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초야권을 행사하는 영주님(2)
* * *
너무나 따스하고 평화로운 어느 날 오후, 웅장한 교회에서 성직자와 마을 주민들의 축하를 받은 한 여자는 비참하게도 모두의 앞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순간인데도 그녀는 미소를 짓기는커녕 오열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그녀의 처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신부 로지나 양과, 신랑 아곤 군의 결혼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털썩
늙은 성직자가 입술을 깨물며 겨우 마지막 말을 내뱉자 흐느끼던 오늘의 신부가 그만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생각하기도 싫었던 끔찍한 순간을 맞이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절망으로 빠뜨린 것이다.
“로지나…! 괜찮아…?”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오늘의 신랑이 쓰러진 그녀를 부축하러 했지만, 원래라면 웃고 있어야 했을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고장난 인형처럼 멈춰버리고 말았다.
청순함으로 가득찼던 순수한 그녀의 눈동자가 안타깝게도 눈물로 얼룩이 져 있었고 노을 진 보리밭 같던 매끄러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져 그녀의 비극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지나…”
거기다 오늘만을 위해 준비했던 공들인 의상 역시 이미 그 아름다움을 잃고 있었으니… 남자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벌컥!
터벅터벅터벅
터벅터벅터벅
하지만 곧바로 다가온 비참한 현실에 남자는 다시 고개를 들어야 했다. 교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영주의 병사들이 이제는 아내가 된 그의 여자를 데려가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잠깐, 기다려! 잠시만 시간을 줘! 이렇게 바로 데려갈 것까진 없잖아!”
“영주님께 반항하는 건가? 우린 영주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죄인이 되기 싫다면 뒤로 물러서.”
“젠장…”
적어도 작별 인사를 할 시간만은 벌고 싶었기에 남자는 여자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자칫하면 죄인이 된다는 병사의 말에 남자는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아내를 넘겨주어야만 했다.
“로지나…”
“아곤… 흑, 흐으윽… 아고온!”
결국 남자는 결혼식을 올린 날, 사랑하는 아내와의 첫날밤을 보내기도 전에,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신부를 잃고 말았다.
단 하루의 이별이었지만… 그 하루는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평생동안 기억될 저주 같은 시간임이 분명했다.
***
로지나는 프레하의 영주를 미워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로지나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한 그를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도시에는 그에 대한 악소문까지 돌고 돌았으니, 영주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로지나가 프레하의 영주를 싫어하는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덜컹덜컹
하지만… 그럼에도 로지나는 그녀가 미워하던 그 남자에게 처음을 바치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식을 끝내자 마자 그의 성으로 향하는 마차에 탑승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그의 남편이 된 아곤을 위해서 말이다.
‘로지나! 망했어… 망했다고! 이번 상단 일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어! 북쪽 숲이 뚫리면서 계획이 모두 망가져버렸다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돈이 문제였다.
급작스럽게 프레하의 북쪽 숲이 개척되면서 호른과의 무역로가 만들어졌기에 아곤이 계획했던 중계 무역이 그 가치를 상실해버렸고, 그 탓에 빚까지 지면서 준비했던 상행이 망해버리면서 한순간에 아곤이 빚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그의 상단을 되살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한 두 푼이 아니라 상당한 거금이 말이다.
‘방법이 있어요 아곤…’
‘안돼, 그건 절대 인정 못 해. 이건 내 일이야. 내 빚은 내가 해결해.’
‘아니요… 아곤의 상단은 돌아가신 아저씨의 유지를 잇는 상단이잖아요…! 그러니 제 일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렇다 해도… 너를 그 인간에게 보낼 순 없어…’
‘저는 괜찮아요 아곤…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서이니, 분명 여신님도 용서해주실 거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서 초야권의 보상을 받기 위해, 로지나가 생각을 바꿔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아였던 그녀를 자식처럼 아껴주었던 아곤의 아버지와 이제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해진 아곤을 위해서 말이다.
