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212화 (211/428)

〈 212화 〉 태극음양지체(15)

* * *

위지은과 조금의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해프닝은 어디까지나 해프닝일 뿐… 위지혜의 중재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위지세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세가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기다려왔던 상견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아버지.”

“크흠…”

무척 긴장되고 불편한 장인어른과의 시간을 말이다.

***

무뚝뚝해 보이는 진한 얼굴, 절도가 느껴지는 곧바른 움직임, 그리고 군데군데 보이는 영광의 상처들… 절정의 벽을 넘었다는 위지세가의 가주는, 과연 듣던 대로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저 정도면 A등급 헌터 수준은 그냥 넘었겠는데? 관측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음.”

그런데… 왜 저렇게 째려보는 거야. 위지혜의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나자, 가주에게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크윽…”

포커페이스 스킬로 태연을 가장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미칠 것만 같았다. 온몸에 칼끝이 닿아 있는 기분이랄까?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그 자리에서 무수한 칼날에 난도질 당할 것만 같았다.

설마… 시험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증명할 수밖에.

“하하하… 그렇게 된 겁니다, 장인어른.”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억지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가주의 시험에 화답했다. 통쾌하고 유쾌한 젊은이로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뿌득

그런데… 내가 무슨 밉보일 짓이라도 한 모양인지,

“이 씹어먹을 색마가 감히 날 장인이라 불러?!”

가주가 초면부터 내게 쌍욕을 하며 나를 무림공적으로 몰아갔다.

***

“그러니까 결론은 네놈이 내 딸을 범한 색마라는 거 아니냐. 그런데 색마가, 잘못했다고 빌기는커녕 나를 장인이라고 불러?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아니… 왜, 결론이 그렇게 됩니까. 제가 따님의 처녀를 따먹은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사고’ 아닙니까. 네? 그건 서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행위였다고요. 그러니 색마라는 말은 취소해 주시지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대노하여 소리치는 가주 탓에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저것 봐. 완전히 눈이 돌아갔잖아. 여기서는 침묵만이 답이었다.

­채앵

“이이익! 안그래도 화나 죽겠는데, 뭐? 장인? 허어어! 감히 네놈이이!”

아니, 침묵도 답이 아니었나? 이거 이러다간, 가주가 뽑은 저 검에 목이 날라가게 생겼다. 지금이 로드를 사용할 타이밍인가? 아무래도 다음 기회엔 단어 선택을 조금 더 신중히 해야할 거 같다.

“아버지, 말씀이 너무 심하잖아요. 정신 좀 차리세요.”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위지혜가 가주 앞을 가로막으며, 굉장히 차가운 목소리로 대들기 시작했다.

“뭐, 뭐어?”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백랑이 저를 범한 게 아니라, 제가 백랑을 범한 거예요. 제가 그 순간을 선택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색마가 되는 건가요?”

“…뭐라… 고?”

“제가 색마가 되는 거냐 물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위지마망…! 지금 나를 변호해 주는 거야?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위지혜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착하기 전에 그녀를 함락시킨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덕분에 나는 원 코인을 더 얻었고, 가주가 당황한 틈에 드디어 입을 열 수 있었다.

“하하하…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장인어른.”

“이, 이 색, 이 자식이… 아직도 장인이라고오!”

아차, 또…

나도 모르게 반복한 장인이라는 말에, 가주가 다시 한번 화를 냈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언어를 순화한 것이, 아무래도 딸에게는 약한 모양이었다.

“주제를 알아야지! 혜아의 목숨을 구해준 건 고맙지만, 혜아와 결혼까지 바라는 건 선을 넘지 않았나! 진정 혜아를 생각해 준다면 스스로 혜아에게서 떠나 줘야지. 그게 바로 남자 아닌가. 어찌 네놈의 알량한 욕심으로 혜아의 인생을 망치려 드느냐!”

