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4)
* * *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어요.
오래 전부터 사랑했던 아곤과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했고, 정말로 아름다운 값비싼 드레스를 선물 받았으며, 평소에는 구경하지도 못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평생 동안 동경하던 동화 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니 오늘은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 멋진 하루일 거에요.
문을 열면 다가올 끔찍한 순간만 아니면요…
“하아아…”
아곤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오늘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제가 증오했던 남자에게……
제 순결을 바치는 순간만 아니면요.
“로지나 님, 이제 들어가셔야 합니다.”
“잠시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세요…”
아아, 영주님…! 당신은 대체 왜 이 악습을 부활시킨 건가요?
오늘 당신이 제게 보여준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은 정말 감사했지만, 그렇다고 당신께 제 처음을 드리고 싶진 않아요. 당신은 사랑하는 제 남편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그만 이 억지를 멈춰주시면 안될까요…?
“로지나 님. 날씨가 춥습니다.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마지막으로… 여신님께 기도를 드릴 시간을 주세요.”
“…하아, 빨리 끝내십시오.”
아아, 여신님…! 부디 저를 구원해 주세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움을 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어린 양의 순결이, 당신을 믿지 못하는 불신자에게, 더럽혀지지 않도록 저를 돌봐주세요. 제발 저에게 기적을 보여주세요…
“끝났어요…”
“그럼 저는 문을 열고 가보겠습니다.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꺼워보이는 영주님의 방문 앞에서, 저는 속으로 빌고 또 애원했습니다. 제발 이 일을 멈춰달라고요, 제발 저를 여기서 구해달라고요. 제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철컥
끼이이이익
그러나… 제가 바라던 일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 두 발로, 제 처음을 바치기 위해, 앞으로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 길 말고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터벅터벅
터벅, 터, 벅
하지만… 저는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영주님이 증오스러웠지만 여신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사실 순결 대신 돈을 택한 건, 다름 아닌 저니까요.
저는 제가 선택한 일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하아아…”
늦은 밤의 서늘한 공기가 속이 다 비치는 반투명한 슬립 드레스를 훑고 지나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왔는가.”
그리고 얼마 후 저처럼 속옷차림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영주님께 도착했습니다.
***
반나체의 영주님을 보자마자, 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습니다. 영주님께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근육질 몸매는 남자 경험이 없는 제겐 너무나 큰 자극이었습니다.
듬직해 보이는 넓은 어깨와 단단해 보이는 온몸의 근육들, 그리고 곳곳에 생긴 상처들 탓에… 가슴이 크게 떨렸습니다. 정말 야성적이고 전사다운 영주님의 몸에서 여자를 보호해주는 든든한 남자의 유전자가 느껴졌습니다. 같은 남자인데도 아곤에게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터라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크하하! 내 몸이 꽤나 흉하긴 하지. 하지만 전부 다 영광의 상처라네. 그러니 너무 그렇게 무서워 하지는 말게. 이게 다 프레하를 지키기 위해 생긴 것이니 말일세.”
부끄러워서 표정이 굳은 거지, 무서워 한 건 아니었는데… 제 얼굴을 보고 영주님이 상처를 받은 듯했습니다. 그게 죄송스러워 제가 어쩔 줄을 몰라 하자, 영주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거친 걸음으로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진 제가 벌벌 떨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 곳에서 제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워지는 영주님을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와락
“꺄아앗!”
“떨지 말게. 그대를 겁줄 생각은 아니었으니.”
“아으으… 저어…”
“그대를 생각하니 몸이 뜨거워져 이렇게 벗고 있을 수밖에 없었네. 크하하! 이게 다 그대가 너무 아름다워 그런 거니 탓하려면 그대의 미모를 탓하게.”
