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세실리아
* * *
사실 현아를 깨운다고 해도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현아 얘, 꽤나 화나 있었잖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대화를 거부할 지도 몰랐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내 능력과 세실리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할 거 같은데… 어디까지 밝혀야 할 지가 걱정이 되었다. ‘히로인 네토리’라는 게 정말 특수한 능력이라, 함부로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모든 걸 다 털어놓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아랑은 매니저 계약도 한 사이잖아? 얘가 믿지 못할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사람인데, 숨기는 게 있으면 좋을 게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큰 맘 먹고 다 얘기를 하자고 결심을 했었다.
“과연… 그럼 그 몰래 카메라랑 도청 장치라는 것을 이용해서 아버지를 감시했다는 거군요?”
“네. 맞아요.”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아니, 이거야말로 진짜 반칙이잖아. 마법으로 정신을 조종한다고…? 잠에서 깬 현아는 세실리아의 박수 한 번에 최면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백제라도 먹은 것처럼 세실리아가 묻는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어떻게 현아의 입을 열 지 고민하던 내가 바보 같을 정도로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네요. 저 말고 다른 여자가 아버지를 감시하다니… 지금 당장 그 물건들을 다 가져오세요.”
“네. 알겠어요.”
이거… 계속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한테 최면을 걸었던 거 아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현아를 조종하는 세실리아를 보니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최면으로 무엇을 했는 지가 걱정이 되었…
“사실 이런 식으로 멜츠양이나 다른 여학우분들에게 암시를 걸어 아버지께 보냈었답니다. 테라피를 받으라고 말이에요. 저 혼자서는 아버지의 성욕을 다 감당하지 못 하니까요… 후훗. 저, 잘했죠?”
아, 그런 거였어? 역시 세실리아… 최면을 써도 그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참 효녀라니까? 나는 아버지의 성욕도 신경써주는 착한 딸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준 다음 잘했다고 칭찬하며 마음껏 안아주었다.
***
툭, 투욱, 툭
툭, 툭, 투욱, 쿵
쿠웅, 투욱, 툭
이것 참… 한 두 개가 아니었구나? 현아의 말이 진실인 걸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있었는데, 수많은 카메라들과 도청 장치들이 탁자 위로 쏟아지는 소리 덕에 그 말을 더는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 진짜구나, 정말로 이 집을 감시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세실리아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거구나, 하아… 나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며 무의식 상태에 빠진 현아에게 질문했다.
“현아야. 왜 이런 걸 설치한 거야?”
“불안했어요. 오빠가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요. 그래서 이걸로 오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빠한테 다른 여자가 있는 지, 다른 여자가 생기는 지도 감시하고 싶었고요.”
그랬구나... 현아는 한 번 배신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도 버려지는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웠던 모양이다. 안타깝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래서 매니저 계약도 했던 건데, 지레짐작해서 겁먹은 현아가 안쓰러웠다.
“의외네요. 이 분과는 연인 사이도 아니셨나 보군요.”
“으응? 어… 뭐, 그런 셈이지.”
“아버지답지 않네요… 오는 여자를 막는 분은 아니시지 않았나요? 이 분은 외모도 몸매도 아버지께 어울리는 분 같은데 말이죠.”
“응? 아니, 그게…”
현아가 꼴리기는 하지. 그런데 여기가 ‘히로인 네토리’의 세계도 아니고 현실인데, 꼴린다고 무지성으로 따먹기는 조금 그랬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애를 먹버하는 건 못할 짓이었고 책임지는 것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뭘 그렇게 망설이셨던 건가요? 아버지도 이 분께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실리아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서로 좋아하면 끝 아닌가? 뭘 그렇게 재고 있었던 거지. ‘히로인 네토리’라는 능력으로 무한히 강해질 수 있으니, 헌터로서 충분히 현아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현아에게 너무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이악물고 철벽을 치는 바람에 현아가 저 정도로 집착을 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어장 관리를 한 셈이잖아. 그러니 이 도촬, 도청 사건에는 나의 지분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리아… 네 말이 맞아.”
반성해야지. 현아가 자신이 유혹할 테니 기대하라고는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럴 거 없이 내가 먼저 고백을 해야할 거 같다. 더 이상 애가 망가지기 전에 말이다.
