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11)
* * *
아곤과의 첫날밤 이후, 그이와 저는 매우 바쁘게 지냈습니다. 위기에 빠졌던 상단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영주님께 받은 보상금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저희는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재정비에 힘썼습니다.
“아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응!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러나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밝아 보이는 저희 상단의 미래를 보면 힘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요? 함께 위기를 극복한 저희 상단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끈끈한 사이가 되었고 덕분에 스미스 상단은 더욱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영주님 덕분입니다. 그분께서 배려해주신 보상금이 아니었다면 상단은 파산되었을 거고 저희는 빚쟁이 신세가 되었겠지요. 정말 다정하신 영주님의 인성에 저는 다시 한 번 감동을 했습니다.
“로지나, 오늘 간만에 어때… 요새 바빠서 집에 돌아오면 잠만 잤잖아.”
“으음… 그치만 피곤해요. 아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 그러지 말고. 응?”
“……으응, 알았어요…”
하지만… 차마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주지 못하고 고민하는 제게, 그분의 얼굴을 볼 자격은 없으니까요.
“오늘도 좋았어, 로지나…”
“아… 네에……”
신분의 차이, 그래서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갈수록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잃어가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계속 주저하게 되는 저는 날마다 영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앙… 영주님, 하아… 죄송해요… 으응… 저는 또, 아아!”
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망 때문인 걸까요? 영주님과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분이 더욱 더 그리워졌습니다.
***
호른으로의 상행 준비를 마친 저희는 떠나기 전에 잠깐 휴식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마침 도시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기에 축제가 끝날 때까지 프레하에 남아있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아곤은 오랜만에 단골 술집으로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축제의 여파인지 술집 안엔 여자들 무리와 남자들 무리가 있었고, 저와 아곤은 각각의 무리들에게 끌려 가 본의 아닌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서 얼마 전에 새 신부가 된 크리스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주님께 선물 받았는지 아름다워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크리스틴을 말입니다.
“호호! 다들 보세요! 이게 바로 영주님이 제게 반했다는 증거예요! 이쁘죠? 제 미모랑 어울린다면서 선물로 주신 거 있죠!”
“어머, 진짜야?”
“크리스틴이 이쁘긴 한데… 영주님이 반할 정도인가?”
“제가 영주님의 취향이라는 거겠죠! 그게 아니면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었겠어요?”
거짓말… 드레스는 원래 만나 뵙기도 전에 선물로 받는 건데 말이죠… 크리스틴은 어째서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정말로 자랑스러웠는지, 작은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는 콧김을 내뿜는 크리스틴을 보자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구라치네. 그거 그냥 가기만 하면 받는 거잖아. 나도 받았거든? 여기 영주님 만난 사람이 너 뿐인 것도 아닌데 어디서 바로 들킬 거짓말을 해.”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세이르가 들고 있던 술잔을 쾅하고 내려찍더니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크리스틴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이르도 얼마 전에 결혼을 했었죠… 이 작은 술집에 영주님께 안긴 여자가 셋이나 되다니… 어째서인지 마음이 한층 더 불편해졌습니다.
“뭐, 뭐어? 흥! 너가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영주님께서 내 얼굴을 보고는 감탄하면서 선물을 주셨단 말이야!”
“로지나. 넌 어땠어? 너도 도착하자마자 받은 거 아니야?”
“네에? 아하하…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봤지? 그냥 주는 선물에 뭘 그렇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의미부여를 하는 거야. 요한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이, 이이익!”
아, 이러면 안되는 건데… 분개하는 크리스틴의 얼굴을 보자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크리스틴, 그러게 왜 거짓말을 했나요. 영주님께선 당신이 아니라 저한테 반했답니다. 그러니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당신과 당신의 남편을 위해서도 말이에요.
저는 마음 속으로 크리스틴에게 훈수를 두면서, 논리정연하게 반박하는 세이르를 응원했습니다.
“나 참… 초야권 가지고 다른 말 안 나오게 밥 먹이고 선물 준 거 가지고 너무 기뻐하진 마.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는 태도가 달랐다니까! 영주님께서 나한테 얼마나 다정했는지 알아?!”
