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32화 (131/428)

〈 132화 〉 D컵이 내게 집착한다(14)

* * *

부스스한 붉은 머리카락과 아직도 졸려보이는 반쯤 감긴 눈,

부드러워보이는 하얀 살결과 귀여운 얼굴과는 대비되는 거대한 가슴,

그리고 은근슬쩍 보이는 분홍빛 유두…

유두?!

“잠깐, 야! 현아야 너… 유두 보이잖아!”

나는 현아가 보낸 셀카를 확인하다가 그녀의 노출을 확인하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조심해야지… 남자친구도 아닌데 이런 노출사진을 보내면 어떡해!

추가로 연락이 안 오는 걸 보면 아직도 모르는 눈치인데…

이걸 알려줘야 하나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알려주는 것도 뻘쭘한 일이고 안 알려줬다가 현아가 뒤늦게 깨닫는 것도 뻘쭘한 일이었다. 왜 모르는 척 했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단 말야. 그렇다고 지금 얘기하는 것도 겁나 민망하고. 하… 이거 완전 가불기인데…

“에휴, 일단 처리부터 하자.”

한숨을 내쉰 나는 현아의 사진을 저장한 다음 백업 폴더로 옮겼다.

“앗, 잠깐… 설마?”

그러다가 문득 충격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아 얘 사실 알면서 보낸 거 아니야?”

왠지 현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같았다. 매니저 얘기를 꺼낸 이후로는 많이 줄었지만 워낙 내게 집착하던 아이였거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에이 자의식 과잉이겠지.

‘히로인 네토리’를 너무 돌아다녔더니 현실감각이 떨어진 모양이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현아에게 연락했다.

역시 모르는 척 보단 알려주는 게 맞는 거같다.

[나: 현아야… 보내준 사진 다시 한 번 자세히 봐볼래?]

[이현아: 후훗, 이쁘죠? 아침에 기운 내시라고 보내봤어요.]

[이현아: (고양이가 귀엽게 웃는 이모티콘)]

[나: 아니 이쁘긴 한데… 조금 민망하달까?]

[이현아: 아저씨도 참! 숙맥인 척 하지 마세요. 이 정도가지고 뭘…]

[이현아: 꺄아아앗! 삭제! 삭제 하세요! 설마 저장 안했죠?!]

[나: 설마 했겠냐;]

[이현아: 진짜죠? 믿어도 되는 거죠? 우씨… 어떡해…]

[이현아: (고양이가 좌절하는 이모티콘)]

[이현아: 아저씨가 책임 지세요! 진짜아아! 우으…]

그래, 그러면 그렇지.

알고 보냈을 리가 없지.

현아의 반응을 보니 정말 몰랐던 거같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생각이나 하고… 크흠!

나는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며 큰 화면으로 현아의 셀카를 감상했다.

***

해프닝이 있었지만 현아의 셀카는 멈추지 않았다.

뭐야, 오늘따라 굉장히 적극적이네?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이현아: (거울을 보고 옷을 든 채 몸에 대고 있는 사진)]

[이현아: (거울을 보고 다른 옷을 든 채 몸에 대고 있는 사진)]

[이현아: 아저씨! 어떤 옷이 더 예쁜 거같아요?]

다만… 이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백화점에 간 것처럼 피곤함이 몰려왔다.

솔직히 둘 다 똑같이 어울린단 말야.

멈춰! 이런 고문은 멈추라고!

[나: 맨날 보이쉬한 옷만 입고 다녀서 잘 몰랐는데 원피스 쪽도 잘 어울리네. 색깔도 너랑 잘 맞고. 갠적으론 후자가 좀 더 나은 거같아.]

[이현아: 와!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역시 우린 잘 통하네요! 히히]

[이현아: (고양이가 귀엽게 웃는 이모티콘)]

하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자유를 찾은 건, 강제로 시작한 ‘현아한테 어울리는 패션 이상형 월드컵 16강’이 끝난 뒤였다.

[이현아: 짠! 우승을 차지한 원피스의 착샷이에요! 어때요?]

[이현아: (고양이가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보는 이모티콘)]

[나: 옷이 날개가 아니라 현아가 날개네]

[이현아: 뭐야 그 식상한 말은! 진심이 안 담겨있잖아요!]

[이현아: (고양이가 화내는 이모티콘)]

[나: 아니 진짠데…]

[이현아: 흥! 벌로 제 사진 저장해서 배경화면으로 해 놓으세요! 검사할 거니까요!]

[나: 솔직히 처음엔 모델사진인 줄 알았어. 피팅모델 해도 되겠던데? 디자이너가 그 옷을 만든 건 분명 지금의 너를 상상하고 만든 걸 거야.]

