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62화 (161/428)

〈 162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3)

* * *

영주는 정말 혐오스러웠지만 그와의 만찬은… 로지나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쁜 시간만은 아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요리들의 맛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맛있다’라는 개념을 비웃는 듯한 맛의 향연에, 로지나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을 숨기지도 못하고 요리를 음미하며 행복해했다.

“하음, 우물우물… 꿀꺽. …흐으음!”

“크하하! 입에 잘 맞나보군.”

“……네에.”

그 모습을 남들에게, 특히 영주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말로 민망한 일이었지만, 어차피 오늘 밤 그에게 훨씬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야하니… 로지나는 의미도 없는 내숭은 떨지 않기로 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군. 알렉스가 정말 좋아하겠어. 그렇지 않은가, 세라. 이거 알렉스한테 포상이라도 줘야할 거 같은데.”

하지만 영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싫어하거나 실망하는 기색 한 번 보여주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대신 음식을 만든 요리사를 칭찬하며 크게 기뻐했다.

그 탓에 식사예절도 모르는 촌스러운 평민이라고, 비웃음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로지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평민들을 엄청 깔본다고 들었었는데… 그것 역시 헛소문이었던 걸까?’

영주의 모습이 거리에서 떠돌던 그의 소문과는 완전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마침 무역로도 열렸겠다, 호른에서만 나는 식재료를 하사하면 좋아할 겁니다. 알렉스는 요즘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으니까요.”

“크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군. 역시 세라야. 그러면 믿고 맡겨도 되겠지?”

“네, 제 포상과 함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 포상은 왜?!”

“칫.”

물론 그 모습이 그녀를 속이기 위해 꾸며낸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저렇게 태연하게 장난을 치는 하녀장이나, 저들을 훈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다른 사용인들을 보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였다.

그래서 로지나는 처음과 달리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영주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로지나가 완전히 마음을 푼 건 아니었다. 사람이 좋아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는 교회를 비난한 불신자에 초야권을 부활시킨 악인이었으니, 여전히 쉽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하하! 식사는 괜찮았나?”

“네에… 맛있었어요.”

“그거 다행이군. 그러면 이제 소화할 겸 나와 산책이라도 가지 않겠나? 내 성의 정원이 꽤나 아름답단 말이지.”

그래서 그가 둘이서 함께 산책을 가자고 말을 꺼냈을 땐, 로지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사용인들 없이 단 둘이서만 남게 된다면 그의 음흉한 본성이 드러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와아… 정말이네요… 이렇게 예쁜 풍경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그녀의 예측은 또 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정원이 아름답다는 영주의 말은 진실이었고, 그녀를 리드하는 영주의 에스코트는 다정했던 것이다. 거친 말투와 거친 손길이 옥의 티이긴 했지만, 정원의 한가운데에 도착할 때까지 영주는 매 순간 신사다웠었다.

‘동화책을 보는 것 같아…’

언덕 위에 있는 정원의 중안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는 귀여운 그네 하나가 매달려있었다. 그리고 나무 주변에는 계절에 맞는 꽃들이 제 미모를 뽐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잘 어우러져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을 그려낸 것 처럼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이 그네에 타보겠는가? 이 시간대에 여기 앉아서 보는 경치가 또 예술이거든.”

“그럼… 실례할게요.”

“크하하! 지나치게 예의가 바르군. 실례하지 않아도 되니 앉아보게.”

로지나가 남자의 말 대로 그네 위에 올라타자, 이제 막 지기 시작한 해님이 만들어낸 노을빛 정원이, 커다란 그녀의 두 눈 안에 담겼다. 그 황홀한 광경에 로지나가 작게 경탄을 내뱉자, 그녀의 곁에서 서 있던 영주가 어째선지 신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이 그네에는 바람의 정령이 살고 있다네.”

“바람의 정령이요?”

“그래. 그런데 이 놈이 꽤나 여자를 밝혀대서 미인만 앉으면 바람을 불어 그네를 태워준다네. 참 재밌지 않은가.”

“아하하… 신기하네요…”

“이거 믿질 못하나 보군. 그러지 말고 한 번 믿어보게.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다보면 정령이 다가올 걸세.”

