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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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감옥이요?! 아곤이 감옥에 갇혔다고요?”
“네, 사기를 치다가 걸렸다고 합니다.”
“네에…? 아곤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글쎄요. 아곤 님은 부하들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하고 계신 모양인데,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라 호른 쪽에서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아마, 아곤의 말이 사실일 겁니다. 아곤이 밉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죄를 저지를 사람은 아니란 걸 제가 잘 알고 있거든요. 불쌍하게도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 아곤과는 남남인 사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습니다. 아직 화가 다 안 풀려서 그런 걸까요? 벌을 받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를 보고 창녀라고 부르다니… 정말 못난 남자잖아요. 이번에 한 번 혼쭐을 나는 것도 좋아보였습니다.
“아하하… 안타깝네요.”
벌컥
“그래? 그러면 그대는 그 남자를 구해주고 싶은 건가?”
“앗, 영주님…”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차마 제 속내를 밝히기는 민망했기에 그저 웃고 넘기려고 하자, 갑작스럽게 영주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아곤을 구해주고 싶냐는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가, 하지만 구해야 한다네.”
“네에?”
“그를 구해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뭇 진지해보이는 영주님의 표정을 보자 의문이 생겼습니다. 설마 이제와서 저를 그 남자에게 보내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괜스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프레하로 돌아와야 그대가 이혼을 할 수 있거든. 크하하! 아무리 내가 영주라고는 하나 유부녀와 결혼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결혼이요?”
“그래. 그대와 나의 결혼.”
“아, 아아… 영주님!”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영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저와 공식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결혼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진 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영주님께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영주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저를 가득 안아주셨습니다. 주변에서 칫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마… 제 착각이겠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머릿속이 가득차자 정신이 혼미해져 생긴 착각일 겁니다.
아아, 기뻐… 바라고 또 바랐었지만… 실망할게 될까봐 차마 기대를 하진 못 했었는데… 이렇게 정말로 영주님과 맺어질 수 있다니…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여자인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대가 도와줘야 할 게 있다네. 그를 무사히 구해낸다고 해도 그 남자가 이혼을 거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제 도움이요…?”
“그래. 가령 편지라든가 말일세. 음, 이왕이면 조금 각색된 게 좋겠군.”
편지를 보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주님께서 부탁하신다면 당연히 따라야겠죠. 저는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영주님께서 따스한 손길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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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까지 안 풀리다니… 도저히 믿기 힘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난 아곤은 속을 파고드는 위통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함께 고난을 극복하면서 상단원들과 가족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생각한 아곤이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뒷통수를 맞은 아곤은 감옥에 갇혀야 했다. 짓지도 않은 사기죄로 말이다.
‘젠장… 그 녀석들 도대체 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해봤지만 그의 사주를 받았다는 부하들의 증언 때문에 경비대는 아곤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증거가 명확했기에 핸릭의 도움 역시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아곤은 그렇게 독방에 갇혀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로지나의 일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다니…’
눈물나는 상황에서 아곤은 로지나를 걱정했다.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기다리고만 있을 로지나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사정을 밝힐 기회를 주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하고 아곤이 속을 태우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스미스 상단의 아곤, 운이 좋은 녀석이군. 프레하에서 연락이 왔다. 네놈을 도와준다는 군.”
자신을 체포한 경비대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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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정말입니까?! 저를 구해준다고 합니까?!”
“그래. 네가 가진 빚을 몇 달에 걸쳐 갚아주겠다고 하더군. 프레하의 영주에게 고마워하도록.”
“…영주님께서 도와주신 겁니까?”
“그래. 소문과는 다르게 호구 같은 영주더군. 사기친 영주민을 돕기 위해 사비를 쓰다니… 하! 기가차는 일이야 정말.”
영주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아곤으로선 갑작스러운 그의 도움이 의심스러웠지만… 덕분에 로지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을 멈추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계속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 틈에 로지나를 뺏을 생각이었으면 자신을 풀어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아곤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며 경비대장에게 소리질렀다. 아곤은 한시라도 빨리 호른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럼 빨리 풀어주십쇼!”
