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태극음양지체(21)
* * *
“남자들은 가슴이 작은 여자를 싫어하나요…?”
묻는 내 얼굴이 다 빨개질 만큼 굉장히 부끄러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언젠가 하게 될 연애를 위해… 꼭 해결해야만 하는 의문이란 말야. 달리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으음… 그게 고민이었군요.”
“……네에.”
“객관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좋아하지도 않지요. 굳이 정답을 찾자면,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게 정답일 겁니다.”
다만… 돌아온 대답은, 굉장히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관심이 없다라… 그래, 그렇구나. 혹시나 했었는데, 아쉽게 됐다. 역시 이렇게 납작한 가슴으로는 이성의 호감을 얻지 못하는 거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에, 두 어깨가 푹 처지고 말았다.
이거 타격이 크네.
마음 속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다. 색마 같은 이 남자도 빈유에는 별 관심이 없었구나. 성실하게 대답해 준 남자가 괜시리 미워졌다.
“이건 사람의 본능 같은 겁니다. 성욕을 가진 이상 상대방의 성적인 부분을 의식할 수밖에 없거든요. 스님이나 도사면 몰라도, 평범한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벌써부터 낙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제가 가슴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사저의 고민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고민입니다.”
“……네에?!”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남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가슴을… 키울 수 있다고? 내가 희망을 품고 남자를 올려다 보자, 남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방법이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사저께서 정말로 원하신다면, 알려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번 배워 보시겠습니까?”
“어… 자, 잠시만요…”
믿어도 되는 걸까? 색마인데…? 이걸 핑계로 나한테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니, 믿을 수 없잖아! 이야기만 들으면 꼭 사기를 치는 것만 같았다.
“그게…”
하지만… 본인 입으로도 빈유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했잖아. 언니만 바라보는 색마가 이제 와서 나를 노릴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남자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네, 배워 볼게요. 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릴 테니까, 그걸 보면서 제 설명을 듣고, 천천히 따라하시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시범이요…?”
“네, 시범이요. 자, 먼저 이렇게 가슴 위에 두 손을 올리시면 됩니다.”
“어, 어머!”
뭐야, 역시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게 맞았잖아!
***
“이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유두를 잡으세요.”
“…어, 어떻게요?”
“이렇게 잡으시면 됩니다.”
“아… 그렇구나…”
“부끄럽지만 확실히 벗는 편이 설명하기가 편하네요.”
“아하하… 그, 그러게요.”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게 맞았지만, 그렇다고 배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데, 어떻게 그만두겠다고 말 하겠어. 음란한 짓이지만 분명 효과는 있는 방법일 테니, 민망해도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민망한 건… 나뿐만이 아니잖아. 자세한 설명을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체를 탈의한 남자를 생각해서라도, 이기적이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아니, 잘 모르겠다고 하니 스스로 옷까지 벗어 가면서 진지하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저 남자를, 어떻게 의심하고 거부하겠냐고. 양심이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남자를 믿어 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조금만 가까이 와 주시겠어요? 잘 안 보여서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래도 옷 안에서 만지는 중이잖아. 이 정도 보여주는 거 정도야 괜찮지 뭐.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나는 남자의 가슴을… 그의 유두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아까 얼핏 봤을 때도 느낀 건데… 남자 젖꼭지 주제에 되게 예쁘구나. 내가 대신 만져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 미친, 야이 미친년아! 너 진짜 변태야?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오늘도 자괴감이 늘어갔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빙글빙글 유두를 돌려 주세요.”
“사,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요?”
“그러면 이상형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라… 없는데? 이상형도… 딱히 없단 말야. 당황한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그 모습을 눈치챈 남자가 뒷말을 덧붙여 주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어도 좋고, 망상 속의 주인공이어도 좋습니다. 내 가슴을 만져 주었으면 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가슴을 만져 주었으면 하는 남자라… 그러고 보면 눈앞의 남자가... 잠깐이지만 내 가슴을 만졌었지. 그때 꽤나 짜릿했었는데…
“정하셨습니까?”
“…네, 네에…”
그러면 일단 오늘만… 이 남자로 정해 볼까? 따로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눈앞의 남자를 생각하면서 남자의 말대로 유두를 빙글빙글 돌려 댔다.
“그 다음은 그 남자가 지금 내 유두를 애무해 주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네.”
이 남자가 내 유두를? 우으으… 엉덩이를 주물러 주던 남자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자의 매력적인 손가락이 말이다.
그 손가락이 내 유두를 꼬집은 다음 이렇게 괴롭혀 준다고 생각하니, 아랫배에서 아찔한 감각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분명 엄청나게 기분 좋겠지… 아마 애무해 주는 그 순간, 곧바로 음탕한 소리를 내뱉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다.