“우우…”
제게 다가온 영주님은 제가 저항을 해보기도 전에 저를 품에 안으시더니, 한 손으로는 제 허리를 감싸시고 한손으로는 제 얼굴을 쓰다듬으셨습니다. 그 탓에 한순간에 영주님과 가까워진 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아서일까요? 저를 감싸는 영주님의 단단한 몸과 그의 체향이 더욱 더 잘 느껴져 가슴이 쿵쿵쿵쿵 뛰고 말았습니다. 분명 불쾌해야 할 순간인데… 오늘 영주님이 보여준 다정한 모습들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연 건지 영주님에게 안긴 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흐음? 눈을 감는 건 이대로 키스를 해달라는 뜻인가?”
“아, 아니에요! 하앗! 가까워…”
키스라는 단어를 듣고 황급히 눈을 뜨자 바로 코앞에서 저를 바라보는 영주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덕분에 제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익어버렸습니다. 영주님은 민망하지도 않나요?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영주님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답군. 오늘 그대를 안을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야.”
“여, 영주님… 안돼요…”
“오늘 안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네.”
쪼옥
“하으으… 하아…”
키스는 안돼 라고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자 다행히 입술이 아닌 볼에서 영주님의 입술이 느껴졌습니다. 그 덕에 안심이 되어 살며시 눈을 뜨자 영주님이 제 머리와 볼을 쓰다듬어 주시며 저를 귀여워해주셨습니다.
“크하하! 뭘 그리 아쉬워하는가. 걱정말게. 오늘 그대가 원하는 건 모두 해줄 생각이니.”
아쉬워하기는 누가 아쉬워했다는 건지… 다정한 것과는 별개로 영주님은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듯했습니다. 그러니 애도 아닌데 이렇게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거겠죠. 물론 가끔씩은 이렇게… 애 취급을 받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지만 말입니다.
“하우… 그만하세요…
아곤과 함께 있을 때면 항상 제가 그이를 챙겨주는 입장이었습니다. 상단주면서 어쩜 그렇게 칠칠마지 못한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제가 신경을 써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때면 제가 아곤의 애인이 아니라 엄마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우으으… 그만, 하래도요… 하으…”
그런데 영주님의 앞에서는 한번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영주님께서 다정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때도, 듬직하게 저를 에스코트 해주실 때도, 애정을 담아 지금처럼 저를 안아주실 때도… 저는 영주님의 보살핌 받는 ‘여자’였지 영주님을 보살펴줘야 하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아곤과 있을 때랑은 다르게 말입니다…
“하아… 영주님…”
그만둬 달라고 제가 투정을 부리자, 허리를 감싸던 영주님의 손이 제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제 뒷목을 잡고는 저를 잡아당기셨습니다. 그 탓에 영주님의 단단한 가슴팍에 제 가슴이 짓눌려 무척 부끄러웠지만 힘이 없는 저는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앗, 하… 영주님, 하아… 으응…”
제 아랫배에 영주님의 뜨겁고 커다란 무언가가 맞닿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무언가가 얇은 제 옷 사이로 들어와 제 몸을 더 달아오르게 만들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지 말아 달라고 거친 말소리를 내뱉는 것뿐이었습니다.
“닿고… 하아, 있어요… 으읏, 그만… 부끄러워… 그만해주세요오…”
“크하하! 그만둬달라고?”
“네에… 하아…”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네. 그대가 너무 귀여워서 말이지.”
“하으읏?! 하, 하음, 츄읍, 하아… 아아, 키스, 츄르으… 츕, 하아… 안 되는데… 츄읍…”
하지만 영주님은 그것조차 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입술로 제 입술을 막은 후 천천히 제 입 안을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제 귓볼을 어루만지며 제가 영주님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시러, 하아… 츄릅, 츄르… 츄, 꿀꺽… 하아… 영주님 그만… 하아앙… 그마안!”
저항해보려고 제가 몸부림 쳐봤지만 그럴수록 옷이 벗겨져 영주님과 맞닿은 살결만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저는 거의 알몸이 되어 영주님께 매달린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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