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73화 (172/428)

〈 173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14)

* * *

아곤, 그의 본명은 루시우스 데온으로 그는 사실 귀족이었다. 하지만 프레하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쫓기다시피 왕도에서 도망쳐 온 데온 부자가 자신들의 정체를 꽁꽁 숨겼기 때문이다. 파벌 싸움에 휘말려 가문이 멸망하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처사라고 볼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지위와 신분을 잃은 데온 가문은 프레하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데온 가문을 나락으로 보낸 실리안 가문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려고 한 것이다. 루시우스의 아버지, 카르틴 데온이 스미스 상단을 만든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실리안 상단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충분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의 복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당시 왕이었던 프레드리히 3세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권이 다시 바뀌었던 것이다. 강력한 국왕파였던 실리안 가문이 데온 가문처럼 나락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렇게 데온 가문은 손 한 번 쓰지 않고도 복수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9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평민이 되어야 했던 루시우스가 기뻐하는 일은 없었다. 복수가 끝났다고 해서 다시 귀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평민으로서 상인이 되어버린 루시우스는 매일 우울해하며 방황했었다.

그리고 힘들어하던 그를 구원해준 사람이 바로 로지나였다.

‘아, 안녕하세요. 프레하 고아원의 로지나예요. 후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귀족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여자 아이가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걸 본 루시우스는, 난생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그러고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자신이 평민이 되었던 거라고 생각하며 그녀와의 운명까지 느꼈다.

‘나는 스미스 상단의 아곤이라고 해. 그… 로지나? 앞으로도 자주 올 테니까. 우리 친구하지 않을래?’

그 날 이후로 아곤이 우울해하는 날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항상 로지나가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평생 그녀가 함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타닥타닥

“그렇구나… 호른으로 가는 상행이라 이거지.”

“응. 무역로가 뚫렸으니까 상인이라면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어?”

“마침 잘됐네. 나 지금 호른에 살고 있거든.”

“뭐? 왕도가 아니라 호른에?”

“뭐… 나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 아무튼. 그럼 우리집으로 초대할게.”

“그래? 그러면 나야 고맙지.”

회포를 풀고 어색한 말투를 집어 던진 두 사람은, 모닥불 앞에 앉아 술을 홀짝이면서 추억을 공유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쌓아두었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나가 엄청 기뻐할 거야. …널 많이 좋아했었잖아.”

“에이, 유부남인데 걔가 기뻐하긴 뭘 기뻐해.”

“너 결혼도 했었어?!”

그 과정에서 핸릭이 여동생의 변함 없는 연모를 밝혔으나 아곤은 자신이 유부남이란 걸 밝히며 거절의 의사를 돌려 말했다. 그에게는 지금 로지나뿐이었다.

“했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이쁜 여자랑.”

“와, 이거 완전 팔불출이잖아?”

비록 자신이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예전처럼 로지나가 자신을 용서해줄 거라고 믿은 아곤은 다시 한 번 그녀와 사랑을 나눌 것을 기대하며 술을 들이켰다. 술맛은 썼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앙! 항, 하앙! 영주님, 으응! 그대로 싸주세요! 하아앙! 영주님의, 핫, 아이, 으응! 낳게 해주세요오!”

그리고 그 시간, 로지나는 프레하의 영주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아곤의 생각 따윈 하지도 않은 채 영주의 씨앗을 받기 위해 보지 안을 조이면서 말이다.

====

====

로지나가 성으로 찾아온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들어보니 남편이랑 싸운 거 같은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곤란했다. 그녀가 자기 스스로 나를 찾아왔다는 걸 아곤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네토리 등급을 올리기가 힘든데… 으음, 계획을 수정해야겠네. 원래라면 매수한 상단원들로 하여금 사고를 치게 만들어서 아곤을 빚쟁이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로지나를 이용해서 조금은 극적인 연출이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꾼 나는 세라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크하하! 그렇게 해서 호른 영주에게 부탁을 할 생각이네. 그러니 적당한 선물과 함께… 음? 자네 듣고 있는가?”

