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마법 소녀 타락시키기(6)
* * *
아쿠아 마린이 세인트 로즈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두 사람이 친구 사이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정보였다. 자기 보다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질투? 이거 완전 배신 각이잖아. 이 점을 잘만 활용하면 네토리를 위한 또 하나의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비교하면 된다. 알아들었지?’
‘예, 보스! 걱정마십쇼! 로즈메리 회원의 저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새끼… 너는 빌런이면서 마법 소녀 팬클럽에 가입한 거냐?’
‘어… 저도 회원인데, 탈퇴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다. 그냥 계속 덕질해라.’
그래서 한 번 미끼를 던져봤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잖아. 진짜로 그녀가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지, 그래서 질투하고 있다면 그 강도가 얼마인지,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솔직히 생긴 것도 세인트 로즈가 더 낫지 않습니까. 하하하.’
‘……으드득.’
그런데 놀랍게도 희은이의 정보는 진짜였다. 아쿠아 마린은 정말로 세인트 로즈를 시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화난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걸 보면 아쿠아 마린이 세인트 로즈를 싫어하는 게 확실했다.
‘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나는 계획대로 그녀를 납치하는 작전을 진행했다. 길안내를 자처한 후 일부러 막다른 골목으로 데려간 뒤, 아쿠아 마린이 한눈팔고 있을 때 그녀의 동료들을 암살했다.
“꺄아아악!”
“아, 아아아악!”
그리고 당황하는 그녀 앞에서 숨겨왔던 내 정체를 드러냈다.
“어둠 보다 깊은 절망에 온 걸 환영한다. 다키스트 체인의 더크배다.”
***
………아니, 씹. 이게 뭐야. 뭔 이딴 말이 자동으로 나와. 뭐? 어둠 보다 깊은 절망? 중2병은 벌써 옛날에 졸업했는데? 하아… 이거 아무래도 악덕영주일 때 크하하! 하고 웃던 것처럼 캐릭터 특성이 발휘된 모양이다. 장르가 장르라 그런가…? 어쩌면 이런 오그라드는 대사를 앞으로도 계속 해야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이익! 더크배! 이런 비겁한 짓으으을!”
“이런, 이런.”
읏차, 불평은 나중에 하고 일단 일부터 해야지. 나는 흥분하여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아쿠아 마린을 간단히 제압한 후 그녀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작전대로 그녀를 회유하기 위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실망이군. 이런 공격은 바보도 피한다고.”
“놔! 놔라고! 너… 내 동료들을… 흐흑, 흑… 어째서… 아아, 아아아!”
“어째서냐고? 멍청하군. 그걸 모르나? 내 본모습을 봤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도전 과제가 내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아니, 이렇게 매도할 생각은 없었는데… 부하들한텐 따뜻한 상사인 척 해도 문제없더니 마법 소녀에겐 얄짤없는 듯했다. 조금 아쉽네.
“흐으윽… 그 모습을 보여준 건 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겠군. ‘나는 처음부터 이 두 명을 죽일 생각이었다.’ 라고.”
“이익! 너! 감히… 감히!”
“하하. 감히라고 말해본들 내가 두려워할 거라 생각 하나? 이 상황에서? 정말 안타까운 판단력이군. 아니면 안타까운 언어능력이라 해야 하나?”
“으으… 이 나쁜 놈아!”
“흐음? 빌런에겐 나쁘다는 말이 칭찬이지. 네 덕에 또 강해졌군.”
“이이이익…!”
아니 근데 이건 좀 심하잖아. 내가 봐도 진짜 재수가 없다. 뭘 이렇게 비꼬고 있냐. ‘악역으로 미션 달성’ 도전 과제와 캐릭터 특성이 겹쳐지면서 끔찍한 혼종이 나온 거 같은데… 딴 건 몰라도 이렇게 찌질하게 구는 건 어떻게든 극복해야겠다. 이러다간 회유에 실패할 거 같다고.
“흥.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마법 소녀 아쿠아 마린,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 그러니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몸을 비트는 강제력을 억지로 이겨내며 최대한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빌런 따위랑 대화할 생각은 없어. 본모습을 봐서 죽였다고? 그럼 나도 죽여… 혼자 살아남는 것도 지쳤어.”
그런데 정작 아쿠아 마린이 대화를 거부했다. 아… 이게 걱정됐던 건데. 후우,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선동과 날조를 사용할 수밖에. 나는 아쿠아 마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태연한 얼굴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여기 이 두 명의 정체가 협회에서 심은 감시꾼이란 걸 알아도 그렇게 바보같이 굴 생각인가?”
“……뭐?”
“마법 소녀 협회는 화이트 모카 사건이 재조명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그런데 그 사건엔 유일한 생존자가 있잖아? 그래서 네가 딴 생각하지 못 하도록 감시를 붙인 사람이 여기 이 두 사람이야. 놀랍지?”
“거, 거짓말이지…?”
“하하. 당사자라면 짐작가는 게 있지 않나? 화이트 모카 얘기만 꺼내도 과거는 잊자고, 미래만 생각하자고, 가스라이팅하던 사람이 있었을텐데?”
그야 당연히 그랬겠지. 상황의 전말은 모르지만 아무튼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큰 사건인데,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주제를 돌리지 않았겠어? 같이 일해야 할 동료가 멘붕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진 않았을 거 아냐. 그러니 지금 내가 꺼낸 이야기는 사실 증거도 없는 헛된 선동에 불과했다.
“…그런, 설마…!”
하지만 이미 멘탈이 나간 아쿠아 마린에겐 충분히 통하는 선동이었다. 원래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잖아. 위키에서 보니까 협회에서 아무런 도움을 안 줬더라고. 그래서 협회에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진짜로 협회를 불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말이 사실이야?!”
