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태극음양지체(25)
* * *
……익숙한 천장이다.
돌아온 건가? 기뻐하는 혜매와 자랑스러워하는 장인어른, 한 장로가 보이는 걸 보면 제대로 돌아온 게 맞는 거 같다. 하아, 일단 급한 불은 껐네. 세 사람의 축하를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아아, 이건 천무지체라는 겁니다. 처음 배우는 월하검법(月下??)도 아주 익숙하게 따라할 수 있지요.”
“오오오…! 과연, 천무지체!”
“그리고, 이것도 천무지체라는 겁니다. 처음 배우는 월인장(月??)도 이렇게 쉽게 따라할 수 있지요.”
“끌끌끌! 역시 네가 위지세가의 희망이다!”
이게 회귀구나…
너무나도 사기 같은 회귀의 효용성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완전히 천재가 된 기분이잖아. 내가 회귀 전에 익힌 묘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자 장인어른과 한 장로가 감탄을 하며 크게 기뻐했다.
“장로님, 이 정도면 만무지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예끼, 이 놈아! 억무지체라고 해야할 것을! 끌끌끌!”
“……”
에이,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나는 두 사람의 개드립을 못 들은 척 한 후 수련에 힘썼다. 어쨌거나 그때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내가 강해져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번 로드의 목적은 위지은을 살리는 것이니, 나는 곧 다가올 위기를 대비해서 최대한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남자들은 가슴이 작은 여자를 싫어하나요…?”
“사저께서 정말로 원하신다면, 알려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위지은을 가만히 내버려두면서까지 수련에 힘쓸 생각은 아니었다. 이렇게 미리 싹을 심어 놔야지 양손의 꽃을 꿈꿀 수 있단 말이야. 나는 회귀 전의 좋은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이전처럼 가슴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서 사제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죄송합니다. 사저의 생각은 알겠지만 제게는 혜매가 있는지라… 아니, 있기는 한데, 그게… 으음.”
“걱정 마세요. 언니한테 들키면 제가 협박했다고 할게요. 네에? 그러지 말고 빨리 도와주세요. 사제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응?”
다만… 회귀 전과 똑같이 그녀를 대하지는 못 했다.
이번에도 적당히 철벽 치면서 조금씩 은아의 마음을 얻을 생각이었는데,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때 일이 떠올라서… 이전보다 조금 더 챙겨 주고 말았다.
“하아아… 이게 연인의 포옹이군요?”
“사저, 분명 손만 잡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꽈악 안아 줄래요? 응… 그렇게.”
“사저…”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요. 사제는 싫어요? 저는 좋은데…”
그리고 그 탓에 은아의 마음 속에 심어 두었던 씨앗이 조금 일찍 싹트고 말았다. 아직 혜매와는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하아, 오라버니… 조금 더 다정하게 속삭여 주세요…”
“이보다 더 말씀이십니까?”
“이왕이면… 언니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어차피 둘만의 비밀이잖아요. 으응? 오라버니… 하아, 빨리 제 귀에 속삭여 주세요오…”
“사랑해요, 사저…”
“치잇… 알겠어요. 오늘은 이걸로 봐줄게요.”
그래도 뭐, 큰 문제는 없겠지?
아무튼 회귀 이후 모든 부분에서 훨씬 더 나은 성과를 보였기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벌써 절정의 경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오늘밤에도 다가올 위기에 대비했다.
“하아, 아앙! 백랑의 자지! 하아… 너무 좋아요오!”
“혜매, 윽, 혜매!”
“아아, 이대로 싸 주세요! 하아, 오늘도 가득 채워 주세요오!”
***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선이 꼬이기라도 한 건지, 회귀 전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사파 무리들이 쳐들어왔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말이다.
“키헤헤헤, 불알 두쪽 달고 태어난 이상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얘들아! 오늘 한번 날뛰어 보자! 키헤헤헤!”
장인어른이 틈만 나면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그 영향인 건가?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거의 백 명에 달하는 놈들의 숫자에 식은땀이 났다.
“백랑… 어, 어쩌죠…”
“걱정 마세요, 혜매. 별 거 아닌 놈들입니다.”
하지만 결코 상대하지 못 할 놈들은 아니었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사실 숫자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거든. 일당백, 일기당천, 등등의 말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솨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꾸에에에엑!”
이렇게 검기 한 번 날려주면 잡몹들은 한 방에 나가떨어진단 말이지.
“키헤헤헤… 이거 과연 소문 대로군!”
월하검법을 극성으로 익힌 모습을 보여 주자, 두목으로 보이는 ‘키헤헤헤’ 놈이 내게 달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놈의 공격을 흘린 다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네 이놈! 어딜 감히 내 사위를 노리느냐!”
채애앵!
“끌끌끌! 화두쌍귀의 끝을 오늘 보겠구나!”
“키흐흐흐… 형님, 이거 큰일인데요?”
두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괜히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경지도 올랐겠다, 혼자서 싸운다고 해도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히 여기서 염력 같은 스킬들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거든. 이전처럼 일대일의 상황이면 몰라도, 지금처럼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내 비장의 기술들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타앗
그리고, 지켜야할 사람이 혜매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혜매! 이쪽입니다. 두 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합시다!”
“알겠어요!”
“좋은 생각일세, 백 사위!”
적당한 핑계를 댄 나는 혜매를 데리고 위지은을 찾아 나섰다.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오늘도 은아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거든. 그러니 자칫하다간 그때처럼 그녀가 화두쌍귀의 숨겨둔 막내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회귀를 했는데도 말이다.
“으, 은아야! 어째서! 백랑! 저, 저기 은아가!”
“월하검법 제2식! 월아검(月??)!”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늦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쉬이익
“키호호호! 계집 네가 아무리 날 뛰어 봤… 뭐, 뭐야? 꾸에엑!”
내가 검을 휘두르자 달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검기가 은아를 노리는 사파 놈을 향해 날아갔고, 놈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과연… 이게 월아검이군.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인데, 반짝이는 돌과 운모, 쇠가루, 쇠조각 등을 조합한 검과 같은 위력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은아야! 괜찮아? 깜짝 놀랐잖아… 어, 어어…? 은아야!”
“으으윽, 으그그… 으아아, 악, 아아악!”
“사저! 정신 차리세요, 사저!”
아니,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잖아.
위기를 무사히 넘긴 줄 알았는데, 위지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는데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며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댔다. 마치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라는 것은, 설마…
“아아, 주화입마예요! 은아야, 제발 정신 차려!”
젠장! 설마 또 한 발 늦은 거야? 당황한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화경의 고수인 한 장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화경의 경지라면 주화입마 정도는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건… 너무 늦었다. 제길… 벌써 모든 혈도가 꼬여 버렸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장로님! 은아가… 은아가 늦었다니요!”
“사저… 아아, 사저…”
하지만… 내 믿음은 그렇게 무너졌고, 나는 이번에도 은아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내겐 기회가 한 번 남아 있었다.
꽤나 오래 전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이번에야말로 은아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는, 첫 번째 슬롯에 저장된 세이브 지점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늦지 않았어요! 백랑과 제가 있으니까… 은아를 살릴 수 있다고요!”
“뭐, 뭐라?”
“아버지,잊으셨어요? 저는 태극음양지체잖아요! 백랑의 도움을 받는다면 은아의 주화입마 정도는 가볍게 고칠 수 있어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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