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42화 (141/428)

〈 142화 〉 로맨스 판타지(27)

* * *

“조용히 해 주세요. 한 마디만 더 들으면 저 자살 할지도 몰라요.”

“으응…”

“거기 있는 옷 주세요.”

“어어… 자, 여기.”

사람이 한계 이상으로 수치심을 느끼면 이렇게 뻔뻔해지는 구나? 민망해야 할 것도 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도 나지만 정작 이렇게 되고 나니 더는 창피하지 않았다.

대신… 오히려 화가 났다.

꼭 그렇게 꼽을 줘야 했나? 그냥 좀 모르는 척 해주지. 먼저 말 안 했으면 끝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을 거 아냐. 그리고 말야.

“그냥 좀 박아주면 안돼요?”

“…뭐?”

“선생님 고자에요? 저 정도 되는 여자가 먼저 다리 벌려 주면 고맙다고 박아야죠. 그걸 참아요?”

“……루이나 양?”

“아, 뭐요. 그렇잖아요. 제가 뭐 걸레도 아니고. 선생님이면 제 처녀 줄 수 있으니까 꺼낸 말인데. 그냥 좀 박아주지 그랬어요.”

“어어…”

“하, 몰라. 짜증나. 저 갈게요. 당분간 안 올 거니까 찾지도 마요.”

아니 맞잖아. 아카데미에서, 왕도에서, 이 루이나 오베르 보다 예쁜 여자가 어딨다고 내가 주는 처녀를 마다해. 이거 완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구.

딸 처녀는 맛있게 따먹어 놓고서는 나는 안되냐? 어? 안되냐고, 이 근친충새끼야! 솔직히 만질 거 다 만졌다는 건 야한 짓은 안된다는 암시가 풀렸다는 소리잖아. 근데 박기 전에 멈춘다고? 어이없어. 솔직히 이해 안 되거든?

뭐? 처녀면 자기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지랄. 보지 안쪽까지 손가락으로 다 쑤셔놓은 남자가 할 말이냐! 별꼴이야 진짜. 괜히 기대했었잖아.

“루이나 양…”

“아, 뭐요.”

후우… 한바탕 터뜨렸더니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린다. 그 탓에 다시 수치심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자살 마렵기 전에 도망가면 되겠지. 그리고 오늘 침대에서 밤새도록 이불킥을 할 거같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어차피 가만히 있었어도 답답함에 힘들었을 거잖아? 흥, 그러니 풀 수 있을 때 풀어놓는 게 맞…

­꽈악

“미안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지? 정말 미안해.”

“…선생님?”

…는데 이 남자 지금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이렇게 안아준다고 내가 화를 풀 거같아? 전혀 아니거든? 전혀… 아니라고…

“나는 그저 루이나 양이 조금 더 온전한 상태에서, 이렇게 급작스러운 고백 말고 준비가 된 고백을 하길 바랐어. 그게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 말야. 그런데 그 바람에 루이나 양의 기분을 상하게 해버렸네. 미안해… 내가 나빴어.”

이건, 반칙, 이잖아. 나처럼 남자 경험 없는 여자한테 그렇게 상냥하게 말하면서 이렇게 진하게 스킨십 하는 건 반칙이라구. 아아… 안되는데… 너무… 좋잖아. 완전 포근해. 품 안에 안긴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구나.

치료 중에 당하던 일방적인 애무와는 차원이 달랐다.

단단한 그의 가슴팍이 주는 듬직함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이 남자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해해주고 아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득 안고 있는 남자의 상냥함이 느껴져서 희미하게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상긋한 그의 체향과 지척에서 들리는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부풀어오른 내 마음을 증폭시켰다. 분노는 사라지고 애써 부정하던 그에 대한 애정이 마음속에서 싹피었다.

나이 차 나는 아저씨에, 무서운 마녀의 아버지고, 소설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정말… 나빴다구요… 흑, 흐윽…”

“루이나 양… 미안해.”

그 사실을 인정하자 어째선지 울음이 터져나왔고 그런 나를 보고 그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주었다. 뭐냐고 진짜… 애 취급 하고 있어.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럼에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헤헤… 드디어, 사랑을 해보는 구나.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그렇게 원하던 사랑… 나도 드디어 모솔 탈출이야. 남부럽지 않은 남자와 이대로 죽을 때까지 평생 행복하게…

“후훗. 사이좋아 보이시네요. 두 분.”

