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118화 (117/428)

〈 118화 〉 노예 파티의 주인이 되었다(11)

* * *

“그렇게 된 거였구만.”

“후우…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만… 솔직히 타이밍이 조금 아쉬워요.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 때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도 했었고요.”

“아하. 그래서 어색하게 군 거야?”

“하하하… 티 났나요? 수빈이한텐 미안하지만 솔직히 아직 준비가 안됐어요. 제가 한 말도 못지키고 도움만 받고… 많이 멀었죠.”

공개 섹스를 끝낸 나는 시우를 따로 불러 이수빈과의 관계에 대해 들었다. 둘의 사이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했는데, 듣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중반 부터는 모두 흘러 넘겼다.

하지만 핵심은 기억하고 있다.

이수빈이 재벌 3세라는 것과 지금은 시우와 헤어진 사이라는 거다.

보아하니 열등감에 이별하게 된 모양인데 정말이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재벌 여친이 회사에 오라는데도 거절하고 집 사주고 차 사준다는데도 거절하고 뭐하는 짓이냐고 대체.

나라면 냉큼 얻어먹고 아싸리 임신까지 시켜서 절대 놓치지 않았을텐데 우리의 호구 주인공 시우에게는 그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나 보다.

뭐? 너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남자가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정말이지 기가 차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재벌 3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있는 건데? 자존감이 너무 강해도 문제라니까.

아니면 드라마 같은 일이라도 겪은 건가? ‘너 같은 놈팽이한테는 내 딸을 줄 수 없으니까 이거나 먹고 떨어져!’ 같은? 그렇다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였으면 그렇다 할지라도 절대 안떨어졌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에 지금은 헤어져있는 상태라고 하니 나한텐 편리한 상황이었다. 둘이 붙어 있었다면 네토리 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그럴 걱정은 덜었다.

저렇게 자기가 알아서 거리를 두겠다는데 나는 땡큐지.

“그럼 이번 기회에 보여주면 되겠네. 네가 원하는 멋있는 모습.”

“…네? 아니, 멋있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한테 당당한…”

“아, 됐고. 그게 그거지 뭐. 좋아하는 여자한테 찌질한 모습 보여주기 싫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에 보여주라고.”

“……어떻게요?”

그런데 시우가 가만히 있어도 이수빈 쪽에서 먼저 다가올 수도 있다. 보니까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아있더만. 그러니까 강제로 둘 사이를 벌려야 한다.

이른 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작전이다.

“몬스터 웨이브 그거, 나랑 엘리스가 둘이서 맡을 생각이었거든. 근데 너도 거기에 껴라. 셋이서 전담해서 막는 모습 보여주면 너도 당당해질 수 있겠지.”

“저희 셋이서요…?! 될까요 그게…?”

“가능하지. 내 직업이 그만큼 사기거든. 너도 받아봐서 알잖아. 내 버프.”

“그건 그렇지만…”

근데 이 자식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거지? 막상 판 깔아주면 빼는 타입이네. 후우… 이럴 땐 상대가 남자라면 무조건 통하는 방법이 있지.

“쫄?”

이래도 뺄 거면 진짜 고추 떼라.

***

각 그룹의 간부들이 모인 회의실, 거기에 나 역시 리더의 자격으로 참여했다.

시우와 함께 들어오는 나를 보고 이수빈이 경멸의 표정을 지었지만 뭐, 어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응해주고는 상석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이미 내가 혼자서 튜토리얼의 악어를 잡았다는 소문이 다 퍼져서인지 상석에 앉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나름 반항해주길 바랐는데… 아쉽다. 쫄보쉑들. 재미없기는.

곧 이어 우리 측 간부들이 모두 착석하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엘리스는 숙소에서 쉬는 중이다. 아까 흥이 올라서 너무 열심히 박아댔더니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래서 이건 저희 그룹에서……”

“……순서를 정해서……”

“하아암~”

그런데 억지로라도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역시 이런 자리는 나와 안 어울린다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만 있는 건 너무 지루한 일이었다.

본격적인 네토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회의를 구경하면서 이수빈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버티기가 어려웠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크게 하품하며 이수빈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이수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째려보더니 꾹꾹 참아오던 화를 터뜨렸다.

“이봐. 한 마디도 안하고 하품만 찍찍 할 거면 나가. 방해만 되니까.”

“한 마디 해달라고? 그래, 해줄게. 너네 떠드는 거 보니까 답답해서 짜증만 나 이것들아.”

“흥! 그럼 당신이 마땅한 대안을 내보던가!”

