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태극음양지체(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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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은은 우연히 손에 넣은 음란 서적이, 거짓된 상상과 더러운 욕망이 섞여 만들어진 저급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한 그녀로선 소설에 적힌 음탕한 남녀의 행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낮의 길거리에서 몰래 정사를 나눈다고?
서로의 성기를 서로가 빨아 준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정말로 불가능한 행위 아닌가.
그렇기에 그녀는 음란 서적을 그저 망상 덩어리라고 치부했다.
‘손 대신 입으로 해 드려도 될까요?’
‘오늘따라 너무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서적에 적힌 내용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의 언니가, 오줌이 나오는 남자의 성기를 입으로 물었던 것이다. 그것도 맛있다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음탕하다고 생각했던 소설 속의 그 행위들은, 연인 사이에선 당연한 행위일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순수한 언니가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꺼냈을 리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거였나…”
그래서 생각을 바꾼 위지은은 버리려고 했던 음란 서적을 다시 처음부터 정독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 음란 서적이, 아니 단순한 음란 서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소설이, 평범한 연인 사이의 모습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면, 사랑을 동경하는 그녀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었던 것이다.
“하으으… 이건 좀…”
“아니야. 그래도 언니가 이런 것까지 한다는 거지…?”
그리하여 위지은은 견디기 힘든 부끄러운 내용이 나와도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연인이 생긴다면 결국 자신도 해야 하는 행위들이었으니… 미리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민망함을 견디고 계속해서 소설을 읽어 나갔다.
“그치만 이건… 불가능하잖아!”
그러나 어느 한 장면에서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호호호, 기분 좋으시지요?’
‘오오, 아주 훌륭하오! 역시 소저의 가슴이오. 이렇게 부드럽고 커다랗다니!’
‘아잉, 만지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자신의 빈약한 흉부로는 따라할 수도 없는 행위를 시작한 여자 주인공과 그것에 크게 감탄하며 더욱 더 흥분한 남자 주인공을 보고 무척 화가 났던 것이다.
‘가슴으로 남자의 성기를 감싸다니… 흥, 크다고 자랑하는 거야? 완전 유치해! 그리고 남자는… 또 뭘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데! 여자 가슴이 그렇게 좋아?! 이 색골! 색마! 완전 음란해!’
신경질이 난 위지은은 책을 멀리 던진 후 침상에 누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가슴 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여자 가슴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작은 가슴이면 별 관심도 없겠지? 만져도 딱히 만지는 거 같지도 않잖아. 거기다 이 크기로는 책에서 나오던 그런 짓이나… 그런 짓을 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싫어하는 남자들이 더 많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작으면 애초에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걸? 오늘만 봐도 팽시운 그 녀석, 내 신호를 억지로 무시했잖아! 나 같은 빈유는 여자로 안 보인다, 이거 아냐! 흥!’
팽시운을 떠올리자 짜증이 난 위지은은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그를 비난했다. 드디어 연애라는 걸 해 보나…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건만, 그의 호감이 혼자만의 오해였단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짜증나…’
‘……이렇게 작은데 연애를 할 수 있기는 할까? 어지간한 변태가 아닌 이상 아무도 이 가슴을 좋아해 주지 않을 거 아냐…’
‘결국 정략결혼을 하거나 선을 봐야 하는 걸까? 우으으, 그건 진짜 싫은데… 나도 멋진 사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연애를 하고 싶단 말야… 히이잉…’
‘정말로 아무도 없는 걸까…?’
결국 이 모든 게 자신의 빈약한 가슴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위지은은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우며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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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혜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낸 나는, 당장 찾아 오라는 장인어른의 말씀을 듣고는 급하게 연무장으로 달려 나갔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나 진지한 상황 같았다.
혹시 무공을 가르쳐 주려는 걸까? 그게 아니면 일단은 수련부터?
상견례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것인지 첫날부터 느낌이 좋았다.
빠악
“끼에에에엑!”
……라는 건 내 착각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웬 노인에게 얻어맞고 말았다.
“뭐, 뭡니까!”
