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태극음양지체(16)
* * *
“끌끌끌. 그래,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떠긴요.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놈이지요.”
“호오? 위지세가의 가주가 진심으로 살기를 드러내도, 눈 하나 꼼짝 안하던 놈 아니냐. 생긴 것과는 달리 근성도 있어 보이던데.”
“진심이라뇨. 혜아가 있는 자리인데 제가 진심으로 그랬겠습니까.”
“흥, 속일 걸 속여야지, 욘석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크흠흠… 뭐, 조금 더 힘이 들어가긴 했나 봅니다.”
위지세가의 가주, 위지혁은 얼마 전에 세가로 돌아온 한 장로와 함께 싸가지 없는 그놈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지혁은 그놈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모양이었지만, 한 장로는 그 자식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끌끌끌. 나는 좋게 본다. 그 아이, 꽤나 쓸모가 있어 보여.”
“장로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시끄러워, 욘석아! 뭘 그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느냐.”
“하지만 냉정히 따졌을 때, 정말 뭣도 없는 놈 아닙니까! 미천한 신분이나 과거는 둘째 쳐도, 이미 근골이 다 자리 잡았을 텐데, 대체 장로님은 뭘 보고 쓸모가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뭘 보고 그러냐고? 일단 배짱이 있지. 팽가의 그 잘난 아들들도 가주 앞에선 찍소리도 못 하는데, 그 아이는 당당히 소리치지 않았느냐.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합격점이야.”
“하지만 배짱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건, 그 아이처럼 배짱 있는 사람들뿐이야. 그건 가주도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크흠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아니, 싫지만은 않은 듯 한게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한 장로는 계속해서 그놈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그 자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위지혁은 그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장로의 정론에 막혀,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거기다 말일세, 그 아이는 순수해.”
“…그것만큼은 인정하지 못 하겠습니다. 그 개자식이 순수하다니요!”
“무공을 배우기엔 너무 늦은 나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아이 몸 속에 흐르는 내공은 그 어떤 무인들 보다 순수할 걸세. 혜아의 태극음양지체에서 정제된 깨끗한 내공일 테니 말이야.”
“그건… 짜증나지만, 그 또한 맞는 말이군요…”
“그리고 그 순수한 내공은 다른 단점들을 모두 상회할 정도로 효과가 좋지. 그래서 온 무림에서 혜아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
“그래서… 위지세가의 무인으로 키우자, 이 말씀이십니까?”
“나는 나쁠 게 없다고 본다.”
“흐음…”
그런데 듣고 보니, 한 장로의 지적은 실로 타당한 주장이었다. 위지혁도 탁기 하나 없이 순수한 내공이 지닌 힘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로 이성을 잃었을 땐 미처 생각을 못 했었지만, 확실히 그놈 자식은 대성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쁠 게 없다는 한 장로의 주장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보다 큰 장점이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혜아를 우리 눈앞에 둔다는 거다. 믿을 수 없는 남궁세가로 보내는 게 아니라 말이다. 그들의 위세가 높아 안전하게 지낼 순 있다지만, 남궁세가 자체는 신용하기 어렵지 않느냐.”
“…맞는 말입니다. 혜아가 태극음양지체라는 소문도 거기서 퍼져 나왔으니까요.”
“거기다 그들은 이미 혜아를 지키지 못 했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혜아를 잃었겠지. 그러니 그걸 빌미삼아 파혼 이야기를 꺼낸다면 후환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거다.”
“흐음… 과연…”
그렇게 조금씩 한 장로의 의견에 공감하게 된 위지혁은, 한 장로가 꺼낸 파혼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의중을 알기 힘든 남궁세가에 자신의 딸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약혼을 파기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위지혁은 그 개자식을 사위로 맞이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 개새끼는 딸 아이의 생명의 은인이고, 딸 아이가 사모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럼 가주 허락을 맡은 걸로 알고, 내일 노부가 그 아이를 한번 시험해 보겠네. 통과한다면 부디 그 아이를 사위로 맞아 주게.”
“일단… 저도 그 자리에 참관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쓸모가 있는 놈이라면… 장로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끌끌끌. 알겠네.”
====
====
집으로 돌아온 위지은은 여전히 불만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팽시운을 만나 화를 풀려고 했건만, 오히려 답답함만 쌓였던 것이다. 그저 같이 그 색마 놈을 욕해주길 바랐던 건데… 팽시운은 그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짜증나…’
뿐만 아니라 팽시운은 그녀의 마음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서 보낸 애정의 신호를 아주 냉담하게 무시한 것이다.
‘괜히 바보같이 오해했었잖아…’
덕분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위지은은, 오늘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팽시운의 이상할 정도로 자상한 태도는 결코 애정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아으으으, 뭐야 진짜…’
우울해진 위지은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위지헤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동경하는 언니와 함께 밤을 보내면서, 자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하아… 백랑, 으응…!”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이미 손님이 있었고
“사랑해요, 하아…”
그 손님은 오전에 봤었던 그 색마 같았다.
“그러니 더, 세게 만져 줘요… 하아앙… 더 세게에!”
언니의 방에서 처음 듣는 야릇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너무 좋아… 하아, 백랑… 으응, 하아… 백랑이 만져주는 거, 너무 좋아요오…”
위지은은 재빨리 주변을 살펴본 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살포시 자신의 귀를 언니의 문 앞에 갖다 댔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의 소리에 자신의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아, 가슴이… 백랑의 손길로 터질 것만 같아요… 후후, 제 가슴이 그렇게 좋으세요? 정말 못 말린다니까아… 하아, 앙…”
“그러지 말고 자, 하아… 이렇게 하면 더 만지기 쉽죠? 하앙… 이 자세로 더 세게… 백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제 가슴을 주물러 주세요.”
“아아앙! 그치만 꼭지만 꼬집히는 건 싫어어… 이상해질 거 같단 말야, 백랑… 하아, 아앙… 너무 좋아서 미칠 거 같아요오…”
아무래도… 자신이 먼저 만져달라고 부탁했다는 언니의 변명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의 애무에 헐떡이며 음란한 신음을 내뱉는 걸 보면, 언니는 애무당하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남자 경험이 없는 위지은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이 만져지는 게 저렇게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호기심에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만져 봤을 땐, 그 어떤 쾌감도 느끼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자신의 언니는 저렇게 즐거워하고 있으니… 위지은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남자가 만져 주면, 느낌이 다른 걸까?’
팽시운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위지은은, 아무 의문도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두 사람의 행위에 집중했다. 혹시 가슴이 너무 작아서 느끼지 못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아… 백랑도 벌써 커졌군요. 많이 괴롭죠? 후후… 자, 여기 누우세요. 제가 대신 만져 드릴게요.”
“백랑이 제 가슴을 빠는 동안, 하아… 백랑의 자지가 기분 좋아지도록, 으응… 잔뜩 흔들어 드릴게요. 하아앙… 알겠죠?”
“으으음, 그런데 백랑… 손 대신 입으로 해 드려도 될까요? 오늘따라 너무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위지혜의 입에서, 아직 위지은에게는 너무 이른, 외설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남자의 성기인 자지를, 입으로 문다는… 어찌 보면 ‘그 행위’ 보다 더욱 더 음란해 보이는 이야기가 말이다.
“하아암… 츄읍, 츄웃, 하아… 맛있어요… 하으음…”
언니의 자지를 빠는 소리에,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개진 위지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문을 잠근 후, 숨겨 두었던 음란 서적을 꺼내 들었다.
“정말로… 이걸 하는 사람이 있잖아! 말도 안 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