살 수 있을까?

마녀가 나타났다.

살려줘.

***

웬일로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더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야.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났으면 거기에 만족하고 대충 시우나 붙잡고 살았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보게 되었다.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딸 주제에 진심으로 자기 아버지를 사랑해서 암시까지 걸어 자기 처녀를 바친 극한의 근친충, 그리고 원작에선 복수에 미쳐 몇 번이나 학살극을 벌인 미친 마녀.

그래, 살려줄 리가 없구나.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여자인데 자기 남자를 유혹한 나 따윈 바로 끔살해버리겠지. 생각할수록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하아… 기껏 처음으로 사랑을 해 봤는데… 여기서 끝이라니. 짧더라도 굵게 살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

제발 신님. 살려주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그냥 시우 데리고 잘 살게요. 그러니 제발 이 마녀로부터 저를 살려주세요.

“후훗. 아버지는 잠깐 비켜주시겠어요? 오베르 양과 둘이서 할 말이 있어요.”

신은 죽었다.

***

“…네?”

“어머? 못 들으셨나요? 그러니까, 제가, 오베르 양의 사랑을 도와드리겠다고요.”

“…..진심일까요? 너무 믿기 힘든 얘기라 세실리아 양의 진의가 궁금하네요.”

신은 역시 존재했어. 감사합니다!

이 마녀가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의 태도를 보면 나를 죽일 생각은 아닌 거같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후훗.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인기가 꽤 많으시거든요. 벌써 들어온 선 자리만 해도 열 손가락이 넘는다고 해요.”

“…어머, 놀랍네요.”

“그런데 말이죠. 별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모두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들이에요. 다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는다고 할까요?”

“……어머. 그렇… 군요.”

지금 저거 나한테 하는 말일까? 마녀의 눈웃음을 보자 소름이 끼쳤다. 에이 아니겠지? 분위기 좋은데 아니겠지…?

“그래서… 다른 날파리들이 달라붙기 전에 아버지의 옆자리를 채워주고 싶거든요. 아버지에게 걸맞은 멋진 여성분으로요.”

“그게 저라는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렇답니다. 후훗.”

아, 그거구나. 왜 그런가 했네. 겉으로 세울 사람이 필요한 거구나. 이제야 알겠다. 부녀 관계라서 대놓고 부부생활을 할 수는 없으니까 보여주기 식으로 나를 아내로 만들 생각인 거다 이거.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일이다. 짜증나. 나를 돕는 척 하면서 가지고 놀겠다는 거 아냐. 이대로 그와 결혼하면 옆에 달라붙어서 그를 가로챌 거다. 그리고 바깥에 일이 있을 때만 그를 빌려줄 거다. 나는 그저 쇼윈도 부부가 되는 셈이다.

“…세실리아 양이 저를 그렇게 좋게 보고 계셨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굉장한 영광이에요.”

“어머? 항상 동경하고 있답니다. 오베르 양은 모든 아카데미 학생들의 우상인 걸요.”

입에 발린 소리 하기는. 네 거짓말 따위 내가 속을 줄 알아? 흥.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네. 죽기 싫으면 받아들여야지…

나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마녀에게 화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화사하게 웃음꽃을 피웠다. 참… 유전자 하나는 뛰어난 부녀라니까.

어쩌면 나는 이제 평생을 이 부녀와 함께 보내야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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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버지는… 대단하세요. 그렇게 고고하고 도도하던 오베르 양도 아버지 앞에선 다리를 벌리고 아양을 떠는 암컷이 되는군요?

멋져… 설마 이렇게 빨리 함락시키실 줄은 몰랐는데…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대귀족 오베르 가문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겠는 걸요? 후훗. 오베르 양과의 약혼을 빌미로 말이에요.

후후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오베르 양은 이미 아버지께 푹 빠져 있으니깐요. 그녀는 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고 오베르 가문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에요. 그렇게 모든 건 아버지의 힘이 되어줄 거에요.

아아…! 희박했던 가능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어요. 아버지.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처럼만 하고 계신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저희의 사랑을 부정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거에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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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기 전에 그린 루이나 오베르 러프입니다.

로판답게 예쁘게 그리고 싶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완성할 엄두가 안나네요.

완성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끼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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