으음, 이건 좀 예리한데.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재벌 3세를 약혼자로 둔 여자가, 약혼을 파기하고 처음 보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한다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처음엔 작은 행복을 느낄지 몰라도, 나중가선 백이면 백 후회할 거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고.

나는 다르지.

충분히 남궁세가의 그 놈만큼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준다면, 가주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자기PR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위지혜가 이번에도 나 대신 나서 주었다.

“그 반대예요! 제가 욕심을 부린 거예요. 백랑을 진심으로 사랑하니까… 제가 결혼하겠다고 욕심부린 거라고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자신의 행복을 항상 먼저 생각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모두 다 거짓이었던 건가요? 아버지! 정답을 말해 주세요!”

“크흠…”

와 이거… 흥미진진한데?

진심이 가득 담긴 위지혜의 변호에, 가주가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반항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눈치다. 그리고 나 역시 이렇게까지 도움 받을 거라곤 예상도 못 했었고 말이다.

이거, 체면이 영 아닌데?

상견례 자리인데 나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상당히 꼴사나웠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점수를 따기 위해서, 나 역시 진심을 담아 가주에게 소리쳤다.

“가주님, 아니 장인어른! 비록 제가 신분이 미천하고 과거가 더럽다고는 하지만, 혜매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장담하건데 이 세상에서 저 보다 혜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장인어른! 부디 저희의 교제를, 저희의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10년이 지났을 때, 아니 5년이 지났을 때, 지금의 허락을 떠올리며 참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도록 장인어른께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백랑…”

“…흥, 말은 누가 못 할까… 방을 내줄 테니 저리 썩 꺼지게.”

음, 일단 통과인 건가? 적어도 세가에서 나가란 소린 아니잖아. 여전히 화가 났는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인어른이지만, 지금 당장은 인정을 해 준 모양이다. 이제 남은 건 여기서 내 능력을 보여주는 거겠지.

휴… 이대로면 2차 고비도 어떻게 어떻게 넘길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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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어?”

“그렇다니까, 정말 어이없지 않아?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니었어.”

“그랬구나…”

하북팽가의 막내 아들, 팽시운은 위지은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짝사랑하는 그녀가 바로 옆에 붙었기에, 사고가 멈춰 버렸던 것이다.

“야, 제대로 듣고 있어?”

“응? 어, 응! 듣고 있어. 그러니까 그 남자가 문제라는 거지.”

“그래! 그 남자 완전히 색골이라니까!”

분명 몇 달 전만해도 위지은은 그저 귀여운 소꿉친구였지만, 지금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아주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후우… 빨리 언니를 제정신으로 돌려 놔야 하는데 어쩌면 좋지…”

“그러게… 어쩌면 좋지…”

“하아, 뭐 괜찮은 방법 없을까?”

“그러게… 방법 없을까…”

“야, 씨. 지금 나 약올려?”

사랑에 눈뜨게 된 팽시운은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남자같이 털털맞은 성격도, 활짝 웃을 때만 보이는 작은 보조개도,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는 외모도, 그리고 여자 답지 않게 작은 가슴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팽가 사람답지 않게 소심했던 팽시운은 차마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 했다. 고백에 실패해서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사랑하는 그녀 옆에서 함께하는 지금의 순간을 만끽했다. 남자다운 위지은이니 그녀에게 연인이 생기는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있잖아… 남자들은 다들 그렇게 여자 가슴을 좋아하는 거냐?”

“…어, 어어?”

“아니, 그냥 조금 궁금해져서 말야…”

“절, 절대 아니야! 그 남자가 색골인 거지! 나, 나 같은 남자들은 그렇지 않아. 그런 변태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고!”

다만 너무나 긴장한 상태였기에, 그는 약간은 아쉬워하는 위지은의 표정을, 그리고 ‘언니는 좋아하더라고, 만져지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걸까…?’ 라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혼잣말을 듣지 못 했다.

대신 호감도를 올릴 만한 발언을 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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