[이현아: 우엑! 느끼해요! 아하하 아저씨 필사적인 거 너무 웃겨.]

[이현아: (고양이가 배 잡고 웃는 이모티콘)]

나보고 어쩌란 거야!

솔직히 따라가기가 벅찬 텐션이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사랑보단 먼 우정보단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우리였는데…

오늘 현아의 태도는 마치 여자친구 같았다.

“혹시 나 때문인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원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 자의식 과잉 아니라고. 이건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평소엔 내가 현아를 밀어냈었거든.

현아의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동정심만으로는 그녀를 책임질 수 없었기에 이럴 땐 칼같이 쳐냈었다.

그런데 오늘은 간만에 보는 그녀의 살가운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아침에 본 그녀의 노출로 무장해제가 되기도 해서 냉정하게 대하질 못했다.

아마 그래서 저렇게 신난 걸지도 모른다.

흐음…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굳이 왜 밀쳐냈나 싶기도 하다.

현아 정도면 내게 과분한 여자인데 말야.

태도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현아: 아저씨 오늘 날씨 되게 좋아요! 이거 봐요!]

[이현아: (푸른 하늘을 찍은 사진)]

[이현아: 이런 날에도 계속 집에 있을 거에요? 이 폐인!]

[이현아: (고양이가 비웃는 이모티콘)]

아니 근데 얘는 진짜 하루종일 사진을 보내네?

일어나자마자 셀카, 씻고 나와서 셀카, 옷 고르면서 셀카, 옷 입고 셀카, 화장을 마치고 셀카, 밖에 나와서 셀카, 차 타기 전 셀카, 빨간불에 셀카,

셀카, 셀카, 셀카,

셀카!

보내는 족족 저장을 하고 있기는 한데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그 덕에 오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완전히 집순이인 그녀가 아침일찍 일어나서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서, 어딘가의 목적지로…

“잠까만, 뭐야 이거?”

현아가 보낸 사진을 처음부터 하나씩 넘겨보는데 뭔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 탓에 알 거 같으면서도 벽에 막힌 기분이 들어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뭐지, 아 뭐지 이 기시감은.

­까똑!

그러다가 그녀가 보낸 또 하나의 셀카를 보고 나서야 이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현아: 짜잔! 지금 제가 어디게~요? 정답을 맞춘 아저씨께는 특별한 상품을 드립니다!]

[이현아: (주차장에서 자차와 함께 찍은 셀카)]

[이현아: (고양이가 귀엽게 웃는 이모티콘)]

[나: 여기 우리집 근처 주차장이잖아. 너가 자주 주차하던]

[이현아: 헤헤… 정답이에요! 상품은 만나서 드릴게요!]

그렇다. 그녀의 목적지는 우리집이었던 것이다.

아니, 올 거면 말이나 좀 하고 오지!

뒤늦게 눈치를 채고 허겁지겁 집을 치우기 시작하자

­띠잉…

­똑똑똑, 똑똑똑

현아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저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

“히히, 서프라이즈~! 어때요, 놀라셨죠?”

그래, 설마 집으로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어쩐지 오늘 아침부터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더니 그때부터 만나러 올 생각이었구나… 이제서야 그녀의 업텐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찾아온 거지? 단순히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텐데…

“짜안! 정답을 맞추신 아저씨께 드리는 한우랍니다!”

아, 한우는 인정이지.

나는 웃으며 그녀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

“하으으… 역시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요리가 제일 맛있어요…”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야?”

“맛있으면 0칼로리라고 하잖아요! 상관없어요.”

“그, 그렇구나…”

식사를 마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나른한 시간을 가졌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표정을 보니 무슨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먼저 말을 꺼내기가 조금 그랬다.

“아… 행복해요.”

“그렇게 맛있었어?”

그래서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는데

후르륵 한 모금 커피를 마신 현아가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그건데… 우리 오늘 연인 같지 않아요?”

­푸흡!

“콜록콜록!”

“아하핫, 뭐야 그 반응은. 꼴사납게 뭐에요.”

“아니, 그게…”

“농담!”

“야!”

“…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

진짜 따라가질 못하겠네. 쥐흔당하는 게 이런 걸까?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현아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게 썩 나쁘지는 않달까…

애정을 가지고 내게 들이댄다는 게 느껴저서인지

짜증이 나기보단 오히려 그런 현아가 사랑스러웠다.

이거… 타이밍인가?

맞지?

그럼…

“후후, 이 이야긴 나중에 해요. 사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이것 때문이거든요.”

아쉽게도 자의식 과잉이었다.

현아가 내게 건넨 것은 매니저 계약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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