“좋아. 대안? 별 것도 아니지. 한 번만 말할 거니까 놓치지 말고 들어. 몬스터 웨이브. 그거 나랑 엘리스, 그리고 여기 시우, 셋이서 막는다. 나머지는 숙소에서 잠을 자든, 떡을 치든, 미궁에 가든 알아서 해.”

“뭐어?!”

­웅성웅성

­술렁술렁

나의 폭탄선언이 떨어지자 회의실이 단번에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모두를 위한 봉사를 선택한다고?

나야 이번 일로 얻을 수 있는 게 한 두 개가 아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지만 저 놈들은 그걸 알지 못하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겠지.

그러니 귀찮은 의심도 피할 겸 이 걸로 몇 가지 더 뽑아낼 겸, 놈들을 속여넘길 적당한 이유를 대려고 한다.

“물론 대가가 있어.”

“흥! 딱 봐도 뻔하네.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릴 생각이잖아. 저질스러운 걸 요구할 거지? 역겨운 놈.”

“그런 걸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는 거, 알고는 있냐? 떡쳐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떡칠 생각만 하고 있기는.”

“미쳤어? 말하는 거 봐. 진짜 역겹다 너.”

“됐고. 듣기나 해. 내가 대가로 원하는 건 네가 가진 아티팩트야. 그 목걸이 하나만 넘기면 남은 기간동안 책임지고 막아줄게.”

“……이걸 말하는 거야?”

아마 회의가 계속 진행됐다면 대다수의 의견대로 각 그룹이 매일 번갈아가면서 몬스터 웨이브를 처리하게 되었을 거다. 그런데 그걸 우리 셋이서 처리하게 된다면 이수빈과 그녀의 그룹은 성장할 수 있는 5일의 시간을 추가로 벌게되는 거다.

그 대가로 아티팩트 1개? 그 정도면 남는 장사지. 그녀는 그룹의 리더로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아, 물론 나한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관측’으로 확인해본 결과 저 목걸이는 24시간에 1번, 치명상에 이르는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형 아티팩트다.

나는 저걸 소피아에게 선물해줄 생각이다. 소피아한테는 이미 쉴드 기능이 있는 스태프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그래도 불안하단 말이지. 이 목걸이면 더욱 안심이 될 거다.

“맞아. 그 목걸이야. 어때, 콜?”

“……믿을 수가 없는데? 시우랑은 얘기가 된 거 맞아?”

“하, 못믿겠으면 직접 물어보든가. 애초에 저 녀석이 꺼낸 말이거든? 이걸로 최소한 아티팩트 하나는 뜯어야 한다고 덧붙인 건 나지만 도움을 주자고 먼저 의견을 꺼낸 건 시우라고.”

“……시우야, 진짜야?”

“응, 난 이미 많이 강해졌으니까… 이제는 동료들이 강해질 차례잖아? 서로 돕고 살아야지. 지금까진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도움을 줄 거야.”

“넌… 이런 곳에 끌려와도 변하지 않았구나…”

얼씨구. 시우가 말하니까 바로 넘어가네.

거 참… 마지막까지 믿질 않을까봐 혹시나 해서 미리 시우와 말을 맞췄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

속아넘어간 이수빈은 잠깐 망설이다가 내게 목걸이를 내밀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후후, 너무 아쉬워하진 마라고. 조금 있다가 새로운 목걸이를 선물해줄 테니까.

그 뒤로 회의는 빠르게 마무리 되었고 나는 회의실에서 떠나면서 시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시우가 이수빈에게 다가가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수빈아… 밤에 잠깐 만날 수 있을까?”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시우를 속이는 거다.

개인적으로 이수빈에게 사과하고 싶으니까 몰래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나의 부탁을 시우는 아무 의심없이 믿어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혼자서 성벽 위로 찾아온 이수빈을 간단하게 제압한 후 그녀를 노예로 만들 수 있었다.

“너… 너가 왜 여기에 있어? …시우는?!”

“꺄아아앗! 으읏! …뭐하는 거야! 저리 꺼져!”

“씨발! 이 역겨운 새끼야! 꺼지라고!”

“…이런다고 내가 너한테 굴복할 거 같아?! 다 말할 거야! 모두한테, 시우한테… 말할 거라고! 못 할 거같아? 흥! 이 따위 싸구려 짓으로는 나를 가질 수 없…… 뭐야 이게… 노예?”

그 과정에서 작은 소란이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뭐가 되었든 노예로 만들기만 하면 거기서 상황 종료거든.

이제 이수빈은 그 누구에게도 오늘 일어난,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됐고. 일단 벗자. 입 다물고, 고개 돌리지 말고,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벗어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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