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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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빈자리가 느껴지는 커다란 침대 위에서, 로지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괴로워했다.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괴감과 죄책감이 밀려와 속이 쓰렸던 것이다.
분명 몸은 내줘도 마음은 줄 수 없다고 다짐까지 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스스로 남자에게 매달려 그의 사랑을 애원했으니… 로지나는 아곤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영주가 한 명의 남자로서 무척 매력적인 것도 맞았고, 그런 남자가 진심을 담아 애정을 표현해주는 게 한 명의 여자로서 무척 기쁜 일인 것도 맞았지만… 로지나가 그 남자의 마음에 화답을 해주어서는 안되었다. 그녀는 이제 막 새 신부가 된 아곤의 아내가 아닌가. 그러니 로지나는 여신과 아곤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마음을 거절했어야 했다.
‘아앙! 하아… 영주님! 하아, 키스… 으응! 키스 해주세요오!’
‘하아… 으응, 항… 더 많이… 영주님을 느낄 수 있게 안아주세요… 하아… 다른 건 생각 못하고 영주님만 생각할 수 있게… 하앙! 영주님으로 저를 가득 채워주세요!’
‘으으응! 하아… 아아, 행복해요… 영주님… 하아앙…’
하지만 로지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거절하기는커녕 그의 사랑에 행복해하며, 조금이라도 더 그에게 애정을 받을 수 있도록, 온몸을 사용해 그에게 아양을 떨었다. 마치 아곤이 아니라 그 남자의 신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미안해요… 아곤… 당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그렇기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어제의 일을 후회하며 힘들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아곤을 사랑하는 그녀였으니… 한순간이지만 바람을 피워 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여신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더럽혀지고 말았어요…’
‘미안해요 아곤… 당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사랑에 기뻐해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에요…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반성하고, 또 반성할 테니…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래서 로지나는 여신과 아곤에게 마음 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그 남자의 애정공세에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
방으로 찾아온 하녀장의 안내를 받고 욕탕으로 향한 로지나는, 어제처럼 하녀들에게 목욕시중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처럼 시끌벅적한 시간을 가지지는 않았는데, 그녀가 어제와는 달리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정색을 했기 때문이다.
‘다 들었어요. 호호.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지, 성 전체 다 울리지 뭐예요. 영주님 좋아요, 영주님 갈 거 같아요, 하고 말이죠.’
‘가슴이 하루 사이에 더 커진 거 같네요. 영주님께 잔뜩 만져져서 그런 걸까요?’
‘어머어머! 여기 안에 영주님의 자지가 들어갔던 거죠? 부러워라~ 엄청 좋으셨겠다~’
그 탓에 이런 식으로 어젯밤의 일을 가지고 로지나를 놀리려고 했던 하녀들은 입을 닫고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그녀들도 눈치가 있었기에 어딘가 심각해보이는 로지나에게 장난을 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주님은 어디에 가신 건가요?”
그러나 하녀들에겐 다행히도 로지나의 침묵이 끝까지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목욕이 끝나갈 때쯤 그녀가 은근슬쩍 영주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덕분에 하녀들은 이때다 싶어 근질근질했던 입을 열 수 있었다.
“영주님은 새벽부터 왕도에 가셨어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대요 거기서.”
“아…! 그 일 때문에 영주님께서, 직접 배웅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로지나 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었습니다.”
“어머, 세라 님! 그런 건 미리 말씀해주셨어야죠! 모르고 있었을 로지나 님이 불쌍하잖아요!”
“죄송합니다. 로지나 님. 경황이 없어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아뇨… 그런 일이 있었으면 깜빡할 수도 있죠… 사과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원하던 대답이었던 걸까? 하녀의 말을 들은 로지나는 굳은 표정을 풀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딱딱했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에는 한층 더 가벼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영주에 관한 질문을 했다.
“저기 있잖아요… 영주님은 다른 분들한테도 저와 같은 대접을 해주셨나요?”
그 덕에 그제서야 로지나가 저기압이었던 이유를 알게된 하녀들은,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로지나가 듣기에 좋은 이야기들을 앞다투어 꺼내놓았다.
“영주님께서 드레스를 선물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정원으로 데려가신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후후.”
“이번처럼 밝은 표정이신 것도 처음이었죠.”
“거기다가 따로 사과의 말까지 남기시고… 어머어머! 신기하네요. 다른 분들한테는 항상 냉정하셨었거든요.”
하지만 그녀들의 말이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니었다. 영주는 찾아온 신부 모두에게 친절했고, 그 중에 괜찮은 미모의 여인들은 모두 정원으로 데려갔으며, 항상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들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아하… 그, 그렇군요…! 아하하… 헤에… 제가 처음이군요…!”
그러나 그걸 알 수 없었던 로지나는, 역시 영주가 자신한테 완전히 빠져버린 게 맞다고 재차 착각을 하고는, 오늘 아침 그에게 가졌던 서운한 감정들을 모두 풀어버렸다.
***
목욕을 마친 로지나는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은 후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정돈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아… 흐, 윽… 하아… 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귀족 영애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여자가 거울 속에 있었는데… 품위 있는 화장을 지우고, 빛나는 장신구를 벗고, 평범한 드레스를 입으니 그 여자는 어디가고 너무나도 흔한 마을 처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아아… 다시, 또…”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텐데… 꾸몄을 때의 자신을 알아버린 로지나는 더는 그 모습을 하지 못하다는 것에 슬퍼했다. 장신구와 드레스를 선물로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앞으로 다시 외모를 꾸미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흐윽… 윽…”
그리고 생각해 보면 영주가 자신에게 반한 것도 자신의 꾸몄을 때의 모습을 봐서였다. 이렇게 평범한 자신이었다면 마음을 주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로지나의 마음이 더욱 더 울적해졌다.
물론 아곤의 아내인 로지나에게 그의 마음은 필요가 없지만, 그녀도 그걸 알지만… 그래도 살면서 처음 받아본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로지나가 쉽게 잊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봤자 다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쿵쿵쿵
슬픈 웃음을 지은 로지나가 다시는 함께하지 않을 인연은 그만 잊자고 생각하며 돌아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녀의 등 뒤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덕에 그녀의 마음이 쿵쿵쿵쿵 뛰고 말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로지나 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역시는 역시 역시였고 그녀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찾아온 건 하녀장이었고, 그녀는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로지나에게 떠날 준비가 됐음을 알렸다.
“저희는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로지나 님께서 편하실 때 나오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이건 영주님께서 남긴 편지입니다. 이것도 잊고 있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영주가 보낸 편지라는 말에 진정되었던 로지나의 가슴이 다시 뛰고 말았다.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남겼을 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절대 받아주지는 않겠지만 그가 자신에게 고백을 하면 어쩌지 하고 설레어 하며 로지나는 하녀장이 떠났음을 확인한 후 편지를 뜯어 확인했다.
[그대를 다시 만나고 싶네. 이런 적은 처음인데… 자꾸만 그대가 생각이 난 단 말이지. 그대의 체온, 그대의 향기, 그대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고. 그러니 책임을 지게. 부디 다시 나를 찾아오게. 그대가 원한다면 모든 것을 주겠네. 돈? 보석? 뭐든 좋네. 단 하루뿐인 유흥이라도 좋네. 그대만 볼 수 있다면 그런 것 따위 아깝지 않지. 그러니 부디 나를 찾아오게. 매일같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네.]
그리고 로지나는 마차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평범한 자신의 모습이라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 거라는 자신의 착각과는 달리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남자의 마음에 감동을 하며…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잊고서는…또 다시 그와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