“후훗. 생각이 바뀌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면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현아 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응? 그러니?”
음… 뭘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를 보며 방긋 웃던 세실리아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현아를 마주보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이제와서 아까 일의 복수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현아 양? 당신은 정말 큰 문제를 저질렀어요. 그건 바로 아버지를 독차지하려고 했다는 거에요. 후후… 아버지께 다른 여자가 있는지 아닌지는 당신이 신경쓸 게 아니랍니다.”
…아,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예전부터 느꼈지만 세실리아는 얀데레 기질이 있으면서도 이런 쪽으로는 참 관대했다. 암시를 써서 나한테 여자를 직접 보낼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건가…? 얀데레이면서도 효녀인 세실리아가 참 고마우면서도 기특했다.
“그 누구도 아버지를 독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모두를 독점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니까요. 그러니 아버지께 당신 말고 다른 여자들이 생겨난다고 해도 불만을 가지시면 안돼요. 당신 같은 여자들은 그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만 만족하면 되는 거에요. 아시겠어요?”
“…네, 알겠어요.”
이거… 덕분에 마음 놓고 소피아나 위지혜도 현실로 데려올 수 있을 거 같다. 오늘처럼 기싸움이 일어날까봐 약간은 불안했었는데, 본인 입으로 저렇게 말할 정도면 데려 온다고 해도 별다른 트러블은 없을 거 아닌가. 이렇게 암시에 걸리면 현아 역시 불만이 없을 거고 말이다.
후우,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일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거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말이에요… 아버지의 여자들 중에서 첫 번째는 바로 저, 세실리아랍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저를 부를 때 언니라고 부르셔야 해요. 아시겠어요?”
“……네, 언니.”
“후훗. 좋아요. 그러면 됐어요.”
뭐야, 귀엽네 진짜. 정말로 언니 취급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할 정도면 말이다. 나는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세실리아를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었다.
“잘했어. 리아.”
***
얘기를 끝내고 현아와의 일을 마무리를 한 우리는 현아를 다시 재우기로 결정했다. 세실리아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지금, 현아에게 시간을 쏟을 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대신 우리는 앞으로를 위해서 현아의 기억을 약간 조작했는데, 세실리아가 돌아가면 현아에게 고백을 할 생각이라, 현아가 도촬, 도청을 한 사실을 없애기로 했다. 그 편이 모두를 위해서 더 나을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세실리아의 도움을 받아서, 현아가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가 생각을 바꾼 걸로 기억을 수정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탁자 위에 술판을 벌인 다음 현아가 술에 취해 잠든 걸로 현아에게 암시를 걸었다. 현아가 일어나서 느낄 기억 속의 위화감들을 술 때문에 하게된 착각들로 속이려고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흐끅, 하으… 아빠아… 나빠요… 제가 있는데도 또 다른 여자를… 히끅…”
…라고 생각하던 적이 저도 있었습니다.그런데 세실리아가 제가 말리기도 전에 궁금하다고 소주를 입에 가져다 대지 뭐에요? 하하, 그래서 이번 기회에 주도를 좀 가르쳐 볼까 했더니…
“안되겠어요… 흐읏, 흐… 저 말고는 다른 여자 생각을 하지도 못하도록 만들어 줘야겠어요… 흐끅… 자, 빨리 자지 세우세요!”
완저니 꽐라가 되어서 저를 덮치지 뭡니까. 하하… 하…
“하앙! 하… 이 자지… 내 껀데… 왜 자꾸 다른 여자한테 주려고 하는 거에요… 히잉…”
“리아야. 정신 차려…”
“멀쩡하거든요? 흥! 보지 안에 넣었으면 허리나 흔드세요!”
“리아야 제발…”
“하아앙! 핫, 하앙… 이 자지! 못된 자지! 제 보지로 만족하란 말이에요! 하앙, 아앙!”
덕분에 아침이 되어 세실리아가 역소환 될 때까지 잠도 못자고 세실리아에게 계속 뽑히고 말았다. 하아… 다시는 못 마시게 해야지. 설마 술에 취하면 저렇게 고집쟁이가 될 줄이야.
그래도 숨겨왔던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좋았다. 역시 아닌 척 하면서도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끝까지 괜찮은 척을 하다니… 진짜 착하다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