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67화 (166/428)

〈 167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8)

* * *

나는 영주만 되면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영주라는 게, 영지 안에서는 왕 같은 존재인 거잖아? 그러니 당연하게도 영주에겐 무한한 자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다르더라고.

어디까지나 왕 ‘같은’ 존재에 불과한 영주는, 왕권이 매우 강력한 이 세계관에서, 한 번이라도 잘못 보이면 그대로 나가리가 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불과했다. 따라서 영주라고 남들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악행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어쩐지 생각보다 포인트가 싸더라니… 완전 낚여버린 셈이었다.

근데 또 이러면, 빙의 전에 악덕 영주로 유명했던 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이 새끼는 대체 뭘 믿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거지? 너 새끼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잖아. 왕도로 불려가서 목이 댕겅 당하게 생겼다고!

“프레하의 부채가 2만 루윈이나 되는 군요. 대단합니다. 이 정도로 사치를 부리시다니…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걸 당신이 갚을 수 있을까요?”

“기사단의 불만도, 사용인들의 불만도 상당하더군요. 이래서는 그 누구도 당신을 변호하지 않을 겁니다. 감형은 바랄 수도 없다는 소리지요.”

“교회에서도 당신의 처벌을 요구한 거 아시나요? 당신이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세, 세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유예 기간은 한 달입니다. 그 동안 프레하에 쌓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왕족의 핏줄을 가진 당신이라 해도 폐하께 용서받진 못할 겁니다.”

하녀장이라고 믿고 있던 여자의 정체가 사실 왕도에서 보낸 감찰관이었다는 것과 내게 남은 시간이 고작 한 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속된 말로 상당히 좆됐음을 느꼈다.

“잠깐! 고작 한 달밖에 안 남았다고?!”

“아니요. 한 달이나 남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초야권을 부활시켜놓고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빙의 전의 이 몸이 잔뜩 만들어놓은 똥덩어리들을 처리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만 했다.

***

그런데 참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각잡고 영주 일을 해보려니까 신경 쓸 게 너무 많더라고. 재정에, 외교에, 군사에, 기타 등등에… 경영의 ‘ㄱ’도 모르는 내가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럼 이 일은 그대들에게 전임하겠네.”

그래서 나는 그냥 포기했다. 아니, 진짜 안되겠더라고. 네토리 하려고 들어왔는데 경영이라니, 장르가 다르다고 장르가. 조금만 머리를 써도 쥐가 날 거 같아서, 나는 대충 똑똑해 보이는 부하들에게 모든 일을 전임했다.

“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프레하를, 지금 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영주님의 무, 무한한 신뢰에! 반드시 부응하겠습니다! 믿고 지켜봐주십시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이왜진? 내 명령을 들은 부하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외치는데, 귀찮은 일거리를 떠넘긴 게 뭐가 좋다고 저렇게 즐거워 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나한테는 내정보다 더 중요한 일, 바로 2만 루윈이나 되는 프레하의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 영주님! 영주님! 대박입니다! 하하하! 대박이라고요!”

“으음? 뭔데 그렇게 호들갑인가.”

“정찰대들이 무려 광산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금광을 말입니다!”

“뭐어?! 크하하! 이거 하늘이 나를 돕는 군! 크하하하하! 우린 부자가 될 거야!”

그런데 이게 참…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스트레스나 풀 겸, 그리고 스킬 숙련도나 올릴 겸 토벌을 나갔던 북부 숲에서 금광을 발견한 것이다.

덕분에 2만 루윈이 뭐야, 그것의 몇십 배나 되는 돈을 벌 수 있었고,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부채 상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내리는 포상이다! 이 성에서 일하는 자들의 월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

“……네에?!”

­웅성웅성

­웅성웅성

“음? 반응이 별로군. 좋다! 기분이다! 두 배가 아니라 세 배로 올려주겠다! 크하하하하!”

“와… 와아아아!”

“영주님! 만세! 프레하! 만세!”

“만세만세 만만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하들의 불만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하루 아침에 연봉이 세 배가 된 기사단과 사용인들은 기쁨에 취해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그 날부터 나는 적어도 성 안에서는 악덕 영주가 아니게 되었다.

“자네… 감히 돈으로 면죄권을 사려는 건가! 정말 불경하군! 아직도 반성하지 못 했다니!”

하지만 아직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 건 아니었다. 교회의 불만이 남아 있었거든. 쓸데없는 이 몸의 주인이 빙의 전에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했었다는데, 사사건건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뒤처리를 하는 나만 고생이었다. 병신 같은 놈. 얼마 있지도 않은 권력에 취해서 대체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른 거냐. 얘넨 성직자라 돈도 안 밝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

“­라고 거절하기엔 너무나 큰 액수군요. 형제님의 성의를 잘 알았습니다. 이 정도면 여신님도 용서해주실 겁니다.”