‘여신님… 부디 오늘의 일탈을 용서해주시길…’
끼이이익
덜컥
“로지나 양, 도착했습니다.”
“…알겠어요.”
마지막으로 여신에게 기도를 바친 로지나는 굳은 얼굴로, 결혼식을 올린 교회보다 더욱 크고 장엄한 영주의 성 안으로 발을 들였다.
***
성 안으로 들어선 로지나는 생각 외로 밝은 저택의 분위기에 놀라움을 느꼈다. 만나는 사용인들 마다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덕한 영주 밑에서 매일 고통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로지나로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아…”
“로지나 양께 보내는 주인님의 선물입니다.”
“네에? …이게 선물이라고요? 맙소사…”
하지만 그런 의문은 안내 받아 도착한 방에 들어서자 마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에서 준비되어 있던 우아하고 기품있는 드레스가 로지나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정말 아름다워요…”
지금 그녀가 입고 있던 옷도 그녀의 평상복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비싸고 예쁜 옷이었지만, 눈앞의 드레스에 비하면 웃음만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로지나는 처음 가져보는 화려한 사치품에 정신을 차리질 못 했다.
“지금 바로 입어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문제없습니다.”
거기다가 이것 역시 선물이라며 그녀를 장식해준 빛나는 장신구들과 지금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녀를 새롭게 꾸며준 품격 있는 화장 덕에, 로지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꾸밈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어머… 이렇게나…”
가난한 평민이었던 자신이 거울 속에선 마치 품위 있는 귀족 아가씨처럼 보였기에, 로지나는 첫사랑을 알게된 소녀처럼 가슴 뛰는 설렘을 느껴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 예쁘시네요. 역시 오늘의 신부답습니다.”
“아…… 감사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다 그 영주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 로지나는, 웃음짓던 자신을 저주하면서 원하지도 않던 선물을 보낸 영주를 원망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 우울해지진 않았을텐데…’
가난했기에 애써 외면해왔던 여자의 본능을 뒤늦게 알게 된 로지나는 다시는 이런 행복을 즐기지 못할 것을 깨닫고는 풀이 죽어 뒤로 돌아섰다. 지금의 모습에 적응을 했다가는 평생동안 불행질 것만 같았다.
***
옷을 갈아입고 몸을 꾸민 로지나는 다시 한 번 안내를 받아 성의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서 영주를 만나 만찬을 벌일 예정이라고 하니, 로지나는 자신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대체 뭐가 좋다고 함께 식사까지 해야 하는 건지, 안그래도 우울해졌던 로지나는 속이 더부룩해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영주가 그녀를 보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녀를 반겨주었다.
“크하하하! 그대가 로지나인가? 정말로 아름답군!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여인 보다 아름다워! 그대가 평민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야. 이거,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군. 크하하하!”
‘으으… 이상한 웃음소리…’
괴상한 소리를 내며 크게 웃음 짓는 영주의 모습에 로지나는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했던 만큼 그가 두렵지는 않았는데, 도시에서 떠돌던 소문과는 달리 꽤나 매력적인 그의 생김새에 저항감이 덜 했기 때문이다.
오크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다더라, 고블린 보다 못 생겼다더라, 트롤만큼 덩치만 크다더라 등등 믿기 힘든 소문들의 공통점은 영주가 끔찍하게 생겼다는 것이었기에 로지나는 그의 모습이 상당히 못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영주는 비열하기 보다는 유쾌했고 사납다기 보단 쾌활했으며 전혀 못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듬직한 남성이었기에, 그야말로 영주라는 지위에 걸맞은 모습이라 호감이 갈 정도였다.
“크하하! 내 성에 온 걸 환영하네!”
하지만 로지나는 이내 곧 저 남자가 초야권이라는 악습을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속으로 그를 욕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라더니… 생긴 것과 달리 비겁한 짓을 벌인 저 남자가 로지나는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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