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마법 소녀 타락시키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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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는 매직 스톤이라고 불리는 신비의 돌이 존재한다. 이 돌은 ‘선한 마음’을 가진 여자와 ‘커넥트’될 경우 앙증맞은 핑크빛 러브 스톤으로 바뀌게 되는데, ‘커넥트’된 여자가 이 러브 스톤을 들고 주문을 외우면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 마법 소녀로 변신하게 된다.
반면, 이 돌이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커넥트’될 경우 칙칙하고 새까만 다크 스톤으로 바뀌게 되는데, ‘커넥트’된 사람이 이 다크 스톤을 들고 주문을 외우면 혼돈, 파괴, 망가를 외치는 빌런으로 변신하게 된다. 아, 망가가 아니라 망각이었나? 아무튼. 쉽게 말하자면, 이 돌이 가면을 쓴 라이더의 변신 벨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매직 스톤을 어디서 구하는 지, 어떻게 만드는 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몇십 년 동안 연구에 몰두했지만 아무도 그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그들이 알아낸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이 매직 스톤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의 감정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 음,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자면… 러브 스톤의 경우 사람들이 마법 소녀를 좋아해 줄 때, 응원해 줄 때, 사랑해 줄 때마다 강화된다. 그리고 다크 스톤의 경우 사람들이 빌런을 미워할 때, 원망할 때, 증오할 때마다 강화된다.
즉, 마법 소녀는 팬이, 빌런은 안티 팬이, 늘어날 때마다 힘을 얻게 되는 거다.
“우으으…! 이 작전이 통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진짜 부끄러워요. 모르는 척 팬티를 보여줘야 한다니, 완전 변태잖아요! 그리고… 이게 통한다는 게 진짜 어이가 없어요. 정말로 남자들은 머릿속에 야한 생각밖에 없어요?”
“남자는 다 늑대라잖아.”
“흐응… 그럼 아저씨도 변태인 거에요?”
“당연하지. 희은아, 세상에 남자는 딱 두 종류밖에 없어. 변태인 남자랑 변태가 아닌 척 하는 남자. 그리고 그 중에선 후자가 압도적으로 위험해. 그러니까 스윗한 척 하는 놈들은 무조건 조심해야 해.”
“……전자도 변태니까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기에 마법 소녀 레이피어가 은꼴 노출 작전을 펼치는 것은 그녀가 노출을 좋아하는 변태라서가 아니라, 노출 영상으로 자신의 팬들을 늘려 러브 스톤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진짜 이게 통하냐고? 응, 이쪽 세계도 야한 게 최고더라고.
[직캠) B급 빌런, 더크배를 무찌르는 레이피어]
[ㅁㅊ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검은색 망사… 미쳤다 미쳤어…]
[ㄴ 역대급임 ㄹㅇ ㅋㅋㅋㅋㅋ]
[ㄴ 아니 얘 노출증 환자임?]
[ㄴ 닥쳐 ㅄ아. 레이피어 의상이 저거인 걸 어떡하라고]
[ㄴ 응, 니들 보여주려고 입은 거 아니야~ 인싸 남친한테 보여주려고 입은 거야~]
[ㄴ 레이피어 남친 없거든? 솔로거든? 맨날 밥도 혼자서 먹거든?]
[ㄴ 어우 찐들 존나 많네. 매직스타그램도 챙겨보냐? 나돈데 ㅋㅋㅋ]
[14:29 16:10 29:45 이번 영상 하이라이트]
[ㄴ ㄳㄳ]
[ㄴ 레이피어는 신인가! 레이피어는 신인가!]
[ㄴ 29분이 제대로네]
[ㄴ 변태새끼들… 개 더러워. 적당히 해]
[ㄴ 자기가 보여주는데 어쩔 ㅋㅋ]
[ㄴ 닥쳐 ㅄ아. 레이피어 의상 노출도가 심해서 어쩔 수 없는 거야]
[ㄴ 아닌데? 보여지는 것도 모르는 거거든? 순수한 레이피어 음해하지 마. 레이피어는 애기야, 아껴줘야 해. 헤으응.]
[변태들 진짜 많네. 딸감이 필요하면 야동이나 보러 가. 괜히 레이피어 팬들 욕먹이지 말고. 참고로 나는 순수하게 레이피어를 응원하기 위해서 직캠 보는 거임 ㅇㅇ 절대 레이피어 팬티 색깔 보려고 보는 게 아님 ㅇㅇ]
[ㄴ 이게 맞지.]
[ㄴ 엌ㅋㅋㅋㅋ 나도 그럼. 나 찐팬임]
[ㄴ 닥쳐 ㅄ아. 제발 좀 그냥 응원하면 안되냐? 레이피어만큼 정의로운 마법 소녀도 드묾. 그러니까 제발 한국인이면 레이피어 응원해줘.]
[ㄴ 진짜 정의로운 거 맞아? 알고보면 팬티 회사랑 협찬맺은 거 아냐? 그게 아니면 노출증도 아니고 이 정도로 자주 노출할 리 없잖아.]
[ㄴ 너 천재냐?]
[ㄴ 헐… 개소름이네. 실망이다 진짜. 레이피어 좋게 봤는데 안되겠네.]
[ㄴ 드립인데 찐으로 받아들이는 애들도 있네;; 그쪽에서 왔냐?]