색마같이 음란한 이 남자라면 그대로 나와 입을 맞출 거 같았거든.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음탕한 소리를 낸다고 놀리면서, 내 혀를 쪽쪽 빨아 댈 거다. 그리고 다시 내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엉덩이 하나만큼은 쓸만하다고 웃어 대겠지.
그러다가 그 커다란 자지를 꺼내 내 보지에 갖다댈 거고…
결국 내 처녀를…
“……듣고 계십니까?”
“흐엣?! …아, 네에!”
“제대로 상상을 했다면 유두가 딱딱해 졌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 유두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애무해 줍니다.”
“상상은 계속 하면서요?”
“네, 상상은 끝날 때까지 계속 하셔야 합니다.”
후우… 깜짝이야. 너무 집중해 버렸잖아…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한 번 남자가 내 가슴을 애무해 준다고 상상하면서, 조심스럽게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하아…”
그런데… 이거… 되게 기분 좋잖아…
분명 혼자 만졌을 때는 아무런 감각도 못 느꼈었는데… 남자가 눈앞에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남자가 만져 준다고 상상해서 그런건지… 가슴에서 참을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흐읏, 하아… 으응…”
스스로 만져도 이렇게 좋은데… 남자가 직접 만져 준다면 훨씬 더 좋겠지?
“하읏… 아아…”
남자에게 잔뜩 사랑받았을 언니가 부러워졌다. 길거리에서 이 색마가 그 짓거리를 했을 때도…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쾌감을 느꼈을 거 아냐. 언니가 야한 여자가 된 것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유두를 끼운 다음 가슴을 애무해 주면 됩니다. 참 쉽죠?”
“읏, 하아… 이렇게요?”
“음…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펄럭
“에잇, 보여주면 되잖아요. 자, 이렇게냐고요!”
“사, 사저…!”
“앗…”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아아아아!
너무 흥분한 바람에 미친 짓을 하고 말았다. 조금은 만져 주었으면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으, 이렇게 음란한 여자가 아니었는데… 이 남자 앞에서는 자꾸만 색녀가 되는 기분이다.
“…그렇게가 맞습니다.”
“……네에.”
배, 배려하지 마! 더 우울해 지잖아… 아무것도 못 본 척 하는 남자 탓에 괜히 더 짜증이 났다. 적어도 부끄러워 하란 말야! 작지만 아무튼 여자 가슴이거든? 적어도 얼굴은 붉히는 게 예의 아니냐고!
히잉…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흠흠, 아무튼 이런 식으로 가슴을 애무하다 보면 몸이 달아오를 건데, 그렇게 되면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성장열 때문에 몸이 뜨거워지는 거거든요.”
“……”
“다행히 아직 사저의 몸은 성장 중이니,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가슴을 만져 주신다면 평균 이상의 크기가 되실 겁니다.”
“……정말이죠?”
“정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끝인 거죠. 사저만큼 귀엽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가 가슴 크기도 평균 이상이다?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어딨겠습니까.”
“……정말요? 사, 사제도… 관심을 가질 정도인가요?”
“저야 혜매가 있으니까 다른 여자에겐 관심을 안 가지죠.”
“…흥, 그래요?”
“하지만 그런 여자가 가까이에 있다면 꽤나 곤란할 겁니다. 저도 남자인 이상 그렇게 매력적인 여자라면 의식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흐응… 그렇구나…”
그래, 그렇겠지. 언니만 바라본다곤 하지만 본질은 색마잖아. 언니만큼 매력적인 여자가 없어서 그렇지, 그런 여자가 나타난다면 눈이 뒤집힐 걸? 푸흐흐… 아, 웃겨. 그렇게 되면 나한테 몰래 매달리는 거 아냐?
사제의 말에 기운을 차린 내가 우울한 기분을 털어내고 미소를 짓자, 사제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런데 저기 사저, 오늘의 일은 비밀입니다.”
“비밀요?”
“그게… 오늘 서로 민망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오늘의 일은 둘만의 비밀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둘만의 비밀이라…”
이제 와서 언니한테 들킬까봐 겁난 거야? 귀엽기는…
그나저나 둘만의 비밀이라는 말에 가슴 속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언니한테도 숨기는 사제와 나만의 비밀이라… 헤헤, 역시 사제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 같다니까. 사람을 설레게 만들 줄 알잖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활짝 웃으며 사제에게 말을 건넸다.
“알겠어요. 대신에 다음에도 제 고민을 들어주세요.”
“또 고민이 있습니까?”
“몰라요. 아무튼 들어줄 거죠?”
“사저의 부탁인데 들어 줘야죠.”
“좋아, 약속한 거예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