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82화 (181/428)

〈 182화 〉 마법 소녀 타락시키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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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명에 가까운 목숨과 자신의 목숨, 그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장담하는데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진 마법 소녀라고 해도 주저 없이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생판 처음 보는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그게 말처럼 쉽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대중들은 마법 소녀가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칭 정의로운 마법 소녀 수준이 바로 이렇습니다.]

[기사 보고 후원금 바로 끊었습니다. 제 돈이 이런 사람을 위해서 쓰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손발이 덜덜 떨립니다.]

[네 목숨만 목숨이냐? 내 가족은, 내 친구는, 내 친척은 어떡할 거냐고!]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함께 했어야지. 동료가 죽는데 보고만 있냐?]

[국민 청원에 참여해주세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마법 소녀 아쿠아 마린, 한때 B급이었던 그녀를 다시 C급으로 떨어뜨린 ‘화이트 모카’ 사건 이야기다.

[단독) 마법 소녀 화이트 모카 사망]

[화이트 모카, 그녀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충격! 화이트 모카는 희생된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로웠던 그녀.]

[자취를 감춘 아쿠아 마린, 그녀는 왜 대중에게서 사라졌는가.]

187명의 시민과 B급 마법 소녀 화이트 모카가 사망한 통칭 ‘화이트 모카’ 사건은 대중을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성을 잃은 대중들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쿠아 마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녀가 재빨리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주장한 한 전문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그럼 아쿠아 마린이 죽었어야 했다는 건데 정말로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냐고? 어이없게도 실화다.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화이트 모카, 곧 A급을 넘어 S급이 될 거라 여겨졌던 화이트 모카, 언제나 인기 투표 1위를 달리던 화이트 모카, 대중들은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루 아침에 그녀를 떠나보내기엔 화이트 모카는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인기도 없는 년이 눈치 없게 자기 혼자 살겠다고 버티다가 모카가 희생한 거네 이거… 진짜 불쌍해서 어떡하냐 우리 모카 ㅠ]

[모카 진짜 ㅠㅠㅡㅠ 이제야 뜨기 시작했는데 ㅠㅜㅠ 어떡해 진짜 ㅠㅜㅠㅜ]

[이게 말이 되는 거냐… 하…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게 활짝 웃어주던 모카가 죽었다고? 씨발 진짜… 죽어야할 년은 안 죽고 하… 나도 죽을까 그냥? 살기 싫다…]

[모카가 왜 죽어야 하는 건데? 모카가 왜 죽어야 하는 건데? 모카가 왜 죽어야 하는 건데? 모카가 왜 죽어야 하는 건데? 모카가 왜 죽어야 하는 건데?]

그렇기에 그들은 아쿠아 마린을 희생양으로 정했다. 대중들은 그녀를 억지로라도 비난하며 화이트 모카를 잃은 슬픔과 분노, 괴로움, 그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화이트 모카가 죽은 날, 목숨을 바쳐 시민들을 구하려고 했던 건 화이트 모카가 아니라 아쿠아 마린이었다.

‘제가 할게요. 차라리 잘 됐어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거든요.’

‘무슨 소리야! 이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남자친구는? 만들 거라며!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며! 그러면 살아서 돌아 가야지!’

‘……그거요? 저, 차였어요. 됐죠? 그리고 제가 죽는 게 맞잖아요. 여기서 언니가 죽다니. 제가 인정할 수 없어요. 언니는 그년이랑은 다르게 정말로 정의로운 마법 소녀잖아요.’

‘아하하… 내가? 나 따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있는 내가…?’

‘끝까지 가식적인 그년 보단 이렇게 솔직한 언니가 훨씬 정의로워요. 후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이야기도 다 하네요.’

‘마린… 아니야, 역시 이건 아니야. 어떻게든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다가 저 폭탄이 이대로 터지면 다같이 죽는 거예요. 교관님 말씀 잊으셨어요? 확실하게 가자고요. 그럼… 가볼게요.’

‘잠깐, 기다려! 마린! 아… 안되는데…’

시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정체가 세인트 로즈 라는 것, 두 사람의 사이에 자기가 들어갈 틈은 없다는 것, 앞으로도 평생 둘이 함께하는 걸 지켜만 보아야 한다는 것… 을 알게 된 아쿠아 마린은 별로 삶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시우를 빼앗긴 그녀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평소에 존경하던 화이트 모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미안해 마린… 아니 진희야.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그러니… 너를 찬 멍청한 남자 따윈 잊어버리고, 기운 내서! 지금처럼 마법 소녀로서 사람들을 지켜줘. 그게 내 마지막 부탁이야… 언니 말 들어줄 거지?’

그러나 마지막 순간, 아끼던 동생을 이렇게 보낼 수 없었던 화이트 모카가 그녀 대신 희생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그녀의 결심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 화이트 모카는 시민들을 보호하던 결계를 깨면서까지 그녀를 건물 밖으로 날려 보냈다.

­째재쟁!

­콰과과광! 콰앙!

‘어, 언니! 안돼요, 언니!’