그런데 세라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흥.”

“어허. 흥이라니. 영주가 말하고 있는데 대체 그게 무슨 무례인가.”

“흥입니다.”

“아니, 존댓말을 쓰라는 뜻이 아니잖아.”

대놓고 내 말에 콧방귀를 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말이다. 얜 또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눈치를 줘도 세라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 대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을 꺼냈다.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자지 몇 번 박아준걸로 넘어가려는 악덕 영주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 참 흉흉하지 않습니까? 무서워서 못 살 거 같습니다.”

아… 이거, 단단히 삐졌나 보네.

“크흠, 그런 영주가 있다니 참 말세로군.”

“거기다가 다른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를 이용하는 영주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왕국의 평화를 위해서 이런 악인들을 폐하께 알려야 할 거 같은데 영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흐흐흠...”

“어머,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로지나에게 쐐기를 박기 위해 세라를 이용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감사의 의미로 새벽에 몇 번 한 걸로는 부족한 듯했다. 질투하는 건가… 로지나가 성에 들어와서인지 감정 표현이 잦아진 세라가 귀찮으면서도 참 귀여웠다.

이거, 어쩔 수 없지. 네토리가 끝날 때까진 달래주는 수밖에. 나는 최대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뾰로퉁해 있는 세라를 안아주었다.

“세라… 내가 한 명으로 만족하리라 보는가. 로지나와 이어진다고 자네를 버리지는 않을 걸세.”

“그 말씀은 대놓고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하, 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할 거 같습니까? 정말 나쁜 남자입니다, 당신은.”

“크하하! 어쩔 수 없다네. 나는 욕심쟁이고, 이런 내가 자네와는 상극의 미인을 얻을 기회를 날릴 수는 없다네.”

“……저와는 다르게 가슴이 큰 여자도 원한다는 거군요.”

아, 들켰나? 이거 순간, 캐릭터에 동화되어서 나도 모르게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 탓에 안그래도 차가웠던 세라의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뭐,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까요. 이래서 더 사랑하는 쪽이 진다는 말을 하는 거군요. 후우, 어쩌다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저기 세라… 그래도 보지는 세라 쪽이 더 좋아.”

“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다른 남자의 자지가 들어간 더러운 보지 따위랑 비교하다니 실례입니다! 영주님의 자지 모양으로 바뀐 제 보지가 더 좋은 게 당연한 겁니다!”

“으, 으응…”

아니, 이걸 이렇게 받는다고? 위로해 준답시고 말을 했다가 아차 싶어서 후회중이었는데 세라가 당당하게 보지 어필을 했다. 뭔데 이 매력은… 거기다 화를 내면서도 조금은 기뻐보이는 게 충격이었다. 역시 세라는 야한 여자라니까. 기특하다는 의미로 엉덩이를 주물러주자 세라가 나를 밀치더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금은 업무중이니까요. 흥. 아무튼 명령대로 호른 영주에게 영주님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 꼴이 우습게 되겠군요. 아내는 아내대로 빼앗기고 상단은 상단대로 망하게 생겼으니까요.”

“뭐, 꼬우면 자기가 영주 하든가.”

“정말 최악이네요.”

“그래서, 싫은가?”

“영주님의 말에 동의한 제가 최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귀엽네 정말.

====

====

언제 어디서나 저를 아껴주시는 영주님과 항상 웃으며 저를 반겨주시는 사용인 분들, 그리고 여전히 무섭지만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를 챙겨주시는 세라 님까지… 아아, 역시 영주님을 만나러 온 건 정답이었습니다. 영주님 덕분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저는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미련하게 아곤의 옆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런 행복은 평생 모르고 살았겠죠. 인생의 분기점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여신님이 도와주신 걸까요? 영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신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똑똑똑

“로지나 님. 세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세라 님.”

­벌컥

그러니 여신님께 다시 기도를 하기 시작해야 하나 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세라 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다소 심각해 보이는 세라 님의 표정이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로지나 님께 알려드려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아곤 님이 호른의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