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로맨스 판타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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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세계로 들어오기 전에 고민했던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된 지금, 나는 정말 제대로된 힐링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대로 세실리아가 졸업할 때까지는 이 페이스를 유지할 생각이다. 뭐, 졸업 시즌이 되면 결혼이나 이런 걸 준비한다고 조금 바빠지겠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의 재미가 있을 테니 기대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불안한 게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알 수 없는 남주들의 행방이다.
아니, 이거 로판이잖아? 그래서 주인공이 여자인 거잖아? 근데 왜 남주들이 안 보이냐…? 이거 이상하지 않아?
이번 세계관에서 함락시켜야 할 대상은 루이나 오베르, 즉 나는 미션을 깨기 위해 남주들에게서 그녀를 네토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그녀 주변에는 내가 제쳐야할 남주들이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아니 로판이면 황자라든가 마탑주라든가 북부대공이라든가 그런 잘난 애들이 나와서 여주한테 집적거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밀실에서 여주를 치료하는 양호교사가 남자라는 소리를 듣고 나한테 찾아와서 시비를 걸든가 경고를 하든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안 나타나지?
왜 루이나 오베르 옆엔 남자가 없는 거지?
뭔가… 뭔가 이상한데?
조사를 안 해본 건 아니다.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거나 재직중인 엘리트 남캐들의 정보를 은글슬쩍 알아봤었다.
하지만 그들 중 남주로 보이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력한 후보는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바로 로판의 단골 남주인 왕자와 그 호위기사다.
두 사람은 상급귀족인 루이나 오베르와 친분이 있을 신분이며 아카데미를 함께 다니는 동급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연히 둘다 남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는 게이였다…
지나치게 상냥하게 호위기사를 챙기는 왕자와 그 왕자를 필요이상으로 가까이서 보좌하는 호위기사, 부녀자들이 환장하는 조합의 두 사람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이커플이었다.
아니 그런 루머가 아카데미에 퍼져있긴 했었어. 둘만 있으면 깍지를 끼고 다닌다더라, 파티에서도 항상 둘이서만 춤춘다더라, 대련을 끝내고 같이 샤워를 한다더라,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대련을 한다더라 등등의 소문 말이야. 그걸 나는 당연히 개소리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진짜더라고…
“왕족의 호위기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오늘의 일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진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고…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에서 둘이 개짓거리를 하고 있더라고… 어우 다시 생각해도 PTSD 올라오네.
아무튼 그래서 둘은 남주가 아니었다.
근데 그러면 대체 누가 남주인 거지…?
아, 루이나 오베르 근처에 남자 하나가 더 있긴 하다. 그녀의 소꿉친구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펙이 많이 떨어져서 후보에서 제외했었다. 얼굴만 잘생긴 샌님이라던데… 이름이 루시우스 헤세였나?
잠깐, 루 시우 스라고…?
에이, 설마…
아니지?
또 시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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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아으으으… 짜증난다고…!!!
오베르 가문 정도 되는 대귀족 집안의 여식이라면 아카데미 안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아침부터 그런 소문들을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왕자님이 또 그 호위기사와 단둘이서 외출했다고 해요.”
“외출이 아니라 외박이래요. 아침에 담을 넘는 두 분을 본 사람이 있다지 뭐에요.”
“어머머!”
나를 위해 소문을 모은다고 고생해준 건 고맙지만… 두 사람의 그런 소문 따위 듣고싶지 않았다.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상해버렸잖아… 하, 짜증나.
차라리 원작대로 아리아 멜츠와 꽁냥거리는 둘이라면 이해라도 될텐데, 갑자기 숨겨왔던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남주들의 꽁냥거리는 모습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거야… 왜 남주들이 게이가 된 거냐고…!
나쁜남자 답지 않게 주인공과 손을 잡았다고 부끄러워하며 갭모에를 보여주던 왕자는 호위기사와 깍지를 끼고 다니고,
언제나 진지한 얼굴로 남이 민망해하든 말든 일직선으로 대쉬를 하던 호위기사는 왕자에게 그 표정을 보여주고,
원작과는 너무나 달라진 두 사람 때문에 정말 짜증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돌려줘, 내 최애캐 돌려달란 말이야!
왜 왕자가 나한테 ‘이거 진한테 선물로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울릴까?’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데!
왜 호위기사가 나한테 ‘부탁이 있다. 잠시 시간 되나?’ 라며 연애상담을 요청하는 걸 들어야 하는 건데!
왜, 대체 왜! 혹시 원작이 아니라 2차 팬픽에 빙의 한 거야?!
