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78화 (177/428)

〈 178화 〉 마법 소녀 타락시키기(1)

* *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3만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는 ‘히로인 네토리’였다. 히로인들 퀄리티부터 네토리 결과까지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웠거든. 이 맛에 현질하는 건가? 포인트 값을 하는 캐릭터 덕에 힘들었을 수도 있었던 도전 과제를 생각 이상으로 간단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히로인이 누군지 모르고 미션 달성’ – 100만 포인트]

크… 100만이라니 이게 대체 얼마냐. 나는 침대에 누워 부자가 된 기쁨을 만끽했다. 아니, 13만으로도 이 정도로 편했다니까? 그런데 100만이면 어느 정도겠냐. 앞으로 모든 세계관에서 정말 왕처럼 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 위지혜를 만나러 가야하니까 20만은 따로 써야 하구나. 근데 뭐 그래도 80만이다. 악덕 영주 같은 캐릭터를 6번은 더 고를 수 있다는 말이다. 크… 이거지. 나는 로또에 당첨된 듯한 행복을 느끼며 휘파람을 불었다.

­띠리링!

[※ 초특급 할인!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기회! ※]

[사망회귀(1회용): 100만 포인트(기존가 1000만 포인트). 죽으면 강제정산 당하는 대신 죽기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시간정지 기계장치(1회용): 100만 포인트(기존가 1000만 포인트).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멈추고 다시 누르면 시간이 재개되며 장치는 파괴된다.]

[세이브&로드: 100만 포인트(기존가 1000만 포인트). 세이브 지점을 정한 다음 로드를 외치면 세이브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3개의 슬롯을 이용할 수 있고 각 슬롯 당 한 번만 로드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초특급 할인’ 광고가 나타났다.

***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내가 단번에 부자가 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이번에 번 포인트를 한 번에 회수하려고 하는 ‘히로인 네토리’의 심보가 정말 고약해보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는데, 세 아이템 다 무척 쓸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망회귀? 현대 세계관에선 쓸모가 없겠지만 그곳이 무협 세계관이라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곳에서 원 코인을 더 주는 셈인 건데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같은 이유로 일시 정지권도 마찬가지다. 일류 고수고 나발이고 시간을 정지해놓고 목을 자르면 그걸로 끝 아닌가.

거기다 세이브&로드? 이게 가장 사기 같아 보였다. 사실상 사망회귀의 상위호환이잖아. 물론 로드 하기도 전에 죽어버리면 아이템을 날리게 되는 거지만… 설마 그 정도 여유도 없을까? 이제 B등급 헌터 수준은 되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 아닌가. 그리고 설명대로라면 3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 거니 다른 1회용 아이템들 보다 쓸모가 있어 보였다.

따라서… 만약 산다면 세이브&로드인데… 아니, 진짜 이렇게 벌자마자 다 써야 한다고? 내가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1분 남았습니다.]

[59]

[58]

[57]

[…]

얼씨구, 아주 그냥 진심인 거구나? ‘히로인 네토리’는 이번에 내가 무조건 샀으면 하는 건지, 매 초마다 새로운 알림창을 띄우며 내게 구매를 강권했다. 후… 이걸 어쩐다. 그 탓에 정말로 고민이 되었다.

[35]

[34]

[33]

[…]

하지만 정작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포인트만 놓고 보면 900만 포인트나 이득인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기회를 놓치는 게 바보였다. 게다가 포인트 그거 어차피 금방 버는 거잖아. 무협 세계 복귀를 위한 20만 포인트면 적당한 도전 과제 한 번으로도 벌 수 있을 정도 저렴한 편이었다.

“후우… 좋아, 위지혜를 공략하려면 이 정도 아이템은 갖춰놔야지….”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플렉스를 하기로 결정했다.

***

“다 합쳐서 44800 포인트라… 5만이 조금 안 되네.”

세이브&로드를 구매한 나는 이번에 얻은 포인트와 스킬을 정산했다. S등급을 달성하면서 번 포인트는 41230 포인트로, 기존에 있던 포인트와 합치면 44800 포인트였다.

[포커 페이스 Lv.1 – 감정을 숨길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스킬은 포커 페이스로, 도박을 할 때나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수면 스킬 보다 몇 배는 더 좋아보였다.

“후우, 그럼 다시 포인트를 벌로 가 볼까?”

만족한 나는 곧바로 다음 세계관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빠르게 위지혜까지 만나고 올 생각이었거든. 그러니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쉬는 거야 ‘히로인 네토리’ 안에서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지금은 빨리 포인트를 벌어 무협 세계로 돌아가는 게 더 중요했다.

“음… 이번엔 뭐가 좋으려나…”

그래서 나는 최소 20만 포인트 짜리 도전 과제를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게 보니까 자잘한 거 여러 개를 하는 것 보단 그냥 큰 거 한 방 노리는 게 편하더라고. 영주 때처럼 말야.