이렇게 바로 미끼를 무는 걸 보면 말이다.
***
“……그러니까 네 말은 협회가 그 사건이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는 걸 막으려고 한다는 거잖아. 하지만 그때 당시에 판을 키웠던 건 협회였어. 모카 언니 추모니 뭐니 하면서 엄청 일을 만들었었다고. 그러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냐?”
“하하. 그래. 이상하지? 그런데 이유를 들으면 너도 납득할 거야.”
“……그게 뭔데?”
완전히 넘어온 건가? 눈물을 그친 아쿠아 마린이 굳은 얼굴로 내게 답을 요구했다. 시체가 된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관심은 이미 사라진 듯 했다. 그만큼 내 말을 믿는다는 건가? 나로서는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화이트 모카 사건은 협회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꾸며낸 사건이야. 너는 억울하게 그 사건에 말려든 거고.”
“….거짓말! 무슨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지금, 모카 언니를 모욕하는 거야?!”
“진정하고 끝까지 들어. 협회는 화이트 모카 대신 그들의 말을 잘 듣는 대체제가 필요했어. 화이트 모카는 협회의 픽이 아니었거든. 그들은 협회의 이익이 아니라 정의만 추구하는 화이트 모카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
“….무슨… 그런……”
“그래서 협회는 그녀를 죽이고 화이트 모카에게 집중된 대중들의 관심을 자기네들이 고른 마법 소녀에게 돌리려고 했던 거야. 추모니 뭐니 일을 벌였다고 했지? 그게 다 그것을 위한 일환이었고 말이야.”
“…거짓말… 거짓말이어야 해… 그런… 언니가……”
“못 믿겠다고? 그런데 그거 알아? 그날 자폭 테러를 일으켰던 빌런은 우리 다키스트 체인의 간부였어. 내 형님이었지… 그리고 형님이 그 일을 일으켰던 건 협회의 사주를 받은 조직이 시켜서였어. 알겠어? 그 일이 사실 너네 협회와 우리 조직 간의 딜이었단 소리야. 우리는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협회는 화이트 모카를 죽이기 위해서 짜고 친 조작이었다고.”
“아아아… 아아아아아!”
물론 개뻥이다. 말단 간부인 내가 그걸 알겠냐고. 내가 아는 화이트 모카 사건은 기억에 남은 잔재와 여기 오기 전에 읽은 위키에 적힌 내용이 전부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뭐냐고? 말했잖아, 개뻥이라고. 위키를 읽으면서 뭔가 이상했던 부분을 나 나름대로 각색해서 꾸며낸 이야기다.
“아아, 언니가…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데 용케 통했다고? 그게, 꾸며낸 이야기이긴 한데 나름 머리를 굴린 거라 그렇다. 찾아보니까 각색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 협회랑 트러블이 있었던 화이트 모카라든가, 실제로 다키스트 체인의 간부였던 자폭 빌런이라든가 말이다. 전부 그럴싸하게 선동할 수 있는 재료들이라, 나는 원하던 대로 아쿠아 마린을 속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묻는 건데, 당사자인 너라면 짐작가는 게 많을 거 아냐. 그날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맞아… 그냥 기막힌 우연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 꾸민 일이었다면… 이해가 가. 협회가 정보를 준 거라면… 모든 게 말이 돼.”
“협회는 바로 그 점을 숨기려고 하는 거야.”
아, 참고로 이건 이쪽 세계에 있는 음모론 중 하나를 차용한 거다. 화이트 모카 사건 당시 자폭 테러가 가능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의견이 있었거든. 당시에는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묻힌 주장이지만, 찾아보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서 언질을 해봤다.
그런데… 이것 역시 통하는 걸 보니 확실히 그날 뭔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 일단 그렇다고 쳐. 그런데 이걸 나한테 알려주는 이유는 뭐야…”
“복수. 개인적으로 협회에게 갚아줘야 할 일이 있거든.”
“……그래서 나보고 네 복수에 동참하라는 거야? 협회가 날 속인 건 알겠어. 그날 나와 모카 언니를 함께 죽이려고 했던 것도 알겠고. 하지만 그렇다고 너와 손잡아야 할 이유는 없어. 복수는… 개인적으로도 가능하니까.”
“아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복수는 동료가 많을수록 편하잖아? 너도 내 도움이 필요할 걸? 다름아닌 S급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와 싸워야하니까.”
“…뭐어? 내가… 로즈랑?”
“말하지 않았나? 협회가 원했던 건 화이트 모카의 대체재를 만드는 거라고. 그녀가 죽고 급격히 인기를 끌었던 건 누구지? 갑작스레 유명해져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한 건 누구지? 모두가 화이트 모카를 잊고 자신을 응원하게 만든 건 누구지? 너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세인트… 로즈……”
“어때? 이제 함께 할 마음이 들었나?”
이때까지 내가 입을 턴 이유, 그건 다 지금의 빌드업을 위해서였다. 안그래도 열등감 때문에 세인트 로즈를 싫어하는 아쿠아 마린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확실하게 미워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럼 끝났지 뭐. 그녀는 착실한 나의 부하가 되어서 이번 네토리를 도와주게 될 거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네가 내 동료가 된다면. 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니 네게 거부권은 없어. 확실하게 가야하잖아?”
그래도 선한 마음을 가진 마법 소녀인데 거절하는 거 아니냐고? 하하, 걱정 마시라. 지금을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걸 가져왔거든.
“자, 잠깐! 뭐하는 거야! 이건…”
“너와 내가 한 배에 탔다는 계약의 증거야.”
나는 악당처럼 비겁하게 웃으며 제압당해 있는 그녀의 목에 복종의 목걸이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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