[ㄴ 닥쳐 ㅄ들아…]
현실로 치면 아이돌이 팬티를 노출하는 건데… 발정난 남자들이 안 좋아할 수가 있나. 거기다 대놓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은글슬쩍 보이게 되는 거라 묘한 배덕감까지 느껴져서 남자라면 꼴릴 수밖에 없다.
아, 너무 노골적이라고 혹은 저질이라고 까이지는 않냐고? 그런데 이게 또 적당한 변명이 있다. 러브 스톤으로 변신을 하면 자동으로 마법 소녀틱한 의상을 입게 되는데, 레이피어의 경우 그 의상의 노출도가 조금 높거든? 그래서 이걸 가지고 둘러대면 해결이 된다.
그리고 이걸로도 부족하다? 그러면 인터뷰로 ‘민망한 의상이지만 그래도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치는 이겨낼 수 있어요!’ 라고 말해주면 된다. 기억에 따르면 이 인터뷰 한 방으로 거의 모든 안티들을 입 닫게 했더라고. 빙의 전의 이 몸이 참 괜찮은 아이디어를 냈었다.
생각해봐라, 부끄러움을 아는 순수한 미소녀가 어쩔 수 없이 매번 팬티를 노출한다? 오우… 좀 치는데? 역시 같은 덕배라 그런가 통하는 게 있었다.
“후우, 댓글 진짜 극혐이야… 그래도 오늘 모인 에너지까지 합치면, 분명 S급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아저씨. 복수를 위해서라곤 해도… 그래도 덕분에 드디어 해냈네요.”
“네가 잘한 거지. 이 작전도 결국 네 실력이 없었으면 안 통했어.”
“그래서 말인데… 포상으로 곧 S급 마법 소녀가 될 미소녀를 안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자, 여기요.”
으음? 어… 뭐지. 얘네 이런 사이였나? 동기화된 기억에 의하면 이 정도 사이까지는 아니었는데? 변신을 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희은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벌렸다. 내가 안기 편하게 말이다.
그래서 이게 웬 떡이야 하고 아무 의심없이 안아주려고 했더니, 갑자기 몸에 강제력이 발동되면서 원하지도 않았던 말을 지껄이게 되었다.
“희은아. 너무 어리광 피우지는 마. 아직 복수 다 안 끝났어.”
“흥… 이제야 아저씨 답네요. 오늘 뭔가 이상했던 거 알아요? 답지 않게 자상한 척은 뭐래. 우엑. 만약 진짜 이대로 저를 안았으면 아저씨를 의심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당했다고요.”
“…갑자기 강해지면서 조금 어지러워서 그래.”
“아! 어쩐지! 이상하게 오늘따라 제 공격을 잘 막는다고 했어요. 대박사건! 또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길래 그렇게 강해진 거예요?”
“그런게 있어, 인마.”
“칫. 숨기기는… 알았어요. 그럼 이제 그만 가 볼게요. 아저씨, 바이바이.”
오우… 나 망할 뻔했던 건가? 아무래도 ‘악역으로 미션 달성’ 도전 과제 탓에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그 덕에 쓸데없는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희은이랑 척졌으면 이번 네토리가 꽤나 힘들어졌을 텐데. 운이 좋았다.
아, 희은이가 누구냐고? 음… 일단 히로인은 아니다. 그냥 조연 같은데, 내가 빙의한 박덕배의 이웃사촌, 그러니까 박덕배의 옆집에 살고 있는 여자 아이다. 그런데 대체 둘이 무슨 사이냐고? 음… 그걸 설명하려면 조금 긴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같은 복수를 꿈꾸는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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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은과 박덕배의 딸은 어렸을 적부터 절친이었는데, 무척 사이가 좋은 두 사람 덕분에 두 가족 역시 친척처럼 친하게 지냈었다. 계절마다 함께 여행을 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여행이 문제가 되었었다. 하필 놀러간 관광지에서 S급 마법소녀와 S급 빌런이 싸움을 벌인 것이다. 둘은 원수사이였는지 지독하게 치고 받았고 그 과정에서 마법 소녀의 공격에 휩쓸린 두 가족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희은과 박덕배만 빼고 말이다.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두 사람은 마법 소녀 협회에 찾아가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협회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S급 빌런을 무찌르고 영웅이 된 마법 소녀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적반하장으로 협회는 모든 잘못을 죽은 빌런의 탓으로 돌렸고 진실을 밝히려는 두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협회 덕에 얼마 안 가 고소가 취하되기는 했지만, 그 사건으로 두 사람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매직 스톤 두 개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당연하게도 나락에 떨어져 복수를 꿈꾸던 박덕배는 빌런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S급 마법 소녀와 진실을 숨긴 협회를 파멸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희은은 그와는 다르게 마법 소녀가 되었다. 그녀는 복수 그 이상의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희은은 자기야 말로 진짜 정의로운 마법 소녀가 되어 추악한 협회를 정화하고 올바른 마법 소녀의 롤모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빌런과 마법 소녀가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적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은 복수를 위해 힘을 합치기로 결심했다. 박덕배는 빌런의 세계에서, 이희은은 마법 소녀의 세계에서, 힘을 길러 그날 뒤틀렸던 일을 바로잡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이희은을 S급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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