“그거, 너한테만 그런 거 아니야. 나한테도 아주 자기가 내 남편인 것처럼 굴었다니까. 로지나, 너도 그렇지?”
“응? 아, 네에! ……맞아요… 그랬죠…”
그런데… 이어지는 세이르의 말에 그만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습니다. 저한테만… 다정하게 대해주신 게 아니었군요? 말도 안돼… 분명 하녀 분들은 영주님께서 다른 분들에겐 냉정하게 대하셨다고 했는데… 그건 저를 위한 거짓말이었던 걸까요?
크리스틴과 세이르의 반응을 보면 두 명 다 거짓을 말하는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탓에 마음이 다시 울적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두 명의 입에서 정원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서 다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아아, 정원에는 저 혼자만 데려갔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그네에는 바람의 정령이 살고 있다네.’
‘그래. 그런데 이 놈이 꽤나 여자를 밝혀대서 미인만 앉으면 바람을 불어 그네를 태워준다네. 참 재밌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그 정원은 정말 신비하고 매력적인 곳이었죠. 바람의 정령님까지 살고 있었으니까요… 동화 같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저는 잠시 추억에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꿈 깨. 네가 바라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나도 냉랭한 세이르의 말에 그만 정신을 차리고 말았습니다. 꿈이라… 그렇군요. 맞아요, 꿈이예요. 하지만 꿈 정도는 꿀 수 있지 않나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그냥… 요한이 없어서 하는 말인데… 요한이랑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했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추억을 회상하는 거야. 그게 나빠?”
웅성웅성
꿈 깨라는 말에 심장이 덜컹했던 저는 이번에는 저 대신 화를 내는 듯한 크리스틴을 마음 속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녀 역시 저와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공감을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혼자 착각을 한 크리스틴과 그분의 고백을 받은 저는 완전 다른 상황이었지만요.
“응. 나빠. 정신차려. 너 유부녀야. 그리고 뭐가 그렇게 행복했다는 건데? 섹스를 잘해서? 영주 좆이 그렇게 좋았어?”
“푸흡! 콜록콜록…”
“로지나, 괜찮아?”
“으응… 괜찮아요…”
잠깐, 세이르…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니요…! 세이르는 부끄러움도 없나요? 허리를 튕기면서 섹스와 좆이라는 단어를 꺼낸 세이르 탓에 저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세이르의 말에 양심이 찔려서 그런 거겠죠. 영주님이 섹스를 잘한다는 건 저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거든요…
“영주님이 잘하긴 했지… 그런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거든? 그냥 영주님 옆에 있으면서 여자로서 굉장히 행복했었단 말야… 흥!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너도 좋았나 보지?”
“으윽… 그야, 뭐… 너도 알지만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잖아. 그런 거에 찔리는데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나?”
“변태… 하긴 넌 옛날부터 밝혔었지.”
하지만 지금의 얘긴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영주님의 자지가… 굉장히 큰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건 그분이 배려를 해주셔서 그런 거였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아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하아… 정말로 아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영주님과 할 땐 정말 행복했었는데… 그때 생각을 하니 다시 영주님이 그리워졌습니다.
“아무튼… 영주님 보고 싶다. 다시 만나고 싶어.”
“왜. 찾아가서 첩으로나마 받아달라고 해 보지 그래?”
“흥, 잘도 되겠다. 헛된 생각 가지고 찾아오지 말라고 하녀장한테 협박까지 받았단 말야.”
“아, 그 사람… 나한테도 그랬었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 상행, 제가 꼭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 편이 아곤을 위해서나, 저와…… 영주님을 위해서나 좋을 거 같은데 말이에요. 편지를 돌려주면서 감사의 인사도… 전해야 하니까 말이에요.
“로지나, 너도 협박 받았었어?”
“네에… 무서웠죠, 그 사람. 아하하…”
그런데 협박이라니, 무슨 소리일까요.
====
====
[네토리 등급이 C 등급으로 상승하였습니다.]
“휴, 드디어 됐네.”
“되기는 뭐가 됐습니까. 완전 부족하니까 빨리 허리나 흔들어 주십시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