…이게 되네. 아무래도 성직자가 돈을 안 밝힌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하긴 땅파서 돈 버는 게 아닌 이상 돈이 필요 없을 수가 없지. 역시 돈은 진리였고, 깨달음을 얻은 나는 교회와 친분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데 형제님. 초야권은…”

“크하하… 사실 말입니다. 초야권, 그거 다 교리를 위해 부활시킨 겁니다.”

“굉장한 개소리군요…”

“교회에서는 계속 순결을 외치지만… 요즘 젊은 것들은 다 문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느슨해진 프레하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제가 악역을 자처한 겁니다. 초야권이 있으면 적어도 결혼식 날까진 순결을 유지할 거 아닙니까.”

“오오…! 과연, 형제님다운 궤변이군요.”

“그리고 말입니다. 순결을 유지한 처녀에게 포상도 내리고 올바른 성지식을 가르쳐 줘서 출산율도 올리면, 참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 정도 변명이면 교주님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크하하! 그거 다행입니다.”

동시에 초야권 문제도 해결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약속했던 한 달이 채 절반도 지나가지 않은 시점에서 감찰관이 꺼낸 모든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네토리를 위한 작전도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

***

그래서 이제 본론인데,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부활시킨 초야권의 성과가 있었냐를 묻는다면… 확실한 성과가 있었다. 어젯밤 로지나와의 정사 도중, 네토리 등급이 올랐다는 알림을 받으면서 그녀가 이번 세계관의 히로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거든. 고작 다섯 번째 시도만에 히로인을 찾게 된 셈이니 나로서는 정말 개꿀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제 나한테 남은 건, 로지나의 네토리 등급을 최소 A까지 올리는 것뿐이었다.

“크하하!”

그리고 그건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이미 확실하게 씨앗을 뿌려놨거든.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스윗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로지나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넘어 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넘어오지 않는 다고 해도, 이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니… 영주인 내게, 걱정은 없었다.

­똑똑똑

“영주님. 세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벌컥

“명령대로 영주님의 편지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래? 반응은 어떻던가. 내 생각대로 로지나가 흔들리던가?”

“배웅을 받는 동안 얼굴이 빨개져 있던 걸 보면, 짜증나지만 영주님께 마음이 있기는 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영주님. 정말로 그 여자에게 진심이신 겁니까?”

“음? 얼굴도 이쁘겠다, 가슴도 크겠다, 진심이 안 될 이유가 있나. 그리고 로지나 정도면 귀족가의 여식이라 해도 누구나 믿을 정도 아닌가”

“칫. 처녀를 대준 사람 앞에서 잘도 말하는 군요.”

“아니 또 왜 이러는가. 새벽부터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놓고.”

­꽈악!

“영주님이… 말대꾸?!”

“엥.”

뭐야, 갑자기… 질투라도 하는 건지 화난 얼굴로 내 멱살을 잡은 세라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멱살을 잡기 위해 까치발을 든 세라가 귀여웠지만 분위기가 워낙 심각해 보였기에 겁먹은 척을 했다. 그러자 슬쩍 미소를 지은 세라가 계속 멱살을 쥔 채 내게 작은 몸을 기댔다.

“그 여자로는 만족이 안 되니까 저를 찾은 거 아닙니까. 그래 놓고 뭘 선심쓰는 척을 하는 겁니까. 이대로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새벽 동안 영주님이 무슨 짓을 했는 지, 제가 다 밝히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질투하는 거 맞구나.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너무 잘나도 문제라니까. 냉정했던 감찰관도 이렇게 내게 빠지게 만들고 말이야.

“…흥. 어차피 제 보지 없이는 못 사는 분이니, 이번 한 번만큼은 용서해드리겠습니다.”

“크하하…! 그거 고맙네.”

사실 거짓말이다. 실은 위에서 명령을 받은 세라가 나를 감시하기 위해 몸까지 바쳐가며 내게 반한 연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 그러니 잘난 내 모습에 반한 게 아니라 나를 속이기 위해 반한 척을 하고 있는 거다. …뭐, 그것도 이제는 진심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대신에 오늘 하루쯤은… 어제 그 여자에게 해준 것처럼 상냥하게 대해주세요. 그 정도면 만족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좋아 하루쯤은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좋겠지. 나는 여전히 내 멱살을 쥐고 있는 세라의 귀여운 손을 떼어낸 다음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러자 세라 역시 기뻐하며 나를 가득 안아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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