제목 앞에 [BL]이 붙은 2차 창작에 들어온 거냐고…!
하아, 정말이지… 안그래도 불치병 치료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신경 쓸 게 하나 더 늘었다.
갑자기 나를 배려해준다면서 치료 방법을 바꾸는 바람에 치료 속도가 더뎌졌는데, 이러다가 저주가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거 아니야? 그럼 다시 성추행에 가까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으으…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해 그걸. 완전 변태라고 생각할 거 아니냐구…
“하읏…”
상상만 해도 민망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또 보지가 핥아지는 걸 당할 수는 없잖아. 물론 엄청 기분 좋았고 그대로 보지 안을 손가락으로 쑤시는 것도 엄청 짜릿했지만… 가슴이 주물러지고 유두가 꼬집히는 것도 아찔했지만… 그리고 분명 자, 자지로… 클리를 비비는…
“루이나? 갑자기 왜 그래?”
“꺄아앗!”
“미, 미안! 놀래키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길래 궁금해서…”
“시우야… …아무 것도 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그래.”
“내 이름은 루시우스래도…”
하아… 또 그 남자에게 만져지는 상상을 해버렸다. 최근에 만져주질 않아서 그런지 자꾸 혼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버린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처음 느껴보는 성적 쾌감이 너무 기분 좋아서 중독되어 버린 거같다.
정작 당사자는 다시 해줄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역시, 세실리아 아실이 찾아와서 내게 말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거겠지? 그게 아니면 남자가 갑자기 방법을 바꾼 게 말이 안됐다. 만질 거 다 만져놓고서 갑자기 태세전환이라니 어이가 없잖아.
아마 치료받는 걸 멈추라는 그녀의 부탁을 내가 거절하자,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 말을 한 거겠지. 제발 그 변태짓만은 멈추라고 말이야.
그녀의 그런 행동도 이해는 간다. 아버지가 자기 또래의 여자를 성추행 하는 걸 알게됐는데 화가 났겠지. 원작의 그녀를 생각하면 죽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근데 있잖아… 내 입장에선 그거 오지랖이다? 방법이 조금 그래서 그렇지 어디까지나 치료행위였다고. 실제로 효과도 있었고. 남이 나서서 강제로 멈춰야하는 성추행이 아니란 말야.
치료를 즐기는 바람에 자괴감을 느껴서 저주를 악화시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잘못인 거고 그 남자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찾아가서 굳이 꼽을 주다니… 역시 마녀라니까… 아버지의 체면 따윈 신경도 안 써주는 거냐?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덕배 아실, 웃기는 이름과는 달리 남주들에게도 꿀리지 않는 외모와 상냥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은 인물이다. 아마 원작에서도 자살하지 않았다면 서브 남주이지 않았을까? 가까이서 지내보니 그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 아니 나 왜 그런데… 정신 차려. 매력은 무슨 매력이야 아저씨인데. 목숨 구해줬다고 반한 거야? 그런 일차원적인 클리셰는 극혐이라구…
하, 주변의 남주들이 맛이 가는 바람에 마녀의 아버지한테나 눈을 돌리고… 참 못할 짓이다. 원작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좋지만 원작과 다른 게 너무 많잖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기 루이나…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런데. 양호교사한테 치료 받는 거… 그거 괜찮아? 듣기로는 그 선생이 조금 경박하다고 해서 말야… 찾는 여자도 많고 양호실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린다고 하고…”
“전혀. 절대로. 너가 상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어떻게 소문만 듣고 사람을 판단할 수가 있어? 그 선생님 덕분에 나 완전 건강해진 거 너도 잘 알잖아.”
“어, 어어? 그건 그렇네. 하하… 그냥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랬어. 미안…”
이것 보라고! 그나마 남은 남주가 얜데 이렇게 찌질하다니까!
원작 볼 때도 마음에 들지 않던 캐릭터였는데 실제로 겪으니 더 별로야. 마음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어. 뭐가 강아지 남주인 건데! 이런 애한테 함부로 강아지란 단어 붙이지 마라구 진짜…
작품 안에서면 몰라 현실에서 저렇게 불쌍한 표정 짓고 있으면 동정은커녕 화만 난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뭐 어쩌라는 건데. 위로해달라는 거야 뭐야. 얼굴만 잘생겼으면 다냐? 잘생겼는데 성격도 좋은 남자도 있거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러지…
아, 진짜 난 또 왜 이러는 거야…
욕구불만인가…
내 몸을 만지던 남자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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