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80화 (179/428)

〈 180화 〉 마법 소녀 타락시키기(3)

* * *

거듭 말하지만 빌런이 힘을 키우려면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얻어야 한다. 그럼 여기서 질문, 어떻게 하면 네거티브한 감정을 얻을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범죄, 그리고 더 큰 범죄를 일으키는 거다. 살인, 강도, 강간, 테러 등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 사람들의 원망과 증오를 얻어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보통 혼자 하기는 힘들다. 단순한 강도 짓이면 몰라도 대규모 납치나 테러 등은 최소 분대 단위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빌런들은 더 나쁘고 더 못된 짓을 저지르기 위해 힘을 모았고 자연스럽게 빌런들의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내가 속한 다키스트 체인이라고 불리는 빌런 조직이다.

“축하합니다! 보스! 드디어 해내셨군요!”

“심어 놓은 스파이를 S급 마법 소녀로 만드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진짜!”

“““존경합니다! 보스!”””

뭐야, 기사라도 났어? 희은이를 배웅해 주고 아지트로 돌아오자, 아까까지 나와 함께 손발을 맞추던 부하들이 크게 환호하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 모습에 내가 의아해 하며 스마트폰을 열어보자 아니나다를까 희은이가 S급이 되었다는 기사가 뉴스란에 도배되어 있었다.

“짜식들… 고맙다. 너희들 도움이 컸다.”

“아닙니다. 이게 다 보스의 작전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크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정확히 따지면 내가 아니라 빙의 전의 박덕배가 세운 작전이지만…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나는 나를 치켜세워주는 부하들과 함께 악당처럼 웃으며 즐거워했다.

“크하하? 아이고, 아주 자기가 회장님인 줄 아시네. 엉? 어쩌다가 운 좋게 하나 얻어걸려 놓고선 아주 신나셨어.”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웃고 있자, 갑자기 웬 훼방꾼이 나타났다.

이 녀석… 누구지?

“크크큭, 왜? 쫄았어?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 봐.”

아, 걔구나. 빌런명은 크레안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성과도 못내는 조직의 무쓸모 간부 중 하나인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매일 자기 보다 약한 박덕배를 찾아와 괴롭히는 아주 빌런 다운 새끼다.

평소에 무시하던 놈이 한 건 해냈다는 소식에 짜증이 났나 보지? 얼굴을 찌푸리며 빈정거리는 녀석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짜식, 유치하기는.

“남의 구역은 왜 왔어? 축하라도 해주게?”

“하! 이 새끼가 간이 부었나… 쳇, 내가 참아야지. 그냥 경고 하나 해주려고 왔다. 이번에 네가 그 지랄한다고 간부 주제에 C급 빌런으로 격하된거 알지? 이거 존나 쪽팔리는 일이거든. 빨리 적어도 B급으로 올려 놓는게 좋을 거다. 벨피 형님이 좀 빡쳤거든.”

이게 뭐야… 츤데레? 기억과 달리 상냥한 크레안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이 새끼 게이였어? 이건 경고가 아니라 충고나 조언 이잖아.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아, 혹시 그건가? 이번 일로 권력을 얻을 내가 자기에게 복수를 할 까봐 미리 내게 찾아와서 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썩 꺼져.”

“이 새끼가… 난 분명 경고했다.”

뭐, 나는 신경도 안 쓸 거지만 말이다.

***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네토리뿐이다. 박덕배의 복수나 조직 내의 기강 잡기 같은 건 내게 의미 없는 일이다. 포인트 벌어야할 거 아냐. 지금 내가 해야할 건 히로인을 찾아 그녀를 주인공에게서 빼앗는 거다.

그러니, 최우선적으로는 히로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 보였다. 아니 무슨 마법 소녀가 이렇게 많아. 보통 많아도 다섯 정도 아니야? 그래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협회에 등록된 마법 소녀 수만 해도 거의 대기업 직원 수에 가까웠다. 이래서야 제때에 찾을 수…

“찾았네?”

[단독인터뷰) 인기 투표 1위, S급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 등장!]

[ ­ 안녕하세요, 여러분! 러브 앤 피스 이예이!]

[ ­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 등.장.완.료!]

[ ­ 모두 만나서 반가워요! 헤헷.]

협회 사이트를 뒤져 보다가 답도 안 나오길래 머리나 식힐 겸 너튜브를 켰더니, 첫 번째 영상에서부터 히로인이 등장했다. 그것도 메인 히로인이 말이다. 이거 사진에서는 안 보이던데… 아무래도 영상으로는 히로인은 구별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운이 좋군.”

“…이 아니라, 운이 좋은 거 맞나…?”

그래서 덕분에 이번 네토리도 쉽게 가는 구나 하고 기뻐하려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S급 마법 소녀면… 어제 나랑 싸웠던 희은이 보다 강하다는 거잖아. 이거 난이도 미쳤는데? …얘를 네토리 해야 한다고?

[ ­ 제가 1위라니! 완전 감동이에요, 여러분!]

[ ­ 헤헤, 그래서 1위 기념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노래 한 곡 준비했답니다!]

[ ­ 그럼 반주 주세요!]

[ ­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목소리 뭐야…”

겉모습만 본다면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비현실적인 핑크색 머리카락과 그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외모,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새겨진 루비 같이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이 모든 순수함을 뚫고 남자들을 들끓게 만드는 저 커다란 가슴… 을 가진 여자 아이가 커다란 건물 한 채를 그냥 무너뜨릴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거짓말이 아니다. 이 세계에선 진실이다. 천사 같은 목소리로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 속의 저 아이가 나 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

그런데 저 아이를 네토리 해야 한다고?