“이것 봐라? 이게 어디서 고함이야. 범죄자 주제에 확 씨. 말했잖아. 몇 달에 걸쳐서 갚는다고. 그럼 다 갚을 때까지 못 풀어줘. 이런 건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 하거든.”
“젠장! 저는 무죄라니까요!”
“지랄. 전부 다 네놈이 시켰다고 말하는데 너만 아니라고 하면 우리가 누구를 믿겠나. 응?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 보도록. 이렇게 멍청한데 사기는 어떻게 쳤는지 원.”
“아니 진짜…”
그러나 아곤은 떠날 수 없었다. 그는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 몇 개월이나 되는 시간을 갇혀있어야만 했다. 그나마 기약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로지나를 생각하면 애간장이 타는 상황이었다.
“그럼 편지라도 쓰게 해주세요… 저도 가족이 있는데 연락을 해야할 거 아니에요.”
“편지? 참, 안그래도 편지가 왔더군. 네놈 아내가 보냈다던데… 이건 좀 부럽구만. 이런 범죄자도 결혼을 다 하는데 말야. 에라이.”
“진짭니까?! 로지나한테서요?!”
투욱
“로지난지 뭔지는 모르겠고 프레하 영주가 대신 보내줬다고 들었어. 자, 여기있네. 그럼 난 갈 테니 그거 읽고 질질 짜기나 하도록.”
“아아… 로지나…”
경비대장이 사라진 후 한참동안 편지 봉투를 바라보던 아곤은, 다시 한 번 로지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괴로워하며 천천히 봉투의 인장을 뜯었다. 그리고 그의 안부를 묻는 편지의 첫 번째 문장을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로지나가 사랑스러우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미안해… 흐윽, 흐… 로지나…”
“…응? 잠깐… 로지나?”
“아, 아니지? 안돼… 안돼! 그러지 마! 제발 멈춰!”
그런데 그 뒤로는 무슨 끔찍한 내용이라도 적혀있었던 것인지 편지를 읽던 아곤이 손을 덜덜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프레하에 있는 로지나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크게 말이다.
철컹철컹
“씨발! 풀어줘! 풀어달라고!”
철컹철컹!
“지금 당장 돌아가야하니까! 제발 나 좀 풀어 줘! 씨발!”
그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편지를 구겨 던져버린 아곤은 감옥의 철망을 잡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독방에 갇힌 아곤은 그렇게 탈진할 때까지 계속해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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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곤에게.
몸은 괜찮으세요?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것도 사기죄로요. 분명 오해가 있었던 거겠죠? 저는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믿지 못하나 봐요. 당신을 감옥에서 꺼내려면 돈을 갚아야 한대요. 당신에게 생긴 가짜 빚을 말이에요… 어쩌면 당신의 말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그저 돈이 필요한 걸지도 몰라요.
아하하… 정말 억울하죠? 겨우 빚을 다 갚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빚이 생기다니… 그것도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큰 빚이 생기다니… 세상이 어떻게 이렇죠?
그래도 절망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니까요. 다행히 제게 돈을 벌 수단이 있어요. 제가 조금만 고생을 한다면 당신을 구해낼 수 있을 거에요. 그때의 일로 당신에게 정말 실망했었지만 그래도 우린 부부잖아요. 힘을 합쳐야죠.
비록 그 수단이… 굉장히 더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괜찮죠?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아하하, 이래서는 창녀라는 당신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겠네요. 몸을 팔아서 돈을 벌다니…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당신 말대로 영주님은 정말 다정하시고… 그, 섹스도 굉장히 잘하시거든요. 제가 힘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제 걱정은 말고 최대한 건강 조심하면서 풀려날 때까지 버텨주세요. 그때까지 저도 참고 버틸 테니까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이제 영주님의 방으로 찾아갈 시간이거든요. 부디 이런 저를 더럽다 생각하지 마시길…
당신의 아내, 로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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