로지나는 영주가 유치한 짓을 한다면서 속으로 웃음 짓고는, 마지못해 그가 시키는 대로 그네 위에서 정령을 기다렸다. 남자가 정령인 척 하면서 그네를 밀어줄 생각인 게 뻔했지만, 그녀가 거절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어… 어어? 정말로?”

그런데…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어느 순간 그녀의 뒤편에서 작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크하하! 나타났구만!”

“정말인가요? 정령이… 꺄앗! 가, 간지러워요!”

그리고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의 몸을 간지럽혔다. 정말로 바람의 정령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대가 믿지 않아서 화가 난 모양이야. 빨리 사과하는 게 좋을 걸세.”

“어어… 죄, 죄송해요. 정령님!”

너무나도 동화 같은 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로지나가 뒤늦게 사과를 하자, 그제서야 기세를 멈춘 바람이 알겠다는 의미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끼이익, 끼익

“와아아! 어쩜… 이렇게 멋진 일이…!”

그리고는 남자가 이야기 해준 것처럼 그녀가 올라탄 그네를 밀어주며 그녀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해주었다.

***

역시 미인이라며 로지나가 민망해할 정도로 잔뜩 칭찬해준 영주가 잠시 후에 보자면서 그녀를 떠나가자, 아까까지 그녀를 안내해주던 하녀장이 찾아와 그녀를 다시 커다란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다른 하녀들을 불러 그녀의 화장을 지우고 옷을 벗기더니 호화스러운 욕탕으로 데려가 그녀의 몸을 씻겨주었다.

“하으으…”

그 탓에 저항할 틈도 없이 알몸이 되어 타인에게 몸을 허락해버린 로지나는 부끄러움에 몸부림쳤다.

“어머… 피부 좀 봐. 정말 예쁘네요.”

“가슴도 정말 커요… 당신 정말 평민 맞나요?”

하지만 하녀들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한 채 바로 앞에서 그녀의 몸매를 품평하며 그녀를 더욱 더 부끄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부러움을 담아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 마구 호들갑을 떨었다.

“저기… 저 혼자서도 씻을 수 있어요. 그러니… 하읏, 그만 해 주시면 안될까요?”

덕분에 온몸이 붉어지다 못해 완전히 새빨개진 로지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들에게 애원했다.

“안돼요. 이게 저희 일인 걸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잔뜩 만져지실 거면서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실까.”

“어머어머, 그러게 말이에요.”

“……”

그러나 하녀들은 끝까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로지나는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다들 영주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거리의 소문과는 너무 달라서요…”

대신 그녀는 이번 기회에 계속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다. 오늘 그녀가 느낀 영주의 인상이 자신만의 착각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소문들은 다 거짓인 거 모르세요? 영주님만큼 좋은 사람이 또 어딨다고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에휴.”

“외모가 너무 거치셔서 그래. 속은 정말 따뜻하신데 말야.”

“맞아맞아. 이번에 나 결혼기념일이라고 선물도 주셨잖아. 정말 다정하시다니까.”

그런데…다들 진심으로 영주를 존경하고 애정하는 게 느껴졌다. 그 덕에 오늘 그가 보여준 모습이 꾸며낸 모습은 아니란 걸 알게된 로지나는 자신의 바뀐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안심했다.

“그럼… 초야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악습이잖아요… 어떻게 신부의 첫날밤을 빼앗을 수 있나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초야권은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고자 그녀들에게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어머! 영주님이랑 첫날밤을 보낼 수 있다면 너무 좋죠. 그 분이 얼마나 잘하시는데!”

“거기다 돈까지 주잖아요? 싫을 게 뭐가 있어요. 오히려 포상이죠 포상.”

“돈이 뭐가 중요해요. 그 분과 하루 동안 연인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죠. 아아… 정말 오늘 보면서 부러웠다니까요.”

그러나 욕탕에 있는 그 누구도 초야권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녀들은 초야권을 위해서라도 결혼을 했을 거라고 농담을 하며 영주를 옹호했다.

그 탓에 분위기에 휩쓸린 로지나가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을 한 게 아닌가 하고 착각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혼란만 더해진 상태로 목욕을 마친 로지나는 하녀장이 건네 준 속이 다 비쳐 야릇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모순적인 란제리를 입고 영주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선 영주 역시 속옷 차림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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