“끌끌, 표정이 꼭 한 대 때려달라는 거처럼 보여서 말이지.”
“그게 뭔… 아니, 것보다 대체 누구십니까.”
“예끼, 이놈아! 이럴 땐 자기부터 소개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니더냐. 부모한테 대체 뭘 배운 거냐!”
“아니, 그게 제가 고아라서…”
“크흠흠… 내가 실언했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오라고 한 장인어른은 안 보이고, 무언가 있어 보이는 노인은 다짜고짜 주먹질이고… 이른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저는 혜매와 결혼을 약속한 백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르신.”
“…나는 위지세가의 장로, 위지한이다. 앞으로 장로님이라고 부르도록.”
“예, 장로님.”
“크흠흠, 내가 가주의 이름을 빌려 아해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해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아직 너와 혜아 두 사람은 세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지는 못한 상황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약 네가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내가 세가 어른들을 대표해서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도록 하겠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말고. 이는 가주의 허락을 받은 일이니, 아해는 의심하지 말도록.”
오, 괜찮은데? 어제의 상견례로 2차 고비를 통과하지 못 한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번 시험으로 깔끔하게 넘길 수 있다면 나쁠 게 전혀 없었다. 합격만 한다면 앞으로 당당하게 위지혜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래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험에 응하겠다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바로 가시지요.”
“끌끌. 무슨 시험인지는 듣지도 않고?”
“그게 무엇이든 통과할 자신이 있습니다.”
“호오… 좋다. 그럼 시작하지. 내 입에서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아해가 견딘다면, 그걸로…”
빠아악
“…합격이다.”
“끼에에에엑!”
아니, 이게 시험이었어?!
로드의 기회가 있었기에, 무슨 시험이 나오든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개 패듯이 때리는 시험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건 뭐 맷집 시험인가? 쉬지 않고 날아오는 장로의 주먹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끌끌끌. 녀석, 때리는 맛이 있구나.”
하지만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나는 관측을 사용해 어떻게든 장로의 주먹을 피하려고 했다.
빠아악
빠악
그런데 그러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빡
팍
이거… 속도만 빠르지… 궤적은 되게 단순하잖아.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그렇지
주먹의 방향만 파악한다면
슈욱
슈우욱
지금처럼, 그리고 또 지금처럼
피하지 못할 주먹은 아니었다.
“…제법이구나.”
맷집 시험이 아니었나?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주먹이지만, 깨달음을 얻자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뭐야, 되게 간단하잖아.
정답지를 보고 답안지를 작성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주마!”
장로의 말을 끝으로 주먹의 궤도가 조금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봐, 이렇게 움직이면 되잖아.
주먹의 방향과 발끝의 움직임을 보면, 다가올 주먹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호오…!”
그러니 그에 맞춰 몸을 살짝 비틀어만 주면, 자연스럽게 공격을 흘릴 수 있다.
그런데 이거… 어째선지 익숙한데?
뭐였지, 뭐였더라… 분명 이렇게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아, 그래. 리듬게임.
마치 몸으로 리듬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피할 수 있겠느냐!”
조금 더 복잡하게 주먹이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먹의 궤적을 확인한 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면서 디딤발에 힘을 싣고 반 바퀴 뒤로 회전한다. 그러면 장로의 주먹이 허공을 지르고, 자세를 가다듬을 여유가 생긴다.
뭐야, 이거 재밌잖아.
퍼펙트 콤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녀석…!”
그런데 이 재밌는 걸 나만 할 수는 없지.
잠깐의 여유동안 나는 장로의 주먹을 흉내내어 반격을 가했다. 그랬더니, 장로가 가볍게 내 공격을 회피하며 다시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온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계속 가겠습니다!”
“허어, 이 녀석이!”
배드민턴의 랠리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공격과 맞지 않을 정도의 회피를 주고 받자,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평생동안 지금의 공방을 반복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 너무 재밌어. 소름끼칠 정도로 즐겁잖아.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그만! 그만하게! 이런… 가주! 어서 가서 혜아를 불러 오게!”
그런데 왜… 피하지 않는 거지?
어라…?
계속하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장로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뻗은 팔에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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