……재밌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마음 놓고 치트키를 쓸 거 아냐. 휴, 하마터면 양심 없는 사람이 될 뻔 했다.

[희은아, S급 됐다며. 정보 락 많이 풀렸지? 세인트 로즈에 관한 정보, 구할 수 있는 대로 모두 구해서 보내줘.]

[이희은: …아저씨 미쳤어요? 이제 막 S급된 제가 그걸 어떻게 구해요. 세인트 로즈가 무슨 C급인 줄 아시나…]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필요해. 어떻게든 구해줘.]

[이희은: ……혹시 그 일과 관련된 거예요?]

[맞아.]

[이희은: ...알겠어요. 해 보는 데까지 해 볼게요.]

[부탁할게.]

====

====

“떴다! 세인트 로즈 인터뷰!”

“뭐야, 진짜네! 야, 같이 봐!”

“와씨… 진짜 존나 이쁘네.”

“오늘도 미쳤다. 진짜… 와, 뭐냐. 노래까지 불러주네.”

“이 맛에 로즈쨩 덕질하지.”

점심 시간, 세인트 로즈의 인터뷰 영상에 발광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던 시우는 속으로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그의 여자 친구인 한세라에게 톡을 보냈다.

[박시우: 영상 봤어 ㅎㅎ 노래 감동이던데? 반 애들 다 난리났어.]

[한세라: 진짜? 진짜진짜?]

[박시우: 응 ㅎㅎ 다들 그거 본다고 정신 없어 ㅋㅋ]

[한세라: 다행이다… 사실 엄청 긴장했었거든… 다행이야 정말 ㅠㅠㅠㅠ]

[박시우: 엄청 잘부르던데? 긴장한 거 맞아?]

[한세라: 웅웅. 시우가 본다고 생각하니까 엄청 떨렸었어. 히히…]

바로 그녀가 만인의 마법 소녀인 세인트 로즈였던 것이다.

***

시우는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남자 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 특출난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정의감이 뛰어나다는 거다.

‘낄낄낄낄, 네 까짓 게 감히 내 앞을 막으려 들어? 낄낄낄낄, 사이 좋게 죽여주마!’

처음 보는 여자 아이를 구하기 위해 칼을 든 빌런의 앞을 막을 정도로 말이다.

‘고마워… 내가 바보 같았네. 정의로운 마법 소녀라면 이런 걸 고민해서는 안 됐는데! 덕분에 하나 배웠어!’

그런데 바로 그 정의감 덕분에 그는 살 수 있었다.

‘낄낄낄낄, 무슨 헛소리… 에에엣?!’

‘너, 너는…’

‘러브 앤 피스 이예이!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 등.장.완.료!’

그가 지키려고 했던 여자 아이가 실은 A급 마법 소녀인 세인트 로즈였던 것이다.

‘세인트 로즈…?!’

‘너라면 내 정체를 끝까지 숨겨줄 거지? 히힛. 믿을게 정의로운 용사씨!’

‘어, 어어…’

자리를 바꿔 그녀에게 보호받게 된 시우는 얼떨떨해하며, 귀여운 모습으로 빌런과 맞서싸우는 세인트 로즈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얼굴을 붉히고선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낄낄낄낄, 이거 오늘은 운이 좋군. 아무리 세인트 로즈라 해도 오늘의 나를 쉽게 이기진 못할 걸!’

‘꺄아앗!’

그러나 세인트 로즈가 나섰음에도 상황이 쉽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칼을 든 빌런이 강력했던 것이다. 하루 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그들의 원망을 흡수한 빌런의 공세에 세인트 로즈는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슈우우웅, 파앗­!

그런데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그녀가 위험에 처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세인트 로즈의 러브 스톤이 진화되며 그녀의 힘이 몇 배는 더 강해진 것이다.

‘지지마! 세인트 로즈!’

‘에이이이잇!’

‘끼에에에에엑!’

그 덕에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둘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대상의 러브 스톤을 진화시키는 힘, 바로 시우에게 생겨난 새로운 능력 덕분에 말이다.

‘이 힘은… 이 감정은… 네 거야…?’

‘그게…’

‘멋져! 대단해! 러브 스톤을 진화시키다니! 이런 건 처음 봐!’

‘하하… 사실 나도 처음 봐…’

‘아, 이럴 게 아니지. 흠흠, 그럼 정식으로 인사를 할게. 내 이름은 한세라,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야. 앞으로 잘 부탁해!’

‘응? 잘 부탁한다니…?’

‘네가 내 정체를 알게 됐잖아! 그러니 비밀을 지키기 위해선, 너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구! 어때, 내 동료가 되어줄래?’

‘…응! 얼마든지!’

그렇게 정의롭기만 하던 시우는 새로운 능력을 얻어 마법 소녀의 동료가 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둘만의 비밀을 만들어나간 두 사람은 곧 사귀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박시우: 목소리 엄청 예뻤어.]

[한세라: 목소리만? 헤헤, 막이래.]

[박시우: 당연히 얼굴도 예쁘지.]

[한세라: 흐흥, 좀 더 칭찬하도록!]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박시우와 한세라, 그리고 시우의 소꿉친구인 최진희뿐이었다.

“뭐하길래 그렇게 바보 같이 웃어? 세라야?”

“어? 아 진희야. 으, 으응… 이번에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잖아. 하하…”

“흐음. 역시 사이 좋네.”

마법 소녀 세인트 로즈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긴 마법 소녀 아쿠아 마린 말이다.

* *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