“앗,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

[‘히로인 네토리’ 능력을 사용합니다.]

[‘악역으로 미션 달성’ 과제를 도전 중입니다.]

[장르는 ‘마법 소녀물’입니다.]

[당신은 ‘중간 보스C’입니다.]

[복종의 목걸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션: 히로인을 네토리 하세요.]

[팁: 메인 히로인은 정의로운 마법 소녀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처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도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A등급 이상의 성과가 필요합니다.)]

===

악역으로 미션 달성, 무려 30만 포인트 짜리다. 보상에 비해서 조건이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이때까지의 나의 행보를 보면 악역이 아닌 적이 드물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강제적으로 악한 일만 행해야 한다는 거다. 무슨 소리냐고? 악덕 영주였지만 전혀 악덕하지 않았던 지난 번 세계관과는 달리 이번에는 무조건 나쁜 일만 저질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현실도 아닌데 나쁜 일 좀 하면 어때, 나한테는 포인트가 더 중요했다. 800 포인트밖에 안 남았다고. 주저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고작해야 마법 소녀잖아. B등급 헌터인 내 상대가 되지는 못 할…

­콰가가가가가강!

­콰앙!

“끄아아악!”

“나, 나타났다! ‘레이피어’가 나타났어!”

“보스! 도와주세요!”

“흐응? 뭘 그렇게 무서워 하시나요? 그냥 조금, 아플 뿐이랍니다?”

­촤아아악!

­촤악, 촥!

“끼에에에엑!”

“보스! 아아악!”

“살려줘…”

“후후후. 귀여우셔라. 구멍 조금 뚫린 거 가지고 엄살이 심하시네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다키스트 체인의 간부, 더크배!”

이게 뭐지…?

내가 장르를 잘못 선택했나?

음, 아닌데…?

마법 소녀물 맞는데?

“아닌 척 하셔도 소용 없어요! 당신이 누군지 벌써 파악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저 가느다란 팔과 얇은 펜싱 검 하나로 건물을 무너뜨린 거지? 그리고 어떻게 내 눈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거지? 어떻게… 아니, 이거 진짜 맞아? 원래 마법 소녀물이 이렇게 하드코어한 거였어?

“자! 승부예요!”

­채앵!

­챙!

“호오… 이거…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비겁하기만 한 겁쟁이라고 들었는데… 제법, 마음에, 드는, 데요!”

­채애앵!

­채챙! 챙!

“오오오! 역시 보스! A급 마법 소녀와 호각이라니!”

“믿고 있었다고요!”

“보스! 동료들의 복수를 부탁해요!”

아니아니아니, 복수는 무슨 복수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구만! 재빨리 손에 쥔 검으로 레이피어의 공격을 막았지만 반격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거…관측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다. 그 정도로 눈앞의 ‘레이피어’라는 년은 강한 상대였다. 저게 A급이라고? 아니 무슨 마법 소녀물에 등급까지 있어… 이게 현실이냐고.

“에잇! 하지만 이것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슈우우우우

­슈우우우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에 내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 레이피어가 필살기를 준비하는지 기수식을 취하고는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 주변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레이피어의 짧은 치마가 휘날려 그녀의 팬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 검은색 망사…!”

……부잣집 아가씨 처럼 보이는 레이피어의 고귀한 자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꽤나 음란해 보이는 검은색 팬티의 형태에 내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내게 화를 냈다.

“자, 잠깐!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어떡해요!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해주셔야죠!”

“……뭐?”

“아이 참… 컷! 컷이에요!”

“……?”

“‘정의를 위해 빌런과 싸우는 마법 소녀! 그런데 그녀는 정체는 사실 변태? 오늘은 무려 검은색 망사 팬티!’ 이게 약속했던 설정이잖아요. 벌써 잊으셨어요? 그런데 팬티 얘기를 하면 어떡하냐구요, 은꼴이 중요한 건데!”

“어…? 아니, 그…”

“정말! 이러면 다시 찍어야 하잖아요! 벌써 스톤 에너지도 많이 썼는데, 히잉.”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사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아직 이 몸의 기억이 전부 다 동기화가 된 게 아니라 그런지, 레이피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까… 이 둘은 원래 아는 사이였고, 지금 이 상황은 서로가 사전에 약속했던 상황이라 이건가…? 아니, 그러면 아까 진심으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도 사실은 연기였다고? ……진짜?

“혹시 잊으신 건 아니죠? 이걸로 아저씨를 격파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저도 S급이라구요 S급!”

“아아, 그랬지. 미안... 팬티가 생각 보다 야하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뭐라고요? 아저씨가 챙겨준 팬티잖아요! 이 변태!”

음… 이거 시작부터 뭔가 어질어질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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