정의로운 마법 소녀라면 해서는 안 되었던 행동… 하지만 그 덕분에 아쿠아 마린은 원하지도 않았던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화이트 모카’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러나 화이트 모카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죽음은 아쿠아 마린의 꼬리표가 되어 그녀의 새 삶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아 씨발… 하필 와도 저 년이 오냐. 이거 이번에도 그때처럼 자기 혼자만 도망가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저희 회사만 차별하는 거 아닙니까? GG에는 인성 좋은 마법 소녀만 온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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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네. 또 구해준 사람한테 욕 먹었네. ……짜증나.’

출동 신호를 받고 목적지에 도착한 아쿠아 마린은 시작부터 기분이 상했다. 그녀에게 구출받고 환호하던 시민들이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자 대뜸 인상부터 쓰면서 험담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복귀한 게 아니었는데… 화이트 모카의 유언대로 기운내서 사람들을 지키려고 했지만, 매일같이 듣게 되는 원색적인 비난에 아쿠아 마린은 오늘도 상처를 받았다.

“이 새끼들이 지금 그게 너희가 할 말이야?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빈정거리는 게 사람이 할 짓냐고! 너네가 내 부하 직원이라는 게 정말 부끄럽다 이 새끼들아!”

“보… 부, 부장님! 죄송합니다!”

“사과를 할 거면 나 말고 저기 저 마법 소녀분한테 해야지!”

“아… 죄, 죄송합니다! 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 덕분에 그녀는 다른 마법 소녀들처럼 감사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엎드려 절받기였지만… 복귀 이후 처음 듣는 감사의 인사에 그녀는 목이 메고 말았다.

“아쿠아 마린 님이시죠? 평소부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억지 음해를 당하고도 시민들을 위해 복귀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뇨. 마법 소녀니까요… 제 일이니까요… 당연한 거예요.”

“당연하다니요. 저 였다면 악플러란 악플러는 다 고소하고 기사들한테도 고소장을 보냈을 겁니다. 제가 힘만 있었다면 도움을 드렸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복귀하시고 힘내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응원할 맛이 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네에!”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를 도와준 남자는 ‘화이트 모카’ 사건을 알면서도 그녀를 믿고 지지해주는… 그녀가 살면서 처음 만나는 그녀의 ‘팬’이었다.

‘시우 말고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설마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아 결국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두 사건 이후 감정이 메말랐던 그녀에게 있어 정말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하! 부장님! 뭔 팬을 해도 저런 년… 저런 마법 소녀 팬을 하십니까. 그냥 저처럼 세인트 로즈 팬이나 하시지 말입니다. 이번 테러도 세인트 로즈였으면 벌써 정리 됐을 겁니다.”

“이 녀석 말이 맞습니다. 부장님도 그냥 저희처럼 로즈메리에 가입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C급 따리를 응원하는 것 보다 훨씬 재밌으실 겁니다. 솔직히 생긴 것도 세인트 로즈가 더 낫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런데 좋았던 분위기가 눈치없는 부하 직원들에 의해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세인트 로즈, 아쿠아 마린이 가장 싫어하는 마법 소녀를 그녀와 비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NS 주제에 S급 마법 소녀를 바라는 거 실화인가요? GG 정도면 몰라.”

“어이없어. 개국공신도 배신하는 NS에 다니면서 무슨 잘난 척이래.”

“맞아. 그러니까 빌런도 C급 빌런이 오는 거 아냐. GG 였으면 최소 A급일걸?”

“하하하! 맞는 말입니다. 저희 회사지만 정말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지요. 그랬더니 이번 신입도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그 탓에 화가 난 그녀의 동료들이 호들갑을 떨며, 남자의 부하 직원들에게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NS의 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들의 말에 동의를 했다. 자칫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남자는 끝까지 NS 대신 아쿠아 마린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장님을 구해드려야 합니다!”

“아… 맞아요! 여기서 조심히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요.”

“그런데 금방 처리하기는 힘들 겁니다.”

“네?”

“그게, 이 건물이 조금 복잡한 편이거든요. 억지로 내부 공사를 연달아 했더니 회사가 거의 미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빠르게 빌런들을 무찌르려면 길안내가 필요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여러분들을 도울 기회를 주세요.”

“그건… 안돼요! 위험해요!”

“잠깐만, 마린! 길안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정말로 내부가 미로 같이 되어 있다면 도움이 필요할 거야.”

“초코 말이 맞아. 한시가 급한 상황이잖아? 여기서 시간을 너무 끌었어. 빨리 올라가봐야 한다구. 지름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렇다면 알겠어. 그럼 잘 부탁드려요.”

“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거기다 남자는 자기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스스로 길안내를 자처했다. 그는 마법 소녀만큼 정의로운 남자였던 것이다. 훈훈한 첫인상부터 이어지는 인성까지 모두 다 멋졌던 남자의 모습에, 그녀들은 남자를 믿고 사장실로 달려 나갔다.

“꺄아아악!”

“아, 아아아악!”

하지만 남자가 안내해준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그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됐을 땐 그녀의 동료들은 이미 시체가 된 후였다.

“어둠 보다 깊은 절망에 온 걸 환영한다. 다키스트 체인의 더크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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