하신다면.”

이 새끼가? 대놓고 시비를 거는 근친충의 도발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혜매의 남자로서,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가만히 놔뒀어도 장인어른 선에서 막혔겠지만, 나는 이 썩을 놈에게 제대로 된 참교육을 해 주고 싶었다.

지가 주인공이면 어쩔 거야. 나한테 관측과 염력이라는 사기 스킬이 있다고. 근친충의 경지가 나보다 높아 보였지만, 나는 비무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근친충을 노려보았다.

“그만. 둘 다 거기까지 하게. 비무를 하는 건 찬성지만, 오늘은 아니야. 벌써 해도 졌는데 뭘 지금 당장 싸우려고 하는가. 내일. 비무를 할 거면 내일 사시(??)에 하게.”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알겠습니다, 가주님.”

그런데… 어째서인지, 근친충의 분위기가 묘했다. 잘 됐다는 듯이 웃고 있는데, 마치 이번 비무를 위해 일부러 혼약 이야기를 꺼낸 것만 같았다.

…에이, 과민반응이겠지?

별호도 시우검인 녀석이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내일의 비무를 위해 두 자매에게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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